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297 >
“고작 일주일 전에는 같이 웃었는데 말이지... 너무 한 거 아니야? 벌써 2승이나 하고 있으면 한 번은 봐줄 것이지, 잔인하시네, 참.”
유로 2012 본선 진출을 확정하고 일주일 뒤, 성배는 맨시티로 돌아가 챔피언스리그 원정 경기에 참가했다.
상대는 LOSC 릴.
벨기에 대표팀 동료 아자르가 속한 클럽이었다.
“잔인하기는. 네가 넣은 골 때문에 우리 연속 경기 무실점 행진도 끝났어. 어제까지만 해도 2011/12시즌 10경기 연속 무실점이었다고.”
경기는 2-1로 맨시티가 승리를 거두었지만, 아자르에게 한 골을 허용하면서 열 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이 끝나고 말았다.
“사실, 덕분에 부담이 좀 없어지긴 했지만.”
성배는 오히려 아자르에게 고마워하는 중이었다.
열 경기 연속 무실점 기록 때문에 경기를 치를 때마다 부담이 있었으니까.
다음 경기는 이런 부담감을 안고 치를 수 있는 경기가 아니었다.
***
[맨유 vs 맨시티. 자존심을 건 한판 대결.]
다음 경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맨체스터 더비였다.
8라운드까지 진행된 지금, 프리미어리그의 1위는 맨체스터 시티였다.
지난 시즌부터 우승후보로 군림해왔고, 결국, 지난 시즌 우승 트로피를 차지한 맨시티지만, 아직 익숙한 광경은 아니었다.
그것도 무려 8전 전승에 29득점과 무실점을 기록, 압도적인 1위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2위로 바짝 쫓아오고 있었지만, 6승 2무로 승점 4점의 차이가 있었고, 25득점 6실점이라는 좋은 골 득실을 기록하긴 했지만, 여기서도 작지 않은 차이가 있었다.
맨유의 기세도 굉장히 좋지만, 맨시티의 기세는 그보다 훨씬 더 좋았다.
[맨유, “아직 끝나지 않았어. 맨체스터의 주인은 우리.”]
맨유는 이번 맨체스터 더비에서 위험해진 맨체스터의 주인 자리를 확실히 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맨시티의 기세가 굉장히 무서웠고, 정식으로 시즌이 시작된 이후 11전 전승에 35득점 1실점으로 공수의 밸런스가 완벽한 맨시티지만, 맨유의 기세도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단판 경기라면 맨유가 맨시티를 이기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올드 트래포드에서 펼쳐진다는 이점도 있었다.
[맨시티, “시끄러운 이웃 역할은 끝. 이미 우리가 최강.”]
반대로 맨시티는 이미 대세가 넘어왔다는 입장이었다.
두 시즌 연속으로 상대 전적에서 우위를 점했고, 지난 시즌에는 맨유를 꺾고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맨유는 트래포드의 주인일 뿐, 맨체스터의 주인은 오래전부터 맨시티였다.
이번 경기는 그것을 증명하는 경기에 지나지 않았다.
맨유를 꺾는다는 것, 그 자체에 집착하기에는 이미 맨시티의 위상이 많이 올라온 상황이었다.
지난 시즌의 우승 경쟁이 고작 한 골 차이로 결정되어 맨유가 아직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현실을 알려줄 생각이었다.
***
“맨유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네. 아직도 우리를 이기겠단 소릴 하고 다닐 줄이야.”
맨유의 이번 시즌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6승 2무로 8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달렸고, 골 득실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는 기본적인 전력의 차이를 기반으로 퍼거슨 감독의 전술이 합쳐진 덕분이었다.
기반이 되어야 할 맨유 선수들의 기량 자체는 많이 떨어져 있었고, 이미 맨시티와는 비교가 힘들 정도로 차이가 벌어진 상태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제 슬슬 상황을 받아들일 때가 되었는데요.”
성배 역시 만치니 감독의 말에 동의하며 웃었다.
물론, 맨유 관계자들이 맨시티에게 밀린다고 인정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맨시티를 우습게 보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퍼거슨 감독은 맨시티가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라고 말하기도 했고.
“맨유도 이제 많이 힘들어졌지 않습니까? 퍼거슨 감독 덕분에 어떻게든 버텨내고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약팀을 상대할 때 이야기입니다. 세대교체에 실패하고도 우승권에서 경쟁한다는 건 신기하지만... 퍼거슨 감독도 그 이상을 보여주긴 힘들 겁니다.”
