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291화 (192/356)

< 낭만필드 - 291 >

“즈리아노프, 천천히 전진! 뒤에서 달려드는 펠라이니! 끊어냅니다!”

러시아를 홈으로 불러들인 벨기에는 4일 전에 있었던 아르메니아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경기력을 선보였다.

가장 먼저 완성된 수비진에 이어 정리된 곳은 미드필드였다.

“정말 요즘 축구 볼맛 나죠? 벨기에가 언제 이렇게 강해졌나요? 러시아가 만만한 팀이 아닌데, 아무리 홈에서 펼쳐지는 경기이고 러시아에 부상 선수들이 몇 명 있다지만, 큰 무리 없이 주도권을 쥐고 있어요!”

에버튼에서 프리미어리그 정상급 박스 투 박스로 성장한 마루앙 펠라이니, 스탕다르 리에쥬를 벗어나 포르투갈의 명문이자 유럽의 다크호스, 벤피카로 이적한 악셀 비첼.

마찬가지로 리에쥬를 떠나 포르투로 적을 옮긴 스티븐 데푸르에 언제나 벨기에의 중원을 든든히 지켜주는 에인트호벤의 티미 시몬스까지.

이들을 중심으로 데 브라위너, 나잉골란 등 유망주들도 성장하고 있었다.

“펠라이니, 오른쪽으로! 오른쪽에는 벨기에의 캡틴, 주성배!”

벨기에는 맨체스터 시티와 공통점이 있으면서도 차이점 역시 컸다.

두 팀의 공통점은 포백라인이 두텁다는 것이었다.

성배와 콤파니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맨시티의 수비진도 강력하지만, 의외로 네임밸류만 따지자면 벨기에가 더 높았다.

‘수비는 이제 완벽하네.’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팀 맨시티의 핵심 수비수인 성배, 콤파니에 세계적인 클럽, 아스날의 핵심 수비수 베르마엘렌과 바이에른 뮌헨의 견실한 센터백, 반 바이텐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아약스의 핵심 센터백 듀오, 베르통헨과 알더베이럴트가 뒤를 받쳤으니 이름값으로 벨기에 수비진보다 높은 국가는 거의 없었다.

‘역시 중원이 강해야 편해.’

차이점은 힘을 주는 위치에 있었다.

핵심 미드필더들의 나이가 전성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고, 핵심 공격수들은 아직 성장이 필요하거나 포텐셜이 늦게 터졌기 때문에 벨기에는 중원에 힘을 줄 수밖에 없었다.

‘좋아. 이대로만 가면 1년 안에 완성되겠는데.’

80년대 후반 출생인 성배와 콤파니, 베르마엘렌, 베르통헨, 펠라이니, 비첼, 데푸르가 먼저 자리를 잡고 뒷문을 단단히 지켜주며, 성장이 늦은 동년배 메르텐스, 미랄라스, 뎀벨레와 90년대 초반 출생의 아자르, 루카쿠, 벤테케 등을 기다려주고 있었다.

“비첼과 2대1 패스! 주, 오른쪽 측면으로 길게!”

그리고 수비와 미드필드 선수들이 보람을 느낄 정도로 공격수들 역시 점점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중이었다.

원래 가장 먼저 나타난 공격수는 미랄라스와 뎀벨레, 마르텐스였다.

하지만 미랄라스는 유럽 대항전 출전을 위해 그리스 올림피아코스로 이적해 본무대에서 잠시 멀어졌고, 뎀벨레는 풀럼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전향했다.

마르텐스는 AZ 이적 이후 생각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훌륭한 공격수들이 다시 나타났고, 벨기에 공격진을 구성했다.

맨시티로 이적한 루카쿠와 유럽 탑클래스 윙어로 성장한 아자르가 대표적이었고, 미랄라스와 뎀벨레가 빠진 오른쪽 측면 역시 누군가 채워주었다.

“순식간에 방향전환! 중앙으로 이동하면서 바로 슈팅!! 골! 골입니다! 드리스 메르텐스! 데뷔 골! 데뷔 골입니다! 지난 2월에 데뷔전을 치렀던 드리스 메르텐스, 세 번째 경기에 바로 데뷔 골을 기록합니다!”

드리스 메르텐스.

뭔가 한 끗이 아쉬웠던 벨기에의 오른쪽 측면 자리에 혜성처럼 나타난 선수였다.

