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251 >
레스콧은 치명적인 실수로 페널티킥을 내주며 울버 햄튼에게 선취 골을 허용했고, 이후에도 조금씩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레스콧의 불안함은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력에 아주 크게 영향을 주는 건 아니었다.
“선취 골을 내준 맨시티입니다만, 금방 태세를 정비하고 경기 주도권을 빼앗아왔습니다. 배리, 왼쪽의 주에게.”
레스콧이 불안한 모습을 보였기에 맨시티도 100%의 경기력을 보여줄 순 없었다.
콤파니가 레스콧을 중점적으로 커버하느라 빌드업 과정에 참여하는 빈도가 줄었고, 수비진도 조금씩 뒤로 라인을 물려야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울버 햄튼에게 주도권을 빼앗아 오기엔 충분했다.
‘그래. 그거야.’
그리고 빌드업 역시 마찬가지였다.
콤파니가 참여하지 못하는 건 분명 아쉬웠지만, 원래 성배는 혼자서 후방 빌드업을 도맡아 해결하던 선수였다.
상대가 강팀이라면 몰라도, 약팀일 경우 여전히 혼자 해낼 수 있었다.
“반대편으로 크게 가로지르는 패스! 존슨에게 연결됩니다!”
성배의 패스는 오른쪽을 파고드는 존슨에게 연결되었다.
실바와 밀너에게 밀려 교체로 주로 출전하는 존슨이지만, 존슨이 보여주는 모습은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교체로 나와 활약하는 짧은 시간에도 맨체스터 시티가 탐내던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크로스! 아, 이게 걸립니다! 살짝 아쉬운 크로스! 수비수에게 걸리지 않고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좀 아쉽습니다.”
비록, 선발로만 경기에 나서면 교체로 나설 때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활약을 보여주긴 했지만.
체력적인 부담으로 활동량이 많지 않고, 자연히 수비에 거의 가담하지 않는 존슨이었기에 선발로 나왔을 때 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아쉽긴 하지만, 어쨌든 맨체스터 시티의 코너킥으로 경기가 재개됩니다.”
“이제 전반전도 거의 끝나가거든요? 길게 봐도 10분이 채 남지 않았는데, 맨체스터 시티 입장에서는 약팀과의 홈경기에서 리드를 빼앗긴 채 후반전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을 거예요. 여기서 만회 골을 넣을 필요가 있죠.”
주도권을 빼앗아오긴 했지만, 아직 만회 골이 들어간 상황은 아니었다.
전반전이 끝나기 전에 만회 골을 넣어야 하는 맨시티였다.
그리고 이번 코너킥 찬스를 살리기 위해 성배가 천천히 올라왔다.
‘제코가 들어오면서 확실히 제공권은 크게 좋아졌어.’
야야 투레와 콤파니, 두 사람만 믿고 가야했던 상황에서 ‘보스니아산 고공 폭격기’ 제코의 합류는 제공권에 아주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투레가 빠지고 보아텡이나 레스콧이 출전하는 것도 플러스 요인이었다.
“울버 햄튼, 맨체스터 시티의 세트피스를 조심해야 합니다. 제코의 영입으로 제공권이 크게 좋아졌지 않습니까? 여기에 주의 정확한 킥이 더해지면 그 위력은 정말 가공할 만합니다.”
네 명의 피지컬 괴물들이 박스 안에서 울버 햄튼 수비수들과 경합을 벌였다.
울버 햄튼 선수들도 프리미어리그의 선수들인 만큼 어디 가서 피지컬이 부족하다는 소리는 안 듣는 선수들이었지만, 맨시티 떡대들의 피지컬이 너무 훌륭했다.
‘좋아, 한 번 넣어보라고.’
성배의 시선은 제코를 향해 있었다.
리그에 적응한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과정이었지만, 한 경기 만에 끝날 수도 있었고, 1년, 2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골이란 그 기간을 크게 줄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제코, 뜹니다! 아, 아쉬운 헤더! 높이 뜹니다.”
하지만 아직 제코의 컨디션이 완벽하지 않았다.
원래 제공권에 비해서 헤딩 스킬이 부족하다고 평가받는 제코는 경기 감각의 저하로 제대로 된 헤더를 보여주지 못했다.
