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310화 (350/356)

< 낭만필드 - 310 >

[맨시티 탑독? 레알 마드리드 언더독? 적응이 안 되네...]

[파죽지세 맨시티, 어느새 레알보다 높은 평가 받아.]

[만치니, “경기 전 예상은 의미 없다.”며 애써 자제.]

맨체스터 시티와 레알 마드리드의 8강전은 이래저래 볼거리가 많았다.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호날두와 무리뉴를 한 번에 공격한 성배의 인터뷰도 있었고, 지난 시즌과 다르게 공격이 어울리는 성배의 위치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1년 만에 두 팀의 평가가 뒤바뀌었다는 것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경기의 탑독, 즉, 승률이 높은 팀으로 맨시티를 꼽았다.

물론, 레알 마드리드도 항상 탑독으로 평가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언더독이라는 평가는 바르셀로나나 바이에른 뮌헨 등 만만치 않은 명문 클럽과 만날 때 가끔 받는 것이었고, 이러한 명문 클럽만 아니면 항상 탑독으로 평가받았다.

레알 마드리드가 UEFA 클럽 랭킹 10위 바깥의 클럽을 상대하면서 언더독으로 평가받은 것은 UEFA 클럽 랭킹이 발표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클럽 랭킹은 최근 다섯 시즌의 유럽 대항전 성적을 바탕으로 산출했기 때문에 지난 시즌 챔스 4강 진출클럽이어도 그것만으로는 높은 순위에 오를 수 없었다.

최근 유럽 무대에서 부진하면서 레알 마드리드도 랭킹 7위까지 떨어졌지만, 맨체스터 시티는 37위였다.

레알과 맨시티 사이에는 포르투, 인테르, 밀란, 세비야, 브레멘, 리옹 등은 물론이고 지롱댕 보르도, 브라가, 파나티나이코스, 디나모 키예프 등이 있었다.

심지어 맨시티가 16강에서 꺾은 제니트나 레알이 꺾은 CSKA 모스크바 등도 맨시티보다는 순위가 높았다.

[무리뉴 냉소, “그래, 우리가 더 약하다. 그래서?”]

[만치니, “하고 싶은 말은 주가 다 했다. 내 몫도 좀...”]

양 팀 감독들 역시 언론들과 인터뷰를 가졌다.

무리뉴 감독은 많은 전문가들이 맨체스터 시티의 우세를 점친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스페셜 원이자 세계 최고의 감독, 그리고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한 무리뉴가 그런 평가를 쉽게 받아들일 리 없었다.

“많은 전문가들, 나보다 훨씬 대단한 분들이 맨시티의 우세를 점쳤으니, 분명 우리가 더 약할 것이다.”라며 비꼬듯 말하며 자신들이 이기겠다는 뜻을 확실히 전했다.

성배의 발언에 대해서도 “지난 시즌에 이겼으니 당연히 이번 시즌에도 이기겠지. 작년에 바르셀로나가 우승했는데, 이번 시즌에도 우승하겠지. 우리와 승점 6점이 차이 나지만.”이라 반응, 진지하게 대응할 생각이 없음을 내비쳤다.

반대로 만치니 감독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성배가 다 해버렸다며 멋쩍게 웃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감은 숨기지 않았다.

자신감과 오만함 사이의 어딘가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무리뉴와 선수들에게 모든 공을 돌리면서도 자신감을 숨기지는 않은 만치니.

두 감독의 설전을 끝으로 경기의 모든 준비가 끝났다.

***

“사힌, 투레의 압박에 고전! 경기 조율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무리뉴는 마지막까지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지만, 레알 마드리드에게 좋은 소식은 별로 없었다.

경고 누적으로 인한 알론소의 이탈이 치명적이었다.

알론소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맡은 역할을 감안하면 굉장한 타격이라고 볼 수 있었다.

대체할 만한 선수로 지난 시즌 분데스리가 최우수 선수이자 도르트문트의 우승을 이끈 누리 사힌이 있긴 했지만, 사힌은 레알 마드리드 이적 후 부상과 부진으로 폼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사비 알론소를 대신해 출전한 누리 사힌이 이렇게 막히면 안 되죠! 알론소가 레알 마드리드 중원의 핵심 선수이자 공격 전개의 핵 역할을 해주는 걸 감안하면, 사힌도 최소한 중심은 잡아줘야 하는데요.”

