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281 >
“드디어 트로피가 맨체스터 시티에게 건네집니다. 맨체스터 시티의 주장, 대한민국이 낳은 또 한 명의 천재, 주성배 선수가 트로피를 향해 손을 뻗었습니다.”
시상식.
리그 우승컵을 가장 먼저 들어 올리는 선수는 맨체스터 시티의 주장인 성배였다.
그리고 이 장면은 대한민국에서도 생중계되고 있었다.
아직 성배가 박인진의 인기를 따라잡지도 못했고, 맨유의 우승 확률이 더 높았기 때문에 맨유 경기를 중계하고 있었지만, 맨시티의 우승이 정해진 순간 바로 맨시티 시상식 장면을 받아온 것이었다.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 미리 준비한 것이었다.
“주성배!! 우승컵을 하늘로 번쩍 들어 올립니다! 정말 멋있습니다!! 맨체스터 시티의 주장이자 우승의 주역! 43년 만에 맨체스터 시티로 우승컵을 가져온 수백억짜리 결승 골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국적을 떠나 성배는 이미 한국 선수와 비슷한 취급을 받았다.
그렇다고 해도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처음으로 들어 올린 한국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우승컵에 가장 먼저 손을 댄 첫 번째 선수였다.
또한, 주장도 처음이었고, 팀에서 이 정도로 압도적인 위상을 차지한 것도 처음이었다.
“우승컵에 입을 맞춥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시즌에 두 개의 우승컵을 추가하면서 커리어와 우승컵의 개수를 똑같이 맞췄습니다.”
2004/05시즌 겨울에 데뷔한 이후 첫 풀타임 시즌인 2005/06시즌부터 2009/10시즌까지, 2008/09시즌을 제외한 매 시즌 한 개의 우승컵을 손에 쥐었던 성배였다.
그리고 2008/09시즌에 무관으로 끝내면서 비어버린 한 개는 이번 시즌에 채웠다.
프리미어리그와 FA컵, 더블을 달성하면서.
“우승컵을 쌓아나가는 속도가 정말 무섭네요.”
벨기에 주필러 리그 1회, 네덜란드 KNVB컵 1회, 잉글랜드 칼링컵 2회, FA컵 1회, 프리미어리그 1회.
성배가 6시즌 동안 획득한 우승컵이었다.
“그것도 묻어간 우승이 한 번도 없어요. 이번 시즌을 빼면 다섯 시즌 동안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네 번이나 선정되었거든요? 그리고 이번 시즌도 무난하게 들어갈 것으로 보이네요.”
매 시즌 리그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손꼽히며 이 자리까지 성장해온 성배였다.
스물넷의 어린 나이지만, 데뷔 시즌부터 매 시즌 속한 리그에서 최고 수준의 레프트백으로 꼽히며 브레이크 없이 달려온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세계 최상위 리그인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명실공히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자리 잡았다.
***
맨체스터 시티가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하자, 많은 사람들이 기뻐했지만, 누구보다 기뻐한 사람은 구단주인 만수르였다.
만수르가 처음 구단을 인수했을 때, 사람들은 중동 갑부의 변덕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던 갑부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만수르는 그들과 달랐다.
그들과 달리 확실한 플랜과 장기적인 계획으로 클럽을 운영했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었다.
또한, 중동에 있으면서도 맨체스터 시티의 모든 경기를 위성 생중계로 하나도 빠짐없이 직접 시청했다.
그럼에도 만수르는 우승에 조급해하지 않았다.
앞으로 2, 3년 정도를 더 보고 있었다.
하지만 만수르의 예상과 달리 맨시티는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4강까지 진출, 유럽 축구계의 강호로 떠올랐고, 거기서 끝나지 않고 프리미어리그와 FA컵을 제패, 이번 시즌 잉글랜드 축구계의 최강자로 우뚝 섰다.
“역시. 구단주의 클래스가 다르네.”
프리미어리그와 FA컵, 두 개의 큰 대회를 제패한 맨체스터 시티는 심혈을 기울여 기념 퍼레이드를 준비했다.
그리고 만수르가 그렇게 기뻐했으니 퍼레이드의 수준이 달랐다.
이미 선수들에게 우승 보너스가 지급된 상황이었고, 그 규모는 다른 클럽과 리그에서 날고 기었던 선수들이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그냥 격이 다르고 클래스의 차이를 보여주었다는 정도로만 언급하겠다.
“하하, 주! 우리 팬들을 좀 보라고! 이 넓은 길을 우리 차 지나갈 자리만 빼고 가득 메웠어!”
시즌이 다 끝나고 긴장감을 내려놓은 콤파니는 해맑은 얼굴로 퍼레이드를 즐겼다.
아직 버스 퍼레이드는 시작도 하지 않았고, 맨체스터 시청사에서 시작을 준비하는 중이었지만, 이미 어마어마한 숫자의 팬들이 앞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바닥이 하늘색이었나, 싶을 정도로 아스팔트의 회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10만 명이라고 하던데. 10만이면 웸블리 스타디움 정원보다 많은 숫자네.”
