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256 >
지난 맨체스터 더비 이후 치러진 약물 검사에서 콜로 투레에게서 금지 약물 성분이 검출되었다는 발표에 맨체스터가 술렁였다.
비록, 아데바요르와 한 판 붙으면서 자체 징계를 받은 사이, 보아텡이 나타나 자리를 잡으면서 백업으로 밀리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맨시티 선수단에서 투레의 역할은 작지 않았다.
특유의 쾌활한 성격으로 어린 선수들의 상담 역할을 해주고 있었고, 선수단의 분위기 메이커가 되어주기도 했다.
그런 투레가 약물 검사에 걸렸다는 소식에 맨시티 선수단은 충격에 빠져 들었다.
[콜로 투레, “아내의 다이어트 약을 복용했을 뿐.”]
투레는 아내가 건네준 다이어트 약을 복용했을 뿐이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투레가 너무 안일하게 행동한 것은 맞았다.
프로 선수는 어떤 약을 복용하든 민감하게 반응하고 하나하나 다 따져서 복용해야 하는데, 아내가 줬다고 그냥 받아먹은 것은 투레의 잘못이었다.
하지만 투레의 동료로서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었다.
[드록바, 팀 동료 투레 변호. “바보 같은 실수일 뿐.”]
코트디부아르 국가대표팀 동료인 드록바도 투레에 대한 변호에 동참했다.
아르센 벵거 역시 아내의 다이어트 약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투레의 해명을 믿는다며 단지 실수일 뿐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는 가장 오래 뛴, 경험이 많은, 뛰어난 선수 중 한 명이다.”라고 말하며 “어떤 바보라도 이것이 단지 실수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 덧붙였다.
투레가 자신의 퍼포먼스를 향상시키기 위해 그런 짓을 했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으며,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투레를 지원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맨체스터 시티는 투레를 100% 지지합니다. 아내가 준 다이어트 약을 복용했다는 말을 전적으로 믿고, 항상 그의 뒤에 서 있습니다.”
성배는 맨체스터 시티의 주장으로서 팀을 대표해 여러 인터뷰에 나섰다.
그리고 인터뷰마다 투레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변명일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프로가 아무 약이나 주워 먹었다는 건 믿기 힘듭니다. 혹시 고의적으로 복용하고 징계 수위를 줄여보려고 거짓말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일단 양성 반응이 나온 이상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투레의 일방적인 주장만 나온 상황에서 전적으로 투레를 믿어주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물론 그렇습니다. 정말 정확한 것은 나중에 조사가 끝나봐야 알겠죠. 하지만 정확한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맨시티는 투레를 지지할 겁니다. 우리는 투레가 어떤 선수인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그딴 반칙이 아니더라도 뛰어난 선수이면서 좋은 사람입니다. 그런 야비한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투레는 안 맞는 선수들과는 끝도 없이 안 좋아 험악한 관계에 있지만, 잘 맞는 선수들과는 순식간에 절친이 되는 선수였다.
성배는 투레와 잘 맞는 편이었다.
같은 시기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했고, 같은 주전 수비수로서 많은 대화를 나누며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성배는 투레에게 단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렇게 비겁한 선수는 아니라 확신했다.
상세하게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이 일의 결과를 알고 있기도 했고.
“하지만 프로 선수가 약을 함부로 복용하는 건 잘못이지 않습니까?”
물론, 투레의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프로 선수가 아무 생각 없이 약을 먹었다는 건 아주 큰 문제였다.
성배와 실바는 팬이 준 과자 하나, 파이 하나를 먹을 때도 일일이 요리사에게 확인을 받았고, 그럴 상황이 되지 않으면 한 조각 이상 먹지 않았다.
고작 간식 하나에도 그렇게 철저한 두 선수에 비해 민감할 수밖에 없는 약물을 아무 생각 없이 복용한 건 큰 잘못이었다.