164cm라는 작은 신장 때문에 오랫동안 가려져 있던 선수였는데, 처음 데뷔했던 2007/08시즌부터 15골 6어시스트를 기록했고, 지난 시즌에는 에레디비지에의 위트레흐트 소속으로 뛰면서 14골 24어시스트로 대폭발, 에인트호벤으로 이적한 상황이었다.

“이야, 메르텐스! 요즘 분위기 정말 좋네요! 리그에서도 개막과 동시에 네 경기 연속 골 포함, 6골 3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있었는데, 벨기에의 유로컵 출전권 획득이 달린 경기에서 선취 골과 데뷔 골을 동시에 터뜨립니다!”

신장은 분명 크지 않지만, 그 덕에 낮은 무게중심을 가져 드리블이 좋았고, 중앙으로 파고들면서 날리는 슈팅이 일품이었다.

점점 세계 축구계의 주류로 올라서고 있는 인사이드 커터 스타일의 선수였다.

“데뷔 골 축하해. 이제 진짜 시작이네.”

성배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미랄라스의 잠재력이 폭발하는 시기가 늦었다.

유명한 선수이긴 했지만, 벨기에에 스타 선수가 워낙 많았기에 성배도 미랄라스의 커리어까지는 알지 못했다.

생각보다 그의 성장이 늦어지면서 계산이 어긋나는가 싶었을 때, 나타난 선수가 바로 메르텐스였다.

“뭐, 패스 고맙다. 우리도 이제 스물넷인데, 슬슬 메이저 무대 데뷔해야지.”

성배와 메르텐스는 서로 마주 보며 씨익 웃었다.

1987년생 동갑내기인 두 선수.

스물네 살의 두 선수는 이제 슬슬 메이저 무대 데뷔가 필요한 나이였다.

***

“벨기에, 러시아를 압살하고 있습니다.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러시아 원정에서 팽팽한 경기 끝에 무승부를 거두었을 때 눈치챘어야 했습니다.”

러시아 원정은 원래 난이도가 높기로 유명했다.

날씨도 그렇고 거리도 그렇고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벨기에는 그 러시아 원정에서 팽팽한 경기 끝에 무승부를 이뤄냈고, 홈 경기에서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 있었다.

“지르코프에게 이어지지 않습니다! 주, 중간 차단! 파블류첸코의 패스가 또 끊깁니다!”

특히 러시아의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작년에 만났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아르샤빈의 기량이 살아있었기 때문에 러시아도 벨기에를 꽤 괴롭힐 수 있었다.

하지만 아르샤빈이 기량을 잃었고, 지르코프의 경기 감각이 떨어진 지금, 러시아는 벨기에의 수비진을 뚫을 수 없었다.

“반대편으로 길게! 아자르! 멈추지 않습니다!”

그리고 벨기에의 공격은 러시아의 수비진을 효과적으로 공략했다.

작년에 있었던 1차전에 비해 벨기에의 수비는 더 단단해졌고, 공격은 더 날카로워진 모습이었다.

유로 2008 시점에서 전성기를 맞이한 뒤, 내려오는 러시아와 이제 전성기를 향해 올라가는 벨기에의 차이였다.

“멈추지 않습니다! 안 멈춥니다! 바로 돌파, 그리고 페인트! 한 번 접고 반대편으로 길게 넘겨줍니다! 주!”

단순한 상체 페인트만으로 러시아의 수비수들을 제쳐낸 아자르는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크로스를 시도하는 것처럼 페인트.

러시아 수비수의 태클을 끌어낸 뒤 반대로 접었고, 오른쪽 측면으로 다시 벌려주었다.

“주, 지체하지 않습니다! 지체하지 않고 크로스! 루카쿠, 헤더!! 골! 골입니다! 맨체스터 시티에서 한솥밥을 먹는 두 선수가 추가 골을 만들어냅니다! 벨기에, 굉장합니다!”

그리고 한 골에서 멈추지 않고 추가 골.

점수 차이를 벌려줘야 할 때 추가 골까지 넣어주는 완벽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러시아가 이렇게 무너지나요? 벨기에, 도대체 얼마나 강해진 건가요? 러시아를 상대로 이런 경기력을 보여주나요? 최근 러시아의 경기력이 2008년 당시보다 못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아직 충분히 강력하거든요? 이 정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국가는 몇몇 1포트의 국가들밖에 없어요!”

러시아를 압도하는 벨기에의 경기력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러시아의 전력이 약해졌다는 평가는 2년 전부터 있었지만, 러시아를 압도한 국가는 별로 없었다.

