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270 >
성배도 이번이 마지막 기회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최후방에서부터 최전방까지 전력질주로 쉬지도 않고 달린 것이었다.
발로텔리가 볼을 흘리긴 했지만, 어쨌든 페널티박스 깊숙한 곳까지 진출한 상태였고, 거기서 흐른 볼이 성배의 앞으로 굴러왔다.
‘이건 무조건 넣는다.’
라모스의 실수가 한 가지 있었다.
발로텔리의 마크는 알비올에게 맡기고 본인은 성배를 보면서 성배에게 연결되는 패스를 막아야 했다.
알비올 혼자서 발로텔리를 막아도 최소한 쉽게 슈팅을 쉽게 내주진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까지 발로텔리에게 달려들면서 성배에게 노마크 슈팅 기회를 주고 말았다.
“달려들면서 왼발 슈팅!! 골! 골입니다! 카시야스, 막아내지 못합니다! 주성배의 왼발 슈팅! 그대로 레알 마드리드의 골망을 갈랐습니다!”
이변은 없었다.
비록 1차전에서는 성배의 완벽한 슈팅을 막아내며 경기 주도권까지 가져간 카시야스였지만, 이번에는 불가능했다.
성배가 노마크 찬스를 놓칠 리 없었다.
“이걸로 동률! 동률이죠! 맨체스터 시티, 경기 종료 3분 전에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어요! 그 주인공은 주성배! 맨체스터 시티의 캡틴입니다!”
성배의 골로 2-0이 되었다.
1차전의 0-2 패배를 만회한 것이었다.
[주! 주! 주! 주! 주!]
[맨체스터 시티, - 2! 레알 마드리드, - 0! 득점의 주인공은 더 스카이 블루스의 13번! 시티의 캡틴! 주! - 성배! 주! - 성배!]
장내 아나운서의 선창과 관중들의 후창, 그리고 연달아 터져 나온 성배의 응원가 등으로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이 떠나갈 듯했다.
“좋아! 잘했어! 완벽해! 네가 살렸다, 진짜로.”
그리고 곧 전후반 정규 시간이 모두 종료되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홈에서는 레알 마드리드가, 맨체스터 시티의 홈에서는 맨체스터 시티가 2-0 승리를 거두었다.
승패도, 골 득실과 원정 다득점까지 확인해봐도 모두 동률.
두 팀은 연장전에 접어들었다.
“좋아! 이제 다시 시작이야! 연장전이고 COMS라고! 이젠 우리가 더 유리해!”
맨체스터 시티의 홈에서, 그것도 맨체스터 시티가 2-0으로 승리를 거둔 직후에 이어지는 연장전.
당연히 맨시티가 유리했다.
“지금은 우리가 유리해. 연장전은 우리가 주도권을 잡고 공격적으로 나가자. 레알은 지금 한 골 지키겠다고 수비적인 선수들로 다 교체해서 딱히 위협적이지 않아.”
부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벤제마가 호셀루로, 호날두가 카카로, 알론소가 그라네로로 교체된 레알 마드리드.
이에 비해 맨체스터 시티는 마지막까지 공격에 집중하느라 데 용을 발로텔리로, 투레를 제코로 교체한 상황이었다.
수비력은 조금 불안할 수 있지만, 공격력만큼은 엄청난 스쿼드였다.
“하지만 이 스쿼드를 계속 유지하기는 힘들지. 연장전에는 카를로스가 나오고 배리가 들어가. 밸런스는 잡아야 하니까.”
하지만 공격수 세 명을 계속해서 유지할 순 없었다.
제코와 발로텔리는 교체로 투입된 선수니까 뺄 수 없었고, 시작부터 뛰었던 테베즈가 빠지게 되었다.
“아니, 내가 나가라고요? 이 중요한 순간에?”
하지만 테베즈는 격렬히 거부했다.
지금처럼 중요한 순간에 빠질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잖아. 지금 공격수만 세 명이야. 한 명은 미드필더랑 바꿔야지. 다른 두 선수는 조금 전에 교체로 들어갔으니까 이번엔 네가 좀 참아.”
일단 만치니 감독은 좋은 말로 테베즈를 달랬다.
지난 이적 요청 사건 이후 잠시 고분고분해졌던 테베즈는 최근 들어 다시 옛 성격이 나오고 있었다.
“내가 이 팀 에이스인데, 어떻게 이런 순간에 빠지랍니까?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지!”
이런 항의도 통역을 통해야 하는 테베즈였다.
어쨌든 테베즈의 거센 항의에 라커룸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닥치라고 전하세요. 지금은 싸울 시간 없으니까 나중에 다시 찾아가라고.”
