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260 >
아스날과 맨유가 밀린 경기를 치르면서 맨시티의 순위는 3위까지 내려왔다.
맨유가 승점 60점으로 리그 1위를 차지하고 있었고, 아스날과 맨시티가 58점으로 동률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서 반 페르시와 나스리의 득점력이 폭발한 아스날이 리그 최소 실점을 기록하고 있는 수비진에 비해 득점력이 떨어지는 맨시티를 골 득실에서 앞서며 2위를 기록 중이었다.
“지난 시즌 우승팀인 첼시가 4위까지 떨어져 있습니다. 5위인 토트넘과는 승점 5점 차로 작지 않은 차이지만, 2위권과도 4점 차이입니다. 적어도 챔피언스리그 본선 직행은 해야지 않겠습니까?”
겨울 이적시장에서 야심차게 토레스를 영입하며 반등을 노렸던 첼시지만, 지금까지는 상황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
토레스는 이적 후 두 달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다섯 경기 선발, 한 경기 교체로 여섯 경기에 출전해 한 개의 공격 포인트도 기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적 초창기에 첫 공격 포인트가 늦어지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에요. 하지만 문제는 움직임 자체가 수준 이하라는 건데요, 지난 여섯 경기에서 기록한 의미 있는 지표라고 해봤자 유효 슈팅 한 개. 이게 전부예요. 정말 이게 전부입니다.”
해설자가 자신의 손에 들린 기록지를 펄럭이며 말했다.
정말 형편없는 기록이었다.
890억짜리 최전방 공격수의 스탯이 여섯 경기에 한 개의 유효 슈팅이 전부였다.
“드록바-아넬카 투톱이 훨씬 나은데요, 오늘은 토레스를 톱에 두고 말루다와 칼루를 양 측면에 배치했거든요? 글쎄요. 불안한데요?”
맨시티가 체력적인 부담을 느끼고 있다지만, 경험이 많아 비교적 잘 버티고 있다 해도 첼시 역시 챔피언스리그 8강에 진출한 클럽이었다.
상대적으로 노장 선수가 많은 첼시도 체력적으로 부담이 없을 수 없었다.
“맨체스터 시티는 힘든 상황에서도 나름 체력관리를 잘해주고 있습니다. 젊은 선수 위주의 팀이 체력관리까지 하고 있으니 첼시가 그렇게 유리한 것도 아닙니다.”
선발 스쿼드의 평균 연령은 맨시티가 두 살에서 세 살 정도 어렸다.
그리고 첼시의 이번 시즌 가장 큰 문제는 미드필드의 기량 하락.
AC 밀란과 마찬가지로 맨시티와 상극이었다.
그나마 다비드 루이즈 영입 이후 수비진이 안정되었다는 게 다행이었다.
“이반! 이반!”
경기 시작 직전, 만치니 감독과 코칭스태프, 그리고 성배는 각각 다른 선수들을 부여잡고 마지막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오늘 다비드는 아마 평소처럼 큰 역할을 해주긴 힘들 것 같으니까 네 역할이 중요해. 정신 똑바로 차리고 패스 줄기 신경 쓰고.”
맨체스터 시티는 첼시를 맞아 드디어 제코와 라키티치를 동시에 투입했다.
테베즈에게 공격의 큰 줄기를 일임하는 4-3-3이 아니라 테베즈 대신 제코를 투입하고 데 용 대신 라키티치를 투입한 4-3-3이었다.
제코가 테베즈의 역할을 못하는 대신 라키티치에게 그 역할을 맡기는 것이었다.
“알았어. 걱정하지 말라고.”
3선부터 1선까지 부드럽게 연결해주는 연결고리.
오늘 라키티치가 맡아주어야 하는 역할이었다.
샬케에서 주전으로 활약하지 못하면서 선수생활 최초의 실패를 맛봤던 라키티치는 이적 이후 의욕이 가득했다.
탈압박이 약하지만, 배리와 투레, 밀너까지, 대신 싸워줄 선수가 충분했기 때문에 활약상도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말했지만, 다비드는 이바노비치 때문에 좀 힘들 거야. 네가 그 짐을 덜어줘야 돼.”
플레이 메이커인 다비드 실바가 이바노비치의 피지컬을 앞세운 대인마크에 고전할 것을 예상한 라인업이었다.
맨체스터 시티의 장점은 역시 중원에 있었고, 2선에서 해결이 안 될 경우 3선에서 하면 그만이었다.
