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296화 (197/356)

< 낭만필드 - 296 >

“마케도니아, 버스를 세웠지만, 뭐... 의미가 있습니까? 하하. 벨기에, 마케도니아 선수들을 자기 진영에 가둬놓고 신나게 두드리고 있습니다.”

벨기에 선수들과 팬들은 사실 마지막 경기에 크게 부담을 가지지 않았다.

승리를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2년 전에는 세계 최강이라던 스페인을 꺾은 적도 있고, 이번 유로 예선에서도 러시아, 아일랜드 등 강팀들을 상대로 우위를 보이는 벨기에였다.

마케도니아 정도는 스코어의 문제가 있을 뿐, 가볍게 이길 수 있었다.

백번 양보해서 어쩌면 무승부가 나오지 않을까, 싶긴 했지만, 무승부여도 벨기에의 본선 진출이었다.

“정말 언제 벨기에가 이렇게 강해졌나요? 우리가 이렇게 강해진 게 언제인가요? 암흑기라고 계속 이야기는 했지만, 이상하게 벨기에 축구를 보면서 속을 썩였던 게 굉장히 옛날이야기 같아요.”

2002년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메이저 대회와 인연이 없었던 벨기에 축구의 암흑기는 벌써 10년을 끌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팬들은 벨기에의 축구를 지켜보면서 고통스럽지 않았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2008년 있었던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고통보다는 기대감과 희망을 품고 지켜보았다.

“드디어, 드디어! 우리가 기대를 품었던 황금세대가 폭발하고 있습니다! 무승부만 거두어도 유로컵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던, 마케도니아와의 예선 마지막 경기!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며 벌써 네 골을 폭격하고 있습니다!”

시즌이 한창인 지금 이 시점에서 마케도니아전은 꽤 부담되는 경기였다.

물론, 유럽의 특성상 이동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안도라는 프랑스의 반대편에 붙어 있었다.

벨기에 국경과 거의 붙어있는 릴에서 활약 중인 아자르의 실질적인 이동거리는 프랑스를 한 번 가로로 왕복하며 안도라와 벨기에에서 경기를 치른 뒤, 릴로 돌아가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7일과 11일에 경기를 치르고 또 이동해서 곧바로 경기를 치러야 한다는 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벨기에 선수들, 이미 승리와 함께 유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뛰어주고 있어요! 정말 감동적인 장면이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기에의 선수들은 주심의 마지막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사력을 다해 뛰었다.

네 골을 넣었지만, 다섯 번째 골을 노리는 것이었다.

10년 만에 메이저 대회에 복귀하는 마지막 경기를 싱겁게 끝내고 싶지 않았던 벨기에 선수단의 의지였다.

“한 골만 더 넣자!! 다섯 골은 넣어야지!! 팬들이 보고 있어!”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낸 선수는 역시 성배와 콤파니, 베르마엘렌으로 구성된 주장단이었다.

몇 년 전의 벨기에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이들의 의견이라면 대부분 그대로 따라주는 벨기에 선수단의 분위기상 당연히 다른 선수들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유로컵 본선에 조 1위로 당당히 합류한 벨기에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미 경기가 끝나지 않았지만, 중계진은 이미 벨기에의 본선 진출 성과와 그 기반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그 정도로 이번 유로컵 진출이 벨기에 축구와 그 팬들에게 주는 의미는 컸다.

“글쎄요. 역시 단단한 수비진의 활약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죠? 주와 콤파니, 베르마엘렌, 반 바이텐, 베르통헨, 알더베이럴트. 이름만 들어도 유럽 최고 수준이잖아요? 여기에 불안했던 골키퍼 포지션에 미뇰레가 나타나면서 완성되었죠. 다른 포지션은 몰라도, 수비진만큼은 유럽 최강의 자리를 노릴 수 있어요.”

굳이 두말할 필요도 없이 벨기에의 최대 장점은 수비진이었다.

오래 전부터 언급되었듯이.

