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306 >
이번 FIFA 발롱도르 시상식의 주인공도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였다.
벌써 3년 연속 수상이었다.
30년 가까이 유일한 발롱도르 3회 연속 수상자로 남아 있었던 미셸 플라티니와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었다.
그리고 시상식이 끝난 뒤, 식장을 빠져나가던 성배는 메시와 마주쳤다.
메시의 옆에는 이번 시상식에 참가한 바르셀로나 선수들, 차비와 이니에스타, 피케, 알베스, 아비달, 비야, 파브레가스가 있었고, 성배의 옆에는 실바와 투레, 아게로가 있었다.
“올라가다 보면 또 한 번 만나게 되겠지?”
가볍게 축하 인사를 건네고 지나치려던 맨시티 일행에게 차비가 말을 걸어왔다.
바르셀로나 일행에서는 파브레가스가, 맨시티 일행에서는 실바가 영어, 스페인어를 모두 구사했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문제는 없었다.
“그렇겠지. 너희는 당연히 올라갈 거고, 우리도 이번에는 꼭대기를 노리고 있으니까.”
4승 2무로 조 1위를 차지한 맨체스터 시티와 4승 1무 1패로 조 2위를 차지한 바르셀로나는 나란히 죽음의 H조를 통과했다.
이 두 클럽의 경쟁에 끼어버린 릴과 도르트문트는 당초 기대치에 비해 너무나도 저조한 성적을 받아들었다.
다른 조에 속했으면 고래가 될 수도 있었던 두 클럽이었지만, 바르셀로나와 맨시티 사이에서는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진 새우로 전락한 것이었다.
“올라가다가 또 만나게 되면. 그때는 절대 밀리지 않아. 결국, 마지막에 웃는 클럽은 우리가 될 거다. 지난 시즌에도 그랬던 것처럼.”
바르셀로나는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진출했지만, 그 순위는 어울리지 않았다.
조 2위라는 자리는 바르셀로나에게 어색했고, 당초 예상 또한 바르셀로나가 조 1위를 차지하고 맨시티와 도르트문트가 2위 자리를 놓고 경쟁할 것이라는 쪽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맨시티는 바르셀로나와의 상대 전적을 1승 1무로 만들며 1위 자리를 차지했고,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여기에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었다.
“글쎄. 그 어떤 사람도, 그리고 팀도 최고의 자리를 영원히 유지하진 못하지. 이번에는 너희 차례일 것 같은데?”
축구선수 중 화술로는 세계 최고라 불리는 성배가 인터뷰 스킬은 떨어진다고 평가받는 차비와의 대화에서 밀릴 리 없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호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큼한 미소와 함께 마지막 마무리를 날렸다.
“최고의 자리. 얼마나 그 짐이 무겁겠어. 경험해본 적은 없지만, 상상은 된다. 걱정하지 말고, 너무 괴로워하지 마. 이번에 우리가 그 짐을 대신 들어줄 테니까.”
누누이 밝혀왔듯, 맨체스터 시티의 이번 시즌 목표는 유럽 챔피언이었다.
별들의 전쟁이라 불리는 유럽 챔피언스리그의 디펜딩 챔피언, 바르셀로나의 자리를 빼앗아 오는 것.
지금 맨체스터 시티는 그 자리를 조준하고 있었다.
***
[리오넬 메시, 2011 FIFA 발롱도르 3연패 달성!]
[발롱도르 3연패, “우리는 메시의 시대를 살고 있다.”]
[호날두, 이번에도 2위에 그쳐. 3위는 차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FIFA 발롱도르 3연패로 메시는 자신이 세계 최고의 선수임을 증명했다.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지만, 항상 미묘하게 한 발자국씩 부족한 레알 마드리드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이번에도 2위에 머무르며 너무나도 강력한 2인자 자리에 만족해야 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벨기에 국가대표팀의 주장으로 투표에 참여한 성배 역시 메시에게 투표권을 행사했다.
직접 그라운드 위에서 마주친 결과, 개인 기량은 몰라도 경기에 미치는 영향력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성배, 다비드 실바. 월드 베스트 XI에 선정.]
[주성배, 발롱도르 투표 11위로 수비수 최고 순위 차지.]
[주성배, 아시아 축구의 역사를 새로 쓰다.]
