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255화 (342/356)

< 낭만필드 - 255 >

“아, 호비뉴의 크로스가 너무 성급했어요! AC 밀란이 라인을 올리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센터백 라인이 노장 선수들로 이루어진 관계로 그 공간을 커버하긴 힘들거든요? 수비라인을 정비할 시간은 필요했는데요. 아쉬운 플레이가 나왔네요.”

라인을 올려 골을 노리려다 보니 네스타와 예페스, 35세의 두 선수가 커버하기에는 수비 뒷공간이 너무 넓어졌다.

역습을 얻어맞을 위기에서 너무 성급하게 볼을 처리한 호비뉴의 크로스도 아쉬웠다.

너무 급하게 처리했고, 하필이면 그게 정확한 롱패스를 자랑하는 성배에게 흘러가면서 수비수들이 돌아갈 시간이 나지 않았다.

“아, AC 밀란! 이렇게 되면 차라리 수비를 굳혀 무승부를 노리는 게 나을 뻔했습니다! 홈에서 실점한 것도 뼈아픈데, 심지어 패배하기 직전입니다!”

AC 밀란의 상황이 심각해졌다.

0-0으로 끝내도 8강 진출에 불리해졌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골을 노렸던 것인데, 심지어 먼저 실점을 해버리고 말았다.

AC 밀란이 심각해진 만큼, 맨시티 벤치의 분위기는 밝아졌다.

***

“맨체스터 시티, 시간을 보내기 시작합니다. 이대로 승리를 굳히려 하는 모습입니다.”

원정에서 선취 골을 넣었고, 남은 시간은 겨우 5분여.

맨체스터 시티 입장에서는 굳이 플레이를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선취 골 이후 맨시티는 뒤에서 천천히 볼을 돌리면서 느긋하게 시간을 끌었다.

“리차즈, 반대편으로 크게 넘겨줍니다. 여유롭게 최대한 시간을 끄는 맨시티, AC 밀란은 급해집니다.”

특히 포백라인에서 시간을 끌어주는 플레이가 기가 막혔다.

리차즈는 그렇다 치더라도 어지간한 미드필더보다 패싱 능력이 더 뛰어난 보아텡과 콤파니, 성배가 포진한 맨시티의 포백라인은 불안한 모습 하나 없이 편안하게 볼을 돌렸다.

“파투의 압박을 간단하게 피합니다. 천천히 시간을 끌면서, 아! 가투소의 태클! 파울이 선언됩니다! 거친 태클!”

파투의 태클을 피해 중앙으로 빠진 뒤, 다시 콤파니에게 볼을 돌려주려던 성배는 45도 뒤쪽에서 들어온 가투소의 태클을 보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발이나 다리가 가투소의 태클 사이에 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만약 두 다리 사이에 어디 하나라도 빨려 들어갔다면, 발목이 박살 났을 수도 있었다.

“이봐! 적당히 하라고! 나이가 드니까 거친 플레이와 양아치를 구별하는 법까지 까먹은 거야?”

경기 중 감정을 거의 표출하지 않고, 혹시나 표출하더라도 계산에 의한 것인 경우가 많은 성배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까지 냉정을 유지하기는 힘들었다.

“뭐, 이 새끼야? 이 새끼가 건방지게!”

10살 가까이 어린 성배의 따끔한 폭언에 가투소도 같이 흥분했다.

원래 가투소는 전성기 때도 거친 플레이로 알아주는 선수였다.

플레이가 투박한 편이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는 고의적으로 거칠게 플레이하면서 상대의 전의를 꺾는 역할을 맡았던 것이었다.

“이거 어쩌면 퇴장이 나올지도 모르겠는데요? 양발 태클이라고 하면 양발 태클로 볼 수도 있는 태클이었거든요? 약간 애매하기는 한데, 바로 퇴장이 나와도 크게 할 말은 없어요.”

하지만 그런 전투적인 플레이는 기본적으로 왕성한 활동량으로 대변되는 피지컬이 받쳐주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피지컬이 떨어진 가투소는 이제 적절한 타이밍을 잡기가 어려워진 상황.

예전이었다면 터프한 플레이가 되었을 것들이 이젠 의미 없이 거칠기만 한 플레이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럼 이게 뭡니까? 난 당신을 분명 존경하지만, 지금 이것까지 존중할 순 없는데 말이죠. 지금 이 태클에 당당합니까? 그 AC 밀란의 엠블럼에 손을 얹고?”

