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274화 (175/356)

< 낭만필드 - 274 >

[IN - 5. 파블로 사발레타 / OUT - 13. 주성배]

“아, 만치니 감독. 주장인 주를 교체시켜줍니다.”

후반 27분, 만치니 감독은 성배를 빼고 사발레타를 투입했다.

스코어는 여전히 0-2, 바르셀로나가 리드를 잡고 있었다.

‘그러게 챔피언스리그 4강으로 만족하자니까.’

경기를 포기한다는 시그널이나 마찬가지였다.

성배의 기량도 기량이지만, 팀 내에서 맡은 리더로서의 역할은 대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맨체스터 시티, 승리를 포기하는 것 같네요. 투레에 이어 주도 그라운드에서 나가죠?”

맨시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선수들이 차례대로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다.

기량을 떠나 대체하기 힘든 순서대로 교체된 것이었다.

스타일의 유니크함으로 대체가 힘든 투레와 플레이 외적인 영역 때문에 대체가 힘든 성배가 우선 빠져나갔다.

“어쩌면 이게 영리한 것일 수도 있어요. 지금 세 개의 우승 트로피를 노리고 있는데 사실 아직 트레블을 노릴 정도는 아니거든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점일 수도 있어요.”

비록 우승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전 라운드가 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치러지는 코파 델 레이에서 결승전까지 올라간 바르셀로나가 맨시티보다 더 많은 경기를 치렀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에게 선택과 집중을 말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게 지금 바르셀로나와 맨시티의 위상 차이였다.

‘음. 다음 시즌이나 다다음 시즌쯤에는 바르셀로나를 좀 피했으면 좋겠네. 차라리 샬케를 만났으면 할만했을 텐데.’

굳이 복수를 다짐하지는 않았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연달아 만난 이번 시즌보다는 대진운이 좀 더 좋기를 바랄 뿐.

강팀들을 모두 꺾고 우승하나 꿀대진으로 꿀을 빨고 우승하나 똑같은 빅 이어였다.

***

“맨체스터 시티, 확실히 피로가 쌓인 모습입니다. 시즌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선수들의 몸놀림이 무겁습니다.”

바르셀로나와의 4강 1차전 이후 3일, 맨시티는 웨스트햄을 홈으로 불러들여 리그 35라운드 경기를 가졌다.

웨스트햄의 현재 순위는 20위.

치열한 강등권 싸움 중에서도 가장 불리한 위치에 놓인 팀이었다.

“최하위 팀에게 0-1로 끌려가는 모습은 맨유와 함께 우승에 가장 가까운 팀에 어울리는 모습이 아니죠. 확실히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모습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맨체스터 시티도 베스트 일레븐에 의존하는 클럽이었다.

특히 다섯 명의 미드필더를 활용하지만, 마땅한 백업이 존슨과 비에라, 두 명밖에 없는 미드필드진이 그랬다.

사발레타 덕분에 백업 운용이 편한 수비진을 제외하면 미드필드는 선수가 너무 없어서, 공격진은 선수가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처음 맨시티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번 시즌 성적이 너무 좋았던 것 같네요. 미드필드진에 이렇게까지 과부하가 걸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거죠. 칼링컵을 제외한 모든 대회에서 거의 마지막까지 올라가 있으니 그럴 수밖에요.”

이번 시즌, 스쿼드의 한계를 느낀 맨체스터 시티였다.

그래서 벌써부터 다음 이적시장에서 맨시티가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맨시티의 경기력이 조금 불안하기는 합니다. 지난 라운드 블랙번과의 경기에서도 한 골 차이로 겨우 이겼는데, 이번 라운드 경기도 아직 무력한 모습입니다.”

리버풀전 패배와 블랙번전 1-0 승리, 그리고 오늘 경기도 리드를 빼앗긴 채 끌려가는 중이었다.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힘이 떨어지고 있는 맨시티였다.

‘오늘 분위기가 좋지는 않으니까 세트피스를 무조건 살려야 하는데.’

성배는 코너킥을 준비하며 매의 눈으로 그라운드를 살폈다.

아무래도 필드에서 득점을 노리기엔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세트피스를 맡은 선수의 역할이 중요했다.

“맨시티는 이 기회를 꼭 살려야죠. 이번 시즌 4골 6어시스트로 6년 연속 리그 두 자릿수 공격 포인트를 달성한 주의 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에요.”

