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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사라진 필드-257화 (158/356)

< 낭만필드 - 257 >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다음 시즌 준비 잘 해. 다음 시즌에는 분명히 복귀할 수 있을 거다.”

딱히 이번 사건과 관련된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그냥 신변잡기, 두 사람의 연애 스토리나 아이들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식사가 끝난 뒤, 세 사람이 돌아갈 때가 되자, 성배가 입을 열었다.

“다음 시즌이라.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네.”

금지 약물 양성 반응.

출전금지 징계가 2년까지도 내려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였다.

하지만 단순 실수가 인정된다면 중징계까지는 내려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형. 분명 그렇게 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주가 말한 대로 천천히 몸 만들고 있어. 형도 이제 나이가 어린 건 아니잖아. 몸 관리도 좀 하고, 괜히 이번처럼 엄한 것 주워 먹지 말고.”

야야 투레도 자신의 형에게 진심어린 위로를 보내주었다.

정식으로 징계가 내려질 때까지 경기는 물론이고 축구 관련 활동을 전혀 할 수 없었지만, 그렇게 되면 경기 감각에 큰 문제가 생기겠지만, 콜로 투레 정도의 베테랑이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었다.

“콜로. 기다린다? 멀쩡하게 돌아오라고. 다음 시즌에 또 같이 뛰어야지.”

약 1년 간 센터백 자리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콤파니 역시 투레에게 힘을 보태주었다.

‘다음 시즌에 복귀한다고 해도 제롬을 지키게 된다면 주전 자리를 되찾긴 힘들지 않으려나.’

맨체스터 시티 입장에서는 투레의 이탈이 큰 타격이기는 해도 메울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투레 개인에게는 굉장히 큰 타격이 될 것이었다.

안 그래도 밀려나는 중이었는데, 이젠 보아텡을 견제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진 것이었다.

어쩌면 이대로 주전 자리가 끝날 수도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반 년 푹 쉬고 돌아오면 금방 제자리로 돌아와 있을 거니까.”

물론, 생각한 그대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모두 다 잘 될 거다.

지금은 그렇게 말해줘야 할 타이밍이었다.

“투레 부인. 너무 미안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사람이 자기 위치도 모르고 아무거나 주워 먹은 게 문제지, 부인이 잘못한 건 없어요.”

자신 때문에 남편이 고생한다고 생각해 미안해하는 아워 투레를 위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저씨들 이제 갈게. 한동안 아빠 집에 있을 거니까, 아빠랑 같이 많이 놀고, 좋은 시간 보내. 알았지?”

마지막으로 투레의 아이들에게도 작별 인사를 건넨 성배와 두 사람은 투레의 집을 떠나 맨체스터로 돌아갔다.

그새 많이 친해진 아이들은 시무룩한 표정이었지만, 더 지체했다가는 컨디션 조절에 지장이 생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

“호비뉴, 중앙으로 크로스! 즐라탄!! 한 번 막아내고, 다시 파투! 보아텡이 태클로 걷어냅니다! 맨체스터 시티, 육탄 방어! 일단 한 고비 넘깁니다!”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을 찾아온 AC 밀란은 산 시로에서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부딪혀왔다.

호비뉴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이브라히모비치와 파투를 투톱으로 세우며 세 명의 공격수를 모두 출전시켰고, 케빈 보아텡과 세도르프, 플라미니의 쓰리 미드필더를 세우며 다이아몬드 4-4-2 포메이션을 완성했다.

장점인 세 명의 중앙 공격수에게 힘을 실어주는 중앙 집중형 전술이었다.

“AC 밀란의 초반 공세가 매섭습니다. 역시 월드클래스 공격수 세 명을 보유하고 있다 보니, 중앙에서의 공격이 강력한 모습입니다.”

사실상의 쓰리톱이었다.

호비뉴는 화려한 드리블과 스피드를 앞세우는 선수이지, 볼 배급에 재능이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

진짜 공격형 미드필더는 3선에 위치한 케빈-프린스 보아텡이었고, 호비뉴는 쉐도우 스트라이커처럼 움직였다.

‘중원에서 강하게 압박하면 경기 분위기는 바로 우리 쪽으로 넘어오겠는데.’

하지만 성배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이건 무리수였다.

