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289화 (190/356)

< 낭만필드 - 289 >

“축구팬 여러분, 반갑습니다. 2011/12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의 향방을 가늠해볼 수 있는 커뮤니티 쉴드 경기와 함께 찾아왔습니다.”

8월 7일, 프리미어리그는 아직 개막하지 않았지만, 미리 보는 프리미어리그 우승 경쟁, 커뮤니티 쉴드 경기가 펼쳐졌다.

리그 우승팀과 FA컵 우승팀이 맞붙는 커뮤니티 쉴드는 이벤트성 경기처럼 되어버렸지만, 상금과 자존심 때문에 아예 이벤트 경기처럼 치러지진 않았다.

특히 이번에는 리그와 FA컵에서 더블을 달성한 맨시티와 리그 2위의 맨유가 맞붙은, 맨체스터 더비가 펼쳐졌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걸고 있었다.

“비록 시즌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경기지만, 맨체스터 더비거든요? 그리고 지난 시즌, 역대 가장 치열한 우승 경쟁을 펼쳤던 두 팀의 재대결이기 때문에 아마 커뮤니티 쉴드 답지 않은 격렬한 경기가 나올 거라는 예상을 조심스럽게 하고 있어요.”

맨시티와 맨유는 이번 시즌에도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였다.

첼시 역시 우승후보로 꼽히긴 했지만, 아무래도 앞의 두 팀보다 조금은 밀린다는 평가였고, 아스날은 아직 전력 보강이 더욱 필요했다.

리버풀은 우승은커녕 챔피언스리그 진출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고.

“그런데 지난 시즌을 무관으로 마친 맨유보다 더블을 달성한 맨시티가 전력보강을 더 잘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일각에서는 지난 시즌에 비하면 우승 경쟁이 싱거울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영입한 선수들은 다비드 데 헤아, 애쉴리 영과 필 존스였다.

하지만 네빌, 반 데 사르, 스콜스가 은퇴했으며 하그리브스가 자유계약으로 풀리고 웨스 브라운에 존 오셔까지 떠났다.

특히 세 명의 베테랑이 이탈한 것은 큰 타격이었다.

맨유의 심장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네빌, 스콜스에 듬직하게 골문을 지켜주었던 반 데 사르의 이탈은 기량을 떠나 상당한 타격으로 돌아왔다.

“확실히 맨시티는 젊은 팀이라 전력 누수가 전혀 없었거든요? 반면, 맨유는 오랫동안 강호로 군림해온 클럽이라 노장들이 꽤 있었고, 전성기를 이끈 선수 중 세 명이나 은퇴했어요. 그리고 그 공백을 완전히 메웠다고 보긴 힘들어요. 완전히 메울 수도 없고요.”

선수단의 전력만 따지자면 맨시티가 한 수 위였다.

지난 시즌에도 맨시티가 우승을 차지했는데, 맨시티의 전력은 강해졌고, 맨유의 전력은 약해졌다.

하지만 맨유를 쉽게 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맨유를 말할 때 흔히 퍼거슨 감독이 전력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하죠? 퍼거슨 감독이 있는 이상 맨유는 언제나 우승후보일 거예요.”

퍼거슨 감독이 있는 이상, 그의 선수단이 평균을 넘어가는 이상 그의 팀은 항상 우승후보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조금씩 선수단 전력이 약해지고 퍼거슨 감독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

“주의 스로인, 발로텔리에게! 아, 높게 뜹니다!”

맨유의 오른쪽 측면 수비는 벌써 몇 년째 골칫거리가 되고 있었다.

네빌의 노쇠화 이후 브라운, 오셔, 하파엘 등이 맡아왔지만, 세 선수 모두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채 자리 잡지 못했다.

“실바, 무릎으로 트래핑! 왼발, 오른발, 뚫어냅니다!”

실바는 높이 뜬 볼을 무릎으로 받아낸 뒤 떨어뜨렸다.

그리고 양발로 번갈아 볼을 옮겨가며 스몰링의 태클을 가볍게 피해내고 돌파를 시도했다.

“아, 스몰링! 뒤늦은 태클! 경고를 받습니다!”

스몰링도 급한 상황이었다.

비록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라이트백 1옵션은 하파엘이었고, 센터백으로는 비디치와 퍼디난드가 버티고 있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출전 기회를 지키기 위해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고, 필사적이 된 스몰링은 실바에게 뒤늦게 발을 뻗으며 경고를 받고 말았다.

