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248화 (335/356)

< 낭만필드 - 248 >

다행히 테베즈가 이탈한 이후의 첫 경기는 현재 리그 최하위까지 떨어져 있는 웨스트햄과의 리그 경기였다.

그나마 부담이 적다는 뜻이었다.

‘야야가 너무 올라가 있는데.’

경기는 맨체스터 시티가 지배하는 그림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사실 16라운드까지 진행된 현재, 리그 1위에 올라 있는 맨체스터 시티가 20위 웨스트 햄을 압도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강팀과 상대하는 것을 가정하고 지켜보는 성배의 눈에는 별로 만족스럽지 못했다.

‘역시. 마리오를 쓰려면 투톱을 써야 해.’

발로텔리는 분명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문제도 많은 선수였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돌아이 기질을 떠나서, 경기 내적인 문제까지 있었다.

최전방 공격수의 수비 가담과 활동량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현대 트렌드에서 형편없는 활동량에 몸싸움을 극단적으로 꺼리는 발로텔리의 스타일은 완전 구식이었다.

“투레는 오늘 페널티박스 근처에서 살고 있습니다. 원래 공격적인 선수지만, 오늘은 특히나 더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인 투레가 평소보다 더 공격적으로 움직여주고 있었다.

발로텔리 대신 궂은 일과 미드필드와의 연계, 몸싸움까지 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오늘이야 저렇게 한다지만, 중원이 좀만 강한 팀이랑 붙으면 바로 털릴 텐데.’

투레가 발로텔리의 약점을 커버해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출전했기 때문에 투톱과 비교하면 훨씬 못했다.

저럴 거면 차라리 투톱을 활용하는 게 훨씬 나았다.

약팀을 상대로는 충분히 활용할 만한 전술이겠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쓸만한 게 못돼.’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것은 만치니 감독과 코칭스태프들이 주문한 적이 없는 움직임이었다.

전술에 수정을 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답답한 상황이 연출되자, 그것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간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지겠지.’

일단 전술에 익숙해지는 것이 먼저였다.

그렇다고 오늘 경기를 그냥 두고 볼 생각은 없었다.

***

“야야. 너무 올라가는 것 같은데? 네 공격력이 어지간한 공격수 못지않다는 건 잘 알지만, 그래도 중앙 미드필더가 그렇게까지 올라가면 전술상 설계된 것에 비해 중앙이 너무 비잖아.”

맨체스터 시티는 전반전을 나름대로 잘 치렀다.

배리의 어시스트를 받아 투레가 중거리 슈팅으로 선취 골을 기록하며 1-0의 리드를 잡은 것이었다.

하지만 성배는 라커룸에 들어오자마자 투레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마리오를 살리려면 누군가 해줘야 하는 일이니까.”

투레도 할 말은 있었다.

최전방에서 뛰는 것보다 약간 처진 위치에서 뛰는 걸 선호하는 발로텔리였기에 생각보다 자주 최전방이 비는 현상이 발생했다.

투레의 전방 침투 빈도가 잦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지. 하지만 내가 볼 때, 그 역할을 네가 하면 안 돼. 제임스. 그건 네 역할 아니었나?”

만치니가 중원의 두께와 장악력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은 맨시티 선수들 모두 알고 있었다.

그것에 불만을 가진 선수들도 많지만, 어쨌든 감독의 지시였기에 따라야 했다.

“뭐, 나도 딱히 소홀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맨체스터 시티의 양쪽 측면은 왼쪽의 실바와 오른쪽의 밀너로 구성되어 있었다.

실바야 측면으로 빠져 있기는 하지만, 윙어보다는 플레이 메이커에 가까운 선수라 중앙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밀너는 박인진과 비슷한 스타일이었다.

측면과 중앙 모두에서 많은 움직임을 가져가는 선수였고, 전술적으로 필요한 부분이 생길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선수였다.