사실상의 쓰리톱을 활용하면서 공격형 미드필더인 케빈 보아텡을 중원에 넣었기 때문에 중원 장악력이 형편없이 약해진 것이었다.

케빈 보아텡의 수비가담 능력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세도르프와 플라미니 둘이서 해결해야 했는데, 세도르프는 노쇠화로 인해 활동량이 심하게 적어졌고, 결국 플라미니 혼자 힘이 넘치는 맨시티 중원 선수들을 상대해야 했다.

‘절대 불가능하지.’

플라미니가 아무리 활동량이 좋은 선수라고 하더라도 혼자서 맨시티 미드필더들과 승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레스! 가레스!”

생각을 마친 성배는 곧바로 배리를 불러들였다.

야야 투레, 가레스 배리, 니헬 데 용.

1차전 원정 경기에서의 승리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 맨체스터 시티는 중원 장악력이 빼어난 세 명의 미드필더를 투입해 안정적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려 했다.

오른쪽 윙어로 출전한 밀너 역시 박인진처럼 미드필드 장악에 힘을 보탤 예정이었다.

“왜. 무슨 일인데?”

경기 중이었지만, 배리는 성배의 호출에 바로 달려왔다.

타고난 전술 이해도를 바탕으로 항상 좋은 방법을 전해주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만치니 감독으로부터 경기 중 전술 수행 타이밍과 수정 권한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제 시작해. 말려 죽이라고.”

양 팀의 선발 라인업이 나오자마자 오늘 경기의 흐름은 정해졌다.

공격수 세 명의 활약에 모든 게 달린 AC 밀란, 그리고 중원을 완벽하게 장악해 그것을 바탕으로 경기를 만들어나가야 하는 맨체스터 시티.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만치니 감독은 본격적인 중원 장악 타이밍을 성배에게 일임했다.

성배의 판단이 서는 그 순간, 본격적인 움직임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오케이. 더 뛰고 싶은 걸 억지로 참았다고.”

성배의 말에 미소 짓는 배리였다.

안 그래도 활동량이 뛰어난 선수인데, 지금까지 타이밍을 보느라 자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답답했던 것이었다.

성배의 신호가 떨어졌으니 이제부터는 모든 걸 쏟아 부어 중원의 장악력을 가져올 터였다.

“숨도 못 쉬게 해버려. 최전방에 아무리 뛰어난 선수가 있어도 볼이 안 오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걸 보여주라고.”

배리, 데 용, 투레, 거기에 밀너까지.

세도르프와 플라미니로 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AC 밀란의 중원은 이제 숨이 막혀 죽을 일만 남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플라미니, 케빈 보아텡에게 찔러주는데, 데 용의 강한 압박! 케빈 보아텡, 이리저리 피해보지만, 아! 결국 뒤로 돌립니다.”

초반에 타이밍을 잡고 거세게 몰아붙였던 AC 밀란이지만, 맨체스터 시티의 미드필더들이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이후, 그 힘이 크게 떨어지고 말았다.

이미 예상되었던 결과였다.

“AC 밀란의 계산은 초반 10분에 골이 나오지 않은 순간에 이미 무너졌어요. 뒤지고 있다는 부담감을 최대한 빨리 없애기 위해서 초반에 힘을 준 거거든요? 근데 그게 실패해버렸어요. 경기가 꼬였죠?”

AC 밀란의 알레그리 감독 역시 젊은 나이에 훌륭한 커리어를 쌓아가는, 좋은 감독이었다.

오늘 선수 명단을 보고 경기가 이렇게 흘러갈 거라 생각하지 못했을 리 없었다.

하지만 가투소가 빠진 상황에서 AC 밀란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스쿼드가 지금의 스쿼드였다.

“빠르게 골을 넣지 못했으니 계속 공격적으로 나서야 해요. 그러려면 각 진영 사이의 공간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수비라인을 올려야 하는데, 아바테와 시우바라면 몰라도 네스타와 얀쿨로프스키에게는 무리예요.”

이 스쿼드의 장점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빠른 시간에 선취 골을 넣어 부담감을 없애야 했다.

그리고 천천히 경기를 운영하면서 웅크리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첫 단추부터 꼬였고, 한 골을 넣어야 하는 상황에서 웅크릴 수도 없었다.

