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261 >
선취 골을 허용한 이후, 첼시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섰다.
스탬포드 브리지에서 펼쳐지는 홈경기를 놓칠 수 없었다.
“램파드, 에시앙에게 빼줍니다. 에시앙, 오른쪽의 칼루에게. 이바노비치, 빠르게 오버래핑!”
성배와 리차즈가 버티는 풀백 라인이 맨체스터 시티의 자랑거리 중 하나지만, 첼시의 양 풀백인 콜과 이바노비치도 어디 가서 밀리지 않았다.
다만, 아직 이바노비치의 폼이 완전히 올라온 건 아니었기에 생각만큼의 위력은 없었다.
“빠르게 돌파하는 이바노비치! 멈춰서 패스할 곳을 찾습니다!”
그리고 이바노비치의 오버래핑은 주로 동료 미드필더들과의 유기적인 호흡을 통해 상대의 측면을 공략하는 방식이었다.
선수 본인의 돌파력 자체는 그렇게 뛰어나다 할 수 없었다.
‘딱히 줄 데가 없겠지.’
그래서 성배는 이바노비치의 오버래핑에 흔들리기보다는 진득하게 칼루를 마크했다.
이바노비치는 라키티치가 측면으로 움직여 상대했다.
“빨리 처리해야죠! 맨시티 수비가 자리를 잡았어요!”
칼루와 램파드가 성배와 배리에게 각각 마크당해 딱히 볼을 줄 곳이 없었다.
주춤거리던 이바노비치는 결국 억지로나마 중앙의 램파드에게 볼을 넘겼다.
“램파드에게 패스, 램파드, 다시 리턴!”
배리의 압박에 고전하던 램파드는 이바노비치에게 곧바로 볼을 돌려주었다.
본래 강력한 피지컬과 활동량으로 패스나 탈압박, 드리블의 약점을 가리던 램파드였는데, 시즌 중에 탈장 수술을 받은 이후 피지컬이 급락한 것이 큰 타격이었다.
‘이런 애매한 패스를.’
원래 패싱 센스는 좀 떨어지는 선수였기에, 피지컬 하락으로 배리의 압박에 중심이 흔들리는 상황에 정확한 패스를 내주기는 힘들었다.
이바노비치에게 돌려준 램파드의 패스는 속도와 방향이 애매했고, 성배는 칼루를 버리고 볼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 끊깁니다! 주의 중간 커트! 라키티치에게 빠르게 연결하며 역습으로 연결합니다!”
이바노비치는 램파드로부터 볼을 다시 돌려받기 위해 앞으로 튀어나간 상황이었다.
라키티치를 제친 것이 독이 된 것이었다.
칼루는 성배에게 막혀 있던 상황이라 라키티치의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맨시티의 역습! 라키티치는 다시 실바에게!”
이번 시즌 맨체스터 시티의 득점 순위는 리그 4위에 불과했고, 1위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2위 아스날과 비교하면 10골 이상 차이가 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과 비슷한 승점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리그 최소 실점을 기록하고 있는 수비였다.
수비에 이어지는 역습으로도 많은 득점을 만들어내다 보니 많은 골이 없어도 쉽게 승점을 추가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실바, 땅볼로 볼 투입! 투레에게 연결됩니다! 투레, 한 명 제치면서 슈팅! 시도하지만, 테리가 태클로 막아냅니다!”
실바에게 볼을 건네받은 투레가 페널티박스 바깥에서 슈팅을 시도하려던 순간, 테리가 적절한 태클로 볼에 발을 가져다 대며 막아냈다.
중거리 슈팅이기는 했지만, 자유롭게 놓였던 투레의 상황과 킥력을 감안하면 굉장히 위험했던 상황이었다.
“첼시, 이건 아닙니다. 공격진에 변화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토레스를 살릴 필요가 있다는 건 이해하지만, 일단 이기고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토레스에게 투자한 금액이 있는 만큼, 최대한 빨리 살려서 써먹어야 하는 것은 맞았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감각을 살려주는 건 약팀과의 경기를 활용하고 일단 강팀과의 경기에는 드록바나 아넬카를 써서라도 승리를 챙겨야 했다.
“오른쪽의 칼루도 좋지 않아요. 칼루가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맨시티 수비진이 아예 말루다에게만 신경을 쓰고 있어요. 이러면 말루다도 어떻게 할 수가 없죠! 리그 최소 실점의 수비진이 자신에게만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데요!”
