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292 >
“그로스크로이츠, 돌파 시도합니다! 슈멜처가 뒤에서 받쳐주면서 침투! 수비 끌어들이면서... 아! 리차즈, 흔들리지 않습니다! 손쉽게 볼 빼냅니다!”
도르트문트는 지난 시즌 분데스리가 챔피언이었고, 절대 쉬운 팀이 아니었다.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 최고의 다크호스라 꼽혔고, 4포트에 배정받았기 때문에 도르트문트의 편성 결과에 따라 죽음의 조가 결정된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도르트문트가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네요. 챔피언스리그의 압박감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일단 시즌 초반이라 그런지 몰라도 팀 전체의 경기력이 별로 좋지 못해요.”
리그에서도 2승 1무 2패로 11위까지 떨어지는 등 부진했고, 전체적으로 선수단의 경기력이 올라오지 못한 모습이었다.
주포인 루카스 바리오스의 부상과 누리 사힌의 공백, 카가와 신지의 부진이 치명적이었다.
“맨시티, 수비진에서 천천히 볼을 돌리면서 기회를 엿봅니다. 도르트문트 선수들, 부진한 모습이긴 하지만 자신들의 정체성인 활동량만큼은 꾸준하게 가져가주고 있습니다.”
도르트문트의 스타일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역시 ‘게겐프레싱’이었다.
일반적인 경우와 다르게 볼을 빼앗겨도 수비진영으로 돌아가지 않고 곧바로 재압박을 가해 볼을 따내는 전술이었다.
현대 축구의 대세라고 할 수 있는 압박 위주의 전술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것이라고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게겐 프레싱은 앞이나 뒤, 좌측이나 우측에서 달려드는 2면 압박을 강화해 4면 모두에서 압박을 가하며 에워싸고, 볼을 빼앗는 순간 이미 공격으로 전환하는, 압박과 스피드로 대변되는 전술이었다.
‘부담스럽지만... 그만큼 우리한테 기회도 많이 생길 수 있어.’
일반적으로 분데스리가의 클럽들은 수비라인을 높이 끌어올리는 경향이 있었다.
바이에른 뮌헨이나 도르트문트 등 강팀은 물론이고 약팀들마저도 수비라인이 높이 위치했다.
필연적으로 뒷공간이 벌어진다는 뜻이었다.
도르트문트는 전방에서부터 강하게 압박을 가했기 때문에 간격을 맞추느라 다른 분데스리가 클럽들보다도 수비라인이 더 높이 올라왔다.
‘나이스 패스.’
수비라인을 돌던 볼이 다시 성배에게 돌아왔고, 성배는 눈을 빛냈다.
아직 맨시티가 분데스리가의 강팀과 만나본 적은 없지만, 프리미어리그의 클럽 중 분데스리가 클럽에게 가장 강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뒷공간이 넓은 클럽을 상대할 때는 롱패스가 효과적이었고, 성배와 보아텡, 라키티치라는 롱패스 머신들을 보유한 맨시티는 이들을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떨쳐냅니다! 빠르게 올라가면서 패스 루트 확인하는 주성배!”
괴체가 강하게 압박해들어왔지만, 성배는 콤파니에게 볼을 돌려주는 척하면서 발바닥을 이용, 볼을 뒤로 빼냈다.
괴체를 가볍게 떨쳐낸 성배는 도르트문트 진영으로 빠르게 움직이며 패스할 곳을 찾았다.
“한 번에 길게! 대각선으로! 산체스!!”
성배의 롱패스가 그라운드를 대각선으로 길게 가르며 산체스에게 연결되었다.
수비수의 마크를 순간적으로 떨쳐내고 침투하는 산체스의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슈멜처를 순식간에 따돌린 산체스틑 드넓은 도르트문트 수비진의 뒷공간으로 파고들었고, 성배의 패스가 산체스의 발밑에 연결되었다.
“산체스, 질주! 바이덴펠러, 뛰쳐나오고!”
훔멜스와 수보티치가 급히 따라붙었지만, 기본적으로 두 선수는 발이 빠르지 않았다.
두 선수가 산체스를 따라잡지 못할 것으로 판단한 바이덴펠러는 골문을 버리고 급히 뛰쳐나왔다.
