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285 >
맨체스터 시티에게 가장 시급한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지만, 그에 못지않게 2선 자원의 영입도 시급했다.
다비드 실바가 왼쪽에서 활약해주고 있었지만, 실바의 백업이 없었고, 아담 존슨과 제임스 밀너가 번갈아 출전하는 오른쪽 측면은 뭔가 좀 아쉬움이 있었다.
존슨은 교체로 나서면 정말 좋은 선수인데, 선발로만 출전하면 그대로 경기장에서 사라져버렸다.
밀너는 박인진과 비슷한 스타일의 좋은 선수이고, 꼭 필요한 선수지만, 아무래도 공격력이 좀 아쉬웠다.
그리고 셋이 다 좋은 선수라고 해도 한두 명 정도는 더 필요한 것이 사실이었다.
“알렉시스 산체스라... 만치니 감독도 수비에 자신감이 좀 생겼나 봅니다. 그 수비적인 감독이 이렇게 과감한 수를 던지다니.”
기사에 따르면 산체스의 이적료는 대략 3,500만 유로 수준.
물론, 맨시티라면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 정도 이적료면 거의 주전으로 쓰겠다는 뜻이었다.
왼쪽에는 핵심 중의 핵심인 실바가 있었기에 좌실바 우산체스의 라인이 만들어지는 것인데, 두 선수의 공통점은 수비 가담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맨시티의 수비진에 대한 이야기를 굳이 또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특히나 측면은 말할 필요도 없고.”
지난 시즌을 통해 수비진에 대한 신뢰가 굳건해진 듯했다.
실바와 산체스가 수비 상황에서 해줄 수 있는 역할에 한계가 있는 선수였지만, 성배와 리차즈, 사발레타, 그리고 다른 선수들의 백업이라면 충분히 측면을 지킬 수 있을 거라 판단한 듯했다.
“뭐, 산체스가 영입되면 분명 큰 힘이 되긴 할 겁니다. 안 그래도 측면 공격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으니까요.”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맨체스터 시티의 리그 득점은 4위에 불과했다.
그리고 득점 개수를 떠나 실바와 테베즈, 그리고 성배의 세트피스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또 한 명의 에이스급 공격 자원이 필요했다.
“만약 맨시티가 산체스를 영입한다면, 주는 조금 더 수비적으로 플레이해야 하지 않습니까?”
다만, 그렇게 된다면 양쪽 측면 풀백의 공격 가담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성배와 리차즈의 공격력이 뛰어난 편이기에 아예 수비적인 역할을 부여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비슷한 수준의 강팀과 붙으면 수비에 집중하긴 해야 할 터였다.
“저는 그것도 좋습니다. 공격 포인트가 많긴 하지만, 대부분 세트피스고, 개인적으로 전 공격보다 수비가 더 자신 있습니다.”
성배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선수 개인으로는 기대도 하지 않았던 위치까지 올라온 상황이었다.
그리고 성배는 맨시티의 주장이었다.
맨시티의 성과가 곧 성배의 성과였고, 팀이 강해지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습니까? 직원에게 문자가 왔는데, 대충 내용은 주가 산체스에게 전화해서 설득 좀 해달라는 내용입니다. 팀의 주장으로서, 그리고 맨시티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알아본 선수로서 산체스를 설득하라는 것 같습니다.”
아직 메일을 제대로 확인하진 못했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팀의 주장이자 중심이고 맨시티라는 클럽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알아본 선수 중 한 명으로서 산체스와 대화를 좀 나눠달라는 것이었다.
“흐음, 아무래도 상황이 그렇게 좋지는 않은가 봅니다.”
이적 협상이 잘 풀리지 않는 듯했다.
굳이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까지 급하게 부탁하진 않았을 테니까.
주장으로서 팀이 원하는 선수와 대화를 나누는 건 필요한 일이었지만, 보통 이렇게 급하다는 건 설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산체스가 영어가 가능해? 난 스페인어 못하는데.’
산체스에게 연락하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서로 대화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알랭, 혹시 스페인어 할 줄 아십니까?”
축구계에서 크게 인정받는 에이전트라면 백이면 백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아야 했다.