“맨유도 이번 시즌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라이트백 보강이 시급합니다. 벌써 몇 시즌째 맨유의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왼쪽 측면 깊숙한 곳에서 프리킥을 얻어낸 맨시티였다.

애초에 스몰링으로는 실바와 성배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심지어 오른쪽 윙어 나니는 수비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선수였다.

“주성배의 프리킥! 콤파니!! 들어갑니다! 선취 골! 맨체스터 시티, 이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스몰링의 실수는 바로 맨체스터 시티의 선취 골로 이어졌다.

성배의 프리킥에 이은 콤파니의 헤더로 선취 골을 뽑아낸 것이었다.

“맨시티에게 세트피스 기회를 주면 안 되죠! 세트피스를 내주는 건 언제나 위험하지만, 맨시티에는 주가 있거든요? 지난 시즌에 세트피스로만 15골 이상을 만들어낸 선수예요.”

맨시티를 상대하면서 수비진에 구멍이 있으면 이게 문제였다.

수비가 버거워 파울로라도 막아내면 더욱 위협적인 세트피스가 이어지는 것이었다.

“움직임 좋았어.”

성배는 콤파니에게 가볍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역시 콤파니는 성배가 원하는 움직임을 잘 알고 있었다.

성배의 어시스트도, 콤파니의 득점도 덕분에 쑥쑥 올라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일방적인 경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맨시티, 주도권을 놓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예상처럼 치열하고 격렬한 경기는 나오지 않았다.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력이 상상 이상이었다.

완전히 압도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주도권을 처음부터 지켜나가고 있었다.

“맨시티 강한데요? 확실히 팀이 우승을 차지하고 성공을 경험하니까 여유까지 생겼어요. 산체스를 제외하면 지금 뛰고 있는 선수들 모두 지난 시즌의 성공을 함께 만든 선수들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끈끈한 조직력까지 보여주네요.”

의외의 전개였다.

이번 시즌 맨유의 전력이 뭔가 불안하다는 이야기는 많았지만, 그래도 퍼거슨 감독이 있었기에 언제나처럼 우승후보라 평가되고 있었다.

하지만 맨시티는 그런 맨유를 상대로 계속해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았다.

“안데르손, 캐릭에게! 데 용, 커트! 라키티치에게 이어집니다!”

어쨌든 시즌을 준비하는 경기였고, 선수 교체도 다섯 명까지 가능했기 때문에 양 팀 모두 다섯 명의 교체 카드를 모두 사용했다.

배리와 투레를 대신해 투입된 데 용, 라키티치는 맨유의 중원에서 전개되는 볼을 끊어냈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척하다가 길게 찔러줍니다! 아게로, 절묘하게 빠져 들어가고 왼발 슈팅!! 골! 골입니다! 세르히오 아게로! 맨체스터 시티의 하늘색 유니폼을 입고 첫 번째 득점을 기록합니다!”

라키티치의 롱패스와 아게로의 라인 브레이킹 능력이 빛을 발했다.

제코가 퍼디난드의 시선을 끌어주는 사이 후반전에 교체 투입된 아게로가 비디치와 퍼디난드의 사이로 빠져나갔고, 라키티치의 롱패스가 정확하게 연결되었다.

“맨시티, 3-0입니다. 콤파니의 선취 골을 시작으로 산체스와 아게로가 한 골씩 기록하면서 골 맛을 봐야 하는 선수들이 골 맛을 봤습니다.”

두 번째 골은 산체스, 세 번째 골은 아게로.

이번 시즌 공격력 강화를 위해 야심차게 영입한 선수들이 순서대로 골을 기록하면서 만치니 감독을 기쁘게 만들었다.

두 선수가 일찌감치 첫 골을 기록한 것은 향후 맨체스터 시티 공격에 큰 힘이 되어줄 것이었다.

“물론, 아직 시즌이 시작한 것도 아니고 시즌 첫 경기에 불과해 속단할 순 없겠지만, 맨유가 너무 무기력한데요? 맨유가 다른 클럽들을 상대하는 걸 보면 맨유가 불안한 건지, 맨시티가 강한 건지 확실해질 것 같네요.”

지금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아마 헷갈릴 수도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성배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대로만 가면 올해도 우승 메달 한 개 더 모을 수 있겠어.’

맨시티가 강한 것이었다.

지난 시즌의 맨유와 큰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지난 시즌의 맨시티와 이번 시즌의 맨시티는 또 달랐다.

