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271화 (172/356)

< 낭만필드 - 271 >

“레알 마드리드, 이제 진짜 마지막 기회입니다. 카시야스까지 올라와 공격에 참여합니다.”

3-2로 앞서고 있는 맨시티지만, 아직 안심할 수는 없었다.

맨시티의 홈에서 펼쳐지는 경기였기 때문에 레알이 한 골만 넣어도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4강 진출팀이 바뀌는 것이었다.

“외질, 코너킥! 보아텡! 이번에는 확실하게 걷어냅니다!”

하지만 맨시티도 한 골을 지키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하고 있었다.

외질이 올려준 코너킥은 보아텡의 머리에 먼저 맞으면서 페널티박스 바깥으로 날아갔다.

지난 1차전에서는 헤딩 클리어 실수로 결승 골을 헌납했지만, 두 번의 실수는 없었다.

“주, 왼쪽으로 크게 벌려줍니다! 맨시티 역습으로 나가는데, 아! 주심, 경기 끝냅니다! 맨체스터 시티,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

성배의 롱패스로 시작되는 역습이 진행되는 순간이었지만, 어차피 맨체스터 시티의 승리였기 때문에 주심은 바로 경기를 끝냈다.

그리고 경기장은 바로 광란에 젖어들었다.

“이야! 맨시티! 엄청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어요! 첫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4강까지 가네요!”

선수들, 스태프들, 그리고 관중들까지.

하나가 되어 광란의 분위기를 즐겼다.

사실, 팬들만이 아니고 전문가나 맨시티 관계자들까지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성과였다.

“레알 마드리드에 이어 바르셀로나, 라 리가의 쌍두마차를 연달아 만나게 되었습니다만, 이미 4강까지 올라온 이상 대진운은 의미가 없습니다. 맨체스터 시티도 4강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미 4강 대진은 완성되어 있었다.

맨체스터 시티와 바르셀로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샬케의 대진이었다.

샬케 덕분에 우승확률 최하위는 아니었지만, 우승확률이 높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와, 그래. 이번엔 진짜 너한테 졌다. 수비수가 해트트릭이라니.”

얼굴이 굳은 호날두가 성배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찌감치 교체되어 자켓을 입고 있었지만, 바로 라커룸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얼굴 좀 펴. 누구 하나 때리겠어.”

자존심과 승부욕이 강한 호날두가 이 상황을 쉽게 넘길 리 없었다.

표정은 굳어지다 못해 험악할 정도였다.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얼굴을 펴. 못할 건 없지만, 반응도 좋지 않을걸.”

레알 마드리드의 승률이 꽤 높게 평가되었던 경기였기 때문에 충격이 더 클 것이었다.

“그래도 너무 험악하다고. 나는 몇 번을 졌어도 그렇게까지 험한 표정은 안 지었는데.”

호날두에게 매번 만날 때마다 패했던 성배가 드디어 호날두와 그의 소속팀을 제대로 잡아낸 날이었다.

챔피언스리그 8강이라는 중요한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자리를 옮겨 맞붙은 호날두 역시 아무것도 못 하고 결국 교체되었다.

경기도, 맞대결도 성배의 승리였다.

“됐고. 이왕 4강 갔으니까 잘해라. 우리만 지면 짜증 나니까 바르셀로나도 잡아 달라고.”

레알 마드리드는 이미 바르셀로나와 붙을 생각을 하고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맨체스터 시티에게 덜미를 잡혀버렸고, 바르셀로나의 상대는 맨체스터 시티로 결정되었다.

“글쎄. 잡으면 좋겠지만, 바르셀로나가 레알 마드리드보다 강해서 확신은 못 하겠네.”

마지막 심술이었다.

아닌 척해도 호날두에게는 꽤 감정이 쌓여 있었으니까.

***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했다는 소식으로 맨체스터가 달아올랐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시 첼시를 꺾고 4강에 진출했기 때문에 맨체스터 전체가 절반으로 나뉘어 빨간 물결과 하늘색 물결로 휘날리는 상황이었다.

레알 마드리드와의 2차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혼자 힘으로 맨시티를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올린 성배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다.

이제는 거의 종교 수준이었다.

하지만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테베즈, 만치니 감독과 또 충돌?]

[테베즈를 어찌해야 하나... 맨시티의 계속되는 고민.]

