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241 >
사실 베르더 브레멘이 6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성공하긴 했지만, 중소클럽의 한계가 있었다.
6년 동안 꾸준히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차지했지만, 그만큼 꾸준히 핵심 선수들이 유출되었고, 적절한 영입에 실패할 경우, 언제 몰락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거기에 지난 6년간 팀을 떠나지 않고 이끌어왔던 프링스나 피자로 등 핵심 선수들의 노쇠화 역시 심각했다.
“실바가 왼쪽에서 마음대로 활개치고 있습니다! 프리츠,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합니다! 화려한 돌파!”
그리고 더 큰 문제도 있었다.
베르더 브레멘이 지난 시즌 3위를 차지했을 때, 가장 큰 관심을 받은 것은 외질과 마린의 유망주 듀오였지만, 메르테사커와 나우두로 구성된 센터백 라인의 단단함 역시 그에 못지않은 큰 역할을 해주었다.
하지만 오늘 경기에는 양 선수 모두 출전하지 못했다.
“뒤쪽으로 흘려주고, 주! 논스톱 크로스!”
노련하고 다재다능한 멀티 플레이어지만, 어느 한 곳에 주전으로 기용하기엔 아쉬운 페트리 파사넨.
재능은 확실하지만, 아직 성장이 필요한 세바스티안 프뢰들.
이들로는 투레와 테베즈 조합의 묵직한 파괴력을 감당할 수 없었다.
“몸을 날리는 테베즈! 슈팅!! 비제의 선방! 가까스로 볼을 걷어냅니다.”
아쉽게도 득점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투레와 테베즈는 브레멘의 센터백 두 명을 압도했다.
프뢰들과 파사넨은 투레, 테베즈의 움직임을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워했고, 행여나 따라붙는다고 해도 전공인 몸싸움에서마저 밀려버렸다.
‘로베르토가 단기전에 약한 건 분명해. 그래도 이 정도로 차이가 나면 가볍게 이길 수 있겠어.’
만치니 감독의 약점은 플랜B 전술의 부재였다.
분명 팀을 정비하고 만드는 데 재능이 있는 만치니 감독이지만, 전술에 유연함이 없다는 건 약점이었다.
그것이 바로 만치니가 챔스에서 약한 이유였다.
‘일단 예선까지는 개인전술로 커버할 수 있겠어.’
맨체스터 시티는 분명 챔피언스리그 경험이 없었다.
하지만 다른 클럽에서 챔피언스리그를 경험했던 선수는 적지 않았다.
테베즈나 야야 투레처럼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해본 선수도 있었고, 성배와 콤파니, 콜로 투레, 브리지, 라이트-필립스, 발로텔리, 실바, 아데바요르도 챔피언스리그 무대를 밟아본 적 있었다.
‘이번 시즌만 잘 넘기면 챔피언스리그 공포증도 없던 일이 될 수 있어.’
물론, 적지 않다고는 하지만 저 중에서도 브리지와 라이트-필립스는 사실상 전력 외 판정을 받은 선수들이었다.
그리고 맨시티 1군 선수 중 챔피언스리그 무대 경험이 없는 선수들이 있는 선수들의 두 배였다.
맨체스터 시티의 챔피언스리그 성적에 대해 많은 관심이 쏠린 시즌.
만약 이번 시즌 성적이 좋지 않으면 언론에 큰 무대에서 약하다는 이야기가 대서특필될 것이었고, 그렇게 되면 사실이 아니었던 것도 사실이 될 것이었다.
‘어떻게든 16강만 가자.’
가진 자산의 규모만큼이나 배포와 인내심도 큰 만수르는 첫 챔피언스리그의 목표를 16강으로 잡았다.
언론 역시 맨시티가 16강만 가면 일단은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첫 시즌에 그 목표를 달성할 수만 있다면, 전생의 맨시티를 괴롭혔던 챔피언스리그 공포증은 없던 일이 될 것이었다.
***
“프링스, 오른쪽으로! 바그프리드!”
브레멘의 공격은 중앙의 피자로와 왼쪽의 마린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오른쪽의 바그프리드는 기량에 아쉬움이 있었고, 무엇보다 왼쪽의 성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그프리드에게 볼이 연결되지 않을 순 없었다.
“바그프리드, 천천히 전진. 주와 상대합니다.”