만치니와 성배 못지않게 전술 이해도가 뛰어나고 보는 눈이 좋은 콤파니 역시 자신이 넘쳤다.
실제로 맨유의 위기는 유럽 대항전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맨유의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성적은 1승 2무.
그것도 맨시티처럼 죽음의 조에 속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받아들인 성적이었다.
S.L. 벤피카, FC 바젤, 오첼룰 갈라치.
오히려 모든 1포트 팀 중에서 가장 대진운이 좋다고 평가받는 맨유였다.
“정확해. 감독의 역량은 물론 중요하지.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게 선수들의 기량이야. 맨유는 퍼거슨 경 덕분에 계속 강팀으로 군림하면서 가장 중요한 걸 잊어버렸어.”
조금씩 노쇠화가 찾아오는, 평균 연령이 점점 높아지는 맨유 선수단이었다.
그 어떤 클럽보다 세대교체가 시급했는데 항상 퍼거슨 감독이 머리끄덩이를 잡고 꼭대기에 올려놓으니 세대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냥 쉽게 말해서 맨유는 상대가 안 된다는 거 아닙니까? 뭐 그렇게 복잡하게 말합니까? 하하.”
리차즈의 말이 정답이었다.
사실, 맨시티는 맨유를 그렇게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다.
맨시티와 맨유가 우승 트로피를 놓고 경쟁한다면 맨유는 여전히 강력한 경쟁자였다.
우승 경쟁은 약팀을 효과적으로 잡아내는 것만으로도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맞대결이라면 맨유는 이미 맨시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야야, 이반, 그리고... 제임스. 이번 경기는 너희 세 명한테 달렸다.”
만치니 감독은 세 선수에게 따로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이번 올드 트래포드 원정의 핵심 선수는 야야 투레, 이반 라키티치와 제임스 밀너였다.
***
[나니, “홈에서 맨유는 지지 않는다. 자신 있다.”]
맨유는 올드 트래포드 홈에서 굉장한 승률을 보여주고 있었다.
최근 2년 동안 홈에서 패배한 적은 단 한 번에 불과했다.
최근 2년간 올드 트래포드에서의 승률이 90%를 훌쩍 넘어가다 보니 이번에도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었다.
“루이스가 올드 트래포드에서는 절대 지지 않는다고 했습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하, 그 올드 트래포드에서 이겼던 기억이 있는데, 제 기억이 잘못되었나 봅니다. 지금 바로 병원을 좀 가야겠군요. 급하니까 저 대신 구단에 연락해주세요.”
올드 트래포드에 도착한 성배를 붙잡고 한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인터뷰를 따로 하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지나가면서 한 마디 던져주었다.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며 우스갯소리로 넘겨버린 것이었다.
올드 트래포드에서 이겨본 적도 있었고.
“어, 주성배 선수!! 저기!”
“죄송합니다. 지금은 따로 질문을 받지 않습니다.”
성배가 한마디를 던져주자, 기다렸다는 듯 기자들의 질문 세례가 이어졌다.
하지만 성배는 올드 트래포드 원정팀 라커룸으로 들어갔고, 기자들은 보안요원들의 제지를 받았다.
‘홈에서 강한 건 알겠지만. 뭐 그것도 어느 정도지.’
올드 트래포드.
물론, 부담스러운 장소인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경기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원정에서 약한 클럽도 아니고.’
맨시티가 여덟 경기에서 29골을 넣는 어마어마한 화력을 보여주는 동안 홈에서 터뜨린 골이 13골, 원정에서 터뜨린 골이 16골이었다.
오히려 원정에서 더 좋은 공격력을 보여준 것이었다.
올드 트래포드라고 해도 똑같은 원정 경기였다.
원정경기에 대한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맨시티는 올드 트래포드 원정이라도 크게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다.
***
“오늘은 산체스가 빠지고 오랜만에 밀너가 투입되었습니다. 산체스의 최근 활약상이 나쁘지 않았는데, 밀너가 투입된 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실바와 아게로, 제코, 산체스에 투레까지.
맨시티의 공격 자원들은 매 경기 훌륭한 활약으로 이번 시즌 맨시티의 질주를 넘어선 폭주를 이끌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맨체스터 더비에서 만치니 감독의 선택은 산체스가 아닌 밀너였다.