연장전을 앞두고 라커룸에서 테베즈가 만치니 감독에게 화를 냈다는 정보가 어디서 샌 것이었다.

이미 전적이 화려한 테베즈였다.

테베즈의 항명 소식은 당연히 언론을 장식할 수밖에 없었다.

[맨체스터 시티, 대체자 구하기에 나서.]

[만수르, 이제 더 이상 못 참아. 성적보다 팀이 먼저.]

[만치니, “별로 큰일 아니야. 단순한 언쟁이었을 뿐.”]

그리고 만수르는 테베즈에 계속 끌려가는 상황을 참지 않았다.

어차피 다음 시즌, 늦어도 다다음 시즌 정도면 리그 최강의 팀을 만들어 놓을 자신이 있었다.

최고가 될 자신의 팀이 한 선수에 의해 끌려다니는 것을 허용할 생각은 없었다.

팀에서 그냥 넘어갈 것 같지 않다는 낌새를 눈치챈 만치니 감독은 부랴부랴 언론과 인터뷰를 가지면서 별일 아니었다고 테베즈를 두둔했지만, 언론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만수르까지 속이기에는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너무 많았다.

[맨시티, 테베즈에게 출전 정지 2주 징계!]

[트레블 후보 맨시티, 에이스에게 출전 정지 징계!]

[맨시티, 이대로 무너지나? 에이스 대체 후보 3인 분석.]

챔피언스리그 4강과 FA컵 4강, 리그에서도 우승 경쟁을 펼치는 맨체스터 시티였다.

하지만 당장의 우승보다 팀의 기강을 잡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한 만수르는 과감하게 테베즈에 대한 징계를 제안했고, 단장도 이를 받아들였다.

만치니 감독은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지만, 보드진의 강력한 의지를 막을 수 없었다.

이번 시즌, 혼자서 20골 이상을 득점한 테베즈의 이탈은 맨시티에게 너무 큰 손실이었다.

***

테베즈의 이탈로 인한 충격에서 벗어날 시간도 없었다.

맨시티는 바로 런던으로 날아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맨유와 FA컵 4강전을 치러야 했다.

반대편에서 볼턴과 스토크 시티가 경기를 치른다는 걸 감안하면 양 팀 모두에게 너무 운이 없는 대진이었다.

맨시티가 리버풀에게 패배하고 맨유는 웨스트 햄에게 승리하면서 양 팀은 승점 3점 차이로 리그 1, 2위를 달리고 있었다.

게다가 챔피언스리그 역시 나란히 4강에 진출한 상태였다.

리그를 넘어 유럽 전체에서 최강을 다투는 두 팀이 FA컵 4강에서 만난 것이었다.

“이 경기에서 이기는 클럽은 트레블의 가능성을 계속 살려 나갈 수 있습니다. 패하는 클럽은 트레블 도전을 멈춰야 합니다.”

두 팀 모두 트레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두 팀 중 한 팀은 오늘 트레블에 대한 꿈을 접어야 했다.

“그런데 트레블을 노리는 팀들의 경기치고는 경기력이 좀 아쉽네요.”

맨시티는 리차즈와 테베즈, 콜로 투레가 전력에서 이탈했고, 맨유는 루니와 긱스, 하파엘, 플레처가 이탈한 상황이었다.

또, 며칠 전에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혈전을 벌이면서 체력이 떨어진 상황이기도 했다.

당연히 최선의 경기력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실바가 중앙으로 볼을 투입하지만, 이번에도 또 끊깁니다. 맨시티의 공격도 무딥니다.”

테베즈의 징계로 대신 출전한 발로텔리는 테베즈와는 비교도 안 되는 적은 활동량으로 맨시티 공격의 활로를 열어주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오늘은 라키티치가 빠지고 비에라, 배리로 중원이 구성된 상황.

실바가 홀로 고군분투해도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양 팀 모두 주전 스트라이커가 스트라이커 이상의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에 경기력이 제대로 안 나오네요. 맨시티는 수비형 미드필더 두 명의 투입으로 플레이가 좀 둔하고, 맨유는 전술의 핵심인 양쪽 측면이 무디네요.”

이래저래 양 팀 모두 원하는 대로 플레이가 이뤄지지 않아 고생하고 있었다.

움직임 하나하나에 몸이 무겁다는 게 보였다.

“오른쪽으로 연결되는 볼, 박에게!”

박인진과 주성배가 또 한 번 마주쳤다.