“걱정하지 마. 나도 어디 가서 활동량은 안 진다. 두고 보라고. 연결고리 역할은 물론이고 중앙 미드필더 본연의 역할도 빈틈없이 해줄 테니까.”
라키티치도 성배가 알던 모습을 조금씩 보여주고 있었다.
성배와 보아텡에 라키티치까지.
후방에서 찔러줄 컨트롤 타워는 이 순간에도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제롬. 토레스가 볼을 잡으면 바짝 붙어버려. 보니까 요즘에는 그냥 픽 쓰러지더라.”
토레스 원톱.
이걸 계속 고집하면 오늘 첼시에게 희망은 없었다.
***
“이바노비치, 앞으로 쭈욱 빼줍니다. 칼루에게 연결됩니다.”
오늘 오른쪽 윙어로 출전한 살로몬 칼루는 측면에서의 움직임도 괜찮고 볼 키핑 능력과 수비 가담 능력도 괜찮은, 무리뉴가 선호하는 전형적인 스타일의 공격수였다.
그리고 출전 경기 대비 스탯도 괜찮았다, 아니, 괜찮았었다.
“돌파를 시도하, 다가 다시 뒤로 물러납니다. 하미레즈에게 빼주고, 하미레즈는 다시 에시앙에게.”
안더레흐트 시절부터 몇 번 성배와 붙어본 적이 있는 칼루는 오늘 굉장히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기본적으로 성배의 평가가 더 높은 상황이고, 칼루가 성배를 상대로 좋은 활약을 보여줄 거라는 기대는 거의 없었지만, 그걸 감안해도 너무 소극적인 태도였다.
‘멘탈이 완전히 무너졌어.’
경기 시작 10분 만에 성배는 칼루의 멘탈 상태를 정확히 파악했다.
자신을 상대하는 것에 대한 부담과 현재 본인의 위상에 대한 불만으로 정신이 무너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조금씩 오른쪽으로 움직여.’
볼이 사이드라인으로 나간 이후, 성배는 수비라인을 오른쪽으로 살짝 옮겼다.
칼루에 대한 수비를 조금 풀어도 될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칼루가 힘을 잃은 것이 확실해 보였기에 말루다와 콜의 왼쪽에 조금 더 힘을 주기로 했다.
지금 칼루의 상태를 보면 이 정도 빈틈을 내줘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램파드, 드디어 토레스에게 연결! 토레스, 경기 시작 20분 만에 첫 터치입니다!”
보아텡과 콤파니가 번갈아가며 강한 압박을 가하고 배리 역시 상황이 허락할 때마다 토레스를 괴롭혀주었다.
그 결과, 전혀 자리를 잡지 못한 토레스는 경기 시작 후 20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볼에 발을 댈 수 있었다.
“뒤에서 강하게 압박하는 보아텡! 토레스, 정신을 못 차립니다!”
축구선수의 폼을 한 번에 박살내버릴 수 있는 탈장 부상을 입고도 월드컵 출전을 강행한 후유증이 여기서 나오고 있었다.
안 그래도 피지컬 압박을 즐기는 편도, 강한 편도 아니었던 토레스는 이제 수비수 한 명의 압박조차 견뎌내질 못했다.
‘어디 한 번 뒤로 빼봐.’
보아텡은 토레스를 조금씩 왼쪽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성배는 그런 보아텡의 수비에 발맞춰 볼을 커트하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밀려나면서 급하게 볼을 내주지만, 주에게 커트당합니다! 주, 한 번에 길게!”
토레스의 볼을 차단한 성배는 앞으로 길게 내질렀다.
제코와 투레가 버티는 맨시티의 높이는 상당했다.
“투레가 뒤로 떨궈주고, 라키티치!”
뒤에서 밀어내는 테리의 압박을 견뎌낸 투레가 라키티치를 향해 머리로 떨궈주었다.
투레로부터 볼을 받아낸 라키티치는 가볍게 볼을 받아낸 뒤, 한 번의 슈팅 페인트로 하미레즈를 제쳐냈다.
“중거리 슈팅! 체흐! 체흐의 선방! 체흐가 일단 첼시를 한 번 살려냅니다!”
라키티치의 가장 큰 장점을 꼽으라면 역시 킥력이었다.
롱패스가 정확하기는 하지만, 볼배급에 그치지 않고 킬패스로의 가치를 높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 킥력만큼은 이미 완성 단계였고, 이를 십분 활용하는 중거리 슈팅은 그야말로 살인무기였다.