“물론 그건 저도 좀 실망스럽습니다. 그건 프로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고, 저도 실망했습니다. 하지만 기회가 다시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투레도 자신의 잘못을 완전히 부정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실수였으니 선처를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투레가 그런 식의 포지션을 잡은 만큼, 맨시티 선수들과 만치니 감독, 그리고 맨시티의 입장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콜로를 한 사람의 선수로써, 그리고 한 사람의 남자로써 사랑합니다. 그래서 그가 다시 웃는 얼굴로 돌아와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투레의 역할은 그라운드 위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없는 동안 누군가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대신해 주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주장인 성배 역시 조금 더 열심히 뛰어야 할지도 몰랐다.
‘이걸로 흔들리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런 일로 흔들리기에는 성배의 지난 세월이 너무 험했다.
하지만 경험은 많아도 은근히 젊은 팀인 맨체스터 시티였기에 동료들이 흔들릴 확률은 작지 않았다.
다만, 동료 선수들 역시 리그 정상급의 위치를 차지한 선수들인 만큼 금방 회복할 거라 기대할 뿐이었다.
***
“콜로. 뭐하고 있었어? 설마 혼자 궁상떨고 있던 건 아니겠지?”
“어허, 우리 형을 어떻게 보고 그런 소리를. 오랜만에 쉬게 되어서 좋다고 빈둥대고 있었을 걸?”
언론에 대고 투레를 응원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성배는 콤파니와 야야 투레를 대동하고 투레의 집을 찾았다.
실의에 빠져있을 지도 모르는 투레를 응원하고 힘을 주기 위해서였다.
“뭐,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가 찾아올 거라고 예상하진 못했다는 거네. 저 바보 같은 얼굴을 좀 보라고.”
콤파니의 말처럼 투레는 세 사람의 방문에 깜짝 놀랐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 뭐야! 너희. 이틀만 있으면 챔피언스리그 16강인데 이렇게 돌아다니면 어쩌자는 건데? 훈련 안 해?”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이 달려있는 16강 2차전이 겨우 이틀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안 그래도 중요한 시기에 이런 사고를 쳐버려서 미안해하는 중이었는데, 팀의 핵심인 주장과 부주장에 미드필드의 핵심인 동생까지 찾아오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훈련은 이미 끝났어. 그리고 어차피 저녁도 먹어야 하는데, 저녁 얻어먹을 겸해서 겸사겸사 온 거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주방이 이 쪽이었나?”
몇 번 와본 경험이 있는 야야 투레가 마치 제 집인 것처럼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자, 자. 그럼 나도. 실례합니다아!”
콜로 투레의 얼굴을 마주 보며 한 번 씨익 웃어준 콤파니도 야야 투레의 뒤를 따라 당당하게 집 안으로 입성했다.
“이젠 내 차례인가.”
성배도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자신의 집에 입성한 세 명의 건장한 남정네들을 보면서 콜로 투레는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문을 닫고 따라 들어왔다.
“아, 어서와. 콜로. 여기는 아워. 형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지? 그리고 여기는 야신이랑 사니아. 마찬가지로 형도 잘 알고 있을 거야.”
항상 자신감이 넘쳐 어떻게 보면 오만하게까지 보이는 야야 투레.
가족들 앞에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콜로 투레의 아내인 아워 투레와 아들 야신, 딸 사니아를 콜로 투레에게 소개하는 정신 나간 짓까지도 서슴치 않았다.
“미친 놈. 오늘 무슨 날이냐? 평소보다도 더 정신이 나갔네, 저거.”
이 어이없는 상황에 콜로 투레의 입에서 상스러운 단어들이 이어졌다.
야야 투레는 그저 좋다고 웃을 뿐이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부인. 남편의 팀 동료, 주성배라고 합니다.”
“뱅상 콤파니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콜로 투레의 와이프인 아워 투레도 벙찐 표정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었고,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아, 네. 반가워요. 이 사람 아내 되는 아워 투레입니다.”