하지만 두 선수 모두 상태가 정상은 아니었다.

체력이 뛰어난 박인진마저도 무릎이 살짝 불편해서 평소만큼의 움직임을 보이지는 못했다.

‘아, 몸이 확실히 무거운데.’

박인진의 돌파를 따라가면서도 성배는 몸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정교하게 측정해보면 큰 차이는 아니겠지만, 프로 선수들은 이 정도 차이를 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주성배, 태클! 밖으로 걷어냅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코너킥.”

어쨌든 박인진의 움직임도 좋지 않고 스피드도 빨리 낼 수 없는 몸 상태라서 그리 어렵지 않게 막아내기는 했다.

‘이걸 태클로 막아야 한다니.’

평소였다면 그냥 선 채로 막을 수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원하는 대로 발이 움직여주지 않는 상황이었고, 어쩔 수 없이 몸을 날려야 했다.

‘오늘은 딱히 뭘 할 수가 없겠어.’

컨디션의 한계로 오늘은 뭔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힘들었다.

일단은 수비에 집중하면서 동료들의 플레이에 기대하거나 세트피스에 기대를 걸어볼 수밖에 없었다.

“오른쪽에서 나니가 코너킥을 준비합니다.”

“양 팀 모두 지금 경기가 안 풀리고 있기 때문에 세트피스를 노려야죠. 이런 기회를 잘 살리는 게 중요해요.”

퍼디난드와 비디치 등 제공권이 뛰어난 선수들이 페널티박스 안으로 모여들었다.

경기가 세트피스로 갈릴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양 팀 모두 심혈을 기울여서 준비 중이었다.

“나니, 코너킥! 비디치, 헤더!!”

높이 떠오른 비디치가 다른 경쟁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볼에 머리를 가져다 댔다.

세트피스 상황에서 곧잘 득점을 기록하는 비디치의 헤딩은 정확하게 맨시티 골문 구석을 노렸다.

‘이건 막는다.’

다행히 성배가 맡아 수비하던 골포스트 쪽이었다.

비디치의 헤더는 정확했지만, 못 막을 건 아니었다.

“아, 막았습니다! 그리고 멀리 걷어냅니다!”

오른발을 들어 비디치의 헤더를 막아낸 성배는 바로 멀리 걷어냈다.

하지만 그냥 걷어낸 건 아니었다.

“어! 걷어낸 게 아닙니다! 순식간에 롱패스가 이뤄지면서 실바에게 연결! 역습입니다!”

이미 맨유의 코너킥이 올라올 때부터 맨시티의 역습은 준비되고 있었다.

세트피스와 함께 맨시티가 노리고 있었던 건 이런 상황에서의 역습이었다.

“실바, 멈추지 않습니다! 오셔, 수비 실패! 라 크로케타로 돌파하고 중앙으로! 투레!!”

흔히 팬텀 드리블이라 불리는 라 크로케타.

스페인 선수답게 환상적인 테크닉을 보유한 실바는 라 크로케타로 오셔를 간단히 따돌리고 뒤따라오던 투레에게 볼을 밀어주었다.

“투레, 중거리 슈팅!! 아! 그물 안 찢어졌습니까? 이야, 프리미어리그의 골대는 그물도 단단합니다! 투레, 중거리 슈팅으로 선취 골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투레는 맨유의 골대에 말 그대로 골을 박아넣었다.

후반 17분, 맨유의 위협적인 세트피스를 막아낸 뒤, 역습으로 선취 골을 만들어낸 맨시티였다.

역시 위기 뒤에 기회가 찾아왔다.

***

“경기 끝났습니다! 맨체스터 시티, 야야 투레의 결승 골로 맨유를 잡아내며 FA컵 결승에 진출, 1969년 이후 42년 만에 FA컵 우승 트로피를 노립니다.”

결국, 투레의 결승 골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득점은 나오지 않았다.

사실상의 결승전이라 불린 이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며 맨시티는 우승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그리고 트레블이 가능한 유일한 팀이 되었다.

“이제 맨시티도 맨유에게 절대 밀리지 않아요. 이번 시즌 맞대결 전적도 2승 1패,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에도 상대 전적에서 우위를 가져갑니다. 2년 연속으로 우위를 잡은 건... 어! 저기 뭐죠? 발로텔리?”

그리고 경기 종료 이후, 발로텔리가 안데르손을 밀치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 낭만필드 - 271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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