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246 >
“에휴, 저 둘이 또 사고를 쳐서 골치가 아프네.”
맨체스터 시티에게 굉장히 중요한 시점이었다.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와 리그를 병행하느라 일정이 빠듯했기 때문이었다.
맨체스터 시티가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한 건 오랜만이지만, 선수들은 아니었다.
“중요한 시기인데. 다들 알만한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
그런데 문제는 이번 시즌에 영입된 선수가 아니면 유럽 대항전 출전의 공백기가 있다는 것이었다.
프로급 선수들은 1, 2년 정도만 리듬이 바뀌어도 다시 적응이 필요했다.
성배만 해도 유로파 리그에 나갔던 토트넘 시절부터 유럽 대항전 무대를 거의 뛰지 않았기 때문에 2년이 넘는 공백이 있었다.
그나마 성배는 자기 관리에 일가견이 있어서 괜찮은 편이었지만, 다른 선수들은 오랜만에 치르는 챔피언스리그에 체력적인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작년에도 그랬잖아. 그때 다 풀었던 거 아니야?”
그리고 이 중요한 시기, 아데바요르와 투레가 다시 한 번 충돌했다.
아스날 시절부터 사이가 좋지 않기로 유명했던 두 선수였다.
지난 시즌에 이어 다시 한 번 충돌했고, 이번에는 주먹다짐까지 이어지며 제대로 사고를 쳐버렸다.
“뭐, 누가 알겠습니까. 둘 다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선수도 아니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제가 조율할 수 있는 선수는 몇 안 된다고.”
실질적으로 주장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성배의 장악력은 그리 넓은 범위를 커버하지 못했다.
그나마 친분을 쌓으면서 나름 훌륭하게 수행하긴 했지만, 테베즈를 비롯해 아데바요르, 발로텔리 이 세 명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자존심이 강하고 자기 주장이 강한 투레 형제와도 친해지긴 했지만, 행동을 조율할 수는 없었다.
“그건 예상했으니까 어쩔 수 없지. 다른 선수도 아니고. 다만, 지금 문제는 둘의 빈자리를 채우는 거야. 엠마누엘이야 어차피 카를로스, 마리오 다음으로 3옵션 공격수였으니 상관없지만, 투레는 당장 활용해야 하는데.”
아데바요르는 이미 그 입지가 위태위태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딱히 빈자리가 크진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투레였다.
훈련장에서 주먹다짐을 한 두 선수에게 아무런 징계도 주지 않을 수는 없었다.
투레가 주전 센터백이라고 해서 징계를 차등 적용할 순 없었다.
“제롬 쓰시죠. 솔직히 말하면 개인적으로는 제롬이 더 나으면 나았지, 못할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아직 잉글랜드 무대 적응기라는 변수가 있긴 하지만, 보아텡의 기량 자체는 이미 지난 월드컵에서 검증이 끝난 상황이었다.
192cm의 신장으로 투레보다 거의 10cm 가까이 크고, 센터백으로서의 모든 조건이 더 나은 보아텡이었기에 적응만 잘해낼 수 있다면 투레보다 나은 활약을 보여줄 것이었다.
“제롬이라... 졸레온보다 제롬이 나으려나.”
성배보다 더 높은 이적료를 지불하고 영입한 레스콧이었지만, 클래식한 수비수로 현대 전술에 어울리지 않아 만치니 감독의 눈 밖에 나 있었다.
하지만 전통적인 수비수로서의 기량은 출중했기에 조율만 옆에서 잘 해주면 벽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졸레온도 좋은 선수죠. 다만, 수행할 수 있는 역할에 한계가 있고,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게 문제지만.”
그래도 재능만 따지자면 보아텡이 한 수 위였다.
보아텡은 단순히 수비력뿐 아니라 현대 축구가 센터백에게 요구하는 역할을 모두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는 선수이기도 했다.
“제롬은 저만큼이나 롱패스가 정확한 친구고, 빌드업도 뱅상만큼 해줄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제롬을 활용하면 후방에서 플레이를 만들어주는 선수가 세 명이 됩니다. 이건 굉장한 무기죠.”
후방에서 빌드업을 해줄 수 있는 수비수는 귀했다.