성배는 이미 구단 관계자들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무려 10만 명.
오늘 맨체스터 시티의 우승 퍼레이드에 참가한 팬들의 숫자였다.
수십 년을 기다리다가 한 살 짜리 아이가 불혹을 훌쩍 넘긴 아저씨가 된 세월이 흘러 맞이한 우승이었으니 팬들도 흥분을 참지 않고 바로 뛰쳐나온 것이었다.
“어이! 빨리 나와! 이제 시작이야!”
드디어 우승 퍼레이드를 시작할 시간이었다.
바지는 다들 청바지나 면바지, 정장 바지 등 원하는 대로 입고 왔지만, 상의는 유니폼을 맞춰 입은 맨시티 선수들은 모두 시청 입구로 이동했다.
"마리오! 이건 왜 들고 있어!"
퍼레이드를 위한 버스가 선수들을 태우고 슬슬 출발했다.
그리고 출발 직전, 성배는 발로텔리가 들고 있던 플래카드를 급히 빼앗았다.
"왜? 뭐 어때서? 센스있잖아?"
[R.I.P Fergie]
플래카드의 내용이었다.
자신이 죽기 전까지는 맨시티가 맨유를 역전할 수 없다던 퍼거슨의 발언을 조롱하는 내용이었다.
"물론 센스는 있네. 하지만 너는 맨시티의 선수야. 프로 선수. 팬이라면 그나마 봐줄 수 있지만, 선수가 직접적으로 이런 것과 관련되면 안 돼. 이건 포기해."
퍼거슨은 세계 축구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사 중 한 명이었고, 영국 내에서도 기사 서임까지 받은 명망높은 인사였다.
그런 사람을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비난해서 좋을 게 없었다.
'사진 찍혔나?'
사람이 10만명이었다.
자신이 이 플래카드를 빼앗아든 것을 누군가는 분명 확인했을 것이었다.
이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가면 맨시티 팬들 말고 다른 클럽의 팬들에게까지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고맙다, 마리오. 앞으로 한 번 정도는 봐주지.'
원래 테베즈가 칠 사고였다.
이후 공식적으로 사과까지 해야 했던 일이었고.
하지만 테베즈가 없었기에 조용히 넘어가지 않을까, 싶었는데, 테베즈 못지않은 멘탈갑, 발로텔리가 대신 사고를 쳐준 것이었다.
덕분에 성배도 한 번 더 어필할 수 있었다.
“우와아아아아!!!”
“더 스카이블루!! 맨시티!!”
시청 입구에 일렬로 서서 우승컵을 자랑한 맨시티 선수단은 버스 두 대에 나눠 타고 맨체스터 시내를 돌았다.
10만 명의 팬들이 버스를 따라 움직였다.
“깜짝이야.”
팬들은 버스를 향해 이것저것 던져주었다.
그리고 성배도 그중 하나를 받았다.
“하하하!”
우승에 대비해 맨체스터 시티는 여러 가지 용품들을 만들어 팔았었다.
그중 하나가 성배의 손에 들어온 이 티셔츠였다.
“감사합니다! 2011년 5월 22일, 그 영광의 자리에 계셨었군요. 스미스 씨, 감사합니다! 그리고 축하합니다! 역사적인 자리를 지키셨군요!”
[11-05-22, I've been there -Adrian Smith-]
성배의 손에 들린 티셔츠에 적힌 문구였다.
앞의 문구들은 맨체스터 시티가 프린팅해 출시한 것이었고, 뒤에 이름은 팬이 적어준 것이었다.
확성기를 받아든 성배는 바로 팬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어이구.”
“아, 저거 사고 쳤네...”
평소 성격만 보면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성배는 맨체스터 시티에서 팬 서비스가 가장 좋은 선수로 꼽혔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다 해내는 성격이기도 했고, 기본적으로 프로 선수에게는 팬 관리도 실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성격 때문에 다른 선수들까지 피곤해지게 생겼다.
이름을 불러준 성배의 행동에 다른 팬들까지 자신의 이름을 적어 이것저것 던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맞습니다! 우린 시끄러운 이웃입니다! 앞으로 맨유보다 훨씬 더 시끄러운 시즌을 보내게 될 테니 말입니다! 로건 씨, 로건 씨도 앞으로 시끄럽게 우릴 외쳐주세요!”
다른 선수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성배는 열심히 팬들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이번에는 [NOISY NEIGHBOUR], 퍼거슨 감독의 말을 인용해 시끄러운 이웃이라 프린팅한 티셔츠에 이름이 적혀 날아온 것이었다.
“와아아아아아!!!!”
“주! 주! 주! 주! 주!”
그리고 성배는 유니폼을 벗었다.
그리고 다른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이름이 프린팅되는 자리에 [CHAMPIONS]가 적히고 등번호는 12번, 팬들을 상징하는 번호가 프린팅된 우승 기념 티셔츠였다.