리그 4골 6어시스트, 시즌 9골 11어시스트의 성배가 도맡아 처리하는 코너킥은 맨시티의 주요 공격 루트 중 하나였다.

그리고 중요한 순간에 꼭 한 건을 올려주는 성배였기에 더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주는 주인공이 될 운명을 타고난 선수지 않습니까? 이렇게 저희가 중요하다고 이야기를 하면 꼭 공격 포인트를 올렸습니다. 이번에도 과연 그럴지 한 번 기대해보겠습니다.”

언젠가부터 중요한 순간이 오면 맨시티 팬들은 수비수인 성배에게 뭔가를 기대하기 시작했다.

워낙 결정적인 순간에 강한 성배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었다.

‘가장 믿음직한 건 역시 뱅상인데...’

세트피스를 시도할 때, 가장 믿음직스럽고 호흡이 잘 맞는 선수는 역시 콤파니였다.

성배가 좋아하는 움직임을 알고 있었고, 몸에 익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대도 성배와 콤파니의 호흡을 알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에딘도 요즘 좀 괜찮은데 한 번 올려볼까.’

제코도 슬슬 컨디션이 올라오는 중이었다.

아직은 적응이 완료되지 않아 제 기량을 다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전생과는 달리 간간이 골 맛을 보면서 나름 순조롭게 적응하고 있었다.

“주, 오른발로 코너킥! 중앙의 제코!! 헤더! 골! 골입니다! 로버트 그린 골키퍼, 꼼짝도 하지 못합니다! 리그 5호 골! 그리고 맨시티는 경기를 원점으로 돌립니다!”

185cm의 신장으로 센터백치고는 크지 않았고, 나이 때문에 슬슬 피지컬이 하락세에 접어든 업슨은 제코를 막아내지 못했다.

제공권이 뛰어난 톰킨스는 콤파니와 보아텡을 마크하고 있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폼을 끌어올린 제코를 상대로 업슨은 역부족이었다.

“주, 역시 이번에도 결정적인 순간에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을 위기에서 구해냅니다. 제코 역시 5호 골로 출전 시간에 비해 괜찮은 득점력을 보여줍니다.”

“테베즈가 아직 돌아오지 않으면서 맨시티 공격진에 구멍이 꽤 크게 뚫린 상황이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제코가 살아나 주기만 한다면 굉장히 큰 도움이 되겠죠.”

지금은 한 명 한 명의 힘이 아쉬운 맨시티였다.

큰 기대를 걸고 영입한 제코의 부활은 점점 지쳐가는 맨시티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이었다.

“멋진 헤더였어, 에딘. 슬슬 클래스가 나오네.”

리그 13경기, 선발 출전 6경기에 5골.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기록이었다.

적응기 없이 바로 활약해주길 바랐던 맨시티의 기대보다는 좀 못한 성적이었지만, 시간은 좀 걸렸어도 그리 나쁘지 않은 연착륙이라 할 수 있었다.

“다섯 골 중에 네가 세 골을 어시스트해줬는데. 시즌 끝나면 내가 거하게 보답할게.”

힘든 상황에서 세 골을 얻어먹었으니 제코도 성배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제코도 확실하게 성배의 편이 되었다.

“다비드 실바, 반대편으로 크게 돌리고, 사발레타!! 골! 골입니다! 파블로 사발레타! 오늘 활약상이 대단합니다! 사발레타의 역전 골로 2-1, 드디어 앞서 나가는 맨체스터 시티!”

그리고 후반 종반, 사발레타의 역전 골이 터졌다.

동점 골을 만들어낸 성배의 활약도 뛰어났지만, 경기 내에서 전체적으로 보여준 활약상은 사발레타가 조금 더 나았다.

아직 본격적으로 발동된 것은 아니지만, 벌써부터 조금씩 유리몸 기질을 보이는 리차즈가 또 한 번 가벼운 부상으로 FC Hospital 임대를 떠났고, 대신 출전해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사발레타도 정말 맨시티의 숨겨진 보물이에요. 왼쪽과 오른쪽을 가리지 않고 급할 때는 중앙 미드필더로도 출전하면서 최대한 구멍을 메워주고 있어요.”

사발레타가 없었다면 이미 예전에 팀에 과부하가 걸렸을 것이었다.