“그리고 이것도 빼놓을 수 없는데, 의외로 조직력이죠. 제가 벨기에 대표팀을 설명하면서 조직력이 최대 장점이라고 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에요.”

펠라이니, 비첼, 시몬스, 데푸르 등이 버티는 중앙 미드필더진도 물론 강력했지만, 벨기에의 장점을 두 개만 꼽으라면 중원보다는 조직력이었다.

“2006년 말에 주가 나타나면서 주, 콤파니, 반 바이텐, 시몬스가 합심해서 수비진과 함께 벨기에 대표팀 전체의 축을 잡아주었던 게 지금의 벨기에 대표팀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어요.”

성배가 겪었던 전생과 비교하면 결실이 빨리 맺힌 것이었지만, 그래도 꽤 오랜 기다림이었다.

5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이었다.

“당시에는 빛나는 유망주였던 두 선수와 벨기에의 핵심이었던 두 선수가 균형을 딱 잡아주고 베이징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낸 황금세대의 유망주들이 이들의 리더십 아래에서 하나로 뭉친 것이 바로 지금의 벨기에죠. 꽤 오래 걸렸네요.”

당장이라도 예전의 위세를 찾을 것 같았던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력 회복에는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생각보다 프랑스계와 네덜란드계의 반목이 깊었던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수백 년을 이어온 반목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고, 극복되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벨기에의 주장이자 귀화 선수인 성배가 있었다.

“이 와중에 펠라이니, 왼쪽으로 전진 패스! 아자르에게! 멈춰 서서 밑으로 내려가는 척하다가 반대편으로! 주! 빠르게 침투합니다!”

수비에 집중하면서 타이밍을 노려 전진하는 소속팀에서의 플레이와 달리 벨기에에서 성배는 공격적인 풀백처럼 움직여주고 있었다.

뒷공간은 세 명의 중앙 미드필더들이 알아서 잘 메워주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성배는 벨기에의 듬직한 리더일 뿐 아니라 공격과 수비 양쪽의 핵심 선수이기도 했다.

“잡지 않고 땅볼로! 루카쿠!! 그대로 밀어 넣었습니다! 벨기에, 기어이 한 골을 추가합니다! 이번에도 주와 루카쿠, 맨체스터 시티 듀오가 한 골을 만들어내면서 5-0!! 축포를 쏘아 올립니다!”

마케도니아 수비진은 영혼의 텐백을 시전했지만, 완전히 물이 오른 벨기에의 공격을 막아내기엔 무리가 있었다.

가볍게 볼을 돌리는 것 같은데도 어느새 마케도니아의 수비라인은 우르르 무너져 있었다.

벨기에의 전력이 어느새 그 정도까지 올라온 것이었다.

“정말 쉽게 골을 만들어내네요! 골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여유가 느껴질 정도예요. 아직 어린 선수들인데도 오늘처럼 중요한 경기에서 다섯 골을 넣어주었고, 한 골 한 골이 들어갈 때마다 여유가 느껴져요. 이 선수들이 어디까지 성장할지, 정말 기대되어서 손이 다 떨리네요.”

다섯 번째 골을 득점한 루카쿠 아자르, 데 브라위너와 함께 춤을 추며 골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었다.

유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기에 선수들도 꽤 흥분해 있었다.

“그만! 거기까지! 5-0이다! 적당히 해, 자식들아!”

너무 과한 세리머니에 성배가 제동을 걸었다.

세 선수 사이로 파고들어 일침을 가한 뒤, 벨기에 진영으로 밀쳐낸 것이었다.

아무리 마케도니아가 약팀이고, 대패에 익숙한 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0-5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 저런 세리머니를 당하는 게 기분 좋을 리 없었다.

“그래도 잘했어! 그렇게만 해!”

하지만 A매치 세 경기 연속 골을 터뜨린 루카쿠에게 칭찬도 빠뜨리지 않았다.

A매치 세 경기 연속 골과 함께 맨시티에서도 적은 출전 기회 속에서 벌써 세 골을 터뜨린 루카쿠였다.

