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267 >
“멀리 가지 않습니다! 외질!!”
보아텡이 먼저 머리를 가져다 댄 것까지는 완벽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보아텡이 머리로 클리어한 볼은 멀리 가지 못하고 바로 앞에 떨어져 버렸고, 2선에서 자리 잡고 있었던 외질이 바로 왼발 슈팅으로 이어갔다.
“골! 골입니다! 메수트 외질! 외질의 골! 적절한 순간에 골이 터지면서 레알 마드리드에게 리드를 안겨줍니다!”
콤파니와 성배의 라인 조율 능력이 워낙에 뛰어났기 때문에 지금까지 큰 문제는 없었지만, 사실 보아텡은 꼭 한 번 씩 정줄 놓은 실수를 범하곤 했다.
하트, 콤파니의 커버로 겉으로 드러난 적이 없어서 그렇지, 몇 번 정도 위험한 실수를 저지른 적도 있었다.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8강, 레알 마드리드와의 원정 1차전에서 결국 터지고 말았다.
“아, 보아텡! 굉장히 안정적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었는데요, 이렇게 중요할 때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말았어요.”
이제 고작 스물세 살의 나이.
대형 유망주의 잇따른 출현으로 유망주의 1군 입성 연령이 어려지기는 건 2, 3년 뒤였고, 가뜩이나 센터백은 경험이 중요한 포지션이었기에 이 나이의 센터백은 많지 않았다.
규정 상 유망주 활용에 적극적인 분데스리가를 제외하면, 특히 돈을 많이 쓰는 프리미어라면 더더욱 흔치 않았다.
“역시 아직은 이 무대가 너무 무거웠나요? 이번 시즌 혜성처럼 나타나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는데요. 한 번의 실수가 너무 아쉽네요.”
그런 부분에서 보아텡의 등장은 맨체스터 시티에게 굉장히 큰 수확이었다.
큰 기대를 걸고 영입한 투레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이탈했고, 비싸게 영입한 레스콧은 맨체스터 시티의 목적에 어울리지 않았다.
보아텡이 없었다면 지금 정도의 성공을 이루기 힘들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 보아텡도 약점은 있었고, 하필이면 이 중요한 경기에서 그 약점이 드러나고 말았다.
“후우. 빌어먹을.”
비록 전체적인 흐름은 맨체스터 시티에게 좋지 않았지만, 무실점으로 버텨보는 건 한 번 해볼 만했다.
그래서 보아텡의 실수로 실점한 순간, 성배도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쉬었다.
선취 골이 나온 이상,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을 막아내는 건 두 배로 힘들어질 것이었다.
“제롬. 그렇게 쭈그리고 앉아있지 마. 일어나서 어깨 펴고 당당하게 서있어. 이미 실점은 해버렸고, 또 실점하고 싶지 않으면 약한 모습 보이지 마.”
본인이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위로해주는 건 쉬웠다.
실수는 실수일 뿐이고 잊으라고, 지금까지 잘해왔고, 지금까지처럼만 하라고 말해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네가 한 골 줬으니까, 한 골 막을 때까지 미친 듯이 뛰어. 한 골 막기 전에는 빚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실점 이후, 보아텡은 바로 제자리에 주저앉아 고개를 푹 떨구고 자책하며 괴로워했다.
보는 사람이 다 안타까울 정도였다.
하지만 성배는 그런 보아텡에게 채찍질을 해 일으켜 세웠다.
지금 약한 모습을 보이면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수들에게 집중적으로 공략당할 것이 분명했다.
“제롬. 괜찮아.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 자자, 다시 일어나서 처음부터 다시 하자고. 한 번 실수는 그냥 잊어버려.”
달래주는 건 콤파니의 역할이었다.
주장이라는 성배의 위치도 그랬고, 두 사람의 성격 역시 그게 더 어울렸다.
“다비드, 한 번 타이밍을 봐. 아직은 한 번도 안 나왔지만, 분명 한 번은 오프사이드 라인이 무너지는 순간이 올 거야.”
확실히 무리뉴가 맡은 이후 수비력이 좋아진 레알 마드리드였다.
