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275화 (176/356)

< 낭만필드 - 275 (11권) >

에버튼은 역시 맨체스터 시티의 천적이었다.

전반전 28분, 다비드 실바의 패스를 받아 야야 투레가 선취 골을 기록, 이번에야말로 드디어 에버튼에게 승리를 거두나, 싶었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후반 21분, 실뱅 디스탱이 아르테타의 프리킥을 헤더로 연결하며 만회 골을 넣은 것이었다.

1-1

맨체스터 시티의 등줄기가 싸해지는 스코어였다.

“아르테타, 왼쪽 측면을 파고듭니다! 사발레타의 태클! 어! 네빌에게!”

4-2-3-1의 맨시티와 4-5-1의 에버튼.

전술적인 상성 관계가 확실한 것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에버튼만 만나면 작아지는 맨시티였다.

미드필드에 헤이팅아와 네빌, 두 명의 수비수를 박아넣은 에버튼이었고, 맨시티와 달리 다섯 명이 3선에 위치하면서 맨시티의 장점인 중원 장악력 역시 영 재미를 못 보고 있었다.

“네빌, 왼발로 크로스! 오스만, 헤더!! 아, 결국 또 에버튼에게 리드를 빼앗깁니다! 맨체스터 시티, 에버튼만 만나면 왜 이렇게 작아집니까!”

네빌의 얼리 크로스를 오스만이 헤더로 연결하며 득점에 성공.

에버튼이 역전 골을 집어넣으며 맨체스터 시티 상대 리그 4연승을 눈앞에 두었다.

“아, 맨체스터 시티 우승 경쟁에 중요한 경기인데요. 경기 종료까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경기 종료까지 고작 15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역전 골을 얻어맞은 맨체스터 시티는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 경기 한 경기를 결승전처럼 치러야 하는 상황이고, 한 경기도 절대 놓칠 수 없었다.

‘후우. 역시 막판에 힘이 좀 떨어지는데.’

바르셀로나와의 원정 경기를 포기하긴 했지만, 스페인까지 날아갔다 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부담이었다.

안 그래도 천적관계가 형성되어버린 에버튼을 지친 몸으로 상대하려니 고전하는 것이 당연했다.

‘이번 시즌만 버텨내면 어떻게든 될 것도 같은데.’

만치니 감독은 물론이고 맨시티 선수단의 절반 정도 되는 선수들도 유럽 대항전을 병행하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개개인의 노하우만큼이나 클럽 차원의 노하우가 중요했다.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에는 아직 그런 노하우가 없었다.

“발로텔리와 조까지 모두 투입하면서 어떻게든 만회 골을 노리지만 쉽지 않아 보입니다.”

2-1 스코어로 80분이 넘어가자 에버튼 포메이션의 진가가 나오고 있었다.

센터백 듀오로 나선 디스탱과 자기엘카 외에도 미드필더로 나온 헤이팅아와 네빌까지.

무려 네 명의 수비수가 중앙을 두껍게 메우고 있었다.

“주의 크로스! 디스탱, 걷어냅니다!”

“네 명의 중앙 수비수 사이에서 공중볼을 따내는 건 아무리 제코라고 해도 힘들죠! 맨시티,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부족하네요.”

평소였다면 제코를 앞세워 매섭게 마지막 반격을 가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센터백만 네 명이라서 제코가 큰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라키티치, 실바 쪽으로 열어줍니다!”

이렇게 되면 실바의 허를 찌르는 패싱 능력에 걸어봐야 했다.

그리고 발로텔리의 1.5선 움직임도 믿어볼 만했다.

“찍어서 중앙으로! 발로텔리의 슈팅! 다시 한 번! 자기엘카, 클리어!”

애초에 네 명의 센터백이 페널티박스 안에서 버티고 있으니 슈팅 각도 자체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발로텔리가 연달아 두 번의 슈팅을 시도했지만, 모두 수비수의 몸에 맞으며 돌아 나왔다.

“라키티치, 중거리 슈팅!! 크로스바 위를 넘어갑니다! 맨체스터 시티, 이번 공격에서도 동점 골을 뽑아내지 못했습니다!”

무조건 승점 3점을 따내야 하는 경기인데 3점은커녕 1점도 힘들어지고 있었다.

맨체스터 시티가 거세게 몰아붙이고는 있지만, 골은 들어가지 않았고, 시간은 계속 흘렀다.

