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280화 (181/356)

< 낭만필드 - 280 >

‘무조건 넣는다고!’

하지만 다음 순간, 사람들은 생각을 수정해야 했다.

몸을 던져 막아냈기에 야스켈라이넨이 잡지 못하고 튀어나온 볼을 향해 성배와 실바가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볼턴 수비수들은 제코의 패스가 연결된 순간, 발을 멈췄다.

야스켈라이넨에게 맡기고 지켜본 것이었다.

리바운드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무조건!’

하지만 성배를 비롯한 맨시티 선수들은 아니었다.

이번 공격에서 골을 넣지 못하면 2위에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시간을 봤을 때, 마지막 공격이었다.

뒤를 돌아볼 필요도, 걱정할 필요도 없이 그냥 볼을 향해 달려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제발!! 들어가라!!’

왼발을 뻗으며 볼을 향해 몸을 날렸다.

성배가 실바보다 살짝 먼저 도착했기 때문에 실바가 자리를 비켜주었다.

마지막 슈팅.

이 슈팅의 결과에 따라 2010/11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우승팀이 결정되는 것이었다.

‘닿았다.’

성배는 자신의 왼발에 볼이 닿는 것을 느꼈다.

몸을 날린 상황에서도 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번 시즌 마지막 슈팅이었다.

그리고 이 슈팅에 리그 우승 트로피가 오거나 가거나 둘 중 하나였다.

자세는 불안정하지만, 눈을 떼고 싶어도 뗄 수가 없었다.

“주성배!!!!! 넣었습니다!! 이걸 넣었습니다!! 후반전 추가시간 2분 53초! 경기 종료를 7초 남겨두고 득점에 성공합니다!!”

캐스터의 목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그리고.

몸을 날려 왼발을 뻗은 성배의 슈팅이 볼턴의 골망을 갈랐다.

“아악!!”

볼이 볼턴의 골대 안에서 구르는 모습을 성배 역시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괴성을 지르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기까지였다.

극적인 골이었지만, 포효와 꽉 쥔 주먹을 제외하면 딱히 특별한 세리머니는 없었다.

“지금 뭐하냐! 그게 다냐! 지금 뭐하자는 거야, 이 자식이!!”

하지만 다른 선수들은 그렇지 않았다.

“됐어! 됐다고! 들어갔어!”

발로텔리도 빠르게 달려와 성배의 등에 매달렸다.

워낙에 극적인 상황이었기에 동료들 역시 사람처럼 말하지는 못했다.

그저 몇 가지 단어를 계속해서 반복할 뿐이었다.

“으하하하! 우승이야! 우승!”

조용한 실바마저도 평소 보기 힘든 활짝 웃는 표정으로 달려와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로 이루어진 인간 탑에 자신의 몸을 던졌다.

“아파! 아프다고!”

계속 말해왔지만, 성배는 신체 조건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6-7명의 선수가 자신의 위에 몸을 던져 깔아뭉개면 버틸 재간이 없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블랙풀의 경기가 4-2로 끝났다는 소식입니다! 이제 이대로 스코어가 유지만 되면 맨시티의 우승인데, 추가시간도 이미 끝났습니다! 끝! 맨시티, 이제 손까지 뻗었습니다! 손아귀만 움켜쥐면 우승컵은 맨시티의 것입니다!”

90% 이상, 아니, 99.99% 이상 맨시티의 우승이 확실해졌다.

맨시티가 우승하지 못할 확률은 킥오프 직후 볼턴이 슈팅을 시도하고, 그 슈팅이 하프라인부터 날아가 맨시티의 골망을 가르는 것, 그것밖에 없었다.

아니면 지금 당장 소행성이 떨어져 지구가 멸망하거나.

***

[Glory! glory, Man United!]

[Glory! glory, Man United!]

[Glory! glory, Man United!]

같은 시각, 올드 트래포드.

리복 스타디움의 경기보다 대략 2분 정도 먼저 경기가 끝난 올드 트래포드는 이미 축제 분위기였다.

팬들이 알고 있는 맨체스터 시티의 스코어는 2-0이었고, 팬들이 아닌 팀 관계자들 역시 3-0으로 알고 있었다.

“이번 시즌에도 맨유의 우승인가.”