성배의 팬 서비스가 폭발하는 날이었다.
이미 맨체스터 시티에 합류하기 전부터 맨체스터 시티의 서포터들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았던 성배는 이젠 그야말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성배가 이런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이유는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
프리미어리그의 2010/11시즌은 맨체스터 시티의 우승으로 화려하게 마무리되었다.
겨우 한 골, 한 골 차이로 리그 우승을 놓치고 옆에서 맨시티의 우승 퍼레이드를 지켜만 봐야 했던 맨유는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바르셀로나에게 3-1로 완패, 이번 시즌을 무관으로 끝내고 말았다.
맨체스터 시티는 4강에서 자신들을 꺾은 바르셀로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까지 꺾어준 것에 감사했다.
겨우 맨유를 꺾고 리그 우승을 차지했는데, 맨유가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해버리면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무관으로 시즌을 마친 맨유의 뒤를 이어 첼시가 3위를 차지했다.
지난 시즌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그렇게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었지만, 팀의 핵심인 램파드와 드록바가 각각 탈장 수술, 말라리아의 여파로 부진했던 것을 감안하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특히, 900억짜리 공격수 토레스의 형편없는 활약을 생각하면 3위도 다행이었다.
4위는 수비가 무너지면서 리그 득점 2위를 기록하고도 첼시에게 골 득실에서 밀려버린 아스날이 차지했다.
부상으로 시즌을 절반 가까이 날려버린 베르마엘렌과 반 페르시의 공백이 치명적이었다.
5위는 토트넘, 6위는 리버풀, 7위는 에버튼이었다.
리버풀의 몰락은 지난 시즌에서 이어졌다.
앤디 캐롤은 토레스의 대체자가 분명했다.
토레스만큼이나 형편없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맨시티와 맨유, 첼시에 아스날이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막차로 합류하면서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따냈고, 유로파리그는 5위 토트넘과 8위 풀럼, 13위 스토크 시티, 18위 버밍엄 시티가 출전하게 되었다.
토트넘은 순위대로, 풀럼은 UEFA 페어플레이 랭킹 1위로, 스토크 시티는 FA컵 준우승으로, 버밍엄 시티는 칼링컵 우승으로 유로파리그 출전권을 얻었다.
버밍엄 시티는 챔피언십으로 강등되었는데, 2부 리그 소속으로 유럽 대항전에 출전하게 되었다.
버밍엄과 함께 손잡고 챔피언십으로 강등될 클럽은 19위 블랙풀과 20위 웨스트햄이었다.
37라운드까지 19위로 강등권에 있었던 위건은 마지막 라운드에서 스토크 시티를 1-0으로 잡아내며 16위로 잔류에 성공했다.
[주성배, PFA 선정 2010/11시즌 리그 최우수 선수 선정!]
잉글랜드 축구협회인 PFA는 항상 시즌이 끝나고 최우수 선수와 최우수 감독, 베스트 일레븐을 선정했다.
여기서 성배는 레프트백으로 베스트 일레븐에 포함된 것은 물론, 최우수 선수로까지 선정되었다.
2010/11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 된 것이었다.
2010/11시즌은 이상할 정도로 공격수의 약세가 두드러진 시즌이었다.
21골로 득점왕을 차지한 베르바토프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때 벤치에도 못 앉는 등 그야말로 양민 학살 전용으로 전락한 선수였고, 나머지 선수들은 20골을 넘은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
무단이탈로 일찌감치 시즌을 마친 테베즈가 4위에 올라있을 정도였으니, 공격수의 부진이 어느 정도였는지 쉽게 예상이 가능했다.
보통 최우수 선수로 꼽히기 가장 쉬운 공격수 포지션에서 눈에 띄는 선수가 없고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따낸 클럽에서 확 눈에 띄는 에이스도 없다 보니 우승팀인 맨시티에서 최우수 선수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맨체스터 시티에서 한 명을 꼽으라면 무조건 성배였다.
수비수임에도 6골 10어시스트의 많은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것도 그랬지만, 그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고도 장점으로 수비력이 꼽힐 정도로 좋은 수비력까지 보여주었다.
그리고 팀 장악력과 주장으로서의 역할까지.
맨체스터 시티를 대표하는 선수, 주성배였다.
PFA 리그 최우수 선수에 베스트 일레븐까지 선정된 성배는 리그 외의 다른 대회에서도 좋은 활약을 이어갔다.
레알 마드리드를 무너뜨린 8강전에서의 해트트릭을 포함해 챔피언스리그에서 4골 3어시스트, FA컵과 칼링컵까지 포함하면 12골 1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골도, 어시스트도 커리어 하이의 기록이었다.
2007/08시즌의 9골이 최고 기록이었던 득점은 최초로 두 자릿수를 넘긴 12골, 어시스트 역시 2006/07시즌의 14어시스트를 넘어 15개였다.
맨체스터 시티의 전성기와 더불어 성배의 전성기 역시 활짝 열렸다.
< 낭만필드 - 28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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