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250 (10권) >
“주, 이제는 더 버틸 수가 없겠어.”
겨울 이적시장이 열리고 며칠 뒤, 만치니 감독은 또 한 번 성배를 소환했다.
말을 꺼내면서부터 표정이 밝지 않았고, 이마에 손을 얹고 있었기에 성배도 무슨 말을 할지 좀 불안했다.
“무슨 일입니까? 카를로스도 들어오고 제코도 영입한 마당에 이렇게 고민하실 일은 없으실 텐데요.”
현재 맨체스터 시티의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과정이 어떻게 되었든, 테베즈도 복귀해서 좋은 활약을 이어가고 있었고, 지난 시즌부터 꾸준히 노려왔던 제코의 영입도 성공한 상황이었다.
만치니의 골치를 썩일만한 일은 없다고 봐야 했다.
“아아, 경기 내적으로는 아무 문제도 없지. 하지만 이건 경기 내적이면서도 외적인 문제야. 요즘 골치가 꽤 아프다고.”
주제를 건드리지 않고 계속 주변을 빙빙 도는 만치니였다.
다만, 만치니가 꽤 골치를 썩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말씀하시죠. 숨넘어가겠습니다.”
무슨 일인지 성배도 궁금했다.
성배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일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주장 문제야. 서포터즈도 그렇고 보드진도 그렇고 요즘 그 문제로 말들이 많아.”
그제야 성배도 대충 눈치를 챌 수 있었다.
테베즈가 돌아와서 에이스 역할을 해주고는 있었지만, 그것과 주장 역할은 별개였다.
“아. 그거군요. 그거라면 저도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만.”
클럽의 모든 선수 중에 최고 대우를 받으면서 심지어 주장 완장까지 차고 있는 선수가 공개적으로 팀을 비난하고 이적이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까지 발언한 것은 큰 문제였다.
팀을 사랑하고, 축구를 인생과 같이 생각하는 잉글랜드 서포터즈는 절대로 이런 행위를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보드진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너도 알고 있겠지.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서포터즈와 보드진에서 압박이 들어오고 있어. 주장을 바꾸라고.”
다시 에이스 역할을 해주기 시작하면서 일단 테베즈에 대한 비난은 수그러들었다.
서포터즈도 한 번의 실수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주겠다는 반응을 보였고, 보드진은 일단 대체자가 구해질 때까지는 원하는 걸 들어주겠다는 태도였다.
하지만 계속 주장완장을 채워줄 수는 없다는 것에서도 의견을 함께했다.
“주장을 바꾼다라... 사고를 치긴 했지만, 다시 돌아왔고, 여전히 좋은 활약을 보여주는 주장을 시즌 중반에 바꾼다는 건 어렵지 않겠습니까?”
사실, 주장은 함부로 바꿀 수 없는 존재였다.
팀의 대표이자 얼굴이었고, 선수들을 이끌어가는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어설프게 주장을 바꿀 경우, 선수단이 분열될 수도 있었고, 감독과 선수단 사이가 벌어지기도 쉬웠다.
“물론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잖아.”
이번 시즌 주장을 결정할 때도 그랬지만, 맨체스터 시티의 이번 시즌 주장 선임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뒤에야 이뤄졌다.
그래서 나온 결과가 일단 에이스인 테베즈에게 한 시즌을 맡기고, 더욱 적합한 선수에게 넘겨주는 것이었다.
“사실은 카를로스와 너를 제외한 다른 선수들과는 이미 대화를 끝냈어. 주장을 너로 바꾸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역시나 내 생각대로 반대 의견은 별로 없던데?”
테베즈가 이탈하기 전부터 실질적으로 팀을 이끌어왔던 성배는 이탈 이후 전면에 나서 보다 적극적으로 동료들을 다독였다.
그 결과, 다른 선수들도 성배를 실질적인 주장으로 여기고 있었다.
원래 성배의 사람이었던 콤파니나 배리 등의 선수들과 더불어 실바나 보아텡, 라키티치 등 새롭게 전면에 떠오른 선수들까지 성배를 지지한 덕분이었다.