잉글랜드 축구협회의 관계자들은 이미 우승 트로피에 맨유의 컬러인 빨간색과 하얀색 리본을 감아놓았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면 시상식을 거행할 생각이었다.

“결국, 이번 시즌에도 맨유군요. 맨시티가 일 한 번 내나, 싶었는데.”

맨유와 같은 빅클럽이 존재하는 건 분명 큰 행운이었지만, 어디에서나 독재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았다.

사실상 맨유가 1인자였지만, 함께 빅4라 불리는 다른 세 개의 클럽들도 못지않게 좋은 성적을 거둬주었고, 이것이 프리미어리그 인기의 견인차가 되었다.

“빅4도 고착된 지 너무 오래되었어. 이 정도 시기에 맨시티 같은 클럽이 딱 우승 한 번 해주면 완벽했을 텐데. 성적이 너무 좋았어. 그게 함정이 될 줄이야.”

팬들은 항상 새로운 이슈를 원했고, 팬들이 원하는 건 축구협회도 원했다.

그랬기에 이들도 맨시티의 우승 실패를 아쉬워하고 있었다.

아직 경험도 없는 클럽에게 FA컵과 리그, 챔피언스리그까지 병행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다.

차라리 챔피언스리그나 FA컵에서 일찌감치 떨어져 리그에 집중했으면 어떻데 되었을지, 그것이 아쉬웠다.

“뭐야? 무슨 전화지?”

그때,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아, 제이든. 무슨 일인데?”

상대는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리복 스타디움으로 나간 동료 직원이었다.

두 팀 모두 마지막 라운드 결과에 따라 우승을 차지할 수 있는 클럽이었기 때문에 두 경기장 모두에 파견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전화가 온 순간, 존은 뭔가 중요한 소식임을 직감했다.

[존...]

제이든의 목소리는 굉장히 상기되어 있었다.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억지로 삼키면서 말하는, 그런 목소리였다.

“뭔데! 빨리! 궁금하게 만들지 말고.”

목소리만으로도 존까지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리복 스타디움의 엄청난 함성은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 리본 떼. 한 골 더 들어갔어.]

우승컵에 매달았던 빨간 리본과 하얀 리본.

이걸 매다는 게 꽤나 귀찮았지만, 떼는 건 기분 좋게 뗄 수 있을 것 같았다.

존은 사실 리버풀의 열렬한 팬, 콥이었다.

***

“으악!! 으아악!! 젠장, 제기랄!!”

이미 추가시간으로 접어든 시점에서 실바의 슈팅이 다시 한 번 빗나갔을 때, 리복 스타디움까지 날아와 원정 응원하던 맨시티 서포터들은 일제히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인 로건은 어느새 손에 쥐고 있던 머플러를 휘둘러 애먼 의자에 화를 풀었다.

“제발, 제발...”

맨체스터 시티의 열렬한 서포터 집안에서 태어난 로건은 1969년생이었다.

정확히 맨체스터 시티가 마지막으로 우승을 차지한 1968년의 그 날, 흥분에 취한 부모님의 격렬한 사랑의 결실이 바로 로건이었다.

“제발... 하느님, 저도 맨시티가 우승하는 것 보고 싶습니다. 제발요...”

그런 집안에서 태어난 로건이 시티즌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해준 맨시티의 우승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 역시 간절했다.

“주! 주! 주! 주! 주!”

성배에게 볼이 연결된 순간, 로건 역시 성배가 뭔가 해주기를 기대하며 성배의 이름을 목놓아 외쳤다.

“아! 엿 같은! 빌어먹을!”

하지만 성배의 패스가 스타인슨에게 끊긴 순간, 로건은 다시 한 번 얼굴을 감싸쥐며 허리를 숙였다.

도저히 경기가 이대로 끝나는 순간을, 맨시티의 우승이 한 골 차이로 날아가는 순간을 지켜볼 수 없었다.

“어, 어!! 어!!!”

“간다, 간다!!”

함께 원정 응원에 나선 다른 시티즌들이 흥분하기 시작하자, 로건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성배가 가드너와의 경합에서 이겨낸 뒤, 볼을 따낸 순간이었다.

“가라! 가라! 가라아아아!!!”

성배에서 제코, 그리고 발로텔리로 이어진 패스 끝에 발로텔리에게 절호의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발로텔리는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팬들이 동시에 머리를 감싸 쥐려던 순간, 성배가 뒤에서 나타나 골대 안으로 다시 볼을 밀어 넣었다.