참지 못한 성배가 끼어들었다.
지금 이럴 시간이 없었다.
당장 연장전을 준비해야 하는데, 테베즈의 항의 때문에 속절없이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지금 뭐라고!!”
“조용히. 지금 그럴 때 아니라고 분명 말했을 텐데.”
통역에게 성배의 말을 전해 들은 테베즈가 발끈했지만, 성배는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나직이 내뱉었다.
정말 급한 순간이었기 때문에 진심으로 짜증이 올라왔다.
테베즈도 그것을 느꼈는지, 순간적으로 위축되며 말을 멈췄다.
“나중에 하라고, 나중에.”
성배가 비록 덩치가 크거나 위협적인 건 아니었지만, 십수년의 경험을 가지고 선수생활을 시작해 꾸준히 리더격으로 활약해온 덕분에 자연스럽게 카리스마가 쌓여 있었다.
테베즈도 잠시 멈칫했고, 멈칫하면서 타이밍을 놓쳐 더 이상 항의를 이어가지 못했다.
“에이, 빌어먹을!!”
테베즈는 유니폼을 벗고 집어 던진 뒤, 욕설과 함께 라커룸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일단 계속하시죠. 카를로스는 나중에 달래고.”
한바탕 폭풍이 일었지만, 수습할 시간도 없었다.
연장전을 앞두고 시간을 너무 끌었다.
“그러니까 후반전에는...”
테베즈가 한바탕 난리를 쳤지만, 만치니와 맨시티 선수들은 연장전 준비에 집중했다.
***
“맨체스터 시티, 완전히 기세를 탔습니다. 두 번째 골로 동률을 만든 뒤부터는 완벽한 맨시티의 분위기입니다.”
호날두와 알론소, 벤제마가 빠진 레알은 힘을 잃어버렸다.
에이스인 호날두, 이번 시즌 레알 마드리드 전술의 핵심인 알론소, 그리고 후반기 레알 마드리드의 득점을 담당하는 벤제마까지 빠졌으니 공격이 이뤄질 리 없었다.
이에 비해 맨시티는 테베즈를 제외한 공격진의 에이스들이 모두 경기를 뛰고 있었다.
“이게 바로 기세죠. 맨체스터 시티의 기세가 완벽하게 올라왔어요. 자주 출전하지는 못하지만, 나올 때마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발로텔리도 괜찮고, 제코도 일단 제공권만큼은 잡아주고 있으니까 제 역할은 해주는 중이고요.”
점점 레알 마드리드 벤치의 분위기가 어두워졌다.
후반전 막판에야 레알 마드리드가 의도적으로 라인을 내리고 수비에 집중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승리를 확신하던 순간에 동점 골을 허용한 레알은 이미 반격할 힘을 잃어버렸다.
‘수비에 집중하니까 좀 힘들어지네.’
하지만 오늘 두 골을 넣은 성배는 연장전에 딱히 활약하지 못했다.
레알 마드리드가 연장전에 승부내는 것을 포기하고 승부차기를 선택하면서 수비가 두꺼워졌고, 아무래도 발밑 기술이 조금은 부족한 성배였기에 볼을 받아도 동료들에게 뿌려주고만 있었다.
‘공간 한 번만 열려라.’
어차피 개인기로 돌파하는 건 성배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성배의 역할은 동료들을 활용해 기회를 만드는 것이었고, 지금 맨시티의 상황이면 충분히 가능했다.
“맨체스터 시티의 공격이 계속 이어집니다. 배리, 왼쪽으로 연결합니다.”
승부차기까지 버티려는 레알 마드리드와 그 전에 경기를 끝내려는 맨체스터 시티는 치열하게 부딪혔다.
아무래도 경험이 적은 맨체스터 시티가 승부차기를 꺼릴 수밖에 없었다.
“실바, 뒤쪽으로 볼 돌립니다. 주, 돌파해 들어가다가 밑으로. 발로텔리가 중앙에서 볼 잡아냅니다.”
하지만 성배도 굳이 무리하지는 않았다.
지금 레알 마드리드의 스쿼드에서는 오른쪽의 외질이 공격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외질을 묶어 혹시나 모를 역습을 막아내는 것도 중요했다.
“아, 케디라가 발로텔리의 발을 걸었습니다! 파울! 여기서 파울이 선언됩니다!”
그리고 굳이 성배가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성배의 가치는 인플레이 상황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었다.
데드볼 스페셜리스트로서 프리킥이나 코너킥 상황에서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기회네. 프리킥으로 한 골 넣었으니까 한 골 더 넣어봐. 넣으면 해트트릭이다.”