“평소였다면 그렇지.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마리오를 대신해 중앙에서 싸워주라고 안 했나? 내가 보니까 그 역할은 야야가 다 해준 것 같은데.”

실바와 밀너의 중앙 침투 빈도를 높이고 그 빈자리는 양쪽 풀백의 오버래핑 빈도를 높여 채운다.

테베즈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수정된 전술 중 하나였다.

실바를 대신해 플레이 메이킹이 가능한 라키티치 덕분에 가능한 전술이었다.

밀너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들었다는 뜻이었다.

“마리오. 네가 가장 편하다고 생각하는 포지션이 쉐도우 스트라이커라는 건 잘 알겠어. 그런데 오늘 넌 쉐도우 스트라이커가 아니야. 원톱이라고. 원톱의 역할은 잘 알 텐데.”

결정적으로 이 모든 문제는 발로텔리에게서 시작되었다.

아직 열아홉 살에 불과한 발로텔리는 분명 플레이 스타일을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뛰는 것을 보면 몸싸움을 비롯해 자신의 약점이라 지적된 것들을 보완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보고 플레이를 뜯어고치라고 하는 건가? 내가? 내가 왜. 난 세계 최고의 선수라고. 세계 최고의 선수가 굳이 뭐하러 스타일을 바꿔? 그러다가 내 커리어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질 건가?”

자신감 하나는 세계 최고였다.

저게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게 더욱 충격적이었다.

실제로 발로텔리는 메시를 제외한 다른 모든 선수들이 자신보다 아래라고 생각했다.

메시 또한 아주 미세하게 우위에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등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엄청난 선수였다.

“네 커리어? 스타일을 바꾸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거다. 현대 축구 트렌드는 원톱인데, 지금의 넌 투톱 말고는 쓸 데가 없어.”

투톱에만 특화된 공격수였기에 커리어가 꼬인 선수로는 대표적으로 하비에르 사비올라가 있었다.

원톱이 불가능한 공격수였던 사비올라는 바르셀로나에서 클루이베르트와 투톱을 이루면서 시즌 평균 20골 정도를 기록했지만, 호나우지뉴가 나타나 전술이 4-3-3으로 바뀌고 거기서 원톱 역할을 맡으면서부터 커리어가 꼬였다.

“그 좋은 떡대로 왜 몸싸움을 안 하는 거지? 나는 이해가 안 되는데. 일단 트렌드를 떠나서 팀이 원톱을 쓰는데, 계속 고집부리면 어떻게 될지는 너 빼고 다 알아.”

발로텔리는 기본적으로 사비올라와 비교하는 것조차 미안한, 훌륭한 피지컬을 가지고 있었기에 지금부터라도 스타일에 변화를 주면 충분히 원톱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말해봤자 들을 리는 없지만.’

표정만 봐도 알았다.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발로텔리가 자신의 말을 들을 리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만, 답답하기도 하고 다른 선수들의 플레이를 지적하는 상황에서 가장 문제가 큰 발로텔리를 가만히 둘 수 없어서 이야기한 것뿐이었다.

‘어차피 발로텔리가 저럴 거라는 건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까. 제임스랑 야야의 플레이만 바꿀 수 있으면 충분해.’

발로텔리의 플레이가 지금과 같다고 가정했기 때문에 투레와 밀너에게 더욱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댔다.

발로텔리도 조금은 바뀔 것이라 기대했다면, 두 선수의 플레이도 크게 건드릴 필요가 없었다.

“자, 자. 내 할 일을 덜어줘서 고맙다.”

성배의 말이 끝나자, 조금 전에 이미 라커룸으로 들어왔던 만치니 감독이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중간에 들어왔지만, 선수들에게 후반전에 대해 지시하는 성배의 말이 자신의 의견과 비슷해 가만히 듣고 있던 것이었다.

만치니와 마찬가지로 동료 선수들 역시 성배의 축구 지능과 전술 이해도를 인정해주고 있었다.