크게 화가 났지만, 성배는 이성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목소리를 낮추고 따박따박 촌철살인의 멘트를 날리는 성배로 인해 가투소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흥분해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는데도 그렇게도 사랑하는 AC 밀란을 거론하자 혼자서 분을 삭일 수밖에 없어진 것이었다.

그 자신도 지금의 태클이 위험했음을 알고 있었다.

“아, 경고가 주어집니다. 가투소, 이걸로 경고 누적! 2차전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레드 카드가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맨체스터 시티 입장에서는 경고나 퇴장이나 같은 의미였다.

오늘 경기는 끝이 보이는 상황이었고, 어차피 2차전에 가투소가 나서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

AC 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원정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맨체스터 시티는 흐름을 타고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바로 다음에 펼쳐진 FA컵 4라운드 재경기에서는 백업 선수들이 주로 출전했음에도 제코와 비에라가 두 골씩을 터뜨리며 활약한 끝에 5-0의 대승을 거두었다.

다음에 이어진 풀럼과의 리그 경기에서는 몸이 무거운 모습을 보이며 무승부에 그쳤지만, FA컵 32강전에서 만난 아스톤 빌라를 가볍게 잡아내며 분위기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AC 밀란과의 16강 2차전 경기를 나흘 앞둔 위건과의 경기, 선발 스쿼드의 절반 정도를 백업 선수들로 채우며 챔피언스리그를 준비했다.

“역시 시즌 후반기의 위건은 굉장한 저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리그 2위를 달리고 있는 맨시티를 상대로도 전혀 물러서지 않습니다.”

원래 위건은 잔류 본능으로 유명한 클럽이었다.

2005/06시즌 승격한 첫 시즌에는 리그에서 무려 10위를 차지하며 돌풍을 선보였지만, 그 핵심 멤버들을 모두 빼앗긴 뒤부터는 항상 마지막까지 강등권 싸움을 벌여야 했다.

2006/07시즌에는 18위로 시작한 마지막 경기에서 16위 셰필드를 꺾으며 골 득실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잔류에 성공했고, 2007/08시즌에는 2승 2무 10패에서 감독 교체 후 8승 8무 7패를 기록하며 겨우 잔류에 성공했다.

“이 선수들, 한 3월쯤 되면 어디 가서 단체로 수련이라도 하다가 오는 건가요? 만약 시즌 초반부터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유로파 리그도 진출할 기세네요. 정말 불가사의예요.”

2008/09시즌은 중위권으로 마쳤지만, 겨우 한 시즌뿐.

로베르토 마르티네즈 감독이 이끄는 위건은 지난 시즌 말도 안 되는 생존력을 보여주며 프리미어리그 잔류에 성공했다.

지난 시즌 위건의 성적은 9승 9무 20패.

37득점에 실점은 무려 79골로 골 득실 -42, 리그 최하위였다.

하지만 전승 행진을 달리던 첼시에게 7라운드에 첫 승을 기록, 2005/06시즌 승격한 이후 처음으로 빅4 클럽에게 승리를 거두었고, 29라운드에 리버풀을 잡았다.

그리고 35라운드에서는 0-2로 뒤지다가 10분 만에 3골을 만들어내는 뒷심을 보이며 역전승을 거두고 잔류를 확정지었다.

이 정도 되면 거의 DNA였다.

“라키티치, 살짝 제치고 지나갈 때, 디아메의 파울! 디아메의 파울을 얻어내며 라키티치가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어냅니다.”

맨체스터 시티도 스쿼드의 절반을 백업 멤버로 채운 상황에서는 이런 위건을 상대하기 버거운 모습을 보였다.

경기의 주도권은 물론 맨시티가 잡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득점 기회를 많이 만들지도 못했고, 답답한 경기가 이어졌다.

“오늘 경기력이 조금은 아쉬운 맨체스터 시티지만, 제공권만큼은 확실히 앞서지 않습니까? 이번 프리킥 찬스를 어떻게든 살릴 필요가 있습니다.”

“제공권도 제공권이지만, 주의 프리킥이 위협적이거든요? 위건, 위험한 위치에서는 프리킥을 내주면 안 되는 건데 불안해지네요.”

29라운드가 진행되는 현재, 위건의 순위는 20위.

하지만 최근 다시 경기력이 물이 올라오는 중이었다.