“같은 아르헨티나 선수인 파블로까지 네가 주장에 더 어울린다고 하는 걸 보면 이미 다 끝난 이야기지.”
심지어 테베즈와 같은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선수 사발레타마저 주장 교체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 정도 되었으면 선수단의 민심은 이미 기울었다고 봐야 했다.
“서포터즈와 보드진의 의견도 같다. 카를로스는 에이스이자 골게터로 완벽한 선수지만, 주장으로는 네가 훨씬 더 잘 어울린다는 거야.”
토트넘에서 활약하던 시전부터 이미 맨체스터 시티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성배였다.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로 합류한 뒤에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기량을 기본 베이스로 하고 특유의 영리한 인터뷰 스킬과 이미지 관리 능력을 앞세워 아예 팬들을 자신의 신도로 만들어버렸다.
“서포터들이 너를 좋아하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보드진까지 이 정도로 생각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처음부터 너한테 주장완장을 줄 걸 그랬어.”
수비수라는 특성상 잘하면 숭배의 대상이 되고, 못하면 옆집 개만도 못한 놈이 되는 공격수들만큼의 환호를 받진 못하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비난을 듣는 일은 없었다.
축구와 축구팬들의 성격을 생각하면 절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보드진도 그런 팬들의 반응에 주목했고, 그와는 별개로 성배의 리더십도 높게 평가했다.
주기적으로 코칭스태프들을 통해 받는 보고서만 읽어도 성배가 얼마나 동료들을 잘 이끌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제는 그런 모습을 그라운드와 훈련장 바깥에서도 보여주길 바라는 듯했지만.
“카를로스와 이야기만 잘 해주신다면, 거절할 필요는 없겠죠.”
40년이 넘게 프리미어리그 우승 기록이 없는 맨체스터 시티였다.
그런 맨체스터 시티의 우승은 이제 멀지 않았다.
열정적인 시티즌들 앞에서 맨체스터 시티가 프리미어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때, 그때 주장완장을 차고 첫 번째로 트로피를 들어 올린다는 것은 굉장히 큰 의미가 있었다.
맨체스터 시티에서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은 물론이고, 은퇴한 뒤에도 큰 의미로 남을 수 있었다.
“오케이. 접수했다. 카를로스와 이야기해보고 다시 부를게.”
성배의 조건부 승낙에 만치니 감독의 표정이 밝아졌다.
시즌 전에 같은 대화를 나눴을 때, 아직은 부담스럽다고 했기 때문에 혹시나, 했던 것이었다.
이젠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보였으니, 남은 것은 테베즈와의 대화였다.
“음... 쉽지는 않으려나.”
테베즈를 설득할 생각을 하니 곧 다시 표정이 구겨졌다.
하지만 그건 성배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
돌아온 탕아, 테베즈를 앞세워 뉴캐슬에게 승리를 거둔 맨체스터 시티는 이어진 아스톤 빌라전과 블랙풀전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며 에버튼전 패배 이후 다시 3연승을 달렸다.
경쟁 팀들에 비해서 경기 수가 많기는 했지만, 어쨌든 여전히 리그 1위였다.
우승후보로 꼽히기는 했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첼시에 이어 3순위였다.
지난 시즌에도 이러다가 막판에 체력이 떨어져 3위까지 밀렸었는데, 챔피언스리그까지 병행해야 하는 지금 상황에 과연 버틸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도 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하는 중이었지만, 경험이 많고 노하우가 쌓인 두 팀에 비해 맨체스터 시티는 그런 경험이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어떻게든 그런 체력적인 문제에 발목을 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분위기가 좋고 챔피언스리그가 쉬는 지금 최대한 달아나야 했지만, 불운하게도 챔피언십의 레스터 시티와 상대한 FA컵 1라운드를 무승부로 마치며 재경기까지 치르게 되었다.
그나마 아스날 원정을 무승부로 마치며 한숨을 돌렸지만, 현재 양 팀의 분위기상 아스날에게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는 건 좀 아쉬웠다.
[맨체스터 시티의 새로운 주장 주성배, 주장 데뷔!]
[‘보스니아산 고공 폭격기’ 에딘 제코, 프리미어리그 입성!]