주장이라고 해서 사생활이나 훈련 태도 등에 간섭하는 건 참지 않았지만, 덕분에 전술적인 지시에 대해서는 전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일단 후반전에 야야, 제임스는 주가 말한 것처럼 움직여주면 돼. 마리오는... 진지하게 생각해봐. 뭐가 팀에 도움이 되는지.”

당장 가장 급한 부분을 성배가 거론해주었던 덕분에 만치니 감독은 후반전 전술의 전체적인 틀에만 신경을 집중할 수 있었다.

***

투레와 밀너가 전술을 의식하면서 뛴 후반전, 맨체스터 시티는 두 골을 더 집어넣으며 3-0의 완승을 거두었다.

17라운드까지 승점 37점.

한 경기를 덜 치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날, 첼시 등을 모두 제치고 리그 1위에 올라 있었다.

테베즈의 이탈 때문에 안팎으로 고생하고 있긴 했지만, 테베즈 덕분에 여기까지 올라온 것이기도 했다.

이탈하기 전 쌓아놓은 승점 덕분에 리그 1위에 올라 있었고, 그런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어떻게든 테베즈의 마음을 돌리려고 하는 것이었다.

[프리미어리그 18라운드, 폭설로 7경기 연기!!]

그리고 18라운드, 폭설이 내리면서 무려 일곱 경기가 뒤로 밀렸다.

총 열 경기 중 일곱 경기가 밀렸는데, 맨유와 아스날, 첼시 등 1위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팀들의 경기 모두 밀린 상황이었다.

최소한 19라운드까지는 1위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뜻이었다.

[맨체스터 시티, 81년 만에 크리스마스 기간 1위 차지.]

본격적으로 박싱데이 일정이 시작되는 19라운드 경기는 12월 26일에 있었다.

12월 25일에 프리미어리그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클럽은 맨체스터 시티라는 것이었다.

81년 만에 크리스마스 1위.

수십 년 이상 케케묵은 기록들이 하나씩 바뀌고 있었다.

***

“미안했다. 앞으로 다시 잘 해보자.”

테베즈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팀 훈련에 복귀했다.

12월 첫째 주에 팀을 이탈했었는데, 12월 둘째 주가 끝나기도 전에 복귀한 것이었다.

이적요청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분위기도 좋지 않아 숙이고 들어온 것이었다.

“그래. 뭐, 돌아왔으니 됐지. 앞으로 잘하자고. 사고 좀 치지 말고.”

만치니 감독과 면담을 가진 이후, 맨체스터 시티와 남은 계약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이야기한 테베즈는 바로 동료들에게 사과했다.

아무래도 좀 불편했는데, 역시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테베즈가 없는 동안 주장완장을 차고 뛰었던 성배였다.

“주의 말이 맞지. 이미 지난 일인데 어쩌겠어. 사고 치기 전만큼만 해달라고.”

성배를 시작으로 콤파니를 비롯한 다른 선수들 역시 테베즈를 반겨주었다.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겉으로는 갈등이 봉합된 모양새였다.

애초에 선수들과는 딱히 갈등이 없었지만.

“카를로스도 돌아왔으니 이제 걱정할 것도 없네. 이대로 끝까지 가자고.”

테베즈의 복귀로 맨체스터 시티는 열흘 만에 완벽한 스쿼드로 돌아왔다.

이탈하면서 빠진 경기는 겨우 한 경기였고, 그 웨스트 햄전에서 라키티치가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떠올랐기 때문에 테베즈의 이탈은 오히려 호재가 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투레의 징계로 보아텡이 떠오르고 테베즈의 이탈로 라키티치가 떠오르는 등 이번 시즌 맨시티는 모든 악재를 호재로 돌리는 중이었다.

전형적인 되는 팀의 모습이었다.

이러다가 정말 큰 사고를 한 번 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고, 자연히 선수단 분위기도 좋았다.

다가오는 겨울 이적시장에서의 성과에 따라 크게 사고 한 번 칠 수 있을 분위기였다.

< 낭만필드 - 248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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