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244 >
“자, 오늘 경기는 무조건 잡아야 해. 알지?”
아스날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이후, 맨시티는 다시 분위기를 다잡았다.
여러 가지 문제가 내재되어 있었지만, 애써 모른척하며 넘어갔던 맨시티의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아스날전에서의 대패는 선수들이 다시 정신을 차릴 기회가 되어주었다.
“오늘도 못 이기면 16강이 어려워지는 거 알지? 이젠 슬슬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고.”
맨시티는 이어진 울브스와의 경기에서 2-1의 아슬아슬한 승리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승리를 거두고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그리고 3일 뒤, 맨시티는 인테르를 홈으로 불러들여 챔피언스리그 A조 4차전을 치르게 되었다.
“지난 경기에서도 봤다시피 인테르의 공격진은 그리 단단하지 않아. 수비진도 지난 시즌만큼은 못하고. 우리가 충분히 이길 수 있어.”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인 인테르였기에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당연히 좋은 모습을 보여줄 거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그렇지 않았다.
“베니테즈 감독의 전형적인 약점이지. 공격진을 꾸리는 능력이 부족하고, 선수단 장악 능력이 떨어진다는. 하하, 모르긴 몰라도 내가 더 낫지 않아?”
리버풀 시절, 챔피언스리그에서 훌륭한 성적을 거둔 덕분에 가려져 있던 단점들이 이번 시즌 여실히 드러나는 중이었다.
하필이면 세계 최고를 다투는 명장, 무리뉴의 후임으로 팀을 맡아서 계속 비교당하는 처지였다.
“지난 경기에서 너희도 봤겠지만, 베니테즈 감독이 좋아하는 점유율 축구는 인테르에 그리 어울리지 않아.”
지금 인테르의 선수단은 전임 감독인 무리뉴가 좋아하는 선수비 후역습에 어울리게 구성되어 있었다.
게다가 감독 자체의 역량 또한 무리뉴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저쪽 수비수들은 발이 빠른 편이 아니라서 뒷공간을 노리면 재미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경기를 준비하면서 맨시티는 인테르 수비진의 뒷공간 공략을 메인으로 훈련했다.
점유율 축구를 하려면 수비와 미드필드, 공격의 각 라인 간격을 최대한 좁혀야 했다.
자연스럽게 수비라인이 올라올 수밖에 없었고, 뒷공간이 열리는 것도 당연했다.
“그래. 준비 열심히 했으니까 왼쪽 측면을 좀 부탁해. 다비드는 중앙으로 움직이는 스타일이라 네 역할이 중요하니까.”
맨체스터 시티의 측면 윙어 라인인 실바와 밀너.
이 라인은 돌파력이 강한 조합이 아니었다.
측면에서의 돌파보다는 각자의 장점을 활용해 중앙 공격에 힘을 보태는 타입이었다.
“나보다는 마이카의 역할이 중요하죠. 뒷공간을 털려면 미친 듯이 빠른 마이카의 스피드가 필요할 테니.”
성배와 리차즈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힘을 받는 전술이었다.
실바와 밀너의 측면 파괴력이 부족한 감은 있었지만, 이를 양쪽 풀백인 성배와 리차즈가 보완해주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맨시티 전체의 측면 공격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이카도 당연히 큰일 해줘야지. 설마 내가 말 안 했다고 삐진 건 아니지? 하하.”
다행히 맨시티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챔피언스리그 성적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리그 성적이 괜찮았고, 경기력이 괜찮았기 때문에 분위기 자체는 괜찮았다.
지금 당장 성적은 좀 아쉬워도 분위기나 경기력을 보면 언제든 치고 올라갈 수 있었다.
***
베니테즈 감독과 만치니 감독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만치니 감독은 안정적인 전술을 선호해 장기전인 리그에 강하지만, 그런 성향 때문에 승부수를 잘 던지지 않아 단기전인 챔피언스리그에 약했다.
베니테즈 감독은 반대로 리그에 약하고 챔피언스리그에 강했다.
“실바, 반대편으로 크게 열어줍니다! 리차즈의 빠른 돌파! 키부, 따라가지 못하고 크로스! 루시우가 한발 먼저 걷어냅니다! 코너킥!”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베니테즈가 무리뉴처럼 전술적 능력이 탁월한 감독은 아니었다.