경기가 아무리 진행되어도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이상 좋아질 수가 없었다.
890억을 투자해 영입한 선수가 경기력 부진의 원인이 되는, 아브라모비치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상황이 계속되었다.
“토레스, 측면으로 빠져서 볼 받아줍니다. 주와 콤파니가 앞뒤에서 압박!”
후반전도 20분을 지나 30분을 향해 달려가는 경기 종반, 토레스는 여전히 형편없는 활약을 이어가고 있었다.
유효슈팅이 어지간한 공격수들이 기록하는 득점보다 적은 토레스였기에 당연히 유효슈팅도 기록하지 못했다.
“콤파니와 주의 합동수비! 토레스, 볼을 지키는데 급급합니다.”
각자가 EPL 최정상급의 수비수인 데다가 오랜 기간 쌓아온 호흡으로 협력 수비에 들어가면 어떤 공격수라도 무력화될 수밖에 없었다.
토레스에게 선물하기엔 너무 과분했다.
“툭 쳐서 볼 빼내는 주성배! 콤파니에게 밀려 앞으로 넘어진 토레스가 항의해보지만, 파울 선언은 되지 않습니다.”
토레스의 피지컬은 사실 낙제점에 가까웠다.
예전에는 신체 조건에 비해 말도 안 되는 순간 스피드로 이를 벗겨냈지만, 가속도가 떨어진 지금은 정면으로 붙어야 했다.
그리고 정면으로 붙기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토레스는 그라운드에 계속 몸을 뉘어야 했다.
“아, 정말 심각하네요. 센터백들과의 몸싸움을 도저히 견뎌내지 못해요. 이건 단순한 부진은 아닌 것 같고, 밑바닥부터 뜯어고쳐야 할 것 같은데요?”
스피드가 사라지자, EPL 수비수들의 강력한 몸싸움에 견딜 방법이 없어진 토레스였다.
요즘은 수비수가 조금만 가까이 붙어서 압박하면 아무것도 못하다가 넘어지거나 가까스로 백패스해주는 정도였다.
그래서 한국 한정 별명으로 토겁지겁, 토둥지둥, 토절부절이라는 별명이 생기기까지 했다.
‘여기까지인가.’
앞쪽으로 볼을 내준 성배는 분주해진 첼시 벤치를 보면서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몸을 풀던 드록바와 아넬카가 유니폼을 갖춰 입고 안첼로티 감독의 지시를 듣는 중이었다.
‘지금까지 편했는데.’
토레스가 나가면 지금까지 편하게 수비했던 시간이 끝나는 것이었다.
드록바와 아넬카라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었다.
“아, 결국 토레스와 말루다를 한 번에 교체해줍니다. 그리고 드록바와 아넬카가 투입됩니다.”
890억의 사나이, 토레스의 교체 사인이 나온 순간, 스탬포드 브리지를 가득 메운 첼시 팬들은 기립 박수를 보내주었다.
토레스를 향한 기립 박수는 오늘 활약에 대한 환호의 의미가 아니었다.
“아, 홈팬들에게 조롱을 받네요. 이적 후 일곱 경기 출전에 유효 슈팅 단 한 개. 조롱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기록이죠. 그래도 안타깝긴 하네요.”
홈팬들에게마저도 조롱받는 토레스였다.
교체가 결정된 순간, 토레스는 안타까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오늘도 토레스의 득점은 나오지 않았다.
***
“공격진을 완전히 갈아엎은 첼시가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이제야 겨우 제대로 된 공세가 펼쳐집니다.”
결국, 칼루까지 지르코프로 교체한 첼시는 세 명의 공격수를 모두 바꾸는 강수를 두었다.
지르코프는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드록바와 아넬카는 역시 썩어도 준치라는 것을 증명하며 오늘 경기에서 처음으로 공격다운 공격을 이끌었다.
[IN - 34. 니헬 데 용 / OUT - 13. 이반 라키티치]
[IN - 11. 아담 존슨 / OUT - 7. 제임스 밀너]
맨체스터 시티는 라키티치를 데 용으로 교체해 수비를 두텁게 하면서 밀너를 빼고 존슨을 투입해 역습의 위력도 강화했다.
박스 투 박스지만, 공격에 더 집중하던 투레까지 아예 밑으로 내리면서 실바와 존슨, 제코 세 명으로 역습을 노리는 것이었다.
“드록바가 이번 시즌 아무리 부진하다고 해도 한 방이 있는 선수거든요? 맨시티도 너무 방심하지 않는 게 좋아요.”
