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243화 (155/356)

< 낭만필드 - 243 >

“첼시, 이제는 좀 다른 루트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중앙 공격이 계속 막히고 있지 않습니까?”

기본적으로 포메이션 자체가 중앙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포메이션이었기 때문에 첼시는 꾸준히 중앙 공격을 고집했다.

하지만 조금씩 중원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며 장악력을 높여가던 맨시티의 중원 선수들은 절대 돌파를 허용하지 않았다.

맨시티의 중원은 지난 몇 년동안 프리미어리그 최강의 미드필드로 유명했던 첼시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보강이 없었던 첼시가 약해진 탓도 있었다.

“미켈의 중간 차단! 앞으로 전진, 그리고 실바가 끝까지 따라갑니다!”

램파드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하미레즈를 뺀 나머지 두 선수, 에시앙과 미켈도 열심히 뛰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미켈은 아직 맨시티의 선수들과 상대하기에 역부족이었고, 과부하가 걸린 에시앙은 조금씩 지쳐갔다.

‘이건 충분히 해결할 수 있겠다.’

실바가 미켈에게 끈질기게 따라붙는 것을 보면서 성배는 오히려 공격 진영으로 올라갔다.

첼시가 볼을 잡고 있었음에도, 곧 역습 기회가 올 것이라 확신한 것이었다.

실바가 하프라인 아래까지 내려간 상황이었기 때문에 역습을 위해서는 자신이 위로 올라갈 필요가 있었다.

“실바의 끈질긴 압박! 아! 데 용이 볼 빼냅니다!”

실바의 압박에 시달리던 미켈은 결국 끝까지 지켜내지 못하고 데 용의 태클에 볼의 소유권을 넘겨주었다.

성배의 예상대로 역습 찬스가 나온 것이었다.

“투레에게 곧바로 연결합니다! 그리고 투레, 빠르게 아래쪽으로 연결! 실바가 받아줍니다!”

볼을 빼낸 데 용은 자신과 배리보다 한 발자국 위에 올라가 공격적으로 움직이던 투레에게 볼을 넘겨주었다.

투레는 볼을 받자마자 제자리에서 다시 패스해주었다.

압박으로 볼을 빼앗은 이후, 곧바로 왼쪽 측면으로 빠져 달리던 실바에게 볼이 연결되었다.

‘그래. 빨리 넘기라고.’

위쪽으로 올라가서 미리 자리 잡고 있었던 성배와 실바의 눈이 마주쳤다.

역습 기회가 생기긴 했는데, 역습을 이끌어야 할 자신이 내려온 상황이라 생각이 복잡했던 실바는 성배의 위치를 확인하자마자 본능적으로 볼을 밀어주었다.

‘너무 달려오는데?’

오프사이드를 피하고자 출발을 미뤘던 성배는 실바의 패스가 출발하자마자 앞쪽으로 뛰어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첼시의 라이트백 이바노비치가 빠르게 달려드는 것을 확인한 뒤, 출발을 미뤘다.

‘수비수라면 언제든 침착하고 냉정해야지.’

이바노비치의 실책은 한 가지였다.

자신의 스피드와 볼의 스피드, 그리고 성배의 기량에 대한 계산이 틀렸다는 것.

이 정도 기량의 선수가 자신의 스피드를 모를 리 없었고, 볼의 스피드 계산에서 실수했을 가능성도 작았다.

결국, 이바노비치가 범한 가장 큰 실수는 성배의 돌파력을 얕본 것이었다.

“툭 치고 달립니다! 주, 텅 빈 공간으로 질주합니다!”

천천히 굴러오는 실바의 패스가 성배에게 도착했을 즈음, 이바노비치 역시 성배의 근처에 도착해 태클을 시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배는 이바노비치의 태클이 들어오고 있음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고, 볼이 구르는 방향으로 다시 한 번 강하게 때려서 속도를 높였다.

진행 방향으로 힘이 가해져 순식간에 속도가 붙은 볼은 이바노비치의 다리가 뻗어지기 전에 공간을 통과했다.

“센스 넘치는 터치! 중앙으로 올라갑니다!”

이바노비치를 따돌리자, 앞은 텅 비어 있었다.

