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299 >
야야 투레를 빼고 가레스 배리를 투입하며 선수들의 체력을 안배해주기 시작한 맨시티였다.
투레가 빠져도 맨시티의 중원 장악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맨유는 이미 무너졌고, 수적 열세 때문에 슬슬 체력적인 한계를 느끼는 중이었다.
[IN - 9. 로멜루 루카쿠 / OUT - 16. 세르히오 아게로]
해트트릭을 기록한 아게로를 루카쿠와 바꿔주면서 아게로의 체력 안배와 겸해 루카쿠에게 큰 경기 경험도 쌓아주었다.
맨시티의 여유로운 선수 운용과는 반대로 맨유는 이미 어떻게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성배와 실바의 협력 수비에 아무것도 못 하고 막혀버린 나니를 빼고 치차리토를 투입했고, 마찬가지로 맨시티에게 중원이 먹혀버린 원흉, 안데르손을 빼고 필 존스를 투입했지만, 이미 대세를 거스를 순 없었다.
“루카쿠, 실바! 힐패스, 리턴! 넘어집니다! 프리킥!”
루카쿠와 실바의 2대1 패스가 맨유의 수비진을 또 한 번 무너뜨렸다.
밑으로 내려와 볼을 받아준 루카쿠는 실바에게 볼을 내주고 침투했다.
실바는 루카쿠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척하면서 또 한 번 노룩 힐패스로 루카쿠에게 볼을 내주었고, 완전히 속아버린 맨유 수비진은 반칙으로 끊을 수밖에 없었다.
“스몰링에게 경고가 주어집니다. 완벽한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어내는 맨체스터 시티.”
“이 위치라면 역시 주를 이야기해야겠죠? 아직 이번 시즌 마수걸이 골은 나오지 않고 있지만, 지난 시즌에도 프리킥 포함 열두 골을 넣어준 선수거든요? 이 위치라면 데 헤아, 집중해야 해요.”
맨체스터 시티의 파상 공세가 슬슬 사그라들면서 4-0으로 경기가 끝날 것처럼 느껴졌던 후반전 40분.
페널티박스 바로 바깥에서 프리킥을 얻어준 루카쿠와 실바의 2대1 패스 덕분에 다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오늘 다비드 실바의 활약이 대단합니다.”
“해트트릭을 달성한 아게로나 2어시스트의 주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지만, 오늘 MVP를 한 명만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실바를 꼽고 싶네요. 공격 포인트는 한 개밖에 없지만,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어요.”
성배가 프리킥을 처리하러 올라오는 시간 동안 중계진은 실바를 극찬했다.
공격 포인트를 떠나 맨시티가 경기를 지배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창조성은 잃었고, 전투적인 압박은 아직 장착하지 못한 맨유의 중원은 실바의 플레이를 보면서 창조적인 플레이 메이커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달았을 것이었다.
“주, 왼발 프리킥! 데 헤아,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완벽하게 감긴 슈팅이 데 헤아를 무너뜨립니다!”
성배가 슈팅하기 직전까지 제코와 루카쿠, 밀너가 활발하게 움직여주면서 맨유 수비진과 데 헤아를 흔들었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정교해지는 성배의 프리킥은 맨유 수비벽의 머리 위를 살짝 넘긴 뒤 급격하게 떨어지며 맨유의 골망을 갈랐다.
“더! 더 소리 지르라고! 오늘 같은 날, 이 정도 소리 밖에 안 나와? 더! 더 크게! 저기 전광판 안 보여? 저 사람처럼 소리 지르라고!”
골을 넣은 성배는 맨시티 서포터들이 모여있는 지정석으로 달려가 팬들을 흥분시켰다.
올드 트래포드에서 맨유를 5-0으로 무너뜨리는 중인데, 팬들의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었다.
마침 전광판에 미친 사람처럼, 활어처럼 펄떡대는 누군가가 비췄고, 성배는 그 사람을 가리키며 저렇게 소리 지르라고 요구했다.
“하하하하하!!”
“푸하하하!!”
그런데 성배의 말을 들은 앞줄의 팬들은 배꼽을 잡으며 웃기 시작했다.
이유를 몰랐던 성배는 전광판을 다시 본 뒤에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하하, 맨시티의 열렬한 서포터로 알려진 유명 가수, 노엘 갤러거입니다. 시상식에서 트로피 받을 때보다 훨씬 더 신나 보이네요.”
그 사람이 노엘 갤러거였던 것이었다.