2011년 1월 15일.
울버햄튼을 홈으로 불러들여 치르는 리그 23라운드 경기는 맨체스터 시티에게 중요한 경기였다.
만치니 감독이 테베즈 설득에 성공하며 주장완장을 넘겨받은 성배가 임시 주장이 아닌 진짜 주장으로 경기를 치르는 첫 경기.
그리고 에딘 제코의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이었다.
“에딘. 느낌은 어때? 좋아?”
취업비자 문제로 합류가 늦어진 제코는 리그 23라운드 경기에서 드디어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을 가졌다.
국민들이 전체적으로 영어를 잘하는 체코에서 활약한 덕분에 영어가 가능해 성배와도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나쁘지 않아. 몸 상태가 완벽하진 않지만.”
생각보다 이적이 늦어지면서 제코는 벌써 25일째 경기를 뛰지 못한 상황이었다.
축구선수의 감각이라는 건 꽤나 민감했기에, 100% 전력을 보여줄 순 없을 것이었다.
“그 정도면 충분해. 할 수 있는 것만 해. 그러면 내가 네 머리에 골을 배달해줄 테니까.”
제코의 등장으로 성배는 한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최후방에서의 대지를 가르는 패스와 측면에서 올리는 자로 잰듯한 크로스의 봉인을 해제할 수 있었다.
이 무기들 없이도 최정상급 레프트백으로 활약 중이었지만, 리그에서 기록한 어시스트가 모두 세트피스 상황에서 나오면서 예년에 비해 적은 4개에 그치고 있었다.
제코가 중앙에서 받아먹어 줄 수만 있다면 서로 윈윈할 수 있었다.
‘이제 끝이 보인다.’
제코의 합류로 맨체스터 시티는 위를 노릴 전력을 완성했다.
다음 시즌부터 합류하게 될 아게로와 나스리도 완성된 맨체스터 시티의 주요 전력이었지만, 아게로의 자리는 아직 에이스에 어울리는 활약을 보여주는 테베즈가 메울 수 있었고, 나스리는 13/14시즌까지 백업으로 활용되었던 선수였다.
즉, 맨체스터 시티는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전성기였다.
***
“아, 레스콧! 너무 섣부른 태클이었어요! 이름값에 어울리지 않는 서툰 태클로 페널티킥을 헌납하는 레스콧! 아쉬운 플레이예요!”
만치니 감독은 보아텡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음에도 레스콧을 향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적지 않은 출장 기회를 주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다.
잉글랜드 국가대표이자 홈그로운 선수라는 프리미엄을 가진 데다가 엄청난 이적료와 주급을 받는 레스콧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1/3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이적료에 훨씬 어린 나이, 주급도 훨씬 적은 독일 국적의 보아텡보다 레스콧이 좀 더 매력적인 건 사실이었다.
‘그러면 뭐하냐고. 에버튼 시절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봐야 순수한 클래식 센터백이고, 파트너를 많이 타는데.’
단순히 활용도나 잠재력,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해줄 수 있느냐만 따진다면 당연히 보아텡이었다.
하지만 레스콧이 가진 경기 외적인 장점들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만치니의 선수 기용에 별다른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지만, 이젠 아니었다.
레스콧의 한계가 뚜렷하게 보였고, 그와는 반대로 보아텡에게서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보였다.
‘이젠 과감하게 선택할 때가 됐어.’
레스콧에게 나눠주는 출전 기회까지 모두 보아텡에게 몰아주면서 키울 때가 되었다는 게 성배의 생각이었다.
보아텡이 빠르게 성장하면 할수록 맨체스터 시티의 성공도 가까워질 것이었다.
보아텡이 가진 잠재력은 레스콧의 그것과 비교를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했다.
“케빈 도일이 페널티킥을 성공시킵니다! 울버햄튼, 예상과는 반대로 선취 골을 터뜨리면서 먼저 리드를 잡아 나갑니다!”
절대로 자신의 주장 데뷔전에 재를 떨어뜨렸다고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냉정하고 객관적인 판단하에 나온 결론이었다.
< 낭만필드 - 250 (10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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