성배는 천천히 페널티박스 쪽으로 이동하면서 동료들을 기다렸다.

“에시앙, 테리가 막아섭니다!”

빠르게 돌파했지만, 중앙에도 첼시 선수들이 있어 직접 해결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그리고 아직 동료들도 자리 잡지 못한 상황.

동료들이 자리 잡을 때까지 기다리느라 잠시 템포를 죽였고, 그사이 테리와 에시앙이 성배의 앞을 가로막았다.

‘민첩함으로 승부를 본다.’

최고의 커맨더형 센터백으로 유명한 테리지만, 단 하나의 단점이 있다면 스피드와 민첩성이었다.

그것을 판단력으로 커버하는 것이 테리의 수비였지만, 성배 역시 축구 지능으로 따지면 어디 가서 절대 밀리지 않았다.

‘그래, 와라.’

천천히 볼을 굴리면서 타이밍을 재던 성배의 시선에 테리의 미세한 움직임이 잡혔다.

앞으로 발을 뻗으려는 움직임이었다.

그 움직임이 시선에 들어온 순간, 성배는 오른발 발바닥을 이용해 볼을 뒤로 굴렸고, 다시 오른발 인사이드를 활용해 골라인 쪽으로 볼을 차고 따라 움직였다.

“다시 안쪽으로 돌파!”

그리고 곧바로 왼발을 가져다 대면서 테리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왼발로 방향을 바꿔 골대를 향해 대각선으로 파고들었고, 동료들도 전부 자리를 잡았다.

‘중앙, 반대편.’

2선에서 침투한 투레가 중앙에서 대기했고, 반대편에서는 수비수들의 시선 뒤로 움직인 테베즈가 골대에서 30도 각도 정도에서 혼자 노마크 상태로 놓여 있었다.

‘훌륭해.‘

다음 순간, 테리의 파트너인 알렉스가 성배의 패스 코스를 좁히며 접근했다.

그리고 성배의 오른발이 움직였다.

“나가지 않고 중앙에서! 골! 고오올! 들어갔습니다! 야야! 투레!! 야야 투레의 득점이 터집니다!”

패스 코스를 좁힌 알렉스의 움직임은 당연히 이뤄졌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던 투레에 대한 수비는 헐거워졌고, 성배는 그걸 놓치지 않고 한 타이밍 빠르게 오른발 아웃사이드로 볼을 밀어주었다.

“이건 거의 주가 8할은 만들었네요! 정말 멋진 돌파였어요! 탑클래스 윙어들과 비교하면 그 과정이 살짝 투박한 감이 있었지만, 해야 할 것은 전부 다 해줬죠!”

테리를 따돌리는 과정과 마지막 패스는 겉으로 보기엔 조금 투박하고 거칠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겉으로 보이는 멋이 아니었다.

조금 멋은 없었지만, 선수를 지우고 볼의 움직임만 따라가면 그때그때 해야 하는 모든 것을 다 해준 멋진 돌파였다.

“체흐 골키퍼의 가랑이 사이를 공략한 투레의 골로 맨체스터 시티가 앞서나가기 시작합니다.”

결국, 이번에도 첼시는 맨시티에게 선취 골을 허용하며 끌려가게 되었다.

묘한 천적 관계가 점점 굳어지는 모양새였다.

“이번에도 결국 측면을 활용한 역습이었죠? 지난 시즌부터 계속 측면으로 올라오는 맨시티의 역습에 실점하고 있거든요? 첼시는 완전히 다른 전술을 들고나오지 않는 이상 맨시티식 전술에 휘둘릴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중앙을 통한 공격이 맨시티 수비진에게 막힌다.

그러다가 볼이 끊기고, 측면으로 빠르게 올라온 맨시티의 역습에 실점한다.

최근 2년간 첼시와 맨시티의 경기에서 되풀이되는 장면이었다.

“어쨌든 전술을 전체적으로 뒤집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어떻게든 변화를 줄 필요가 있어요. 선수 교체를 통해서라도 변화를 줘야죠?”

지금 상태로는 첼시의 승리를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중앙이 아닌 측면으로 공격의 중심을 옮긴다 해서 마땅히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이었다.

