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269 >
“일단 첫 번째 맞대결에서는 주가 쉽게 막아냈습니다. 호날두의 돌파가 너무 쉽게 막혔습니다.”
현재 시점에서 호날두의 장점은 돌파력이 아니었다.
그리고 성배의 기량도 많이 올라왔기 때문에 아무리 호날두라고 해도 벌크업한 몸으로 돌파하기는 힘들었다.
‘일단 빠르게 한 골이라도 넣고 시작해야 하는데.’
레알 마드리드를 무실점으로 막으면서 두 골을 넣어야 하는 상황.
일단 최대한 빠르게 첫 골을 넣어야 했다.
“이반! 롱패스를 주저하지 마! 기회가 되면 바로 꽂아버려! 오늘은 충분히 통하니까.”
1차전에서 꽤 손쉬운 승리를 거두었고, 이후 바르셀로나와의 코파 델 레이 경기까지 치른 레알 마드리드 선수단은 살짝 지친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무리뉴 감독은 페페를 빼고 알비올을 주전으로 투입했다.
파이터와 커맨더가 모두 가능한 페페와 달리 파이팅 능력이 약한 알비올이 출전했기 때문에 피지컬 대결도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맨체스터 시티, 빨리 선취 골이 나와야 할 것 같습니다. 중원에서 강력한 장악력을 보이는 배리를 빼고 라키티치를 투입하지 않았습니까?”
챔피언스리그 8강에 초점을 맞춘 맨체스터 시티였기에 이길 생각으로 경기에 나섰다.
배리를 대신해 라키티치가 나왔고, 1차전에서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롱패스를 보유한 보아텡이 다시 출전했다.
“일단 골이 최대한 빠르게 나와줘야 불안을 해소할 수 있어요. 물론, 왕성한 활동량을 앞세운 라키티치의 장악력도 나쁘지 않지만, 아무래도 공격적일 수밖에 없는 역할이거든요? 1차전에 비해 중원 장악력은 좀 부족하죠?”
수비에 신경 쓸 정신은 없었다.
최소 두 골, 한 골이라도 허용하면 네 골이 필요했다.
일단은 공격에 모든 걸 걸어야 했다.
“맨체스터 시티, 전방에서부터 강력하게 압박해 들어갑니다! 밀너! 부지런합니다! 아르벨로아, 외질에게 연결하는 패스가 끊깁니다! 밀너, 투레에게 연결! 맨체스터 시티의 역습!”
맨체스터 시티의 부지런한 압박이 일단은 통하는 모습이었다.
배리가 빠졌다고는 해도 라키티치 역시 활동량이 뛰어난 선수였고, 수비력은 몰라도 장악력만큼은 떨어지지 않았다.
“투레, 반대편의 실바에게! 라모스가 앞을 가로막습니다.”
레알 마드리드는 1차전에 비해 비교적 수비적인 자세로 나섰다.
몇몇 선수들의 부상으로 선발 명단도 베스트가 아니었고, 1차전의 완승도 있었다.
물론, 왼쪽 윙어 자원이 부족한 것도 있었지만, 공격적인 풀백인 마르셀루를 위로 올리고 수비적인 아르벨로아를 투입한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실바, 중앙으로 볼 투입! 테베즈, 알비올을 등지고 그대로 돌아서면서 슈팅! 아, 크로스바 위를 크게 넘어갑니다! 택도 없는 슈팅!”
일단 1차전에 비하면 분명 더 많은 공격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었다.
관건은 결국 테베즈의 활약상이었다.
테베즈가 유럽대항전 징크스를 깨고 나오지 못한다면, 맨시티 공격의 위력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아. 제발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뭐 좀 해봐라.’
테베즈의 움직임이 참 답답했다.
정 뭐하면 파울이라도 얻어내서 프리킥 찬스라도 만들던지.
유럽 대항전만 오면 다른 선수가 되어 버리는 테베즈가 맨시티를 괴롭혔다.
***
“외질의 스루 패스! 오른쪽으로!”
원래 오른쪽 윙어였던 선수이기는 하지만, 스타일이 바뀌어 직접 득점을 노리는 스타일이 된 호날두에게는 왼쪽이 더 어울렸다.
왼쪽에서 중앙으로 파고들며 슈팅을 날려야 주로 쓰는 발인 오른발로 슈팅을 시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날두, 중앙으로 접고 파고들지만, 주의 태클! 주가 볼 빼냅니다.”