“뻔하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중원이 완전 붕괴된 상태거든요. 측면에 주로 투입되지만, 중원 장악에 큰 역할을 해주는 선수가 바로 밀너고, 산체스가 아닌 밀너를 투입했다는 건 결국 맨유의 중원을 먹어치우겠다는 뜻이죠.”
만치니 감독이 이번 경기의 핵심 선수로 투레, 라키티치, 밀너를 지목한 이유였다.
로이 킨의 은퇴 이후 꾸준히 맨유의 약점으로 꼽히던 중원의 장악력은 스콜스의 은퇴와 안데르손의 느린 성장으로 정점을 찍었다.
스네이더의 영입과 하그리브스의 실패는 맨유에게 치명적이었다.
“맨유가 특별히 약한 클럽은 무리뉴의 첼시, 안첼로티의 AC 밀란,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죠. 마케렐레, 에시앙, 램파드가 있던 첼시, 피를로, 가투소, 셰도르프가 있는 밀란, 차비, 이니에스타, 부스케츠가 있는 바르셀로나. 모두 세 명의 월드클래스 중앙 미드필더를 보유한 클럽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요.”
그렇다면 맨시티는?
“이번 시즌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는 투톱을 포기하지 않고 세 명의 중앙 미드필더를 활용할 수 있는 포메이션. 그게 바로 오늘 밀너가 산체스를 대신해 출전한 이유임이 분명해요. 밀너는 오늘 중앙 미드필더처럼 움직여줄 것이고, 리차즈가 측면 공격을 전담할 것으로 보이네요.”
해설자의 예상대로라면 맨시티는 세 명의 중앙 미드필더를 운용하면서 측면 공격에도 큰 문제점을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비록 수비는 평소보다 좀 힘들어지겠지만, 중원을 장악하면 맨유가 자랑하는 측면 공략도 쉽게 이루어질 수 없었다.
“안데르손, 전진하려 하지만, 투레의 압박에 고전! 적극적인 압박에 라키티치까지! 옆으로 흐르는 볼! 라키티치가 잡습니다!”
예상대로 맨유는 경기 초반부터 맨시티 중앙 미드필더들의 강력한 압박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맨유의 전술은 퍼거슨 감독의 성명절기라 할 수 있는 4-4-2 전술이었다.
이에 맞서는 맨시티의 전술은 변형 4-2-2-2.
오른쪽 윙어인 밀너가 실질적으로는 중앙 미드필더처럼 움직이는 4-3-1-2에 가까웠다.
“플레처가 급히 따라붙어 보지만, 어림도 없습니다! 밀너에게 연결!”
투레와 밀너의 피지컬과 라키티치의 왕성한 활동량, 기본적으로 우세에 있는 숫자로 밀어붙이는 맨시티 중원 선수들의 압박에 맨유의 중원 선수들은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허리가 끊기자, 맨유가 자랑하는 측면 선수들과 에이스 루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밀너, 공간 패스! 뒷공간으로, 아게로!!”
볼을 빼앗아 공격으로 전개할 때, 밀너는 오른쪽으로 벌려주면서 윙어의 자리로 돌아갔다.
맨시티가 경기장을 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었다.
당연히 체력 소모가 많을 수밖에 없었지만, 맨시티는 기본적으로 더블 스쿼드를 운용하는, 스쿼드가 두께가 상상을 초월하는 클럽이었다.
“아게로, 슈팅!! 골! 골! 골! 아게로, 빈틈으로 정확히 볼을 꽂아넣었습니다! 맨체스터 시티, 올드 트래포드에서 먼저 득점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수비수의 뒷공간을 파고든 아게로가 가볍게 선취 골을 기록해주었다.
고작 아홉 경기 만에 리그 8호 골을 기록한 것이었다.
그 정도로 맨체스터 시티의 공격력이 무서웠고,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기세로 내달리고 있었다.
“맨유, 이거 불안한데요? 20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주도권을 내주다가 결국 실점까지 하고 말았네요. 오늘 경기, 굉장히 힘들어질 것 같은데요?”
경기를 완전히 지배하던 맨시티에 유일하게 부족했던 득점까지 터져주었다.
이제 맨시티에 부족한 것은 없었다.
남은 것은.
맨유를 철저하게 부숴버리고 두 팀의 상하관계를 확실히 하는 것이었다.
< 낭만필드 - 29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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