이대로만 간다면 생각보다 빨리 주전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과한 세리머니를 자제시키는 모습에서 카리스마가 느껴집니다. 하하. 완전히 제압당한 것 같지 않습니까?”

맨체스터 시티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지만, 벨기에 대표팀은 이미 완벽하게 성배의 리더십 아래 있었다.

선수들 개개인의 기량도 빠르게 올라오는 상황에서 하나로 뭉친 벨기에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벨기에 축구팬들은 벌써부터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벨기에 대표팀이 드디어 10년 만에 메이저 대회에 복귀하게 되었는데요, 붉은 악마의 주장으로서, 그리고 암흑기의 마지막을 함께 겪으며 여기까지 팀을 올려놓은 주역 중 한 명으로서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네요. 지금 기분이 어떠신가요?”

“당연히 날아갈 것처럼 좋습니다. 메이저 대회 복귀를 간절히 바라왔고, 드디어 그 목표를 이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첫 진출이기도 하고. 응원해주신 팬분들에게 가장 먼저 감사하고, 함께 이뤄낸 우리 동료들과 마크 빌모츠 감독, 그리고 코칭스태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벨기에는 마케도니아를 5-0으로 꺾었다.

러시아와 아일랜드도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7승 2무 1패를 기록한 벨기에는 그들의 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조 1위로 유로컵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6승 3무 1패로 2위를 차지한 러시아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6승 2무 2패의 아일랜드는 승점 1점 차이로 아쉽게 탈락하고 말았다.

“바로 옆에 있는데도 목소리가 잘 안 들리네요. 그 정도로 지금 벨기에 축구팬들의 함성이 엄청나요! 이들이 얼마나 벨기에의 메이저 대회 진출을 염원했는지, 이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겠네요.”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조금 더 일찍 올라갔어야 했는데, 너무 늦었습니다. 늦은 만큼, 더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고 싶습니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벨기에의 축구팬들은 승리가 확정된 순간, 그라운드로 쏟아져 내려왔다.

10년 만의 메이저 무대 복귀가 확정과 동시에 쏟아져 나온 벨기에 팬들은 각자 준비한 플래카드 등의 응원 도구를 펴들며 기쁨을 만끽했다.

“주가 왜 죄송해요? 벨기에가 다시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데에는 주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는데요. 주가 없었으면 몇 년은 더 늦어졌을 수도 있는데요.”

센터백이 넘치고 풀백이 부족한 벨기에였기에 성배가 오른쪽 측면을 맡아주지 않았다면 벨기에가 자랑하는 수비진의 완성도 없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네덜란드와 프랑스, 두 계열과의 접점이 전혀 없는 귀화 선수 출신으로 팀을 하나로 묶어주었다는 것 역시 성배의 큰 업적이었다.

“제가 없었다고 해도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제가 초창기에 나타난 것뿐, 제 뒤로 나타난 친구들의 재능이 더 뛰어나지 않습니까? 저는 뒤에서 그들을 받쳐줄 뿐입니다.”

지금까지는 처음 목표했던 것과는 다르게 버스를 운전해야 했지만, 드디어 승객 좌석으로 자리를 옮길 시간이었다.

맨체스터 시티에서도, 벨기에 대표팀에서도 슬슬 다른 선수들의 뒤에서 수혜를 입을 시점이 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다짐 한 마디만 부탁할게요.”

“네. 벨기에가 드디어 메이저 무대에 복귀했습니다. 10년 만에 복귀했는데, 개인적으로도 첫 번째 경험이어서 그런지 의미가 남다릅니다.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드린 만큼, 사죄의 의미로 이번 유로컵에서 꼭 좋은 성과를 거두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성적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원래대로였으면 예선에서 탈락했을 벨기에 대표팀은 성배를 중심으로 선수단이 똘똘 뭉쳐 유로 2012 진출에 성공했다.

한동안 메이저 무대에서 멀어져 있었던 팀이지만, 벨기에의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유럽 최고 수준의 수비진을 보유한 벨기에를 유로 2012의 다크호스로 꼽길 주저하지 않았다.

< 낭만필드 - 296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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