“높게 뜬 볼을 향해 점프! 콤파니, 반대편으로 투레!! 투레, 침착하게 밀어 넣으며 동점 골을 기록합니다!”
제코의 헤더는 아쉽게 빗나갔지만, 맨시티에는 제코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각자 자신의 마크맨을 가볍게 따돌린 콤파니와 투레는 제코의 머리에 맞고 높게 떠오른 볼을 따내며 어시스트와 득점을 기록했다.
“아, 울버 햄튼, 이런 식으로 동점을 허용하면 좋지 않은데요. 적어도 전반전은 앞선 채 끝내야 최소한 무승부라도 노려볼 수 있거든요?”
전반전이 끝나기 전에 동점을 만들려던 맨체스터 시티의 계획은 성공했다.
예기치 않은 페널티킥 허용으로 잠시 흔들렸지만, 이내 경기 주도권을 되찾았던 맨체스터 시티는 전반전이 끝나기 전에 동점을 만들어내며 확실하게 승기를 잡았다.
***
“아, 레스콧!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합니다! 부상인 것 같습니다!”
분위기를 전환한 뒤 맞이한 후반전, 거의 시작과 동시에 레스콧이 그라운드 위에 드러누웠다.
발이 느린 레스콧의 뒷공간을 파고든 도일에게 패스가 연결된 것을 쫓아가다가 햄스트링이 올라온 듯했다.
다행히 볼은 콤파니가 먼저 걷어냈지만, 레스콧은 더 이상 뛰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졸리온의 운은 여기까지구나.’
그리고 그 순간, 성배는 레스콧이 보아텡과의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났음을 확신했다.
투레가 징계로 빠진 이후, 보아텡과 레스콧은 번갈아 경기에 출전하며 콤파니와 성배의 조율에 충실히 따르며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신장이 작은 탓에 어쩔 수 없이 제공권에 약점이 있던 투레는 192cm의 장신 보아텡과 188cm의 장신 레스콧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그리고 이어진 두 선수의 경쟁.
‘햄스트링이면 최소 한 달인데... 그 기간이면 끝이지.’
한 달이면 보아텡이 자신의 자리를 확실히 굳히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레스콧이 빠진 동안, 보아텡이 1옵션, 투레가 2옵션으로 출전할 것이었고, 이번 시즌 보아텡과 몇 경기를 함께 뛰어본 성배는 한 달이면 충분하다고 보았다.
“아악!! 제기랄!!”
그라운드 위에 누운 레스콧은 양 손으로 바닥을 강하게 내리쳤다.
레스콧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부상으로 빠지면 자신의 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을.
보아텡에게 점점 밀리면서도 어떻게든 버텨온 레스콧이지만, 그것도 슬슬 끝이 보이고 있었다.
***
“보아텡이 왼쪽으로 크게 벌려줍니다! 그리고 주가 질주합니다! 롱패스 한 번에 흔들립니다!”
레스콧을 대신해 출전한 보아텡은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었다.
아직 레스콧의 부상 정도가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행여 부상이 아니더라도 경쟁을 끝내려는 듯했다.
시작과 동시에 정줄 놓은 실수로 페널티킥을 내주고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꾸준히 불안했던 레스콧과 비교하면 보아텡의 10분 활약은 눈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인사이드로 트래핑!”
보아텡이 볼을 잡음과 동시에 왼쪽 측면을 통해 빠르게 올라가던 성배였다.
성배 못지않은 정확한 롱패스를 가진 보아텡이었기에, 달려 나가던 성배의 발 앞에 정확히 볼이 떨어졌다.
‘높게 올리면 되겠다.’
성배와 보아텡, 둘이서 합작한 역습이었기 때문에 울브스의 선수들뿐만 아니라 맨시티 선수들까지도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전이었다면 이럴 때 시간을 끌어야 했겠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지체하지 않고 크로스! 높게 뜹니다!”
성배는 높게 볼을 띄워서 중앙으로 크로스를 올려주었다.
높게 뜬 볼이 떨어지는 동안 울브스 수비수들과 맨시티 공격수들이 근처에 자리 잡았다.
선수들 사이의 자리싸움이 끝나갈 즈음, 성배의 올려준 볼이 떨어졌다.
“제코, 헤더! 헤네시! 아, 손에 맞고 뒤로 흐릅니다! 헤네시의 선방! 한 골을 막아냅니다!”