89년생의 바그프리드는 아직 젊은 선수긴 하지만, 기본적인 그릇의 차이가 있었다.
나이 차이는 얼마 나지 않지만, 이미 세계 정상급의 선수가 된 성배를 마주하자, 플레이가 위축되어 있었다.
‘그 실력에 움츠러들어 있으면 넌 내 밥이다.’
하지만 실력이 부족할수록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다.
실력도 부족한데 플레이까지 움츠러들면 어떤 방법으로도 성배를 뚫어낼 수 없었다.
“글쎄요. 제가 볼 땐 천천히 전진하는 게 아니라 플레이에 자신이 없는 것 같네요. 자세도 엉거주춤하고, 틈을 만들어내려는 움직임 자체가 어설퍼요.”
원래 성배는 볼을 빼앗는 수비보다 상대를 숨막히게 만드는 수비를 선호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상대와의 기량 차이가 확연할 경우에는 빠르게 역습으로 전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발을 뻗는 경우도 잦았다.
“중간 커트! 주, 태클로 볼 빼내고 빠르게 올라갑니다!”
공격을 시도할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고 볼을 지키려고만 하던 바그프리드지만, 단 한 번의 태클에 바로 볼을 빼앗겨버렸다.
지켜내는 것만 생각했음에도 간단히 볼을 빼앗은 이 장면이 두 선수 사이의 기량 차이를 보여주었다.
‘일단 한 명 벗기고.’
끊어낸 볼은 중앙 쪽으로 흘렀다.
그리고 성배는 중앙으로 볼이 흐른 김에 중앙으로 직접 볼을 몰고 전진했다.
“프링스가 끊어보려 했지만, 실패합니다!”
브레멘의 홈경기지만, 수비적으로 경기하는 쪽도 브레멘이었다.
아무래도 전력에 차이가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수비에 집중하며 라인을 내리고 있어도, 본인들이 공격할 때는 어느 정도 라인이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성배가 볼을 커트하자마자 빠르게 올라가면서 브레멘의 라인이 아직 정리되지 못했고, 라인이 정비될 때까지 시간을 벌려던 프링스의 태클마저 무위로 돌아가면서 맨시티의 역습 찬스가 만들어졌다.
‘역시.’
그리고 성배는 왼쪽 측면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성배의 기대대로 절묘한 움직임을 통해 공간을 만들어낸 실바가 있었다.
“측면으로 연결! 배리와 교차되고, 꺾어줍니다!”
성배는 한 박자 빠른 패스로 실바에게 볼을 연결해주었다.
왼쪽 측면을 통해 파고드는 실바를 막기 위해 프리츠가 달려들었지만, 배리가 뒤에서부터 빠르게 달려와 실바와 교차되며 지나갔고, 프리츠는 배리의 움직임에 속아 실바를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실바는 발목을 꺾으며 페널티박스 안으로 킬패스를 투입했다.
“테베즈, 잡아서 바로 슈팅!”
그리고 파사넨과 프뢰들 사이를 뚫고 파고든 테베즈에게 볼이 연결되었다.
브레멘 수비수들은 어떻게든 테베즈를 방해하려 했지만, 테베즈는 방해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볼을 받자마자 바로 반대편 골포스트를 향해 슈팅, 수비수들은 제발 빗나가라고 기도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골! 골입니다! 테베즈의 선취 골! 주의 인터셉트부터 시작해서 실바, 테베즈를 거친 역습에 걸린 시간은 10초도 되지 않았습니다!”
맨체스터 시티의 챔피언스리그 1호 골 주인공은 테베즈였다.
공격의 중심이자 핵심인 테베즈는 챔피언스리그 1호 골을 터뜨리며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첫 챔피언스리그의 부담감이라는 불안 요소를 안고 있었던 맨체스터 시티인데,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선취 골을 득점하면서 일단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골이라는 것은 항상 선수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맨체스터 시티 소속으로 처음 참가한 챔피언스리그의 부담감은 만만치 않았지만, 먼저 득점에 성공하면서 어느정도 그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분명 두 팀의 전력에서는 맨시티가 한 수 위거든요? 지금의 득점이 어쩌면 신호탄이 되어줄지도 몰라요. 맨시티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거죠.”
부담감을 내려놓을 기회가 맨시티에게 주어졌다.
만약 이번 골이 맨시티 선수들의 부담감을 덜어줄 수 있다면, 그건 베르더 브레멘의 악몽으로 이어질 확률이 낮지 않았다.