베니테즈는 수비와 미드필더 조직력을 다지는데 일가견이 있었고, 이렇게 뒤가 단단한 전술은 베니테즈의 팀이 단기전에서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게 만들었다.
하지만 팀의 스쿼드를 보고 맞춤 전술을 짜는 게 아니라 자신의 전술에 스쿼드를 억지로 맞추는 스타일이었고, 인테르에서는 그 약점이 폭발하고 있었다.
“맨시티 감독이 지금 만치니가 맞나요? 만치니 감독의 전술이 이렇게 공격적인 경우도 있군요?”
반대로 만치니 감독은 오늘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항상 수비를 우선시하는 만치니 감독이었고, 훌륭한 선수들이 함께하면서 이번 시즌 맨시티는 굉장한 수비력을 보여주었다.
“역시 수비라인이 단단하게 자리를 잡아주니까, 만치니 감독도 과감한 선택을 하네요.”
양쪽 풀백이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성배와 리차즈의 활동량 덕분이었다.
탁월한 공수밸런스와 많은 활동량을 앞세운 성배와 괴물 같은 스피드와 피지컬을 앞세운 리차즈.
두 선수 모두 멀리 나갔다가도 순식간에 다시 수비 진영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만치니도 믿고 앞으로 내보낼 수 있었다.
‘역시. 지금 맨시티라면 나랑 리차즈가 자리를 비워도 충분히 커버가 가능해.’
그리고 만치니를 설득한 건 성배였다.
만치니의 지나친 안전지상주의는 팬들의 비판을 받았다.
성배는 물론이고, 선수들도 사실 이런 전술을 좋아하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자신에게만 공격을 맡겨놓고 수비적으로 경기를 운영한다는 것에 불만을 가진 테베즈가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맨시티 정도면 자신 있게 나가야지.’
팬들의 불만도 불만이지만, 선수단의 불만이 점점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성배는 직접 만치니 감독과 면담을 신청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맨시티의 취약 부분인 양쪽 측면 공격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과 리차즈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달라고 요구했다.
불만을 알고 있었던 만치니도 변화의 필요성을 알고 있었고, 성배의 의견을 받아들여 전술에 변화를 주었다.
“실바, 중앙으로 움직이다가 꺾어줍니다! 주, 파고듭니다!”
그 결과, 오늘 맨시티는 한층 더 강력한 공격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실바가 볼을 잡고 중앙으로 움직이면서 상대 수비수들을 끌어들인 뒤, 그 공간으로 파고든 성배에게 넘겨주는 지금과 같은 플레이는 성공률 100%를 자랑했다.
‘확실히 요즘 컨디션이 좋진 않구나.’
성배에게 오늘 경기가 중요한 이유는 또 있었다.
인테르의 라이트백, 마이콘과 정면으로 붙는 경기이기 때문이었다.
지난 시즌 월드 베스트 일레븐에 뽑히며 세계 최고의 라이트백이라 평가받는 마이콘과의 맞대결은 다시 유럽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성배에게 좋은 기회였다.
“주, 크게 치고 나갑니다!”
인테르전을 앞두고 만치니 감독에게 공격적인 전술을 요구했던 건 그런 이유도 있었다.
이번 시즌 초반의 마이콘은 지난 시즌과 다른 선수였다.
팀이 어수선해서 그런 것인지 그 자신의 폼도 떨어진 것이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고, 성배는 마이콘과 본격적으로 붙을 수 있도록 만치니 감독을 설득했다.
“마이콘, 따라가지 못합니다! 빠릅니다!”
성배가 베일처럼 빠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실바가 절묘한 움직임으로 공간을 만들어주었고, 완벽한 타이밍에 볼을 넘겨준 덕분에 성배도 마이콘을 상대로 우세를 점할 수 있었다.
‘오래는 못 끌겠다.’
하지만 아무래도 한계는 있었다.
볼을 여기서 조금만 더 끌면 마이콘의 접근을 허용할 것 같았다.
“러닝 크로스! 반대편으로 길게!”
마이콘을 따돌리는 게 까다롭다고 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접근하기 전에 미리 처리하는 것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배는 정확한 킥을 가진 선수였다.
“아, 밀너!! 밀너!! 제임스! 밀너!! 밀너의 골이 터집니다!”