이젠 한 박자 빠른 크로스를 시도할 수 있었다.
제코 덕분이었다.
이번에도 높게 띄운 크로스가 떨어지는 동안 어떻게든 자리를 잡은 제코는 위협적인 헤더로 득점을 노려주었다.
압도적인 제공권에 비해 헤딩 기술이 투박하다는 건 좀 아쉬웠지만, 그것만으로도 정상급의 타겟 스트라이커였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밀어줄 테니까 오늘 데뷔 골 넣어라.’
아담 존슨의 크로스에 이은 테베즈의 득점으로 리드를 잡아나가기 시작한 맨시티였다.
겨우 한 골 차의 리드였지만, 경기 진행 상황을 보면 따라잡힐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한 명쯤은 제코를 티 나게 밀어줘도 문제가 생기진 않을 것이었다.
“주, 코너킥을 준비합니다. 제코 한 명이 가세한 것만으로도 맨시티의 제공권이 굉장히 좋아지지 않았습니까? 울브스, 조심해야 합니다.”
세트피스 상황이 올 때마다 고전을 면치 못했던 울버 햄튼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 맨시티에게 세트피스를 내줄 때마다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람이라는 게 긴장이 지나칠 경우, 제 기량을 전부 보여줄 수 없었다.
“코너킥 올라옵니다! 제코!!”
성배의 코너킥이 올라갔고, 제코, 콤파니, 투레, 보아텡 네 명의 장신 선수들이 뛰어올랐다.
제코가 합류한 이후부터 연습해왔던 약속된 플레이에 따라 콤파니, 보아텡이 제코의 양옆에서 상대 수비수들을 견제했고, 제코는 그 가운데에서 힘차게 뛰어 올랐다.
“데뷔 골! 제코의 데뷔 골입니다! 데뷔전에서 데뷔 골을 터뜨리는 에딘 제코!! 프리미어리그를 향한 출사표를 던집니다!”
제코는 크로스와 프리킥, 코너킥을 헤딩으로 연결한 여덟 번째 시도 만에 데뷔 골을 기록했다.
그 중 성배가 밀어준 패스가 다섯 번이었다.
타겟형 스트라이커의 합류를 기다려왔던 성배는 제코가 합류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킥 능력을 증명했고, 제코는 그런 성배의 기대에 부응하며 최소한 머리는 맞춰주었다.
“제코가 맨시티에 합류하면서 킥이 정확하기로 유명한 주와의 호흡이 기대되었었거든요? 오늘 경기를 보니까 이 두 선수의 호흡은 확실히 좋네요. 주의 크로스가 무슨 유도 미사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제코의 머리로 날아가 붙고 있어요.”
전체적으로 제코의 움직임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한 달 만에 치르는 실전 경기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다.
하지만 공중 볼만은 거의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성배와 보아텡, 두 명이 보내주는 롱패스와 양 측면에서 올라오는 크로스를 받아줄 선수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맨시티의 경기력은 한 단계 더 올라갔다.
“데뷔 골 축하한다. 데뷔전에서 데뷔 골이라니. 프리미어리그에서도 한 건 하겠는데?”
제코가 빠르게 데뷔 골을 기록했다는 것은 성배는 물론이고 맨시티 전체에게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앞으로 한 골에서 두 골 정도만 더 넣을 수 있다면 프리미어리그에 완벽하게 적응하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터였다.
“그렇게 밀어주는데 황송해서라도 한 골 넣어야지. 안 그래? 이렇게까지 해주니까 내가 미안해서라도 골 넣으려고 이를 악 물었지. 하하.”
제코도 성배가 자신을 밀어줬다는 걸 알고 있었다.
크로스고 프리킥이고 코너킥이고 모두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데 눈치를 챌 수밖에 없었다.
“네가 빨리 적응해야 우리 팀에도 도움이 되지. 그래서 밀어준 거니까 너무 부담 갖지는 말고. 미안하면 골이나 넣어.”
울버 햄튼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오늘 경기의 목적은 제코의 데뷔 골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코의 데뷔 골이 나왔다.
3-1의 리드와 제코의 데뷔 골, 그리고 생각지도 않았던 보아텡의 주전 확보까지.
오늘 경기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얻어간 맨시티였다.
< 낭만필드 - 25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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