“아, 여기서 경기 종료 휘슬! 에버튼, 갈길 바쁜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또 한 번 승리를 거두면서 천적 관계를 굳힙니다!”

“고춧가루를 제대로 뿌렸어요! 아, 맨체스터 시티, 이건 치명적인데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어제 첼시에게 승리를 거뒀거든요?”

맨유가 첼시에게 승리를 거둔 상황에서 두 팀의 승점 차이는 5점까지 벌어졌다.

맨시티가 한 경기를 덜 치른 걸 감안하더라도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이거 미안해서 어쩌냐. 솔직히 정이 있으니 맨유보다는 너희가 우승하길 바랐는데.”

경기 종료 후, 성배는 헤이팅아와 유니폼을 교환했다.

같은 팀으로 한 시즌 반을 뛰었지만, 서로의 유니폼을 갖는 것은 처음이었다.

“어쩔 수 있나. 너희가 잘해서 이긴 거고 우리가 평소처럼 못했으니 진 거지. 그렇다고 일부러 져줄 수는 없는 거니까.”

오늘 경기에서 에버튼은 충분히 이길만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맨시티의 강력한 중원과 정면으로 붙어서 오히려 주도권을 가져갔고, 몇 번 오지 않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헤이팅아 역시 중원에서 좋은 활약으로 에버튼의 승리에 한 팔을 거들었다.

“그래. 뭐 그건 어쩔 수 없는 거고. 어쨌든 우승해라. 응원할 테니까.”

“그래. 고맙다. 덕분에 우승 한 번 했으면 좋겠네.”

상황이 어려워지기는 했지만, 한 경기 차이도 나지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어떻게 될지 확신할 수 없었다.

헤이팅아의 응원이 아직은 의미가 있었다.

***

“이주일 동안 여섯 번째 경기를 치르고 있는 맨체스터 시티, 영 힘을 쓰지 못합니다. 오늘은 무조건 승리를 챙겨야 하지 않습니까?”

4월 24일 블랙번, 4월 27일 바르셀로나, 4월 30일 웨스트햄, 5월 3일 바르셀로나, 5월 7일 에버튼, 그리고 5월 10일의 토트넘.

지난 2주일 동안 맨체스터 시티의 일정이었다.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이 도저히 정상적인 컨디션을 유지할 수 없는 지옥과도 같은 스케줄이었다.

“오른쪽으로 벌어지는 토트넘! 아론 레넌에게! 레넌, 과연 이번에는 주를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레넌과 베일로 이루어진 토트넘 양쪽 측면의 파괴력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비록 급성장한 맨체스터 시티와 기존의 강자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아스날 등에게 밀려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은 놓쳤지만, 토트넘이 이들에 밀리지 않는 강팀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두 선수 덕분이었다.

“돌파 시도합니다! 이번에는 과연!”

하지만 두 선수 중 한 명만 꼽으라면 모두가 베일을 꼽았다.

원래보다 1년 먼저 윙어로 포지션을 변경한 덕분에 빠르게 성장한 베일은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레넌 역시 좋은 선수이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스피드에 크게 의존하는 선수였다.

게다가 라이트백 촐루카의 지원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뛰어난 풀백을 만날 경우 크게 활약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너는 이래서 안 돼.’

당연히 성배도 레넌을 그렇게 까다로워하지 않았다.

레넌이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도 월드클래스 윙어로 불리지 못하는 이유는 단점이 명확하기 때문이었다.

“주, 바짝 따라붙어서 견제! 몸싸움이 이어지고 레넌, 밀려 넘어지지만, 반칙 선언되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단점이 있지만, 가장 큰 단점은 170cm도 되지 않는 작은 신장으로 인한 약한 피지컬이었다.

자신의 스피드에 쉽게 떨어져 나가지 않는 선수와 상대해 붙는 걸 허용하면 급격하게 위력이 약해지는 선수였다.

“주가 먼저 걷어냅니다. 배리, 데 용에게 준 패스가 산드루! 산드루의 중간 커트! 바로 올려줍니다!”

제코를 맨 앞에 세우고 실바와 존슨을 평소보다 더 높게 올린 쓰리톱을 들고 나온 맨체스터 시티에 대항해 토트넘은 수비적인 4-5-1 포메이션을 선택했다.

