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305화 (345/356)

< 낭만필드 - 305 >

“주, 길게 넘겨줍니다! 산체스, 오른쪽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성배의 신호에 산체스가 오른쪽으로 빠져 들어갔고, 루카쿠는 맨유 수비수들이 산체스에게 달라붙지 못하도록 시선을 끌어주면서 몸으로 방해해주었다.

“필 존스, 끊지 못하고 산체스! 측면으로!”

조금 전까지 맨유가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맨시티가 찬스를 맞이했다.

잠시 한눈을 팔았던 사람들이 어리둥절할 변화였다.

“산체스, 중앙으로 크로스!”

성배의 프리킥을 막기 위해 몸을 날렸던 맨유 수비수들은 산체스의 돌파를 막지 못했다.

에브라 혼자 뒤늦게라도 산체스에게 따라붙었고, 나머지 수비수들은 전부 페널티박스 안으로 침투하는 루카쿠에게 달라붙었다.

“루카쿠우우! 골! 골입니다! 루카쿠, 역전 골을 터뜨립니다! 극적인 역전 골! 열 명이 싸우는 맨시티가 결국 역전 골을 터뜨렸습니다!”

하지만 루카쿠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시즌이 시작될 때까지만 하더라도 아게로, 제코, 발로텔리에 이어 4옵션 공격수였던 루카쿠는 어느새 3옵션으로 올라온 상황이었다.

활용이 제한적인 발로텔리에 비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 줄 수 있다는 장점과 뛰어난 골 결정력으로 출전 시간 대비 나쁘지 않은 골을 터뜨리면서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 장면에서 자신의 그런 장점을 십분 발휘했다.

“아, 루카쿠! 대단한 파워네요! 저기서 저렇게 튕겨내나요? 존스도 파워가 약한 선수가 아닌데, 그냥 날려버렸어요!”

산체스의 크로스에 반응한 선수는 맨시티의 루카쿠와 맨유의 필 존스, 두 선수였다.

필 존스는 92년생으로 투지와 집념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잉글랜드 대표 유망주였고, 93년생의 루카쿠 역시 패기로 무장한 벨기에 대표 유망주였다.

누구 하나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혔고, 루카쿠는 필 존스를 날려버리면서 머리를 가져다 대 득점을 만들어냈다.

[와아아아아아!!!! 시티! 시티! 시티!]

에티하드 스타디움은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맨유를 8-0으로 초토화시켰던 리그 9라운드 경기보다도 더 뜨거운 반응이었다.

“전반 10분, 수비의 핵심인 뱅상 콤파니가 너무 일찌감치 퇴장당해 오늘 경기는 힘들다고 봤거든요? 그런데 70분 이상을 열 명으로 뛰면서 오히려 리드를 잡았어요! 맨시티, 굉장한 저력! 엄청난 저력을 보여주네요!”

콤파니의 지나치게 이른 퇴장에도 불구하고 맨시티는 맨유를 거의 잡아냈다.

그리고 맨시티 선수들의 이러한 투지는 서포터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계속된 억울한 판정과 수적 열세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승기를 잡는 모습으로 팬들에게 감동을 안겨준 것이었다.

“맨체스터 시티, 정말 말이 안 나옵니다. 맨유를 상대로 열 명이서 승리를 따냈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맨유를 상대로 열한 명이 뛰어도 승리하지 못하는 팀들이 수두룩한데, 맨시티는 시작과 동시에 열 명이 뛴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거의 승리하기 직전까지 만들었습니다.”

반대로 맨유 입장에서는 진짜 죽을 맛이었다.

지난 시즌 FA컵 4강에서 패배한 것을 시작으로 커뮤니티 쉴드, 리그 9라운드에 오늘 경기까지.

맨체스터 더비 4연패의 수모를 겪기 직전이었다.

심지어 성배가 맨시티로 이적한 이후, 세 시즌 동안 상대 전적에서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사실, 이번 시즌의 맨시티는 분명 엄청난 기세로 달리고 있어요. 저도 그걸 인정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마지막 확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게 뭐냐면, 시즌이 진행되는 동안 어쩔 수 없이 마주치는 위기가 왔을 때, 과연 벗어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어요.”