사실, 주전 라인업에서 알론소 한 명이 빠진 레알 마드리드에 비해 맨시티는 두 명이 빠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두 명이나 빠진 맨체스터 시티의 위기를 거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비 알론소 한 명이 빠진 레알 마드리드의 위기를 거론하는 목소리에 비하면 지나치게 작은 목소리였다.

“라키티치가 앞에서, 투레가 뒤에서 압박! 사힌, 밀려납니다! 옆으로 흐르는 볼!”

맨체스터 시티 주전 라인업에서 빠진 선수는 중앙 미드필더인 가레스 배리와 라이트백인 마이카 리차즈였다.

그리고 알론소의 자리를 사힌이 대체한 것처럼 맨체스터 시티 역시 백업 선수들을 내세웠다.

그렇게 나온 선수가 이반 라키티치와 파블로 사발레타.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라키티치, 태클로 걷어내지만, 케디라가 다시 잡아서 외질에게 연결! 외질, 오른쪽 측면에서 주와 마주합니다!”

에티하드 스타디움에서 벌어지는 경기였기에 레알 마드리드는 4-2-3-1 포메이션을 들고 나섰다.

이과인을 최전방에 두고 벤제마를 2선에 배치, 왼쪽과 오른쪽에 호날두와 외질을 기용한 것이었다.

‘건방져. 아직도 맨시티가 지난 시즌까지의 맨시티로 보이는 건가.’

이 포메이션 대로라면 공격진에서 수비에 가담해줄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

호날두는 말할 것도 없고, 이과인과 벤제마가 그나마 활동량이 많은 선수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두 선수 모두 최전방 스트라이커였다.

외질 역시 수비와는 거리가 먼 선수였다.

‘그렇다고 외질이 그런 약점들을 극복할 수 있는 친구도 아니고.’

외질은 분명 뛰어난 선수였다.

창조적이고 정확한, 절묘한 킬패스와 넓은 시야, 공간 창출 능력, 돌파력, 주력, 드리블 등 공격형 미드필더에게 필요한 모든 능력을 갖추었고, 킥력과 세트피스 능력 역시 뛰어났다.

하지만 탈압박과 지공, 몸싸움은 외질의 유명한 단점이었고, 중요한 경기에서 강팀을 상대로 활약이 저조한 것도 치명적이었다.

“바로 강하게 압박하는 주성배! 외질, 역시나 주의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는 외질의 이러한 약점이 전면에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경기였다.

맨체스터 시티는 강팀이었고, 챔피언스리그 8강전은 중요한 경기였다.

그리고 성배는 압박을 포함한 모든 수비적 능력치가 뛰어난 선수였다.

‘그렇게 자신 있는 킬패스 한 번 찔러보라고.’

피지컬 능력치와 몸싸움이 그 어떤 리그보다도 중요한 EPL에서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선두를 달리는 클럽이 맨시티였다.

가장 눈에 띄는 장점은 역시 경기당 득점이 3.5골에 육박하는 득점력이었지만, 0.5골에 수렴하는 경기당 실점에서 알 수 있듯 수비력과 중원 장악력도 최고였다.

EPL 최고의 수비력과 미드필드 지역 장악력을 갖춘 맨시티를 상대로 외질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외질, 이 약점이 항상 너무 아쉽네요. 조금만 더 압박을 버텨낼 수 있으면 세계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가 될 수 있는 선수인데요.”

사비 알론소와 메수트 외질.

3선과 2선에서 볼 배급의 핵심적인 역할을 해주는 두 선수가 탈압박 능력이 약하다는 공통적인 약점을 가진 것이 레알의 불운이었다.

알론소를 대신해 출전한 사힌 역시 폼이 좋지 않아 압박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시즌부터 수비진영에서의 압박만큼은 세계 최고라 인정받았던 맨시티와는 상성이 지나치게 좋지 않았다.

‘그만 힘 빼고 이제 줘봐.’

성배의 압박에 고전하던 외질은 마지막 힘을 짜내서 벤제마에게 볼을 내주려 했다.

하지만 벤제마에게 향하는 패스 루트밖에 없다는 것은 성배도 알고 있었고, 제대로 자세를 잡지 못한 상태에서 시도한 외질의 패스는 성배에게 너무 손쉽게 끊기고 말았다.

“맨체스터 시티, 볼 빼앗아서 공격으로 전개합니다. 우선 라키티치에게.”

라키티치의 출전이 발표되었을 때, 사람들은 맨체스터 시티가 최근의 기세에 취해 자만한 것이 아닌가, 걱정했다.