스페인은 물론이고 대부분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남미에서 뛰어난 선수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할 줄은 압니다만, 그건 뜬금없이 왜 물으십니까?”
다행히 버크만은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았다.
“그럼 산체스랑 통화할 때 통역 좀 해주시죠?”
버크만이 의구심 가득한 눈길로 성배를 쳐다보았다.
“직접 전화하시려고요? 일단 첫 연락이니 메일로 하시죠?”
아.
메일이 있었구나.
“하하하, 주에게서 그런 허술한 모습을 볼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버크만은 성배의 실수를 붙잡고 계속 놀려댔다.
십 대일 때 처음 만나 항상 빈틈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성배가 처음으로 빈틈을 보인 것이었다.
“아이고, 이제 좀 봐주시죠. 창피합니다.”
성배는 노트북으로 조용히, 네덜란드어로 메일을 작성하고 있었다.
잉글랜드에서 뛰고 있기는 했지만, 전생에서 16년, 현생에서 1년 반을 네덜란드어 지방에서 살았기에 네덜란드어가 가장 편했다.
어차피 번역이 필요했기 때문에 가장 익숙한 언어로 작성하는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이제 그만하죠. 메일 내용은 뭡니까?”
만치니 감독과 통화도 해보고 이리저리 알아본 결과, 산체스는 바르셀로나 이적을 원하는 것 같았다.
드림 클럽이 바르셀로나였다고 했다.
심지어 암투병 끝에 사망한, 자신을 키워준 삼촌 호세 딜라이게의 유언이 "바르셀로나에서 뛰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이라고도 했다.
도저히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엄두도 나지 않았다.
“뭐겠습니까. 일단은 맨시티가 왜 좋은지 어필하고 있습니다. 이제 맨시티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강팀이지 않습니까? 그것부터 시작해야죠. 앞으로 더 건드려야 하고.”
맨시티와 첼시, 바르셀로나가 산체스의 영입을 노리고 있었는데, 이 중 가장 많은 이적료와 높은 연봉을 제시한 클럽이 맨시티, 가장 낮은 클럽이 바르셀로나였다.
'나중에 결국 아스날로 이적한 걸 보면 '바르샤가 아니면 안돼!', 이런 건 아닌 듯한데.'
우디네세는 당연히 산체스가 맨시티로 이적하길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산체스는 바르셀로나가 아니면 우디네세에 남겠다는 입장이었다.
실제로 그러지는 않겠지만, 그 정도로 바르셀로나행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습니다. 사실 역사와 전통을 떠난다면 객관적으로 맨시티로 이적하는 게 낫습니다. 제가 에이전트라면 그런 쪽으로 설득할 겁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선수의 뜻이지만.”
챔피언스리그와 라 리가 우승을 이뤄낸 MVP 라인, 메시-비야-페드로 라인이 확실히 자리 잡고 있는 바르셀로나.
수비진과 미드필드진이 완성되었고, 살짝 부족한 공격진으로도 챔피언스리그 4강까지 올랐던 맨체스터 시티.
산체스 개인에게 어느 클럽이 더 유리한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그 선수의 뜻을 바꿔보려고 합니다.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맨시티는 충분히 유럽 챔피언을 노릴 수 있는 팀이니까요. 그가 온다면 유럽 챔피언이 될 수 있는 팀이라고 적었습니다.”
바르셀로나도 MVP 라인만 가지고는 팀을 운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산체스는 백업이나 로테이션에 만족할 선수가 아니었다.
맨체스터 시티로 온다면 팀의 핵심으로 활약하며 유럽 챔피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적인 세일즈 포인트였다.
“매일 한 통씩 메일을 보내서라도 설득할 겁니다. 지금 맨시티에는 산체스와 같은 선수가 꼭 필요하니까요.”
전생의 맨시티는 산체스 영입에 실패한 뒤, 후안 마타를 노렸다가 다시 실패, 결국 대체자의 대체자였던 사미르 나스리를 영입했다.
그리고 나스리는 그 순위대로 세 명의 선수 중 가장 떨어지는 활약을 보였다.
성배도 정확히 누가 누구의 대체자였는지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산체스가 아닌 나스리가 영입되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다음 시즌에는 꼭 산체스와 함께 뛰어보겠습니다.”