굳이 다이어트 약을 먹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딱 보기 좋은 몸매를 가진 콜로 투레의 아내가 세 사람을 향해 인사했다.
“너희들도 인사해야지? 잘 알지? 아빠랑 삼촌이랑 같은 팀에서 뛰는 친구들이야.”
조그맣고 귀여운 곱슬머리의 아이 두 명이 아워의 등 뒤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그 귀여운 모습에 콤파니와 야야, 콜로, 아워가 환하게 미소 지었지만, 성배는 씁쓸하게 웃었다.
“안녕. 뱅상 삼촌이야. 반가워.”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오...”
흑인이든 백인이든 황인이든 상관없이 모든 아기들은 전부 다 귀여웠다.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되었을까, 말까한 두 아이의 모습에 자리한 모든 어른들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성배만 빼고.
“반가워. 주성배라고 해.”
엘리자베스가 먼저 떠났을 때, 이 정도 나이였다.
벌써 10년도 넘은 일이었기에 예전만큼 감정이 올라오지는 않았지만,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마 죽을 때까지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을 볼 때마다 생각날 것이었다.
“어! 우리 아빠 주장완장 뺏어간 아저씨다!”
그때, 투레의 아들, 야신이 외쳤다.
그리고 따가운 눈빛을 보냈다.
딸인 사니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아시아 선수로 유럽 축구계에서 20년 이상 굴러먹으며 편견 섞인 따가운 눈빛과 평생을 함께해 온 성배였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의 따가운 눈빛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하하하, 맞다, 맞아. 아빠 대신 너희가 좀 혼내주겠니?”
“이 자식이야, 이 자식! 혼내줘! 본때를 보여주라고!! 하하.”
“주, 살아남아야 한다. 우린 아직 할 일이 많으니까.”
“호호호.”
그리고 함께 자리한 어른들은 지금 이 상황을 말릴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아이들을 부추기며 즐기고 있었다.
“저기... 이거 좀 말려줘 봐.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성배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귀엽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계속 자신을 노려보고 있으니 당황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왜? 사실이잖아.”
이미 자기들끼리 자리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던 콜로 투레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아이들도 귀엽고, 당황하는 자신의 모습도 재미있는 듯했다.
“얘들아. 너희 아빠 다음 주장은 카를로스였단다. 알지? 그 원숭이 닮은 아저씨 있잖아. 아, 인종차별이 아니라 진짜 원숭이 닮은 아저씨. 그 아저씨가 너희 아빠 다음 주장이란다. 나는 그 아저씨 다음이야.”
결국, 테베즈를 팔아서 생존을 시도했다.
자신의 살 길은 역시 자신이 직접 찾아야 했다.
저 믿을 수 없는 동료들의 도움은 기대할 수 없었다.
“와, 카를로스한테 일러야겠다. 자기 살겠다고 카를로스 비하하는 거 봐. 믿을 수 없는 주장이네. 주장 바꿔!”
흥분한 야야 투레의 평소와 다른 모습.
차라리 평소의 오만한 태도가 백만 배는 더 마음에 들었다.
평소에는 그냥 눈꼴이 시릴 정도에 그쳤겠지만, 지금은 야야 투레의 입에 축구화를 쑤셔 넣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일러라. 차라리 카를로스랑 한 판 붙는 게 편하지. 애기들이 훨씬 무섭다.”
테베즈랑 붙는 건 전혀 무섭지 않았다.
고작 이런 걸로 삐지는 사람도 아니었고.
아이들의 원망어린 눈길과 마주하는 것보다는 테베즈를 팔아 살아남는 게 편했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까 이번 시즌 시작했을 때 주장은 이 아저씨 아니었어.”
“아, 그래? 뭐야. 너 때문에 나도 헷갈렸잖아.”
성배의 말에 다행히 야신의 기억이 돌아오며 성배를 향한 원망의 눈빛은 사라졌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 낭만필드 - 25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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