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279화 (180/356)

< 낭만필드 - 279 >

“이안 에바트, 오늘 같은 경기에서 자책골을 넣다뇨!!”

블랙풀의 이안 에바트는 이번 시즌 승격팀인 블랙풀에서 훌륭한 활약을 보여주며 상대적으로 약한 전력의 소속팀을 여기까지 끌고 온 주역 중 한 명이었다.

“세 골 먹히면 네 골 넣겠다!”는 팀 컬러로 남자의 팀이라 불리는 블랙풀에서 그나마 눈에 띄는 수비수이기도 했다.

하지만 치열한 강등 전쟁으로 한 골이 소중한 이 시점에서의 자책골은 자칫하면 수백억짜리 자책골이 될 수도 있었다.

“주! 주!”

벤치를 박차고 일어난 만치니 감독이 급하게 성배를 불렀다.

벤치에도 맨유의 상황이 전해진 것이었다.

“지금 맨유가 한 골 더 넣었어. 우리도 다시 공격해야 돼.”

맨유의 득점 소식을 전해 듣자, 성배도 잠시 정신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대략 15분.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가죠.”

하지만 짧은 시간도 아니었다.

일단은 한 골이면 충분했다.

“이번에는 마이클 오언의 골!! 오언! 이렇게 맨유를 살리는 겁니까? 원더보이, 역시 폼은 떨어졌어도 클래스는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한 골을 추가한 것은 맨시티가 아닌 맨유였다.

맨유는 후반 36분, 마이클 오언이 한 골을 추가하며 4-2로 두 골 차의 리드를 잡았다.

“맨시티, 상황이 점점 힘들어지는데요? 남은 9분 동안 두 골을 넣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쉽지만은 않죠?”

이제는 맨유 쪽으로 꽤 많이 기울었다.

우승 트로피를 향해 성큼 발을 내디딘 맨유였고, 맨시티는 이제 슬슬 우승이 힘들어지는 분위기였다.

“맨체스터 시티, 이제 급하게 달려듭니다. 공격적인 선수 교체로 득점만 보고 달려듭니다.”

맨체스터 시티는 이제 뒤를 보지 않았다.

데 용을 빼고 발로텔리를 투입했고, 라키티치를 빼고 밀너를 투입, 밀너에게 평소와 달리 쉐도우 스트라이커같은 역할을 맡겼다.

“볼턴은 부담이 없죠. 안전하게 플레이하네요.”

이미 우승도, 강등도, 유럽 대항전도 상관없는 상태로 시즌이 끝난 것이나 다름없는 볼턴이었다.

볼턴은 거세게 몰아붙이는 맨시티의 공격에 적당히 대응하면서 혹시나 모를 부상에 대비했다.

“다만, 그 덕분에 맨시티는 편하게 공격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어요. 그나마 다행이죠? 이제 본인들의 초조함만 이겨낼 수 있으면 희망이 없는 건 아니에요.”

시즌 말미에는 강등권 클럽보다 중위권 클럽이 더 상대하기 편했다.

강등을 피해야 하는 강등권 클럽의 강등로이드가 굉장히 무섭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상황이 오고 보니 마지막 라운드 상대가 볼턴이어서 다행이었다.

“보아텡, 왼쪽으로! 전진 배치된 주에게 연결됩니다.”

두 명의 센터백을 제외하면 모든 선수가 볼턴 진영으로 들어가 있었다.

“주, 곧바로 올라갑니다. 스타인슨, 옆으로 따라붙습니다.”

이제 뒤는 고려할 이유도 없었다.

볼을 잡으면 무조건 전방으로 움직여야 했다.

‘다비드!’

성배의 왼쪽, 깊숙한 측면까지 이동한 밀너가 수비수들의 이목을 끌어주는 순간, 실바가 왼쪽 측면 페널티박스 바깥에서 손을 들며 출발했다.

비어있는 공간으로 미리 출발한 실바는 당연히 오프사이드 트랩을 절묘하게 벗어났다.

“찔러줍니다! 다비드 실바!”

그리고 성배 역시 그 타이밍을 놓칠 리 없었다.

실바의 움직임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패스는 타이밍만 맞으면 충분했다.

“대각선으로 돌파! 가드너, 태클! 피하고 끝까지!”

패스를 받은 실바는 한 번 볼을 더듬었다.