알카라즈, 콜드웰, 피게로아, 클레버리, 디아메, 맥카시, 왓슨, 모제스, 로다예가 등 구성원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은 게 위건이었다.

게다가 위건 특유의 후반기 버프가 있었고, 주전의 반이 빠진 맨체스터 시티의 상황도 겹쳤다.

‘오늘 보니까 필드골이 나오긴 좀 힘들어 보이는데.’

잔류하려는 위건의 의지에 도저히 필드골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세트피스를 맡겼다는 건 이럴 때 해결해달라는 뜻이었다.

안 그래도 이번 시즌 리그에서 프리킥 득점이 너무 적어서 눈치 보였는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골을 넣어줘야 할 것 같았다.

“주가 왼발 프리킥을 준비합니다. 알-합시 골키퍼, 목이 터져라 소리지르면서 수비벽을 움직입니다.”

위건에서 알-합시 골키퍼는 그나마 제 몫을 다해주는 선수였다.

명실상부한 아시아 현역 최고의 골키퍼인 알-합시는 194cm의 큰 신장과 뛰어난 반사신경으로 위건의 뒷문을 굳게 지켜주고 있었다.

쉽게 대할 수 없는 골키퍼였다.

“주, 프리킥을 준비합니다. 왼발로 처리하기 딱 좋은 각도입니다.”

알-합시를 노려보면서 뒤로 물러났다.

성배도 힘을 주고 준비하는 프리킥이었다.

이번에는 꼭 골을 넣을 생각이었다.

‘제대로 휘어야 할 텐데.’

한 번 성공한 적은 있지만, 그 이후 두세 번 더 시도했을 때는 성공하지 못했다.

제대로 감기기만 한다면 위협적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제대로 감기는 게 생각보다 힘들었다.

“주, 옆으로 한 번 뛰고 달려듭니다! 슈팅!”

성배는 왼쪽으로 한 걸음 크게 움직인 뒤에 볼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왼발 아웃 프런트로 크게 감아서 돌렸다.

수비벽의 바깥쪽으로 감기며 골대로 향하는 아웃 프런트 프리킥이었다.

‘이건 제대로 감겼다.’

그리고 오랜만에 발에 제대로 된 감각이 전해졌다.

수비벽의 바깥쪽을 크게 돌아 감기면서 골대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크게 감겼다.

“골! 골입니다! 주의 멋진 아웃 프런트 프리킥! 환상적인 각도입니다!”

열심히 연습해서 첫 도전에 성공했지만, 그다음에는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아웃 프런트 프리킥이었다.

그 뒤에도 연습은 항상 하고 있었고, 이제 좀 쓸만하다, 싶어 다시 꺼내들었다.

결과는 훌륭했다.

“이 프리킥을 한 번 더 보네요! 주도 그렇고 인프런트 프리킥이 더 정확해서 자주 구사하거든요? 가끔 이런 킥을 보여주면 골키퍼가 당황하죠!”

열심히 시야를 확보했는데, 갑자기 옆으로 뛰면서 성배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살짝 당황한 알-합시였다.

다음 플레이도 한 박자 늦었고, 그 덕에 생각했던 것보다 살짝 더 꺾인 프리킥이 그물을 흔들었다.

“주가 멋진 프리킥으로 득점에 성공하면서 선취 골을 만들어냈습니다. 위건은 오늘 목표가 승점 1점이었을 텐데요, 이렇게 되면 힘들어지는데요?”

고전하던 상황에서 나온 프리킥 득점.

비록 챔피언스리그 준비 때문에 주전 선수들에게 휴식을 준 것이었지만, 그래도 이길 거라고 생각했던 시티즌들과 맨시티 코칭스태프들은 드디어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29라운드까지 치열하게 우승 경쟁을 펼치는 맨시티에게 오늘 경기의 승리는 굉장히 중요했다.

***

결국, 맨체스터 시티는 선취 골을 마지막까지 지켜내며 1-0으로 승리를 거두고 치열한 우승경쟁을 이어갔다.

특히 성배가 오랜만에 프리킥 득점에 성공, 리그 3호 골이자 시즌 5호 골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맨시티는 연속된 승리로 분위기를 끌어올린 채 AC 밀란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생각했다.

[맨시티 중앙수비수 콜로 투레, 금지 약물 검출!!]

뜬금없는 뉴스가 터지기 전까지는.

< 낭만필드 - 255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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