브리지의 기량이 급격히 떨어지고 리차즈가 심심하면 한두 경기 정도 빠지는 상황에서 사발레타가 굉장히 큰 역할을 해주었다.

“오늘은 양쪽 풀백이 경기를 만들어주었습니다. 맨시티는 확실히 양쪽 풀백이 살아나야 좋은 경기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맨유와 치열하게 우승 경쟁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오늘 경기를 잡아내지 못했다면 그 타격은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경기력이 아쉽긴 해도 어떻게든 승리를 따내야 했고, 그렇게 되었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날과 무승부! 과연 우승은?]

[프리미어리그 우승판도 안갯속으로! 맨체스터 내전!]

웨스트햄에게 2-1 승리를 거둔 맨시티에게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무승부에 그친 것이었다.

맨유가 승점 72점으로 1위, 맨시티가 70점으로 2위였지만, 맨유에 비해 맨시티가 한 경기 더 적게 치른 상태였다.

만약 맨시티가 그 한 경기를 이긴다고 가정하면 1위 자리를 탈환할 수 있었다.

[맨유와 맨시티. 남은 경기로 본 우승 확률은?]

[맨유는 첼시, 맨시티는 에버튼. 우승의 마지막 고비.]

맨유는 두 팀에 이어 리그 3위를 달리는 첼시와의 경기를 남겨두고 있었고, 맨시티는 리그 6위 토트넘과 리그 7위 에버튼전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시즌부터 리그에서 세 번 만나 전패를 기록 중인 에버튼전이 맨시티 우승의 분수령이었다.

어쨌든 두 팀의 치열한 우승경쟁 덕분에 맨체스터는 아주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빨간 물결과 하늘색 물결이 도시를 반으로 나누었다.

두 팀이 이렇게 동시에 성적이 좋았던 적이 없었기에 맨체스터의 분위기는 하늘을 찔렀다.

***

“이니에스타의 선취 골! 사실상의 쐐기 골입니다! 바르셀로나가 누캄프에서도 먼저 득점에 성공하면서 결승 진출의 8부 능선을 넘었습니다.”

리그 우승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맨체스터 시티는 4강 2차전을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홈에서의 0-2 패배를 만회한다는 것은 사실상 너무 힘든 일이었고, 그 희박한 확률을 이뤄내기 위해 달려들다가는 리그와 FA컵까지도 놓쳐버릴 수 있었다.

“맨체스터 시티는 리그, FA컵 우승에 집중할 생각으로 보이네요. 선발명단도 최소한의 구색은 맞췄지만, 베스트 멤버는 아니고 선수들이 여력을 좀 남겨두는 느낌도 들고요.”

어쨌든 챔피언스리그 4강이라는 무게감이 굉장한 무대였기 때문에 대놓고 2군을 내보낼 순 없었다.

주장인 성배와 콤파니, 투레 등 핵심 선수 몇 명을 선발로 내보내 어느 정도 구색은 맞춘 뒤, 나머지 포지션의 선수들을 백업으로 채웠다.

그리고 선수들도 방전되지 않도록 적당히 뛰면서 체력을 안배했다.

“좋은 선택입니다. 너무 한 번에 여러 가지를 노리는 것보다는 천천히 올라가는 게 나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지금 맨체스터 시티의 속도는 충분히 빠릅니다. 오히려 포기가 늦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팬들도 불만은 좀 있겠지만, 그래도 크게 비난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실제 팬 포럼에서도 1차전 패배 이후 챔피언스리그 쪽은 충분히 만족한다며 리그에 집중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고.

어쨌든 전반적으로 맨시티의 이번 선택을 지지하는 분위기였다.

“경기 끝났습니다! 바르셀로나, 1, 2차전 합계 4-0으로 맨체스터 시티를 꺾고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합니다! 2008/09시즌부터 세 시즌 연속 4강 진출에 두 번의 결승 진출입니다! 역시 바르셀로나, 대단합니다!”

맨체스터 시티의 챔피언스리그 첫 도전은 4강에서 멈췄다.

하지만 첫 도전에 4강이라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였고, 향후 꽤 오랫동안 맨시티를 괴롭혔을 챔피언스리그 불운을 시작부터 깨뜨렸다는 것이 더 큰 성과였다.

< 낭만필드 - 274 > 끝

ⓒ 미에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