몸은 이미 앞으로 나갔는데, 볼이 뒷발인 오른발에 남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 실수는 실수도 아니었다.

오히려 함정이 되었고, 가볍게 오른발로 다시 볼을 앞으로 옮기며 기회다 싶어 몸을 날린 가드너의 태클을 피했다.

“크로스! 중앙으로! 밀너!!”

그리고 골라인 끝까지 돌파한 뒤, 라인을 타고 조금씩 골대 가까이로 접근했다.

수비수 두 명을 끌어들이고 골키퍼의 시선까지 빼앗은 실바의 선택은 패스.

중앙에서 쇄도하는 밀너에게 볼을 밀어주었고, 밀너는 가볍게 발을 뻗으며 득점을 성공시켰다.

“드디어 한 골 만회했습니다! 맨체스터 시티, 골 득실을 다시 똑같이 만듭니다! 한 골만 더 넣으면 우승 트로피를 가져갈 수 있습니다!”

득점에 성공했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밀너가 골을 넣자마자 제코가 바로 골대 안으로 들어간 볼을 주웠다.

그리고 하프라인을 향해 질주했다.

아직 한 골이 더 필요했다.

“자, 한 골이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추가 시간을 포함해도 10분도 남지 않았지만, 한 골 정도는 언제든 넣을 수 있어요.”

10분에 두 골은 좀 힘들겠지만, 이게 한 골이 되면 이야기가 달랐다.

한 골은 언제든 넣을 수 있었고, 두 골과는 부담감 자체가 달랐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이번 득점으로 희망을 살려 나갑니다.”

아직 우승을 포기하긴 일렀다.

벌써 세 골이나 넣은 상황이었다.

이미 세 골이나 넣었는데 한 골 정도 더 넣는 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하, 볼턴의 홈인데, 볼턴 팬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새 볼턴과 맨시티, 두 팀의 팬들이 한마음으로 맨시티를 응원합니다.”

볼턴의 홈인 데다가 이번 득점으로 스코어가 0-3까지 벌어졌으니 당연히 볼턴 팬들의 야유가 들려야 했다.

하다못해 조용해져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 수준의 함성이었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건가요?”

이미 볼턴은 이번 경기에 기대하는 게 없었다.

오늘 승점 3점을 따든, 아니면 1점을 따든, 0점을 따든 볼턴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1-0에서 2-0이 된 거라면 기분이 좀 나쁠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경기 종반에 두 골 차로 뒤지고 있었기 때문에 패배를 예감하고 있었다.

승리에 대한 기대는 이미 옛날에 접었다는 뜻이었다.

“그런 것 같습니다. 퍼거슨 감독의 부임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워낙 우승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팬도 많아졌지만, 그만큼 맨유의 독주를 달가워하지 않는 팬들도 많습니다.”

볼턴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볼턴의 전력으로 우승은 꿈도 꾸지 않았다.

어차피 이기든 지든 상관이 없는 상황이었으니, 차라리 맨체스터 시티가 크게 이겨서 맨유의 우승만 막아주길 바랐다.

그랬기에 자신의 팀을 3-0으로 맹폭 중인 맨시티에게 오히려 응원을 보내는 것이었다.

“이렇게 훈훈할 수가 없네요. 오늘 리복 스타디움에서는 모두가 친구입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맨체스터 시티의 선전을 응원합니다.”

원정 경기인 리복 스타디움에서 맨시티는 홈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투레의 슈팅! 야스켈라이넨, 앞에다 떨어뜨리며 막아냅니다. 맨시티가 시종일관 강력하게 밀어붙이지만, 마지막 마무리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넘치는 자신감대로 맨시티는 남는 시간 동안 볼턴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리고 10분 동안 무려 다섯 개의 슈팅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 중 볼턴의 골망을 흔든 것은 한 개도 없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맨체스터 시티는 2위에 만족해야 합니다. 물론, 2위도 굉장한 성과지만, 그래도 한 골 때문에 2위에 그치면 아쉽지 않습니까?”

“아, 추가시간이 적용되네요. 정규 시간이 끝났어요.”

그때, 정규시간이 종료되고 추가시간이 주어졌다.

“3분 주어집니다. 긴 시간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짧은 시간도 아닙니다. 이번 시즌 마지막 경기이니 마지막까지 힘을 쥐어짜서 쏟아부어야 합니다! 한 골, 겨우 한 골입니다!”