토트넘이 수비적인 포메이션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양 측면 윙어의 위력적인 역습, 그리고 그 역습을 받아줄 타겟 스트라이커의 존재 덕분이었다.

“아, 콤파니! 크라우치에게 볼이 연결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토트넘의 전술은 가장 기초부터 무너지면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가장 핵심이 되는 베일이 사발레타에게 생각보다 고전하면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오른쪽의 레넌은 말할 것도 없이 꽁꽁 묶여 있었다.

“크라우치가 너무 아무것도 못 하고 있어요!”

그리고 가장 핵심이 되는 장신 스트라이커 크라우치는 콤파니와의 제공권 경쟁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양쪽 윙어의 역습이 무뎌지고 크라우치의 제공권이 무너진 순간, 오늘 토트넘의 공격은 계획대로 될 수 없었다.

맨시티는 몸이 무거워서, 토트넘은 맨시티의 수비를 뚫지 못해서 경기가 루즈해졌다.

지루한 경기의 승패를 결정지은 골은 굉장히 어이없게 터졌다.

“양 팀 모두 평소의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공격이 아쉬운 대신 수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확실히 경기의 재미는 떨어지네요.”

확실히 양 팀에게 기대했던 것보다는 재미없는 경기였다.

화려한 양 측면 윙어의 역습을 자랑하는 토트넘과 파괴적인 중원을 측면에서 지원하는 맨시티에게 기대한 것은 이런 경기가 아니었다.

“결국, 맨체스터 시티는 또 주의 세트피스에 기대할 수밖에 없네요. 사실, 이럴 때 활약해달라고 주에게 세트피스를 맡긴 거거든요? 지난 웨스트햄전처럼 한 건 해주기를 바라고 있겠죠?”

맨체스터 시티는 또 한 번 성배의 발에서 시작하는 세트피스에 기대를 걸었다.

그리고 여기서 골이 나오기는 했다.

“주, 왼쪽에서 크로스! 크라우치가 먼저 머리에, 아! 왜 저게 뒤로 가나요!”

크라우치의 머리에서 맨체스터 시티의 득점이 만들어졌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주인공이었다.

“좋아! 어떻게든 골만 들어가면 되는 거지!”

얼떨떨했지만, 어쨌든 골은 골이었다.

이걸로 한 골 차의 리드를 잡게 된다는 것은 같았다.

“좋아. 어떻게든 이거 지켜! 다 필요 없어. 이기면 끝이야.”

일단 지금 중요한 건 승점이었다.

시즌 초반이나 중반이었다면 승점만큼이나 경기력도 중요하겠지만, 이번 시즌 마무리까지 세 경기밖에 남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는 경기력보다 승점이 훨씬 더 중요했다.

크라우치의 자책골은 그대로 결승 골이 되었다.

경기력이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억지로라도 승리를 거두면서 승점 3점을 추가, 맨유와 경기 수가 같아진 상황에서 승점 2점 차이로 좁히며 일단 한숨을 돌렸다.

“하아, 뭐 어차피 우리야 4위는 물 건너갔으니까. 꼭 우승해. 맨유보다는 주가 있는 맨시티가 우승하는 게 나으니까.”

경기 후, 베일은 성배를 찾아와 손을 내밀면서 맨시티의 우승을 응원해주었다.

토트넘은 이미 4위권에서 탈락했고, 유로파 티켓을 따낸 상황이었다.

승리보다는 다음 시즌 준비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오늘 패배가 그리 뼈아프지는 않았다.

반대로 되었다면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 되었겠지만.

“고마워. 이번에야말로 꼭 우승해보도록 하지.”

헤이팅아와 베일, 그리고 펠라이니 등 많은 동료 선수들이 응원을 보내주고 있었다.

팬들 역시 맨유의 팬들이 많은 만큼 안티 팬들도 많았기에 맨시티를 응원하는 팬들이 훨씬 많은 상황이었다.

“맨유 좀 막아줘. 언제까지 맨유야? 안 그래?”

베일의 생각이 맨유 팬을 제외한 다른 팬들의 생각이었다.

“뭐, 일단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하지만 성배는 지금 리그 우승보다 다른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4일 뒤에 있을 스토크 시티와의 FA컵 결승전이었다.

< 낭만필드 - 275 (11권) > 끝

ⓒ 미에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