이번 발롱도르 시상식의 주인공이 되지는 못했지만, 성배도 굵직한 기록들을 많이 남겼다.
다비드 실바와 함께 맨체스터 시티 소속으로는 최초로 월드 베스트 XI에 이름을 올렸고, 11위를 차지하며 에릭 아비달, 다니 알베스, 헤라르드 피케, 세르히오 라모스, 네마냐 비디치 등 최고의 수비수들을 제치고 수비수 중 최고 순위를 차지했다.
또한, 발롱도르 후보가 50인에서 23인으로 줄어든 이후 아시아계 선수로는 최초의 발롱도르 후보가 되었고, 1%가 넘는 득표율로 아시아계 최다 득표와 최고 순위 기록을 세웠다.
ㄴ 미쳤다, 미쳤어. 주가 도대체 어디까지 올라가려고 하는 거지? 월드 베스트 XI이라니... 우리 시티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가 나오다니! 적어도 레프트백 중에는 우리 캡틴이 최고라는 거잖아? 감동이다...
ㄴ 더 받을 감동이 남아있었구나. 나는 지난 시즌 우리가 더블을 기록하고 챔스 4강에 올랐을 때, 이미 내가 죽을 때까지 느낄 감동을 다 받아버렸어. 혹시나 빅 이어를 들어 올린다면 죽어서 느낄 감동을 끌어올 생각이야.
ㄴ 난 이미 우리 캡틴과 시티가 어떤 짓을 하든 놀라지 않게 되었다고. 캡틴이 말했던 것처럼 다음 시즌에 캡틴이 발롱도르 트로피를 받는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아. 항상 성공만 하는 사람이라 뭔 짓을 해도 이해가 된달까? 오히려 저 말이 이번에도 예언처럼 이뤄질 것 같아 무섭다.
ㄴ 역시, 자랑스러운 한국인. 주성배는 진짜 한국의 자랑이다. 한국 선수가 저렇게 높은 위치에 이름을 올릴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역시, 인종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였어.
ㄴ 응? 한국인이라니? 주는 우리 벨기에 선수인데? 한국계인 건 맞지만, 엄밀히 말하면 벨기에인이지. 우리 캡틴이기도 하고.
ㄴ 뭐, 한국인이라는 표현은 틀렸지만, 아시아에서 이런 선수가 나왔다는 건 놀라운 일이야. 벨기에 국적의 선수긴 하지만, 혈통은 100% 아시안이잖아. 거의 성인이 될 때까지 아시아에서 생활한 선수기도 하고. 이젠 아시아도 무시할 수 없겠어. 저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이런 좋은 선수가 계속 나온다면 말이야.
성배의 월드 베스트 XI 선정과 투표 성적은 최소한 아시아와 벨기에에서만큼은 메시 못지않게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아시아 혈통의 선수가 월드 베스트 XI에 선정된 것은 당연히 최초였고, 벨기에 소속으로는 같은 위상과 의미를 가졌던 과거의 상을 포함해 골키퍼 장 마리-파프와 미셸 프뢰돔, 벨기에에게 붉은 악마라는 별칭을 선물한 공격형 미드필더 얀 쾰레만스, 벨기에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 불리는 폴 반 힘스트에 이어 다섯 번째였다.
이 중 가장 젊은 선수인 미셸 프뢰돔이 90년대 초중반에 전성기를 달렸던 선수였으니 벌써 20년이 다 된 일이었다.
벨기에가 강력한 전력을 보여주던 시점에는 항상 구심점이 되어주는 월드클래스 선수들이 있었다.
그리고 두 명 이상이 한 시대에 나타나면 유럽을 강호로 군림했다.
이미 성배가 한 자리를 차지했고, 나머지 황금세대의 선수 중 한 명 이상만 월드클래스로 성장해준다면, 다시 한 번 붉은 악마의 전성기가 열릴 수 있었다.
그리고 팬들은 그런 벨기에의 전성기를 기대했다.
성배가 수상소감에서 언급한 유로컵 제패에 벨기에 전체가 열광하는 이유였다.
***
“아직 계약 기간이 꽤 많이 남았는데, 벌써 재계약입니까?”
맨체스터 시티는 성배가 스위스에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재계약을 제안했다.
계약 기간이 2013년 6월 30일까지였기 때문에 일 년 반 정도 기한이 남아있었는데, 일찌감치 재계약을 제시한 것이었다.