대기심이 추가시간을 표시한 순간,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은 조금 더 초조해졌다.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정규시간이 끝난 것을 확인한 순간 평정을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한 골, 한 골이다.’

한 골만 더 넣으면 우승이었다.

고작 한 골 때문에 생애 첫 프리미어리그 우승 트로피를 놓칠 수는 없었다.

“슈팅이 또 빗나갑니다! 맨시티, 쉽지 않겠지만, 그리고 시간도 없지만,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플레이해야 합니다. 슈팅이 난사되고 있습니다!”

성배가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어느새 추가시간도 2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 마지막 1분밖에 남지 않은 것이었다.

1분이 흘러도 이 스코어 그대로라면 맨체스터 시티는 우승컵을 맨유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다른 클럽도 아니고 맨유에게만큼은 절대로 넘겨줄 수 없는 물건이었다.

“밀너, 왼쪽으로! 주가 왼쪽에서 볼 잡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1분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볼을 건네받은 선수는 성배였다.

“오늘 1골 1어시스트로 맹활약 중이거든요? 그리고 필요할 때, 중요할 때마다 한 건씩 올려주었던 선수이기 때문에 맨시티는 이번에도 주의 그런 특별한 힘에 기대를 거네요.”

정말 중요한 시간에 만치니 감독과 맨시티 선수들은 성배를 선택했다.

그만큼 동료들에게 신뢰를 얻고 있는 것이었다.

‘이 볼은 무조건 골로 연결한다.’

그런 동료들의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맨시티의 선수로서, 팀의 주장으로서, 그 전에 프로 선수로서 성배도 우승 트로피가 간절했다.

그리고 자신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려면 동료 선수들에게도 우승 트로피를 선물해주어야 했다.

“실바에게 패스한 볼이 끊깁니다!”

하지만 돌아서 들어가는 실바에게 내주려던 패스가 임채영의 발에 걸리고 말았다.

‘절대 안 놓친다.’

패스가 걸린 순간, 성배는 다시 볼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건 절대 놓칠 수 없는 볼이었다.

“스타인슨이 걷어내는데, 아! 제대로 걷어내지 못했습니다!”

전력으로 달려오는 성배 때문에 스타인슨은 볼을 제대로 걷어내지 못했고, 애매하게 텅 빈 공간으로 흘렀다.

‘내 거야. 건들지 마라!’

성배와 가드너가 볼을 향해 달렸다.

흔히 말하는 ‘죽으라고 주는 패스’처럼 되어버린 것이었다.

충돌의 위험이 큰 상황이었다.

“충돌합니다! 주! 가드너를 날려버리고 볼 소유권을 따냅니다!”

평소였다면 가드너의 피지컬을 성배가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었다.

아니, 애초에 성배가 가드너와의 충돌을 피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조건 볼 소유권을 가져와야 하는 상황이었고, 끝까지 달려들었다.

반대로 가드너는 굳이 이 볼에 집착할 필요가 없었다.

결국, 가드너는 몸을 사렸고, 성배는 끝까지 달려들었다.

그 차이가 지금의 이 결과를 만들었다.

“주, 중앙으로 볼 투입!”

볼을 빼앗아낸 성배는 한 걸음 크게 전진한 뒤 중앙으로 투입해주었다.

“아니야! 달려!”

페널티박스를 향해 침투하던 발로텔리가 성배의 패스를 보고 속도를 늦추려 했다.

그때, 성배는 발로텔리를 향해 소리쳤다.

발로텔리는 성배의 말을 듣고 흠칫하며 발을 뺐고, 다시 페널티박스 안으로 파고들었다.

“제코, 논스톱 패스! 발로텔리!!”

본의는 아니었지만, 발로텔리가 볼을 받으려는 모션을 보인 덕분에 볼턴 수비진이 흔들렸다.

그리고 볼을 받은 선수는 발로텔리의 뒤에 준비하던 제코.

제코는 논스톱으로 페널티박스 안에 볼을 투입해주었고, 발로텔리에게 연결되었다.

“발로텔리!! 야스켈라이넨의 선방!!”

하지만 정확한 타이밍에 뛰쳐나온 야스켈라이넨이 발로텔리의 슈팅을 막아냈다.

야스켈라이넨의 선방에 슈팅이 막혔고, 시계가 2분 52초를 가리킨 순간, 모두가 이 경기는 여기서 끝났다고 생각했다.

< 낭만필드 - 279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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