***
“아, 브레멘! 경기가 마음대로 풀리지 않습니다! 맨시티의 경기력이 굉장합니다!”
이른 시간에 터진 선취골은 맨시티에게 큰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물론, 부담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 큰 도움이 되었고, 홈에서 수비중심의 전술을 펼치고도 너무 일찍 실점한 브레멘이 흔들리면서 맨시티의 경기력이 좋아 보이는 착시 현상도 있었다.
“투레에게 연결! 바로 중거리 슈팅! 아! 파사넨 몸에 맞고 골라인 아웃! 맨체스터 시티의 코너킥.”
성배의 킥과 콤파니, 투레의 제공권.
게다가 나우두, 메르테사커가 출전하지 못한 브레멘의 상황까지 감안하면 추가 골을 넣을 절호의 찬스였다.
‘이제 더 늦기 전에 한 골 정도 추가해야 하는데.’
베르더 브레멘의 경기력을 보니, 승리가 아닌 대량득점을 노리고 뛰어야 할 것 같았다.
만약 오늘 대량득점을 끌어낼 수 있다면 챔피언스리그 무대에 대한 공포증과 부담감을 한 경기로 떨칠 수 있을 것이었다.
“주가 왼쪽에서 코너킥을 준비합니다. 주의 코너킥은 정확하기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주전 센터백들이 모두 빠졌기 때문에 브레멘은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겁니다.”
성배가 코너킥을 준비하는 동안 브레멘의 골키퍼 비제와 수비수들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킥이 정확하기로 유명한 성배였기 때문에 두 명의 믿음직한 수비수들이 모두 빠진 브레멘 입장에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의 코너킥! 콤파니 맞고 다시 프뢰들 맞고 측면으로!”
콤파니가 먼저 머리를 가져다 댔지만, 사력을 다해 뛰어오른 프뢰들이 겨우 끊어냈다.
프뢰들의 머리에 맞은 볼이 박스 바깥으로 흘렀고, 배리가 다시 볼을 잡아 오른쪽의 존슨에게 넘겼다.
“아담 존슨의 크로스! 파사넨이 걷어내는데, 멀리 가지 못합니다!”
존슨의 크로스가 다시 한 번 투레의 머리를 노렸지만, 오른발 크로스라 정확하지 못해 파사넨에게 끊겼다.
하지만 파사넨의 헤딩도 정확하지 않았고, 멀리 날아가지 않았다.
파사넨의 헤딩은 코너킥 후 다시 자리를 찾아간 성배를 향해 날아왔다.
‘기회다.’
성배는 높이 떴다가 내려오는 볼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볼을 향해 달려들었다.
페널티박스 안에 몰려있던 브레멘 수비수들이 우르르 몰려나왔지만, 성배의 눈은 볼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대로 슈---웃!! 골! 골! 골! 골 넣는 풀백, 주성배가 또 한 번 골을 기록합니다! 이번 시즌 첫 번째 득점! 오른발 슈팅으로 추가 골을 성공시킵니다!”
앞을 가로막는 많은 수비수들이 있었음에도 성배는 절묘한 슈팅으로 브레멘의 골망을 갈랐다.
“풀백인데도 한 시즌 평균 열 골 정도를 넣어주는 선수거든요? 지금도 앞에 수비수들이 많아서 정말 저 코스밖에 없었거든요? 딱 하나 있는 코스로 정확하게 때렸어요. 역시 명불허전! 킥 하나는 최고예요.”
발리 슈팅인데도 그 좁은 코스로 절묘하게 감아찬 성배의 슈팅은 몸을 날린 비제 골키퍼의 손을 외면하고 골대 반대편으로 빨려 들어갔다.
맨체스터 시티의 두 번째 골.
성배는 이번 시즌 첫 번째 골을 챔피언스리그에서 기록, 큰 경기에 강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이제 두 골 차이로 벌어졌습니다. 아직 전반전도 끝나지 않았는데 두 골 차, 이거 어쩌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골이 터지는 다득점 경기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새 두 골.
성배가 기대했던 다득점 경기의 가능성이 조금씩 커졌다.
맨체스터 시티에게 챔피언스리그 공포증이 찾아올 가능성은 그와 반비례해서 작아지는 중이었다.
< 낭만필드 - 24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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