그런데 지금 맨체스터 시티에서는 성배와 콤파니가 뛰어난 후방 빌드업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보아텡도 마찬가지였다.
성배 못지않은 롱패스 능력을 바탕으로 볼을 전개해주는 보아텡의 능력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건 그렇지만, 빌드업은 두 명이면 충분해. 지금 중요한 건 수비력이 뛰어난 선수지.”
사실 빌드업에 참여할 수 있는 수비수가 많으면 좋지만, 그렇게까지 많을 필요도 없었다.
한두 명만 있어도 충분히 팀에 도움이 될 수 있었기에 지금 맨시티에 필요한 수비수는 빌드업이 가능한 선수보다 수비력이 뛰어난 선수였다.
“개인적으로는 제롬과 함께 뛰는 게 편하기도 합니다. 저나 뱅상이 라인을 조율하기에는 나이가 비슷한 제롬 쪽이 아무래도 편하죠.”
88년생으로 성배보다 어린 흔치 않은 즉전감 수비수가 보아텡이었다.
수비진을 조율하는 성배와 콤파니가 어린 편이었기에 라인을 조율하기엔 아무래도 비슷한 나이의 보아텡이 편했다.
“그런가... 확실히 기량이 제대로 나와주기만 한다면 제롬 쪽이 더 가치가 높긴 하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욕심은 날 수밖에 없었다.
코어 수비수들이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고, 포텐셜이 엄청난 선수와 어느 정도 완성된 선수가 빈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상황.
안전하게 이미 증명된 선수를 기용하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유망주에게 기대를 걸어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행여나 제롬이 리그 적응 때문에 고생한다고 해도 저랑 뱅상이 애쓰면 충분히 커버할 수 있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롬에게 기회를 주시죠.”
레스콧은 분명 좋은 활약을 펼칠 것이었다.
하지만 보아텡만큼은 아니었다.
실제 역사처럼 보아텡이 맨시티를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위치에 대한 확신을 줄 필요가 있었다.
***
챔피언스리그 특유의 타이트한 일정은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의 경기력에 영향을 주었다.
인테르전부터 웨스트브롬, 맨체스터유나이티드, 버밍엄까지.
일주일에 두 경기씩 치르는 일정이 계속되면서 리그 17위 버밍엄과는 홈에서 경기를 펼쳤음에도 무승부에 그치고 말았다.
이후 일주일의 휴식기를 가진 맨시티는 풀럼의 홈구장인 크레이븐 코티지를 찾아 4-1의 대승을 거두며 다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크로스, 와그너에게 볼 투입! 아, 돌아서지 못합니다! 볼 흘러나오고, 데 용이 먼저 볼 따냅니다.”
지난 시즌까지 상대했던 익숙했던 클럽, 베르더 브레멘과의 경기부터 본격적으로 선발로 출전하기 시작한 보아텡이었다.
아직 시간을 좀 더 두고 판단해야겠지만, 일단 보아텡의 활약은 만족스러웠다.
“데 용, 왼쪽으로! 주에게.”
성배에게 볼이 이어지자, 브레멘 선수들은 성배의 빌드업을 경계했다.
콤파니가 자리 잡으면서 빌드업 부담을 상당 부분 덜어주긴 했지만, 여전히 맨시티 후방 빌드업의 핵심은 성배였다.
‘지난 시즌까지 제롬이랑 뛰어봤을 텐데.’
하지만 이젠 콤파니 외에도 성배의 부담을 덜어줄 선수가 생겼다.
맨시티의 후방 빌드업을 압박으로 막아낸다는 것은 이젠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중앙으로! 콤파니, 보아텡에게. 전방으로 크게 질러줍니다! 실바에게 한 번에 연결되는 볼! 맨시티의 역습으로 이어집니다!”
보아텡의 롱패스가 불을 뿜었다.
성배와 콤파니의 도움으로 자기 플레이에만 집중한 보아텡은 충분히 합격점을 받을 만한 활약을 보였다.
간혹 터지는 롱패스 또한 일품이었다.
“실바의 돌파! 중앙으로 내주고 테베즈의 마무리! 순식간에 이어진 역습에 실점하고 마는 브레멘입니다!”
상대 공격수에게 볼을 빼내는 것도, 역습으로 이어진 패스를 전개한 것도 보아텡이었다.