호날두가 왼발을 못 쓰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오른발과 비교하면 손색이 있었다.
왼발과 오른발을 거의 비슷하게 사용하는 성배가 특이한 것이었다.
‘지금의 넌 오른쪽에서 날 못 이겨.’
오른쪽으로 옮겨왔지만, 호날두의 움직임은 돌파보다 득점을 노리는 것에 특화되어 있었다.
자연스럽게 중앙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왼발을 활용해 중앙으로 파고드는 호날두의 움직임은 성배의 수비를 뚫을 수 없었다.
“데 용, 다시 주에게 넘겨주고, 주가 앞으로 길게!”
데 용에게서 볼을 건네받은 성배는 투레의 머리를 보고 길게 패스를 투입해주었다.
공격을 너무 급하게 진행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 파울 선언됩니다! 케디라의 파울! 공중에서 투레를 밀었다는 판정입니다.”
성배의 패스가 정확히 투레가 자리 잡고 있던 곳으로 날아갔다.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투레를 케디라가 밀어내기엔 무리가 있었다.
결국, 무리하게 몸을 부딪친 케디라의 파울이 선언되며 맨체스터 시티에게 프리킥이 주어졌다.
“자, 좋은 기회입니다. 조금 멀어서 한 30m 정도 되는 것 같지만, 주라면 충분히 득점을 노릴 수 있습니다.”
성배의 주 무기인 왼발 프리킥을 보여줄 기회였다.
테베즈의 부진으로 필드골을 만들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선취 골을 넣을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후우, 이거 무조건 넣고 가자.’
벌써 전반 30분이었다.
선취 골이 더 이상 늦어지면 경기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손에서 볼을 굴리던 주성배, 이제 마음에 드는 위치가 나온 것 같습니다.”
마음에 드는 무늬가 위쪽으로 오게 볼을 내려놓은 성배는 도움닫기를 위해 볼에서 멀어졌다.
30m의 거리.
정확도만 신경 쓰는 게 아니라 파워까지도 신경 써야 하는 거리였다.
“아! 옆으로! 이거 그겁니다!”
주심이 휘슬을 불자, 성배는 왼쪽으로 한 걸음 움직였다.
아웃 프런트 프리킥의 준비 자세였다.
‘파워를 생각하면 이게 나아.’
거리가 가까워도 냅다 걷어찰 수밖에 없는 프리킥이었다.
강하게 차면 찰수록 회전이 더 강하게 들어갔고, 당연히 인프런트킥에 비해 스피드와 파워가 뛰어났다.
“크게 휘어지면서 그대로!!! 골! 골입니다! 골망을 흔드는 주의 프리킥! 맨체스터 시티, 드디어 선취 골을 기록합니다! 1-0, 이제 한 골 남았습니다!”
30분을 노려왔던 선취 골이 드디어 터져 나왔다.
그리고 30분을 기다린 시티즌들의 함성 역시 드디어 터져 나왔다.
***
“전반에 나온 맨체스터 시티의 선취 골로 이제 겨우 한 골 차입니다. 레알 마드리드도 여유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선발 명단 자체가 공격보다는 수비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도 상황이 급해졌다.
왼쪽의 마르셀루와 오른쪽의 호날두.
이 조합은 활용해본 적이 거의 없어서 스위칭이 어려웠다.
“마르셀루의 왼쪽 측면 돌파! 리차즈와 데 용! 아, 고립되고 리차즈가 빼냅니다!”
윙어보다 더 강력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윙어로서의 움직임이 익숙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레프트백 아르벨로아는 극단적인 수비형 풀백으로, 마르셀루를 효과적으로 지원하지 못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왼쪽 측면이 완전히 죽었어요. 그렇다고 두 명의 레프트백을 활용해 수비에 집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이르죠!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습니다.”
맨체스터 시티가 아니었다면 레알의 왼쪽 측면 공격이 이렇게까지 죽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리차즈와 밀너의 오른쪽 측면은 단단함으로만 따지자면 세계 최고 수준이었고, 입은 옷이 어색한 마르셀루와 아르벨로아가 쉽게 상대하긴 힘들었다.
“어쩌면 그냥 지금부터 수비에 집중하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무리뉴 부임 이후의 레알 마드리드는 수비력이 굉장히 강한 팀이 되어 있었다.