이번 시즌이 진행되는 동안 맨체스터 시티는 위기 없이 탄탄대로를 달려왔다.

무시무시한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달렸지만, 위기관리 능력이 증명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오늘 마지막 의문점마저 해소되었네요. 맨시티. 최소한 이번 시즌만큼은 완전무결한 클럽이에요. 위기관리 능력까지도 완벽해요.”

오늘 경기에서 만만치 않은 상대인 맨유를 상대로 열 명이서 승리 직전까지 만들어내면서 위기관리 능력까지 증명한 맨시티에 약점은 보이지 않았다.

“선수들도 선수들이지만, 만치니 감독을 칭찬해야 하지 않습니까?”

“당연하죠! 만치니 감독에 대한 칭찬 없이는 오늘 경기를 설명할 수 없죠. 스리백 선택이 기가 막혔어요. 물론, 쉽지 않은 전술이 통할 수 있었던 건 주와 사발레타의 기량 덕분이었지만, 선수들의 기량을 파악하고 이런 전술을 선택한 만치니 감독의 선택이 기가 막혔죠.”

시즌이 시작되기 전, 맨체스터 시티의 가장 큰 약점으로 꼽혔던 부분이 바로 만치니 감독의 수비적인 성향이었다.

하지만 만치니는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며 훌륭하게 팀을 이끌고 있었다.

자신이 수비적이었던 이유는 선수들 탓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상당히 공격적인 전술로 무패행진을 달렸다.

“감독과 코칭스태프, 선수들에 보드진까지. 맨체스터 시티, 하나로 똘똘 뭉쳐서 구단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시즌이 진행될수록 맨시티의 기세는 약해지긴커녕 오히려 더 강력해졌다.

챔피언스리그 우승, 빅 이어를 목표라 말하던 맨시티의 포부를 이젠 아무도 비웃을 수 없었다.

***

[열 명이 뛴 맨시티, 열한 명의 맨유 잡아내.]

[맨유, 대굴욕. 11 vs 10 경기에서 패배, 더비 4연패.]

[수적 열세 따위는 가볍게 극복한 맨시티의 투지.]

[스콜스 투입, 퍼거슨의 흔치 않은 실수.]

FA컵에서 열 명으로 열한 명을 잡아낸 맨시티의 경기력은 또 한 번 잉글랜드를 놀라게 했다.

물론, 퍼거슨의 계산 미스가 없지는 않았다.

무려 반년이나 그라운드를 떠나 있었던 스콜스를 이번처럼 중요한 경기에 기용했고, 천하의 스콜스도 나이와 공백 앞에서는 버티지 못했다.

숫자가 부족한 맨시티의 약점을 노려 속공으로 경기를 풀어가는 게 좋았을 텐데, 안정적으로 경기를 운영하려 지공으로 바꿨던 전술적 변화도 결과적으로는 좋지 않은 선택이 되었다.

노쇠화로 스피드, 민첩성 등 속도가 많이 떨어진 선수들의 기용과 지공 위주의 전술은 안 좋은 쪽으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하지만 이러한 퍼거슨 감독의 실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맨유를 상대로 80분 동안 열 명이 뛰어서 경기를 잡아낸 건 놀라운 일이었다.

[주성배, “포이와 함께한 맨유의 18연승을 끊어 기쁘다.”]

[만치니, “이겼지만, 콤파니 퇴장 건은 FA에 제소할 것.”]

게다가 맨시티가 불리했던 부분은 그게 끝이 아니었기에 더욱 더 이슈가 되었다.

경기는 승리했지만, 포이 주심에 대한 분노는 없어지지 않았다.

만치니 감독은 물론이고 단장과 사장, 만수르까지도 포이 주심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계속된 삽질에도 별다른 징계를 받지 않았던 포이 주심이 이번 일로 징계를 받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맨시티는 제소를 결정했다.

[11일 오후 8시, FIFA 발롱도르 시상식 중계.]

[메시, 호날두, 차비. 과연 발롱도르의 주인공은 누구?]