“으아악!! 으악!! 으아아악!!!!!”

로건은 물론이고, 맨체스터 시티의 모든 서포터들은 인간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괴성을 내질렀다.

맨체스터 시티로 우승컵을 옮겨온 득점이었으니, 이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넣었어!! 들어갔어!! 들어갔다고!!”

골이 들어간 순간, 짐승의 소리를 내뱉었던 맨시티의 팬들은 1분가량 지나서야 겨우 사람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심만을 바라보았다.

이미 전광판의 시계는 추가시간 3분을 지난 상황이었다.

“경기 끝났습니다! 맨체스터 시티, 우승입니다!!”

그리고 소행성은 지구에 떨어지지 않았다.

볼턴의 볼로 경기가 재개되자마자 주심은 경기 종료 휘슬을 불었다.

[우와아아아아!!!!!]

그리고 리복 스타디움은 광란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맨시티 팬들은 물론이고 볼턴 팬들까지 축하의 박수와 함성을 질러주었다.

최소한 이 자리의 모든 사람에게 축하받는 우승이었다.

“43년 만의 우승! 맨체스터 시티, 드디어 43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합니다!”

1968년 이후 43년 만에 리그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35년 만의 우승컵이었던 칼링컵 트로피에 이어 42년 만의 FA컵 우승, 그리고 43년 만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으로 잉글랜드 내의 모든 1군 우승컵을 두 시즌 동안 쓸어담았다.

2년 전에는 절대 상상할 수 없었던 눈부신 성공이었다.

“난리가 났습니다. 맨체스터 시티의 서포터들이 어느새 그라운드 안으로 밀려 들어옵니다.”

벤치를 벗어나 주심을 따라다니며 경기 종료를 종용하던 만치니 감독은 종료 휘슬과 함께 벤치로 달려가 수석 코치의 품에 쏘옥 안겼다.

벤치에 앉아있던 선수들은 물론이고 모든 맨시티 관계자들은 정신줄을 놓고 그라운드로 뛰쳐나갔다.

손에 집고 있던 것은 그게 무엇이든 전부 다 던져버렸고, 던지지 못한 것은 그대로 땅바닥에 패대기쳐졌다.

“축제입니다, 축제! 맨체스터 시티, 모든 팬들과 함께 43년 만의 우승을 자축합니다!”

그리고 관중석에서 응원하며 함께 뛴 맨체스터 시티의 서포터즈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라운드로 난입했다.

어느새 리복 스타디움의 그라운드는 선수들이나 관계자들보다 팬들이 훨씬 더 많아졌다.

이쑤시개 하나 꽂기 힘들 정도로 그라운드를 가득 메운 팬들 때문이었다.

“으하하하, 이 플래카드를 여기서 피게 될 줄이야!! 하하! 4-0이라니!”

친구와 함께 플래카드를 준비해온 팬들은 방송국 카메라에 잘 보이게 플래카드를 펴 보였다.

‘내 인생에 맨시티의 우승이 있다니!’ 혹은 ‘예언가 문어, 파울이 말했습니다. 이번 시즌 맨시티가 우승한다고.’와 같은 내용이었다.

우승에 대한 염원을 적은 것들이었다.

‘진짜 서럽게 우네.’

사실 관중의 그라운드 난입은 평소 절대 용납되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우승이 결정된 순간만큼은 관습적으로 허용해주었다.

그래서 대비가 되어 있었고,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보안요원들이 빠르게 달려와 선수단을 보호했다.

덕분에 팬들에게 전혀 시달리지 않고 동료들과 우승의 기쁨을 나눈 성배는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서글프게 울고 있는 팬을 발견했다.

“흐엉, 흐어엉.”

손에 들고 있던 머플러와 맨시티 엠블렘이 그려진 깃발에 얼굴을 묻고 정말 서럽게 울었다.

“하하, 왜 울어요? 오늘처럼 좋은 날에.”

성배는 팬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이 사람 외에도 절반은 울고 있었지만.

거의 반세기를 같은 동네에 위치한 거대한 이웃에게 가려져 설움 속에 보냈던 맨시티의 역습이었다.

< 낭만필드 - 280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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