사실, 부정할 수 없는 팀의 중심으로 주장완장을 차고 있고, 지난 시즌 맨체스터 시티가 거의 반세기 만에 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더블과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이라는 업적을 세운 것을 감안하면 재계약 시점이 늦었다고 볼 수도 있었다.
“이런.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가 민망합니다. 오히려 내부적으로는 재계약 제의가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 데 말입니다.”
계약 담당자 역시 그런 것을 알고 있었다.
맨시티의 팬들은 “캡틴과의 재계약이 왜 이렇게 늦어지느냐”며 혹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해왔다.
이번 이적시장에서 생각보다 지출이 적었는데도 왜 가장 중요한 성배와의 재계약을 체결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성배가 재계약이 빠른 것 같다고 말하자, 오히려 더 민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하, 제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 계약기간이 꽤 남았는데요. 계약이 괜히 계약입니까? 하하. 끝나기 전에 재계약만 하면 되는 겁니다. 너무 부담은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립서비스였지만, 딱히 맨체스터 시티를 떠날 이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미 팀 내에서 성배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고, 본인의 기량이 어느 정도 선을 유지해주기만 한다면 팀에서 절대 자신을 내보낼 리 없었다.
다른 클럽에서 이 정도 계약 조건을 안겨줄 것 같지도 않았고, 이 정도 위상을 차지할 수도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맨체스터 시티에서 버틸 생각이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한결 마음이 놓입니다.”
재계약 제의가 늦어 성배의 심기가 상했을까 걱정하던 계약 담당자의 얼굴도 밝게 펴졌다.
일단, 구단 관계자와 직원들에게 성배의 이미지가 굉장히 좋았다.
항상 미소 띤 얼굴로 먼저 인사를 건네주고, 특별히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불만을 토로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구단 내 평판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성배가 섭섭함을 느끼지 않도록 항상 배려해주었고, 뭔가 일이 있을 때마다 가장 먼저 성배의 감정을 신경 쓰고 있었다.
“변명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구단 내부적으로 주와의 재계약은 태양이 동쪽에서 떠오르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세상의 진리와 같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하. 저도 되도록이면 이 클럽에서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습니다.”
성배가 맨체스터 시티에 만족하는 것 이상으로 맨체스터 시티도 성배에게 만족하고 있었다.
역사와 전통이 없다는 약점 때문에 고생하던 맨시티의 걱정거리를 단숨에 해결해준 클럽의 리더였고, 세계 최고의 레프트백이었다.
맨체스터 시티에 역사상 최고의 성공을 안겨준 구단주 만수르.
만수르 체제가 세워진 이후 맨시티의 핵심은 성배였다.
지금 맨체스터 시티의 상징이자 심장이고 그야말로 맨체스터 시티 그 자체를 상징하는 선수를 내보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재계약이 늦어진 것은, 주에게 어느 정도의 대우를 해주어야 할까, 하는 논의가 길어졌기 때문입니다. 구단 측에서는 주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주고 싶었고, 그러면서도 다른 선수들과 팬들이 의아해하지 않을 수 있는 선이 필요했습니다. 그 선에 대한 논의가 길어져서 재계약 제의가 늦엊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죄송합니다.”
맨체스터 시티는 그동안 성배에게 어느 정도 대우를 해줘야 할지에 대해, 그 정도에 대해 몇 달에 걸쳐 회의했다.
지난 시즌 EPL 최우수 선수를 수상한 것은 물론이고, 10-10을 가볍게 달성한 개인 기록과 주장으로서 더블과 챔스 4강을 달성한 공로에 FIFA 발롱도르 시상식 성적까지 예상해 여러 가지 계약 조건들을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시상식에서 결과가 나온 순간, 맨체스터 시티는 성배에게 재계약을 제시했다.
“와우. 그렇게까지 하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 정도로 신경 쓰셨다고 하니까 계약 조건이 기대되네요.”
맨체스터 시티,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리얼富 만수르.
이들이 이렇게까지 신경 쓴 계약이 어느 정도 규모일지, 성배도 기대감을 숨길 수 없었다.
“절대로 실망하시지 않을 겁니다. 제가 장담합니다.”
계약 담당자는 미소와 함께 계약서를 내밀었다.
< 낭만필드 - 30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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