“체흐가 선방으로 살려내긴 했지만, 첼시 공격은 이미 큰일 났는데요? 세 명 중에 토레스와 칼루가 심상치 않고, 램파드도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맨시티 선수들의 강력한 압박에 힘을 쓰지 못하고 있어요.”
첼시 역시 4-3-3 전술을 들고 나왔는데, 오른쪽의 칼루와 중앙의 토레스가 첫 플레이부터 완벽하게 막히는 모습을 보여 버렸다.
이건 꽤나 심각한 문제였다.
왼쪽의 말루다가 최근 들어 나름 괜찮긴 하지만, 리옹 시절만큼 압도적인 모습이 아닌 것을 생각해보면 리차즈를 상대하며 팀을 이끌고 가는 건 쉽지 않을 것이었다.
“맨시티도 아직 공격이 잘 풀리는 건 아니지만, 일단 수비는 완벽하게, 생각한대로 풀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씩 차근차근 하면 됩니다.”
일단 분위기는 맨체스터 시티 쪽이 좋았다.
첼시의 수비진도 전반기에 비하면 정비가 되어 있었고, 언제나처럼 체흐가 단단하게 버텨주고 있었기에 맨시티의 공격도 쉽지는 않겠지만, 일단 좋은 시작이었다.
***
오버래핑해 올라왔던 성배의 크로스가 루이즈의 머리에 맞고 흘러나왔다.
제코의 높이도 가공할 만한 수준이긴 하지만, 루이즈와 테리가 버티는 첼시 센터백의 높이도 상당했다.
특히, 루이즈는 부진한 토레스를 대신해 첼시 겨울 이적시장의 성공작으로 떠오르고 있었기에 분위기까지 탄 상황이었다.
“치열한 세컨볼 경쟁! 투레, 하미레즈, 에시앙! 투레가 따내고 라키티치에게!”
루이즈가 걷어낸 볼은 투레와 하미레즈, 에시앙의 사이에 떨어졌다.
그리고 투레는 본인의 괴물과 같은 피지컬을 자랑하며 만만치 않은 두 선수 사이에서 어떻게든 볼을 지켜내는 모습을 선보였다.
“왼쪽으로 찍어 차주고, 다시 주에게!”
투레에게 볼을 빼앗긴 두 선수가 일제히 달려들었지만, 이미 순식간에 패스로 연결한 라키티치는 볼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크로스 후 자신의 자리로 복귀하려다가 투레가 볼을 따내는 것을 보고 멈춘 성배에게 다시 볼이 연결되었다.
‘엄청 단단하네.’
등지고 볼을 받은 성배의 뒤로 이바노비치가 바짝 붙었다.
바깥쪽으로 밀어내는 이바노비치의 힘이 굉장했다.
하지만 성배도 자신의 피지컬과 노하우 등을 총동원해 어떻게든 버텨냈다.
“어! 돌아섰죠! 억지로 돌파해 들어가는 주성배!”
뒤로 돌아서면서 오른팔을 뻗어 이바노비치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이바노비치는 어떻게든 성배에게 붙으려 했지만, 팔을 정확히 90도 각도로 구부린 채 최대한의 힘으로 밀어내는 성배 때문에 쉽지 않았다.
“어떻게든 돌파가 됩니다! 중앙으로 낮게 크로스!”
이바노비치의 힘을 감안하면 생각보다 잘 버텨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한계는 있었다.
하지만 그 한계가 느껴지기 전에 중앙으로 크로스를 올려주었다.
“다비드 실바!”
완벽한 커맨더형 센터백, 테리는 굉장한 선수였다.
파이터형 수비수로 아직 투박하고 공격과 수비 상황을 조절하지 못하는 루이즈를 쓸 만하게 조율해주기까지 하는 타고난 리더이기도 했다.
하지만.
“골! 선취 골입니다! 다비드 실바! 침투에 이은 득점으로 선취 골을 뽑아냅니다!”
발이 느리다는 단점은 어쩔 수 없었다.
이번에도 느린 발 때문에 세컨볼에 이은 맨시티의 역습 상황에서 뒷공간을 내준 테리는 실바에게 2선 침투를 허용하며 실점 위기를 초래, 실점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이바노비치의 압박을 견뎌내면서도 어떻게 저걸 봤나요!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저 공간을 봤네요!”
돌파해낸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플레이를 소화한 것이었는데, 그러면서도 시야를 놓치지 않은 성배의 노련함이 빛을 발했다.
테베즈와 함께 첼시 킬러로 군림하는 선수답게 첼시전에서 리그 일곱 경기 만에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에 리드를 안겨주었다.
< 낭만필드 - 260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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