원래 오른발 프리킥은 테베즈 아니면 투레가 처리했다.
하지만 지금은 두 선수 모두 교체되어 나간 상황이었고, 그 다음은 성배의 차례였다.
“주가 프리킥을 준비합니다. 이렇게 되면 주에게 해트트릭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중요한 순간이었다.
해트트릭도 해트트릭이지만, 그것보다는 지금 만약 골이 들어가면 거의 승리의 9부 능선을 넘어가는 것이었다.
“여기서 만약 주가 프리킥을 성공시키고 해트트릭을 완성하면서 맨체스터 시티의 4강 진출을 끌어낸다면, 오늘은 주의 날이 되는 거죠.”
유럽 축구계에 상징적인 클럽, 레알 마드리드.
레알 마드리드를 혼자 힘으로 침몰시키기 직전이었다.
“다비드! 다비드!”
하지만 성배는 여기서 해트트릭을 욕심내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지금 골을 넣는 것이었다.
“옆으로 빼줄 테니까 바로 에딘한테 넘겨줘. 에딘의 머리를 한 번 노려보자.”
성배에게 이미 프리킥을 얻어맞은 레알은 굉장히 심혈을 기울여서 벽을 쌓았고, 카시야스 역시 긴장하고 있었다.
여기서 허를 찔러 옆으로 빼주면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었다.
“주, 달려들면서 왼쪽으로 빼줍니다! 실바, 중앙으로 크로스! 제코!!”
해트트릭을 포기하고 왼쪽으로 볼을 빼준 성배의 패스에 당황한 레알 수비수들은 아주 잠깐 흔들렸다.
그 사이 볼을 받은 실바가 중앙으로 넘겨주었고, 역시 제코의 높이는 성배와 실바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카시야스! 선방에 알비올이 걷어내는데 멀리 가지 않습니다!”
허를 찔렸지만 역시나 카시야스는 카시야스였다.
몸을 날려 손끝으로 막아냈고, 알비올이 급하게 볼을 걷어냈다.
하지만 급한 마음에 멀리 걷어내지 못했고, 바깥으로 굴러 나왔다.
‘오늘 일부러 날 밀어주는 건가.’
그리고 볼이 성배의 앞으로 굴러오고 있었다.
볼을 향해 달려들면서 성배는 뭔가 세계의 의지가 자신을 스타로 만들려 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중거리 슈팅!! 아!! 꽂혔습니다아악!! 레알 마드리드의 골망에 거칠게 꽂히는 주의 중거리 슈팅!! 해트트릭! 해트트릭입니다! 결정적인 득점!”
카시야스가 자세를 채 잡기 전에 성배의 슈팅이 먼저 날아갔다.
케디라, 알비올에 라모스까지 몸을 날려 슈팅을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우와아아아악!!”
“됐다!! 됐어!! 간다, 우리가 간다고!!”
성배의 슈팅이 그물을 흔든 순간, 맨체스터 시티의 벤치에 앉아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그라운드 위로 뛰쳐나왔다.
마치 경기가 끝난 듯한 분위기였다.
“맨체스터 시티 벤치는 지금 난리가 났습니다! 맨시티, 드디어 레알에게 앞서 나갑니다! 3-2! 4강행 티켓이 맨체스터에 도착하기 직전입니다!”
당연히 관중들도 난리가 났다.
챔피언스리그 첫 출전에 8강 진출만 해도 엄청난 성과였는데, 4강, 그것도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4강에 진출하기 직전이었다.
맨시티 팬이라면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직 안 끝났어! 진정해! 다들 침착하고 로베르토 이야기 들어!”
정작 해트트릭의 주인공인 성배는 흥분해 날뛰는 동료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뭔가 전하려고 하는 만치니에게 이목을 집중시켰다.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고, 기쁨은 경기가 끝난 뒤에 누려도 충분했다.
“좋아! 이제 수비에 집중하는데, 그렇다고 너무 내려가지는 말고. 어차피 지금 레알은 적극적으로 공격한다고 해봤자 크게 위협적이지 못해! 라인을 내리고 수비에 집중하는 건 하는 건데, 너무 내리지 말고 역습 준비해. 에딘, 에딘은 전방에 박히고, 마리오! 그리고 다비드. 두 사람도! 대신 제임스는 수비!”
이제 마무리를 준비했다.
최대한 지금의 이 리드를 지켜서 경기를 끝내야 했다.
채 10분도 남지 않은 시간만 잘 버티면 챔피언스리그 4강행 티켓을 받을 수 있었다.
< 낭만필드 - 270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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