애초에 저 사람이 누군지 신경 쓴 적은 없지만, 얼굴을 보자 헛웃음이 나왔다.
지난 시즌 우승이 결정되었을 때, 일이 있어 직관하지 못했다고 광분하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었다.
‘저렇게 좋아해도 되는 건가, 싶네.’
오늘은 직접 관람해서 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또 한바탕 난리가 났을 테니.
“배리의 패스! 루카쿠, 뒤꿈치로 흘려주고, 이번엔 리차즈에게!”
밀너가 중앙 미드필더처럼 움직여주면서 실바는 왼쪽으로 살짝 치우친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처럼 뛰었다.
이번에도 오른쪽으로 빠져있다가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리차즈의 오버래핑 타이밍에 맞춰 절묘한 패스를 넣어주었다.
“기관차가 폭주합니다! 리차즈, 엄청난 오버래핑!”
실바, 아게로, 밀너, 제코, 성배 등 동료들의 뛰어난 플레이 때문에 살짝 묻히고 있었지만, 리차즈 역시 엄청난 활약을 선보이고 있었다.
밀너와 호흡을 맞추면서 공격적으로 움직이라는 지시도 있었고, 경기 초반 왼쪽 윙어로 나섰던 영이 라이트백으로 내려가면서 공간까지 뻥 뚫렸다.
리차즈가 이 공간을 가만히 놔둘 리 없었고, 그동안 자제해야 했던 울분을 토하듯 맨유의 측면을 유린하고 있었다.
“뒤쪽으로 크로스! 논스톱 슈팅!! 골! 골! 골! 또 들어갑니다!! 맨체스터 시티, 후반 44분에 또 한 골을 추가하면서 6-0! 공격의 고삐를 늦출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이번에는 실바의 골이었다.
공격 포인트에서 살짝 물러나 경기 조율에 집중하며 경기를 지배하던 실바가 직접 골까지 집어넣은 것이었다.
“꽉 차있던 올드 트래포드의 관중석이 점점 비기 시작하네요! 올드 트래포드의 관중들이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떠나는 게 얼마 만인가요?”
더 이상 경기를 지켜볼 수 없다는 듯 맨유 서포터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6-0이었다.
심리적인 한계점인 5실점을 넘긴 순간, 아무리 충성스러운 맨유의 서포터라고 할지라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주, 실바에게! 논스톱으로 띄워주고 루카쿠!! 골! 골입니다! 오늘 연달아 나오는 실바의 환상적인 패스를 루카쿠가 마무리합니다! 아, 이게 뭡니까? 7-0입니다, 7-0!!”
성배가 넘겨준 볼을 오른발 아웃사이드로 살짝 띄워 맨유 수비진의 머리를 넘기며 루카쿠에게 논스톱으로 연결, 일곱 번째 골을 어시스트한 실바였다.
그리고 루카쿠는 리그 2호 골을 터뜨렸고, 맨체스터 더비라는 중요한 경기에서 골을 기록했다.
“7-0이라니... 이제는 맨유가 안쓰러워서 뭐라 말을 하기가 힘드네요. 도대체 맨유가 마지막으로 7골을 실점한 게 언젠가요? 저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맨유의 벤치는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였다.
아니, 초상집도 저렇게까지 침울하진 않을 것이었다.
점점 빨라지던 퍼거슨 감독의 턱은 빨라지다 못해 멈춰버렸고, 선수들 역시 고개를 푹 숙인 채 움직임이 없었다.
“반대로 맨시티 쪽은 축제 분위기입니다. 지난 시즌 리그 우승을 확정했을 때보다 더 기뻐 보입니다.”
당연히 맨체스터 시티 쪽은 축제였다.
한 화면에 담긴 맨시티 벤치와 맨유 벤치의 모습은 극과 극.
의미심장한 화면이었다.
‘‘SIX AND THE CITY’가 입에 쫙쫙 달라붙는데.’
아쉽게도 여섯 골을 넘겨버렸다.
입에 착 감기는 ‘식스 앤 더 시티’라는 단어는 사용할 수 없게 되었지만, 아쉽진 않았다.
맨유를 크게 이기면 이길수록 좋았으니까.
“영, 치차리토에게 밀어줍니다!”
‘마지막까지 이러네. 한 골 더 넣으라는 건가?’
한 골이라도 만회하겠다는 듯 맨유는 라인을 끌어올려 공격에 나섰다.
일곱 골을 내준 건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한 골이라도 따내겠다는 것이었다.