리그에서는 여전히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이지만, 챔피언스리그만 오면 힘을 쓰지 못하는 테베즈, 호날두 수비에 열중하는 밀너, 오늘따라 킥이 좋지 않은 투레.
모든 공격수가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에 고전 중이었다.
“그래. 알았어. 한 번 노려보지.”
맨시티가 노려볼 곳은 왼쪽밖에 없었다.
성배와 실바가 뭔가 하나 만들어줘야 했다.
‘한 번만 라인 무너뜨려 봐라.’
라모스의 단점은 공격력과 투지가 뛰어나고 다혈질인 성격 때문에 가끔 오프사이드 라인을 홀로 무너뜨릴 때가 있었다.
센터백이 아니어서 바로 득점 기회를 만들긴 힘들겠지만, 실바든 성배든 킥이 좋은 선수였기 때문에 뒷공간을 잘 파고들 수만 있다면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
“데 용, 투레에게. 투레, 다시 라키티치에게 돌려주고 라키티치는 왼쪽으로!”
데 용이 외질을 전담 마크하면서 평소보다 배리의 활동 반경이 넓어졌다.
평소보다 체력이 빨리 떨어진 배리를 대신해 라키티치가 투입되었고, 라키티치는 왕성한 활동량을 보이며 배리의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나왔다.’
라키티치에게서 볼을 받은 성배에게 라모스가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틈을 타 실바가 사이드라인에 바짝 붙어서 라모스의 시야 바깥으로 올라갔다.
라모스의 뒷공간이 열린 것이었다.
“실바에게 연결! 실바, 곧바로 크로스! 가 아니고 다시 주에게!”
라모스가 놀라 달려가며 몸을 날렸지만, 실바는 다시 성배에게 볼을 넘겨주었다.
완벽한 노마크 찬스.
성배는 낮은 크로스로 테베즈의 발밑을 노렸다.
“테베즈, 오른발! 아! 카시야스의 가슴팍에 선물해줍니다! 이게 뭡니까!”
하지만 테베즈의 슈팅은 전혀 위력이 없었다.
살짝 바운드된 볼을 발에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정강이로 건드린 것이었다.
방향도, 위력도 형편없어진 슈팅은 카시야스의 가슴에 얌전히 안겼다.
“아...”
“아...”
성배와 실바가 동시에 탄식을 토해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절호의 기회였다.
원정에서의 무승부, 적어도 원정에서의 득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떠올리면 쉽게 떨쳐내기 힘든, 아쉬운 플레이였다.
“하프타임에 그렇게 뭐라 하더니...”
플레이가 끝나지 않고 볼이 카시야스의 손에 넘어갔기 때문에 성배는 급하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그런 성배의 등 뒤에서 평소 조용한 실바의 투덜대는 소리가 들렸다.
“카시야스, 서둘러서 던져줍니다! 알론소에게 한 번에 연결되고, 오른쪽으로 한 번에 롱패스! 디 마리아!”
성배가 최대한 빠르게 복귀하려 했지만, 알론소의 패스가 더 빨랐다.
원래 이런 상황에서는 편하게 롱패스를 질러줄 수 없도록 방해를 해줘야 했는데, 방금 전의 아쉬운 슈팅 때문에 단체로 굳어버린 걸 놓치지 않았다.
경험이 많은 투레도 차마 어쩔 수 없었다.
‘돌겠네, 진짜.’
알론소의 전매특허, 대지를 가르는 패스가 한 번에 전방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경기 내내 성배에게 묶여있던 디 마리아가 드디어 기회를 잡아냈다.
“디 마리아, 빠른 돌파! 데 용, 커버해야죠!”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완벽한 득점 기회를 만들어냈던 맨시티지만, 몇 초가 지나니 심각한 실점 위기를 맞이하고 말았다.
“디 마리아, 반대편으로 크로스 올려줍니다! 아, 호날두!”
모라타를 아예 건너뛰고 반대편의 호날두를 향하는 크로스.
보아텡과 콤파니도 일단 페널티 박스를 장악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복귀하다 보니, 측면에서 내려온 호날두의 움직임을 놓치고 말았다.