결국, 수비는 네스타와 시우바, 믿음직한 두 명의 수비수에게 맡기고 계속 공격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세도르프가 호비뉴에게 연결하지만, 아이고, 또 걸립니다. 이번에는 배리의 압박에 막히고 맙니다.”

역시 쉽지 않았다.

중원의 주도권은 조금씩 맨시티 쪽으로 옮겨오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장악하기 시작해 결국엔 완전히 가져올 것이었다.

“배리, 뒤쪽으로 돌리면서 여유롭게 경기를 운영합니다. 보아텡에게.”

맨체스터 시티는 급할 것이 없었다.

오늘 무승부만 거두어도 챔피언스리그 8강 티켓은 맨체스터 시티의 것이었다.

그리고 강력한 중원 장악력과 단단한 포백라인을 바탕으로 압도적인 프리미어리그 최소 실점 1위를 달리는 맨체스터 시티가 실점만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달려들면 상대는 골을 넣기 쉽지 않았다.

“보아텡이 콤파니에게. 다시 하트에게 주면서 천천히 돌립니다.”

투톱이다 보니 수비수들의 후방 빌드업도 그리 편하지는 않았다.

다행히 몇 번의 부상 이후 파투의 스피드와 활동량이 상당히 떨어졌기 때문에 그리 강한 압박이 가해지지는 않았다.

“하트, 왼쪽으로 빼줍니다!”

중앙에서 두 명의 센터백이 밀란 공격수들의 압박을 버텨주는 동안, 성배는 조금씩 전진했다.

측면 자원이 없는 다이아몬드 4-4-2.

성배는 별다른 압박 없이 자신의 플레이를 펼칠 수 있었다.

‘뒷공간을 안 비우네.’

지난 경기의 결승골이 되었던 골은 AC 밀란 수비진의 뒷공간을 파고든 실바의 움직임과 그에 맞춰 정확한 패스를 넣어준 성배의 롱패스로 만든 골이었다.

AC 밀란은 이번 시즌 세리에A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수비진의 노쇠화로 뒷공간이 자주 열리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 AC 밀란 수비진의 단점으로 꼽혔으며, 지난 1차전에서는 결승골을 내주게 된 원인을 제공했던 그 단점.

그래서 오늘은 아예 라인을 내리고 있었다.

‘그러면 그 앞을 노리면 되지.’

수비진이 내려가면서 미드필드와의 거리가 넓어졌다는 뜻이었다.

수비형 미드필더도 겨우 한 명 두고 있는데, 수비라인이 밑으로 내려가 있으니 그 사이 공간은 거의 태평양만한 크기였다.

“주의 롱패스! 투레가 떨어뜨리고, 실바!”

수비수 앞공간이 저렇게 벌어지면 테크니컬한 드리블과 창조적인 패싱 능력을 보유한 공격형 미드필더의 놀이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에는 실바가 있었다.

그 공간에서 제대로 놀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춘 선수였다.

“아바테! 간단히 벗겨집니다! 가볍게 찍어서 테베즈에게!”

아바테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봉쇄한 경기 이후 풀백으로서도 많이 성장했다.

무시무시한 스피드 외에도 수비 센스 역시 빠르게 성장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피지컬을 앞세운 선수는 잘 막아도 테크닉을 앞세운 선수에게는 약점을 보였다.

아바테를 가볍게 벗겨낸 실바는 볼의 아래쪽을 찍어 테베즈에게 연결해주었다.

“테베즈의 돌파! 그리고 슈팅! 네스타! 네스타가 겨우 막아냅니다! 멋진 태클! 역시 네스타입니다!”

명불허전.

네스타의 태클이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히 볼을 향해 들어가며 슈팅을 걷어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막아낼 수는 없었다.

근본적으로 이런 상황이 나오지 않게 막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실점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앞을 비우면 앞을, 뒤를 비우면 뒤를 노려주지.’

성배의 롱패스는 이미 유명했다.

그리고 오늘은 투톱의 압박으로 상황이 잘 나오지 않지만, 보아텡 역시 상당히 정확한 롱패스를 가진 선수였다.

스쿼드가 얇아 쓸 수 있는 전술이 많지 않은 AC 밀란.

그리고 AC 밀란 스쿼드의 단점은 맨체스터 시티의 장점과 정확히 겹쳤다.

< 낭만필드 - 257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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