추가 시간까지 거의 다 끝나 1분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그야말로 마지막 공격을 시도했다.
“주가 끊어냅니다. 패스에 힘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의 패스는 애매했다.
치차리토에게 넘겨준 것이라기엔 너무 약했고, 돌파라기엔 너무 길었다.
성배가 이런 애매한 볼을 놓칠 리 없었다.
‘마지막으로 하나 넣어볼까?’
최전방 깊숙이 제코와 루카쿠가, 그리고 수비진과 그들의 사이에 실바가 대기하고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주가 전방으로 길게 걷어냅니다! 루카쿠와 스몰링, 스몰링이 먼저! 아, 실바에게!”
성배의 롱패스에 먼저 머리를 가져다 댄 선수는 맨유의 크리스 스몰링.
하지만 이는 오히려 불운이었다.
스몰링이 머리를 가져다 댔을 때, 루카쿠는 스몰링을 지나쳐 맨유 진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스몰링이 걷어낸 볼은 하필이면 실바의 앞으로 흘러갔다.
“트래핑! 길게 패스! 로멜루 루카쿠! 루카쿠! 루카쿠!”
스몰링이 걷어낸 볼을 오른발로 트래핑해 띄워놓은 실바는 태권도의 돌려차기를 하듯 상체를 눕히며 강하게 걷어찼다.
볼을 걷어내느라 앞으로 튀어나온 스몰링과 그의 파트너 퍼디난드의 사이를 꿰뚫은 패스가 루카쿠의 발밑에 연결되었다.
“루카쿠의 질주! 아무도 막지 못합니다!”
루카쿠의 앞을 막을 선수는 데 헤아밖에 없었다.
퍼디난드와 스몰링이 급히 따라붙었지만, 190cm라는 신장에 비해 루카쿠의 발은 그리 느리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슈팅!! 아이고... 또 들어갔습니다. 이게 또 들어갑니다.”
“허허, 이야... 허! 허허...”
이제는 중계진도 말을 잃었다.
여덟 번째 골.
맨시티가 다른 팀도 아닌 맨유를 상대로 여덟 골을 폭발시킨 것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8-0이라니. 맨유가 다섯 골까지 실점하는 건 봤습니다만, 그 이상을 실점하는 건 처음 봅니다.”
캐스터지만 나름 축구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맨유가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지는 건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저도 처음인데 그럴 수밖에 없죠. 선수 시절에도 본 적 없는 광경이에요. 자료를 살펴보니 그럴 수밖에 없네요. 마지막으로 일곱 골을 실점한 게 1931년이네요.”
역사가 수립되었다.
의미 있는 역사가 수립된 지금, 이미 올드 트래포드의 관중석은 텅텅 비어버렸고, 맨시티 서포터만 남아 마치 자신들의 홈구장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맨시티의 서포터들과 맨유 서포터들의 공통점도 있었다.
두 집단 모두 지금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만치니 감독, 어떻게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습니까? 저희 다섯 살짜리 아들보다 더 해맑고 순수한 표정입니다."
세상 모든 즐거움을 다 누리는 듯한 만치니 감독의 표정이 오늘 경기의 결과를 말해주었다.
***
[맨시티, 클럽 레코드! 최다 득점, 최대 승리 기록 수립!]
[맨유, 클럽 역사상 최다 실점, 최다 점수 차 패배!]
[굴욕의 날. 맨유, 역사에 남는 패배.]
8-0.
이전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최다 점수 차 패배는 0-7이었다.
그것도 1931년 2부 리그에서 울버햄튼에게 당한 패배였다.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최다 점수 차 패배는 96년과 99년, 뉴캐슬, 첼시에게 당한 0-5 패배였다.
이 모든 기록은 2011년, 맨시티에게 0-8로 패배하며 깨졌다.
맨체스터 시티의 최다 점수 차 승리는 2008년 포츠머스를 상대로 기록했던 6-0 승리.
이 기록도 깨졌다.
한쪽이 영광스러운 기록을 갈아치우는 동안, 한쪽은 굴욕적인 기록을 쓰고 말았다.
그것도 최대 라이벌을 상대로.
[주성배, “퍼거슨이 옳았다. 오늘 경기는 역사에 남았다.”]
경기 전, 퍼거슨 감독은 이번 경기가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퍼거슨 감독의 말대로 이번 경기는 잉글랜드 축구 역사에 아주 중요하고 임팩트가 강한 기록으로 새겨졌다.
< 낭만필드 - 29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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