“헤더! 골! 골입니다! 호날두의 헤더! 결국 호날두가 한 골을 넣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추가 골! 승부에 쐐기를 박았습니다!”
이런 절호의 찬스를 호날두가 놓칠 리 없었다.
호날두는 작지 않은 신장과 타고난 탄력을 바탕으로 헤딩 득점도 굉장히 많이 기록하는 선수였다.
반대편 골대를 향해 강하게 꽂아버린 호날두의 헤더는 하트의 손끝을 스치며 반대편 골망을 흔들었다.
‘아...’
1-0까지는 괜찮았다.
한 골 정도는 홈에서 충분히 만회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이 되면 문제가 좀 있었다.
아무리 홈경기라도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두 골 이상의 차이를 벌리는 게 쉬울 리 없었다.
심지어 한 골이라도 내주게 되면 네 골을 넣어야 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역습이 대단하네요. 확실히 알론소부터 시작하는 역습의 위력이 굉장해요. 무리뉴 감독, 역시 스페셜 원답네요.”
뒷공간을 내주면서 역습을 허용하긴 했지만, 성배의 오버래핑 타이밍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공수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는 게 성배의 장점이었다.
지금 같은 경우에는 투레나 라키티치가 알론소를 방해해줬어야 했는데, 그게 안 되어 버리니 칼 같은 역습에 당한 것이었다.
“레알 마드리드, 경기를 잘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첫 골이 나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경기가 답답했는데, 어쨌거나 결국 두 골 차입니다.”
결국,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주인공은 레알 마드리드였다.
좋은 경기를 펼쳐오던 맨시티였지만, 결국 한 번의 실수로 선취 골과 함께 분위기를 내주면서 두 번째 실점까지 연달아 내주고 말았다.
“레알 마드리드, 홈에서 펼쳐진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 맨체스터 시티에게 두 골 차의 승리를 거두고 4강 진출에 한 발자국 더 다가섭니다.”
결국, 맨체스터 시티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만회 골을 넣지 못했다.
0-2의 패배.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 두 골 차의 패배는 타격이 작지 않았다.
“맨체스터 시티도 잘했어요. 잘했는데, 아무래도 챔피언스리그 경험도 적고, 다른 명문 강호들과의 원정 경기 경험도 적기 때문에 한 번 흔들렸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네요. 이건 결국 경험의 문제라 몇 시즌 정도 더 경험을 쌓는 수밖에 없어요.”
전통의 명문과 신흥 강호의 차이가 나타났다고 봐야 했다.
레알 마드리드도 원하던 대로 경기를 이끌지 못했고, 생각보다 강력한 맨체스터 시티의 압박에 당황했지만, 전혀 흔들리지 않고 차근차근 경기를 만들어갔다.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는 보아텡의 실수로 실점한 뒤, 다시 페이스를 찾지 못하고 두 번째 실점까지 허용하고 말았다.
“다음 주에 맨체스터 시티의 홈인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에서 2차전이 열리는데, 맨체스터 시티의 부담감이 상당해졌습니다.”
사실 이미 목표를 달성한 상태지만, 그래도 욕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4강을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은 있었다.
그리고 1차전에서 패배하자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번에도 내가 이긴 것 같은데?”
호날두가 상큼한 미소와 함께 다가와 말했다.
골도 넣었고 경기까지 이긴 데다가 스코어도 만족스러웠기에 그 미소의 상큼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일단 2차전까지는 끝내고 말하자고. 2차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알아.”
솔직히 성배도 2차전에서 이 경기를 역전하기는 힘들 거라 생각했다.
그래도 축구공은 둥글었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몰랐다.
맨체스터 시티의 전력이 약한 것도 아니고, 분위기만 잘 타면 두 골 차 이상의 승리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래. 맨체스터에서 보자고. 그때 제대로 축하받을 테니까. 하하.”
레알 마드리드와 맨체스터 시티.
오랜 기간 동안 유럽 축구계의 정점으로 군림해왔던 클럽과 이제 막 강호로 떠오른 클럽의 차이는 작지 않았다.
성배가 경험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것처럼 구단 차원의 경험 차이도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 낭만필드 - 26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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