“벨기에가 정말 강해졌습니다! 아르메니아전에서의 아쉬운 모습 때문에 살짝 걱정했었는데, 기우였습니다!”

성배가 그렇게 기다려왔던 벨기에 황금세대의 주역들이 지난 시즌을 기점으로 빠르게 성장, 팀의 주역으로 올라와주고 있었다.

성배가 운전대를 놓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2-0, 벨기에가 무실점으로 경기를 끝냅니다! 조 1위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던 러시아를 꺾고 조 1위로 올라섭니다!”

벨기에는 메르텐스와 루카쿠의 골을 마지막까지 지키며 2-0의 승리를 거두었다.

결정적인 승리였다.

유로 2012 예선 B조의 1포트 국가이자 본선 진출 1순위 국가로 꼽혔던 러시아를 다시 아래로 끌어내리고 1위 자리를 차지한 것이었다.

“이건 정말 결정적인 승리예요! 이제 겨우 두 경기 남았거든요? 조 최하위와 최하위 바로 위의 팀, 두 팀과의 경기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건 벨기에의 본선 진출 확률이 가장 높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예요!”

5승 2무 1패로 러시아와 벨기에의 승점은 동률이 되었지만, 상대 전적에서 러시아에게 1승 1무로 앞서는 벨기에가 조 1위를 차지했다.

3위는 5승 1무 2패의 아일랜드.

아르메니아와 안도라, 마케도니아는 일찌감치 탈락했고, 세 팀만의 리그가 펼쳐지고 있었다.

세 팀 모두 어느 조로 가든 최소한 플레이오프 진출 정도는 노려볼 수 있는 성적이었기 때문에 탈락하는 국가는 조 편성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걸로 유로 본선 진출 확률이 최소 7할까지는 올라왔습니다! 진짜로, 정말로! 이번에야말로 메이저 대회에 복귀하기 직전입니다!”

두 경기를 남긴 시점에서 1위를 차지한 벨기에.

게다가 최약체 두 팀과의 경기를 남겨두었기 때문에 팬들은 2승으로 본선 진출에 성공하길 바라고 있었다.

***

벨기에 국가대표팀은 공격력이 아직 가다듬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성배가 공격에서도 큰 역할을 해주어야 했다.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는 수비라인이 얇아진 상황이었기에 수비에 조금 더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꼽히는 만큼, 벨기에와 맨체스터 시티 모두에서 훌륭한 활약을 펼쳐주며 양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이번에는 아게로다! 제코에 이어 해트트릭 작렬!]

[맨시티 공격진, 나란히 대폭발! 네 경기 18득점!]

3라운드, 토트넘과의 경기에서 에딘 제코는 무려 네 골을 터뜨리는 엄청난 활약을 선보이며 완벽한 부활의 찬가를 울렸다.

그리고 4라운드.

이번에는 아게로의 차례였다.

위건과의 경기에서 아게로는 제코에게 밀릴 수 없다는 듯 세 골을 기록,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위건을 에티하드 스타디움으로 불러들인 맨시티는 아게로의 해트트릭을 앞세워 4-0 승리를 거두었고, 네 경기 18득점에 무실점이라는 엄청난 기록으로 4연승을 달렸다.

[챔피언스리그 일정 시작! 죽음의 H조 결과는?]

[도르트문트, 전방위적 압박을 앞세운 분데스리가 챔피언.]

그리고 챔피언스리그가 드디어 개막했다.

우승팀으로만 구성된 죽음의 조에 속한 맨체스터 시티는 분데스리가 챔피언인 도르트문트로 원정을 떠났다.

위르겐 클롭 감독의 뛰어난 지도력과 특유의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전술을 앞세워 분데스리가 챔피언의 상징인 마이스터 샬레를 차지한 도르트문트는 상대하기 까다로운 클럽이었다.

‘빅 이어를 따내려면... 도르트문트 정도는 잡아줘야지.’

하지만 지난 시즌의 맨체스터 시티보다도 챔피언스리그를 경험한 선수가 적은 도르트문트였다.

분데스리가의 특성상 젊은 선수 위주로 팀이 꾸려질 수밖에 없었고, 전성기가 지난 지 오래된 도르트문트였기에 챔피언스리그를 경험해본 선수는 거의 없었다.

맨체스터 시티가 빅 이어를 따내려면 아직 챔스 DNA가 부족한 도르트문트 정도는 쉽게 잡아주어야 했다.

< 낭만필드 - 291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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