어차피 나스리도 수비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플레이 메이커도 좋지만, 직접 해결할 능력을 갖춘 산체스 쪽이 100배는 더 나았다.
***
성배는 산체스의 에이전시를 통해 1-2일마다 한 번씩 메일을 보냈다.
답장이 오기는 했지만, 틀에 박힌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만, 구단 관계자가 말해준 바에 따르면 협상 분위기가 꽤 괜찮아지고 있는 것 같았다.
“짐은 다 챙겼어?”
잉글랜드로 돌아온 성배는 유빈이의 이사를 도왔다.
본격적으로 몸을 만들기 전에 이사를 마치기 위함이었다.
성배 역시 내일 이사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유빈이의 이사를 마지막까지 도울 수 없었다.
“주, 다 챙겼다니까? 내가 다 봤어.”
이후 본인의 짐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성배는 그 후 유빈이의 집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그런 성배를 대신해 이사를 도와주러 온 사람이 있었다.
바로 첼시였다.
“끄응, 차! 이걸로 끝. 짐은 다 챙겼어. 이제 출발하면 되겠다.”
사람을 부르긴 했지만, 그래도 여자였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싸야 하는 짐도 적지 않았다.
그 짐들을 마지막으로 모든 이삿짐이 차에 실렸다.
“기분이 좀 묘하네. 그래도 1년 이상 같이 살았는데.”
유빈이에게 꼭 필요한 시간과 경험이라고 생각해서 허락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았지만, 막상 집을 나간다고 하니 기분이 묘했다.
“와, 주... 그렇게 안 봤는데 엄청난 팔불출이구나? 주가 들어가는 펜트하우스에서 차 타고 10분이면 가는 거리라고!”
그리고 첼시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성배를 바라보았다.
유빈이의 집은 성배가 살게 될 집과 차 타고 고작 10분 거리였다.
그런 주제에 저런 얼굴을 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을 만도 했다.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같이 살다가 따로 사는 거니까. 아직 유빈이한테는 잉글랜드가 익숙한 나라도 아니고.”
성배도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걱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첼시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성배를 쳐다봤다.
“나 참... 평소에는 되게 칼 같은 사람이 가족만 관계되면 어쩜 이래?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거야.”
가족이 관련되었을 경우, 성배는 전생보다도 더 정이 넘치는 사람으로 변했다.
그리고 진지하게 만나기 시작하면서 그런 모습을 처음 본 첼시가 놀랄 만한 모습이었다.
“그러게. 나도 오빠한테 저런 모습이 있을 줄은 몰랐어. 첼시한테도 저래?”
유빈도 회귀한 성배와 그리 많은 시간을 보내진 못했다.
그 짧은 시간에도 충분히 좋은 오빠의 역할을 해주긴 했지만, 아무래도 그전의 모습들이 더 인상에 깊게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시 만난 성배가 1년간 보여준 모습은 유빈마저도 놀라게 했다.
“그렇게 놀리지 마. 원래 오빠들은 다 그런 거야. 평소에 여동생이랑 사이가 어떻든, 이럴 땐 걱정하는 게 당연한 거라고.”
어느새 두 사람이 자신보다 더 친해진 것 같다고 느꼈다.
특히 자신을 험담할 때 그런 느낌이 강했다.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뭔가 흐뭇한 느낌이었지만.
“오빠, 나 이제 갈게. 나 없다고 너무 울지 말고.”
슬슬 떠날 시간이었다.
먼저 인사를 건넨 유빈이는 얼마 전 보여주었던 그 아저씨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 속으로는 완전 웃고 있지? 저 눈치 없는 방해꾼, 드디어 사라진다면서? 후후. 나도 이제 알 것 다 아는 나이라고. 훗.”
도대체 저런 아저씨 같은 단어는 어디서 배워온 건지.
유빈이의 친구 관계를 천천히 조사해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시끄럽고, 빨리 가라. 이따가 짐 다 챙기면 갈게. 주소랑 사진 찍어서 보내.”
생활에서만큼은 유빈이도 독립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성배는 다시 혼자 살게 되었다.
그리고 성배에게는 애인이 있었다.
유빈이의 말대로 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 낭만필드 - 28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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