보아텡이 만들어준 기회를 실바와 테베즈가 놓치지 않았고, 선취 골로 이어졌다.
선취 골이라는 것도 중요했지만, 맨시티에 새로운 공격 루트가 생겼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좋아. 그렇게만 해라.’
장기적으로 자신과 콤파니, 보아텡, 리차즈 혹은 사발레타가 구성할 포백라인을 기대하는 성배에게도 반가운 득점이었다.
***
“아, 종료 휘슬 울립니다. 4-0, 맨체스터 시티가 지난 원정 경기에 이어 홈에서도 베르더 브레멘에게 4-0 승리를 거두면서 승점 10점째를 챙깁니다.”
지난 시즌 리그 3위를 차지했던 베르더 브레멘이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은 지난 시즌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리그에서도 10위권 바깥으로 떨어지는 부진에 빠져 있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1무 4패의 형편없는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프리미어리그 1위의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반대편에서는 인테르가 트벤테에게 승리를 거두면서 3승 째를 거두었네요. 이렇게 되면 인테르와 맨시티가 승점 10점으로 동률이고, 3위 트벤테가 승점 5점에 그치면서 16강 진출 클럽이 정해졌죠?”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는 이번 경기에서의 승리로 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처음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면서 잡았던 목표를 달성한 것이었다.
“첫 출전에 대한 우려가 많았지만, 무난히 16강에 진출하면서 최근의 좋은 기세를 증명했습니다.”
맨체스터 시티가 아직 갖추지 못한 챔피언스리그 DNA 때문에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비교적 손쉬운 대진을 예로 들며 16강은 무난히 갈 것이라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결과적으로는 후자의 말대로였다.
비록 초반에는 살짝 고전했지만, 결과적으로 5전 3승 1무 1패의 좋은 성적을 거두며 16강 진출을 확정했다.
“이제 남은 건 1위냐, 2위냐죠? 1위로 올라가야 그나마 편한 상대와 붙을 수 있거든요?”
똑같은 3승 1무 1패의 성적이고, 상대 전적도 1승 1패로 같지만, 상대전적 골 득실에서 앞서는 맨체스터 시티가 살짝 유리한 상황이었다.
1위로 올라가야 더 수월한 16강을 치를 수 있는만큼, 마지막까지 챔피언스리그에 집중해야 했다.
***
[IN - 7. 제임스 밀너 / OUT - 32. 카를로스 테베즈]
“맨체스터 시티, 승리를 지키기 위해 수비적인 교체를 단행합니다.”
브레멘에게 승리를 거두고 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을 확정했지만, 계속된 경기에 조금 지친 모습을 보이며 스토크 시티를 상대로 1-1 무승부를 거두었다.
그리고 이어진 볼턴전, 오늘도 살짝 불안한 경기력이었지만, 투레의 어시스트를 받은 테베즈의 선취 골을 지켜내고 있었다.
그리고 만치닉 감독은 경기가 종반을 향하자 테베즈를 빼고 밀너를 투입해 수비를 강화했다.
“아, 저게 뭡니까? 테베즈, 만치니 감독을 향해 불만을 표출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교체였다.
이번 시즌 테베즈가 너무 많은 경기에 출전했기에 기회가 될 때마다 휴식을 줄 필요도 있었고, 선수들이 체력적인 부담을 느끼는 상황에서 추가 골을 노리기보다 수비를 강화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기도 했다.
“이건 아니죠. 질책성 교체도 아니었고, 전술적인 선택이었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성질을 부리네요. 이대로 가면 결승 골이 될 확률이 높은 득점까지 기록한 기분 좋은 날인데 마무리가 아쉽게 되었어요.”
전체적으로 아쉬웠던 경기에서 그나마 괜찮은 활약을 펼치고도 사서 욕을 먹는 테베즈였다.
당사자인 만치니 감독을 비롯해 코칭스태프들, 중계진과 팬들까지도 이런 테베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저 성질을 결국 끝까지 못 버리는구나.’
성배도 그 모습을 확인했다.
결국, 또 한 번 그 모습을 드러내고만 테베즈의 멘탈에 성배의 머릿속도 복잡해졌다.
< 낭만필드 - 246 > 끝
ⓒ 미에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