7라운드까지 6골 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드록신 모드를 발동했던 드록바는 이후 말라리아로 고생한 뒤 드록인으로 강등되고 말았다.
그리고 1월 25일의 볼턴전 이후 5경기 동안 득점이 없었다.
하지만 드록바는 언제든 골을 넣어줄 수 있는 선수였다.
“긴장해! 노장이지만, 20분 뛰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드록바와 마찬가지로 아넬카 역시 나이가 있는지라 스피드와 득점력이 많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노련미와 패싱, 시야로 플레이 메이커 역할을 해주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골을 넣어줄 선수가 필요했다.
“오케이! 자자, 긴장하고 상대해! 전성기 드록바를 생각하라고!”
드록바는 언제나 상대팀을 긴장시키는 선수였다.
그것은 기량이 많이 떨어진 지금이라도 다를 바 없었다.
“드록바에게 투입되는 롱패스! 보아텡이 먼저 끊어냅니다! 떨어진 볼을 걷어내는 콤파니!”
드록바의 투입으로 분명 첼시의 공격에 활기가 돌기는 했다.
하지만 드록바가 보아텡과 콤파니를 피지컬로 압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압도당하면서 결과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아, 드록바. 29골로 득점왕에 올랐던 지난 시즌의 모습이 나오지 않습니다. 말라리아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여러분.”
나이가 있는지라 말라리아로 고생하면서 떨어진 피지컬이 빠르게 회복되지 않아 맨시티 수비진보다 한 수 떨어지는 피지컬의 아스날 센터백들에게도 압도당했던 드록바였다.
아쉽지만, 드록바도 사실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던지라 나이를 속이지 못했다.
“하미레즈가 3선에서 볼을 잡아 램파드에게! 램파드, 돌파를 시도합니다.”
지난 몇 시즌 간 첼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것은 테리와 체흐의 안정적인 수비와 드록바와 램파드의 공격 호흡이었다.
드록바가 상대 수비수를 피지컬로 압도하며 상대 수비를 견제하고, 램파드가 미드필드와 수비 사이의 공간에서 패스와 중거리 슈팅, 공간 쇄도를 맡는 전술이 전성기 첼시의 주 무기였다.
“콤파니가 가로막고 데 용이 압박! 램파드, 돌파 실패! 투레에게 빠르게 연결!”
하지만 드록바도, 첼시도 나이가 들었다.
하필이면 각각 탈장과 말라리아로 고생하면서 동시에 피지컬이 떨어진 것도 첼시의 불운이었다.
“투레, 앞으로 길게! 맨시티, 역습입니다!”
투레가 오른쪽으로 길게 찔러준 볼이 존슨에게 이어졌다.
선발로 출전하면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교체로 출전하면 뛰어난 활약을 펼치는 존슨은 맨시티 벤치의 기대대로 첼시 측면을 무섭게 돌파해 들어갔다.
‘여기서 쐐기를 박자.’
성배도 빠르게 첼시 진영으로 넘어갔다.
스피드가 사라진 아넬카에게서 그렇게 큰 위협을 느끼지 못한 성배였기에 적극적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존슨, 속도를 줄이고 빈틈을 찾습니다. 중앙으로 크로스!”
존슨에게 애쉴리 콜은 부담스러운 존재였지만, 무난히 시간을 끌다가 제코를 향해 크로스를 올렸다.
제코는 중앙에서 테리와 경합을 펼치며 볼을 향해 떠올랐다.
“제코가 먼저! 볼은 뒤로!”
테리는 공중에서 제코와 붙었다가 균형을 잃고 허리가 접히며 떨어졌다.
완벽히 제압당한 모양새였다.
경기 내내 제코를 잘 봉쇄하고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제공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왔다!’
그리고 그 볼은 뒤에서부터 열심히 달려온 성배의 앞으로 떨어지며 힘들게 달린 보람을 느끼게 해주었다.
수비라인에서부터 달린 덕분에 성배를 놓쳤던 첼시 선수들이 뒤늦게 따라붙고 있었지만, 이미 한참 늦어버렸다.
‘이런!’
하지만 원바운드 된 볼을 향해 몸을 날린 성배는 같이 몸을 날린 체흐가 나올 수 있는 모든 각도를 이미 막아버린 것을 확인했다.
낮게 바운드된 볼이었기에 이대로 머리를 갖다 댄다고 해도 나올 수 있는 각도는 한정적이었다.
< 낭만필드 - 26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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