맨시티의 중원을 제압하는 방법이 가장 좋았는데, 그쪽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첼시 안첼로티 감독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

[주의 화려한 돌파, 첼시 측면 초토화.]

성배의 어시스트와 투레의 득점을 앞세운 맨시티는 남은 시간 동안 첼시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내며 1-0 승리를 거두었다.

첼시와 맨체스터 시티의 클럽 상성이 확실해진 경기였다.

“아, 기사 제목 또 이렇게 뽑혔어. 으...”

성배의 맞은편에서 신문을 보던 첼시는 신문을 옆으로 집어 던지며 투덜거렸다.

어느새 성배와 말도 편하게 할 정도로 가까워진 첼시였다.

서로 바쁘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만나다 보니 상당히 가까운 사이가 되어 있었다.

“뭐, 기사를 내가 쓰는 건 아니니까. 하하.”

맨시티가 첼시를 상성으로 앞서는 것처럼, 성배는 인간 상성으로 첼시전마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성배가 첼시를 박살 냈다는 헤드라인이 언론을 장식했다.

“머리가 복잡해. 직업이 직업이라 매일 기사 보는데, 난 시티즌인데 가끔 첼시를 응원하기도 하고. 에휴...”

이름이 클럽의 이름인 데다가 축구계에서 일까지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첼시에 정이 든 것이었다.

그건 시티즌이고 뭐고를 떠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충분히 이해해. 하하. 그럴 수밖에 없지.”

열렬한 시티즌인데 첼시를 내심 응원했다며 시무룩한 첼시의 모습이 재미있었다.

정작 맨시티 선수인 성배는 사실 그런 것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팀 자체에 대한 애정보다는 지금 자신이 뛰는 클럽의 성적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팀을 응원하는 것 정도는 크게 상관없었다.

“자, 자. 밥이나 먹으러 가자. 배고파.”

성배는 바닥에 떨어진 신문을 주워들면서 첼시를 이끌었다.

어느새 첼시와 함께하는 식사가 익숙해졌다.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조금씩 생기고 있었다.

***

맨체스터 시티의 시즌 초반 분위기는 굉장히 좋았다.

시즌 첫 네 경기에서 1승 2무 1패로 부진하면서 조직력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었지만, 이후 네 경기에서 4연승을 거두었다.

조직력 문제는 아직 남아 있었지만, 적어도 우승후보라는 타이틀에 어울릴 정도의 전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증명되었다.

성배와 콤파니를 앞세우고 투레, 리차즈, 사발레타에 보아텡까지 합세한 수비진이 맨 뒤에서 맨시티를 안정적으로 받쳐주었다.

이 단단한 수비진에 앞에서 투레, 데 용, 배리까지 세 명의 중원 장악형 미드필더가 활동하니 상대 공격진이 압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테베즈를 앞세우고 실바에게 조율을 맡긴 공격진 역시 상당한 위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맨체스터 시티가 기록한 득점의 50% 이상을 테베즈 혼자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점 중 하나였다.

테베즈를 통한 공격의 비중이 너무 높았기 때문에 리그 최소 실점을 달리고 있음에도 골 득실이 그리 높지는 않았다.

테베즈가 부상을 당하거나 컨디션 난조를 겪을 경우, 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아직 조직력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도 문제였다.

조금씩 맞아들어가는 느낌은 있었지만,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를 통과해야 하기에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트벤테와의 조별리그 2차전이 그 예였다.

조 최약체로 꼽히는 트벤테와의 경기에서 맨시티는 트벤테의 조직적인 움직임에 고전하며 제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승리를 꼭 따내야 하는 경기에서 무승부에 그치면서 살짝 불안한 상황에 놓였다.

아직 네 경기가 남아있긴 했지만,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인 인테르와 두 경기를 치러야 했기에 그렇게 여유가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여러모로 이번 시즌에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조직력부터 다잡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리그에서도 그 약점을 제대로 후벼 파인 경기가 있었다.

바로 9라운드에 있었던 아스날과의 경기였다.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제대로 조직력의 약점을 후벼 파인 맨시티는 아스날에게 0-3으로 탈탈 털리면서 잠시 수그러들었던 의심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래저래 만치니 감독과 부주장이지만, 실질적 주장인 성배의 고민이 늘어갔다.

< 낭만필드 - 243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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