팬들과 보드진은 싫어하지만, 무리뉴의 카리스마는 이들을 모두 이겨내고 자신의 색으로 팀을 물들였다.
‘너무 일찍 잠그지 말고, 마음 편하게 한 골 더 넣으려고 해보지.’
차라리 공격적으로 나와주는 게 맨체스터 시티 입장에서도 편했다.
성배는 제발 레알 마드리드가 잠그지 않고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경기 종료까지 이제 5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맨체스터 시티, 모든 라인을 올려서 공격을 준비합니다!”
성배의 바람과는 반대로 레알은 경기 종료 30분을 남긴 시점부터 지키는 플레이로 전술을 전환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력이 생각보다 강력하다는 것이 가장 컸다.
레알이 수비적인 전술로 전환할 때까지 맨체스터 시티는 경기 내내 주도권을 잡고 있었고, 지금의 선발 명단으로는 주도권을 빼앗기 힘들다는 것을 느낀 무리뉴가 수비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젠장. 이제 진짜 시간이 없는데.’
성배를 비롯한 모든 맨시티 선수들, 그리고 맨시티의 승리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이 초조해질 시간이었다.
경기 종료까지는 겨우 5분.
선취 골 이후 60분 이상 단단하게 버티고 있는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가 점점 부담으로 다가왔다.
“카카, 오른쪽의 외질에게. 외질, 벤제마에게 준다는 패스가 주의 발에 걸립니다!”
호날두와 알론소를 빼고 카카와 그라네로를 투입한 무리뉴는 체력이 쌩쌩한 두 선수의 활동량을 수비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수비적으로는 분명 도움이 되었지만, 공격의 위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제발 받아, 야야.’
“주, 반대편 측면으로 넘겨줍니다! 투레가 따라가서 밀너에게 머리로 전달합니다.”
맨체스터 시티도 이제는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80분이 넘어가면서부터 성배와 라키티치, 보아텡 세 선수의 롱패스가 연달아 이어졌다.
차근차근 만들 시간이 없었고, 맨시티 진영에서 볼을 잡으면 바로 레알 진영으로 롱패스가 날아갔다.
‘이제는 뒤가 없다.’
반대편으로 볼을 길게 넘겨준 이후, 성배도 바로 레알 진영을 향해 달렸다.
하트와 콤파니, 보아텡 세 선수를 제외한 모든 선수가 공격 진영으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밀너, 투레에게 다시 내주고, 리차즈에게!”
“아, 잘 빠져나갔어요!”
이때, 특유의 말도 안 되는 스피드로 뛰쳐나간 리차즈에게 투레의 패스가 연결되었다.
마르셀루와 아르벨로아, 알론소를 동시에 바보로 만든 리차즈의 질주였다.
‘역시, 마이카!’
그리고 성배는 리차즈의 스피드에 감탄을 숨길 수 없었다.
어느새 페널티박스 가까이 도달한 리차즈는 카브랄류를 앞에 두고 크로스 타이밍을 재는 중이었다.
“카르발류, 중앙으로! 발로텔리!”
데 용과 교체되어 투입된 발로텔리가 리차즈에게서 볼을 건네받았다.
페널티스팟 부근이었고, 위험지역이었다.
“오른발! 아, 한 번 더듬었습니다! 알비올 압박!”
하지만 아직 몸이 덜 풀린 것인지 발로텔리는 리차즈의 패스를 받아 슈팅 페인트를 시도하다가 볼을 더듬고 말았다.
그 사이 알비올이 바짝 달라붙어 발로텔리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알비올에 라모스까지! 아, 결국 옆으로 흐릅니다!”
알비올과 라모스가 달려들어 압박하자, 몸싸움을 꺼리고 좋아하지 않는 발로텔리는 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알비올은 그렇다 치더라도 터프하고 거친 라모스의 수비는 발로텔리가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
발로텔리가 흘린 볼은 측면으로 굴러갔고, 레알 선수들은 이번에도 막아냈다는 생각에 잠시 마음을 놓았다.
그리고 마음을 놓는 순간은 사람이 가장 취약해지는 순간이었다.
왜냐하면...
“아! 뒤에서 달려들면서 슈팅!!”
하지만 수비진영에서부터 이를 악물고 전력질주로 달려온 성배가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 낭만필드 - 26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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