하지만 팬들의 관심은 3일 뒤 벌어진 FIFA 발롱도르 시상식으로 넘어갔다.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와 리그, 더블을 기록한 바르셀로나가 이번 시상식의 주인공이 될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2008년부터 메시와 라이벌리를 이루고 있는 호날두 역시 수상은 좀 힘들어도 만만치 않은 경쟁자였고, 바르셀로나의 플레이 메이커, 차비도 최후의 3인에 포함되었다.

[주성배, 실바, 투레, 아게로. 맨시티 4인도 취리히로.]

프리미어리그와 FA컵 더블을 달성하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4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낸 맨체스터 시티 역시 상당한 수의 선수들이 최종 후보 23인에 포함되었다.

주장이자 구심점, 그리고 개인 기량 역시 월드클래스인 성배는 물론이고, 지난 시즌 맨시티 공격 작업의 핵심을 담당한 실바와 중원의 핵심 야야 투레,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이어 맨시티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는 아게로가 그 주인공이었다.

***

“2011년 FIFA/FIFPro 월드 베스트 XI, 수비수 부문! 센터백에 헤라르드 피케와 네마냐 비디치! 그리고 레프트백 주성배! 라이트백 다니 아우베스! 축하합니다.”

애초부터 발롱도르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다만, 월드 베스트 일레븐 선정에 대해서는 기대감이 있었다.

바르셀로나의 에릭 아비달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더블을 달성하고 챔피언스리그 4강을 이끈 팀의 핵심, 성배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2011 FIFA/FIFPro 월드 베스트 XI

GK

이케르 카시야스 (레알 마드리드)

DF

주성배 (맨체스터 시티)

다니 아우베스 (바르셀로나 C.F.)

헤라르드 피케 (바르셀로나 C.F.)

네마냐 비디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MF

차비 에르난데스 (바르셀로나 C.F.)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바르셀로나 C.F.)

다비드 실바 (맨체스터 시티)

FW

리오넬 메시 (바르셀로나 C.F.)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레알 마드리드)

웨인 루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시티는 월드 베스트 일레븐에 성배와 실바, 두 명의 선수를 올렸다.

차비와 이니에스타가 두 자리를 확정한 상황에서 나머지 한 자리를 놓고 실바, 사비 알론소와 경쟁한 야야 투레는 아쉽게 떨어지고 말았다.

아게로의 경우에는 워낙 뛰어난 공격수들이 많은 데다가 지난 시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딱히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기에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이 위치까지 올라올 거라고 상상해본 적은 없지만, 받을만하다는 생각은 합니다. 하하. 솔직히 2011년 한 해 동안 꽤 잘하지 않았습니까?”

선수별로 짧게 소감을 발표할 시간이 주어졌다.

성배는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소감을 이어나갔다.

“2012년에 맨체스터 시티가 트레블을 달성하고 벨기에가 유로컵을 제패한다면... 역사상 최초의 풀백 발롱도르 수상자가 나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뭐, 꿈을 꾸는 게 잘못은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하하.”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FIFA 올해의 선수와 발롱도르가 통합되면서 기자단 투표보다 주장단과 감독들의 영향력이 강해져 개인 기록의 중요성이 커진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팀 성적은 중요했고, 트레블과 유로컵 제패가 동시에 이뤄진다면 두 팀의 중심이자 주장인 성배가 발롱도르를 따내는 것도 꿈은 아니었다.

“어쨌든 1년 동안 열심히 꿈꿔보겠습니다. 아, 유로컵이 끝날 때까지라고 치면 한 7개월 남았군요. 남은 7개월, 꿈속에서 살아볼 테니 그것까지 뭐라고 하진 말아주시길. 마지막으로 베스트 일레븐으로 저를 뽑아주신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 꿈은 내년의 일.

일단 지금은 지금 이뤄낸 이 성과에 기뻐할 시간이었다.

단순히 벨기에 주필러 리그에서 뛰어보고 싶다던 그 꿈은 빅리그와 빅클럽을 거쳐 프리미어리그 우승,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레블에 유로컵 제패까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얻어낸 월드 베스트 일레븐 역시 예전이었다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성과였다.

일단 지금은 지금의 성과를 순수하게 기뻐할 시간이었다.

< 낭만필드 - 305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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