배리의 수비적인 역할을 대신해줘야 하는 자리인데, 라키티치가 과연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잘해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라키티치는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이 패싱 능력일 뿐, 수비력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투레와 함께 레알 마드리드의 중원을 압살했다.

“라키티치, 왼쪽으로! 주, 올라옵니다.”

사힌과 케디라로 이루어진 레알 마드리드의 중원이 다른 경쟁팀에 비해 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압살한다는 건 라키티치의 수비력이 배리와 비교해 크게 밀리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라키티치가 이렇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투레와 배리도 긴장하고, 경쟁심 때문에 경기력도 올라가는 중이었다.

“맨시티 수비라인의 움직임을 보면 지금 자신감이 얼마나 넘치는지 알 수 있어요. 포백라인이 거침없이 하프라인 바로 아래까지 올라오죠?”

성배와 사발레타를 시작으로 보아텡과 콤파니까지 하프라인을 밟았다.

공격작업을 하프라인에서 하고 있는 것이었다.

수비력에 자신이 있고, 미드필더진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플레이였다.

“수비진에서 볼을 돌리면서 타이밍을 재고 있습니다. 주가 처음으로 전진 패스, 실바에게! 실바, 내려가면서 라키티치!”

계속해서 볼을 돌리는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을 따라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은 조금씩 앞으로 끌려 나왔다.

라키티치가 볼을 잡았을 때, 사힌이 따라붙었고, 수비진과 미드필드진 사이의 공간이 벌어졌다.

“아주 좋은 패스예요! 산체스!”

넓어진 공간을 놓치지 않고 산체스가 파고들었고, 라키티치 역시 산체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산체스! 산체스! 산체스!”

“이게 마무리까지 되나요!?”

산체스는 조금씩 전진하면서 슈팅 각도를 좁혔다.

미드필드진이 끌려나간 뒷공간이었기에 산체스의 앞에는 라모스와 코엔트랑 밖에 없었다.

아게로와 사발레타가 각각 수비 뒷공간 침투를 시도하고 있었기에 이들은 함부로 달려들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산체스으!! 원바운드로 골망을 가르는 산체스의 슈팅! 알렉시스 산체스! 선취 골입니다! 맨체스터 시티가 먼저 골을 터뜨리면서 한 골 앞서나갑니다!”

완전히 자유롭게 놓인 상황에서 산체스가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산체스의 강력한 슈팅은 골라인 바로 앞에서 한 번 바운드되면서 카시야스의 손 위를 타고 넘어 그물을 흔들었다.

“역시 맨체스터 시티네요. 공격력이 진짜 상상을 초월해요. 라키티치의 패스도 정말 좋았네요. 이대로라면 배리도 마음을 놓을 수 없겠는데요? 오늘 라키티치의 플레이가 정말 좋아요.”

산체스의 슈팅도 뛰어났지만, 직전에 라키티치가 연결해준 패스가 결정적이었다.

원 터치로 레알 마드리드의 중앙 미드필더들을 바보로 만들어버린 절묘한 패스 덕분에 산체스도 편하게 슈팅 찬스를 잡을 수 있었다.

“팀 동료들이 전부 다 주인공급 선수들이라 주인공으로 활약하긴 힘들지만, 정말 필요한 역할을 잘 해주고 있어요. 배리도 그렇고 라키티치도 그렇고 자신의 역할을 잘 알고 잘 수행해주네요.”

모든 클럽에 주인공만 존재할 수는 없었다.

맨체스터 시티의 주인공급 선수라고 한다면 아게로나 산체스, 실바, 투레가 있었고, 뒤에서 받쳐주는 조력자로는 라키티치나 콤파니, 보아텡, 사발레타 등이 있었다.

성배의 역할은 조금 독특해서 평소에는 조력자로 움직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주인공보다 더 큰 존재감을 내뿜었다.

“맨체스터 시티가 균형이 잘 잡혔다는 건, 공수의 밸런스가 좋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화려한 플레이로 사기를 끌어올리는 선수들과 뒤에서 묵묵히 받쳐주는 선수들의 조화가 완벽하다는 뜻도 있거든요? 오늘 레알마드리드가 맨시티를 상대로 힘을 못 쓰는 건 이 조력자 선수들의 부진 때문이죠.”

산체승의 선취 골로 한 골을 앞서나가기 시작한 맨체스터 시티였다.

그리고 3-0으로 승리했던 지난 시즌 8강 경기보다도 맨시티의 분위기가 좋았기에 이대로 끝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 낭만필드 - 310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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