“슈팅 페이크! 오른쪽으로 제치고 슈팅!! 알렉시스 산체스! 텅 빈 골대 안으로 가볍게 집어넣었습니다! 맨체스터 시티, 단 한 순간의 역습! 역습으로 골을 만들어냅니다!!”
순식간에 터진 선취 골이었다.
원정 경기였기 때문에 맨시티는 도르트문트의 활발한 압박을 우직하게 견디면서 주도권을 내주지 않는 것에 집중했다.
단 한 번의 역습 기회를 노리던 맨시티는 구상대로 역습을 활용, 득점을 만들어냈다.
“역시 맨시티! 이번 시즌의 맨시티는 공격수들의 개인 기량과 호흡으로 득점을 만들어내는 공격 전술을 활용하기 때문에 잊고 계셨던 분들도 많겠지만, 맨시티 후방 선수들의 롱패스는 세계 최고 수준이에요! 언제든 최후방에서 내주는 한 번의 패스로 골을 만들어낼 능력이 있어요!”
맨시티가 롱패스를 통한 역습으로 골을 만드는 장면은 이번 시즌 들어 거의 나오지 않았다.
아게로, 제코, 실바, 산체스에 투레까지.
공격을 맡은 선수들의 컨디션이 워낙 좋았고, 이들의 기량만으로도 충분히 대량 득점을 올려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후방 라인 전담 선수들의 롱패스가 무뎌진 것은 아니었다.
“미드필드 진영의 패싱 머신, 라키티치는 비록 출전하지 않았지만, 보아텡과 주는 출전했습니다. 도르트문트, 이들의 롱패스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그렇다고 거기에만 집중하기엔 맨시티 공격진이 너무 무서운 것도 사실입니다.”
도대체 맨시티의 약점이 무엇인지 찾기가 힘들 정도였다.
돈으로 만들어낸 클럽이지만, 성배를 중심으로 뭉치며 조직력까지 갖춰진 상태.
“정말 라 리가의 양강이나 바이에른 뮌헨이 와야 하는 건가요? 맨시티, 정말 강해요!”
흔히 현재 전력상 세계에서 가장 강한 세 개의 클럽을 꼽으라면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그리고 분노의 영입을 마치고 엄청난 경기력을 선보이는 바이에른 뮌헨 정도가 꼽혔다.
세 팀 정도의 공격력이라면 상대적으로 얇아진 수비라인을 공략해볼 수 있겠지만, 그 정도가 아니면 얇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두터운 맨시티의 수비라인을 공략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맨유도 강했지만, 비교적 떨어지는 선수 개개인의 기량을 감독의 전술로 커버하는 클럽이었기에 차이가 있었다.
맨시티에게 3-0으로 털린 뒤, 평가가 내려가기도 했고.
“이 정도면 저 라인에 맨체스터 시티까지 포함해야 합니다. 도저히 약점을 찾을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커뮤니티 쉴드와 리그를 합쳐 겨우 다섯 경기를 치른 상황.
맨시티에 대한 평가는 한 경기가 끝날 때마다 계속해서 상향 조정되고 있었다.
지난 시즌 더블을 기록하고 챔피언스리그 4강까지 진출하면서 저 세 클럽 바로 아래까지 올라섰던 맨시티는 이젠 최고의 자리를 노렸다.
***
“카가와, 오른쪽으로. 괴체에게 연결됩니다.”
오늘 경기에서 왼쪽의 마르셀 슈멜처와 케빈 그로스크로이츠의 조합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카가와 신지는 시즌 초반 아직 경기력이 올라오지 않았다.
레반도프스키 역시 지난 시즌까지 주포 루카스 바리오스의 백업으로 활동하다가 그의 부상 덕분에 겨우 기회를 잡은 상황이었다.
결국, 도르트문트의 공격은 마리오 괴체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괴체, 오늘 어깨가 무겁습니다. 이쯤에서 뭔가 해주어야 하는데, 상대가 만만치 않습니다.”
만회 골을 당장 넣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뭔가 좋은 장면들은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괴체의 상대는 성배였다.
별명이 거의 없는 선수지만, 경험과 노련미보다는 개인 기량과 피지컬을 앞세울 수밖에 없는 어린 유망주들의 악몽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열어주면 돌파하려나?’