***

“산체스의 크로스! 제코! 꽂힙니다! 에딘 제코! 벌써 세 경기 연속 골! 지난 시즌부터 계산하면 벌써 리그 다섯 경기 연속 골입니다!”

커뮤니티 쉴드에서 맨유를 3-0으로 대파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어쩌면 이번 시즌 맨시티의 질주를 암시하는 신호탄인 것도 같았다.

“맨체스터 시티, 정말 무섭습니다! 두 경기에서 벌써 여덟 골을 기록합니다! 그와 동시에 실점은 0! 공격과 수비의 밸런스가 굉장히 좋습니다!”

리그 개막전이었던 1라운드 스완지 시티전.

맨시티는 리그 데뷔 골과 2호 골을 동시에 꽂아넣은 아게로의 멀티 골과 제코, 실바의 득점을 묶어 4-0으로 대승을 거두며 기분 좋게 시즌을 시작했다.

그리고 볼턴 원더러스와의 2라운드.

이번에도 역시 아게로, 배리, 산체스에 이어 제코가 한 골을 집어넣으며 네 번째 득점을 기록했다.

“맨체스터 시티, 무섭네요! 지금 맨유도 2연승에 골 득실 +4를 기록하고 있거든요? 맨유가 약해진 게 아니라 맨시티가 엄청나게 강해진 것이었어요!”

실바와 제코에 아게로와 산체스가 더해진 맨체스터 시티의 공격진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그렇다고 수비가 약해진 것도 아니었다.

지난 시즌을 기점으로 프리미어리그 탑클래스의 센터백으로 성장한 콤파니와 탑클래스를 노리고 있는 보아텡, 피지컬을 제대로 이용하기 시작한 리차즈와 언제나 든든한 주장 성배가 버티는 수비진은 한층 얇아진 수비라인에도 불구하고 맨시티의 골문을 듬직하게 지켰다.

“임채영까지 팀을 이탈한 상황에서 볼턴, 답이 보이질 않네요. 안 그래도 오늘 경기 이후 리버풀, 맨유, 노리치 시티, 아스날을 연달아 만나는 죽음의 일정인데, 체력을 아껴놓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어요.”

임채영의 가치가 충분히 높아졌다고 판단한 버크만은 이번 여름, 적극적으로 이적을 추진했다.

결국, 임채영은 800만 유로의 이적료를 남기고 뉴캐슬로 떠났고, 대체자로 오베르탕을 영입하긴 했지만, 아직 임채영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진 못하고 있었다.

“경기 끝났습니다. 맨체스터 시티, 두 경기 연속 4-0 승리로 환상적인 시작을 알립니다!”

이제 겨우 두 경기를 치렀을 뿐이지만, 맨체스터 시티의 기세는 다른 경쟁 클럽들을 긴장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

[이로써 자동적으로 H조에 속할 마지막 클럽은 도르트문트가 되었습니다.]

성배는 콤파니, 루카쿠, 실바와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친 뒤, TV 앞에 모여 2011/12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조 추첨식을 시청했다.

지난 시즌의 4강 진출로 자신감을 얻었고, 이번 시즌에야말로 챔피언스리그 제패를 노리고 있는 맨체스터 시티였다.

[H조, 이거 진짜 엄청난 조가 만들어졌네요. 너무 비현실적이라 상상으로도 해보지 못했던 엄청난 조입니다, 정말.]

모여있는 네 선수 모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챔피언스리그 조 추첨 결과에 충격을 받아 말문이 막혀버린 것이었다.

그 정도로 맨체스터 시티의 조 추첨 결과가 좋지 않았다.

2011/12 챔피언스리그 H조

1포트 : 바르셀로나

2포트 : 맨체스터 시티

3포트 : 릴 OSC

4포트 : 도르트문트

라 리가와 프리미어리그, 리그앙, 분데스리가의 우승팀들이 한 조에 모인, 우승팀들로만 이루어진 H조에 맨체스터 시티 역시 포함된 것이었다.

각 리그의 우승팀이 한 리그에 모이는 건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승도 하는 클럽들이 하고, 유럽 대항전 출전이 잦아질수록 상위 포트로 배정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는 라 리가를 제외한 나머지 리그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한 클럽들이 많아 2포트, 3포트, 4포트로 나뉘었고, 결국 이런 죽음의 조가 만들어지고 말았다.

< 낭만필드 - 289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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