사무엘과 루시우의 센터백 조합은 제공권이 굉장했기 때문에 중앙에서 경합을 붙이기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성배는 반대편에서 침투하는 밀너를 노려 볼을 올려주었고, 오프 더 볼 상황에서의 움직임이 뛰어난 밀너는 절묘하게 파고들어 발을 뻗었다.
“아, 마이콘... 지난 시즌과 너무 다른데요? 요즘 인테르의 수비불안에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그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성배가 킥이 좋다는 것은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도 성배에게 방해 없이 크로스를 시도할 기회를 준 마이콘의 수비가 아쉬웠다.
“물론, 그 전에 수비수들을 몰고 움직였던 실바의 움직임과 완벽한 타이밍의 패스가 절묘하긴 했는데, 그래도 지난 시즌까지는 이런 빈틈을 보이지 않았었거든요?”
성배와 실바의 조합을 막아낸다는 것은 물론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마이콘이었기에 기대하는 것이었고, 마이콘이었기에 아쉬운 것이었다.
그래서 반대로 그런 마이콘을 뚫어낸 성배의 플레이가 인상적인 것이었다.
“다비드. 마이콘이 정상은 아닌 것 같지?”
“그래. 충분히 가능하겠어.”
성배와 실바는 이번 플레이로 마이콘의 기량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확신했다.
이 둘은 한 번의 플레이만 봐도 상대의 컨디션을 눈치챌 수 있을 만큼 플레이를 보는 눈과 지능이 뛰어난 선수들이었다.
“적극적으로 올라올 테니까 일단 생각하고 있어. 알아서 잘 활용하고.”
실바라면 굳이 성배가 뭔가 요구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자신이 어떻게 움직인다는 것만 알려주면 실바가 알아서 할 것이었다.
성배와 실바가 서로를 이용하면서 움직임을 가져간다면 폼이 떨어진 마이콘으로는 막을 수 없었다.
***
“라인을 끌어올린 인테르, 스네이더에게 투입되던 볼이 끊깁니다! 라키티치의 인터셉트.”
맨시티는 밀너의 선취 골로 얻어낸 리드를 후반전 30분까지 이어갔다.
골이 터지지는 않았지만, 경기는 완벽히 맨시티의 페이스였다.
밀란 원정과 달리 공격적으로 나선 맨시티의 전술이 제대로 먹혀들었다.
‘음? 왜 이렇게 올라와 있어.’
교체 투입된 라키티치의 인터셉트로 볼의 소유권이 옮겨오자, 성배는 마크하던 비아비아니에게서 눈을 떼고 인테르 진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성배의 판단으로는 그럴 상황이 아니었는데, 인테르의 수비라인이 하프라인 가까이까지 올라온 것이었다.
‘뭐, 나야 고맙지.’
인테르의 수비라인을 확인한 성배는 바로 인테르 진영을 향해 출발했다.
일단 자신의 움직임을 의식하지 못하도록 평소와 같은 속도로 천천히 움직였다.
타이밍은 분명히 나올 것이었다.
‘지금!’
성배는 적당한 속도로 달리면서 조금씩 마이콘과의 거리를 좁혀나갔다.
그리고 지금부터 달리면 마이콘을 제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본격적으로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오른쪽으로 좋은 패스가 투입됩니다! 뒷공간을 파고드는 주성배!”
라키티치도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 뭔지 알고 있는 듯 성배에게 정확한 패스를 투입해주었다.
조금 전까지 인테르가 공격 중이었기에 마이콘은 위쪽, 그리고 중앙 쪽에 자리 잡고 있었고, 성배와는 거리가 살짝 있었다.
“천천히 중앙으로! 반대로 접었습니다!”
마이콘이 도착할 때쯤, 성배는 반대 방향으로 볼을 접으며 태클을 피했다.
자유로운 상황에서 고개를 든 성배의 눈에 수비수 등 뒤로 침투하는 테베즈의 모습이 들어왔다.
마이콘까지 완전히 벗겨진 상황에서 성배를 막을 선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반대편으로 땅볼 크로스! 테베즈! 가볍게 밀어 넣었습니다! 맨시티, 두 번째 골!!”
성배의 땅볼 크로스는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인테르 수비수들이 미세한 차이로 건드리지 못하는 코스로 정확히 굴러갔다.
그리고 그 볼은 반대편으로 침투한 테베즈의 발에 얌전히 도착했고, 테베즈는 아주 쉽고 편안하게 발을 가져다 대 득점으로 연결했다.
< 낭만필드 - 24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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