괴체 역시 일반적인 테크니션들처럼 테크닉을 활용한 돌파와 모험적인 패스를 즐기는 선수였다.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만 제외하면 월드클래스 문턱에 있는 선수이기도 했다.
혼자서 막으려고 하기보다는 콤파니와의 호흡으로 수비하는 게 안전할 것 같았다.
‘직접 해결하고 싶겠지.’
성배는 괴체가 직접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중앙으로 길을 내주면 참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옆으로 붙어.’
콤파니에게 사인을 보냈다.
대각선 방향으로 올라가게 열어줄 테니 옆쪽으로 이동하라는 사인이었다.
성배의 사인을 확인한 콤파니는 도르트문트 선수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괴체, 돌파 시도! 중앙으로 움직입니다! 아, 콤파니와 충돌!”
콤파니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한 괴체는 성배가 열어준 길을 통해 중앙 쪽으로 파고들었다.
예상대로 참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길을 막으며 서 있던 콤파니와 충돌했고, 성배는 흘러나온 볼을 따냈다.
‘조금 더 큰 다음에 보자고.’
괴체도 재능만큼은 성배보다 몇 단계나 더 위였다.
하지만 성배의 재능은 다른 쪽에 있었다.
괴체가 경험을 쌓기 전까지는 성배를 이길 수 없었다.
“괴체, 측면 돌파! 중앙으로 크로스!”
도르트문트의 공격은 시간이 갈수록 괴체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성배는 괴체의 직접 슈팅을 막는 것에 집중하면서 수비했다.
측면을 돌파해 올리는 크로스나 패스는 자유롭게 올리지 못할 정도로만 방해했다.
도르트문트의 공격을 거의 홀로 이끄는 괴체의 컨디션과 기량이 뛰어났고, 성배와 상대하면서도 계속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최소한 성배와 균형을 맞춰주고는 있었다.
“보아텡! 보아텡이 먼저 머리로 걷어냅니다.”
성배가 괴체의 골에만 집중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괴체가 아니라면 도르트문트에게 실점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직접 해결할 수가 없어진 괴체가 꾸준히 패스를 뿌려주고는 있었지만, 전부 맨시티 수비진에 끊기는 중이었다.
‘6차전에서는 좀 달라지려나?’
바이에른 뮌헨을 무너뜨리며 리그 우승을 차지한 도르트문트지만, 사실 지난 시즌까지의 바이에른 뮌헨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팬들이 흑역사로 간주하는 루이스 반 할 체제의 바이에른 뮌헨은 오랜만에 2년 연속 리그 우승에 실패했다.
아직 도르트문트의 검증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
어쨌든 맨체스터 시티는 원정에서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생각했던 것보다 쉬운 경기를 펼치고 있었다.
도르트문트, 하면 떠오르는 선수는 역시 핵심 공격형 미드필더 카가와 신지, 혹은 최고의 유망주 마리오 괴체, 수비진의 핵심인 마츠 훔멜스 정도가 있었다.
하지만 주장이자 정신적 지주는 수비형 미드필더, 세바스티안 켈이었다.
비록 부상이 잦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기량도 뛰어난 선수였고, 경험 많은 베테랑으로 도르트문트를 듬직하게 지켜주었다.
“경기 끝났습니다! 맨체스터 시티,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2-0의 승리를 거둡니다.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한 알렉시스 산체스가 큰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도르트문트는 믿는 도끼, 켈에게 발등을 찍히고 말았다.
경기 내내 부정확한 패스와 잦은 패스 미스를 범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던 켈이 산체스에게 볼을 안겨주었고, 산체스가 돌파 이후 멋진 패스로 아게로의 골을 어시스트한 것이었다.
믿었던 켈의 실수로 두 번째 실점을 내준 이후, 도르트문트의 반격은 무기력해졌다.
“오프시즌 동안 공격력 강화에 초점을 맞췄던 맨시티인데, 기대했던 그대로의 그림이 나오고 있습니다.”
제코를 시작으로 아게로와 산체스까지.
좋은 모습을 기대했던 선수들이 번갈아가며 경기를 지배해주고 있었다.
맨시티에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지금까지의 그림은 맨시티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던 그대로였다.
< 낭만필드 - 29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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