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239화 (151/356)

< 낭만필드 - 239 >

“자, 우리 조 추첨 결과는 다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들 어떻게 생각하나? 어이, 주장! 어때?”

이적시장이 끝나고 하나의 큰 이슈가 지나가자마자 바로 또 하나의 이슈거리가 생겨났다.

바로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에서 공동 개최되는 유로 2012 대회의 예선이 시작된 것이었다.

“뭘 어떻게 생각합니까. 당연히 이번에야말로 유로 출전권 따겠구나, 하고 생각하지.”

2010 월드컵 예선 성적 40%, 유로 2008 예선 성적 40%, 2006 월드컵 예선 성적 20%를 합산해 포트 1부터 포트 6까지 그룹을 분류했다.

그리고 포트별로 한 팀씩을 추첨해 조를 배정하는 시스템이었다.

2006 월드컵 예선 조 4위, 유로 2008 예선 조 3위, 2010 월드컵 예선 조 2위를 차지했던 벨기에는 포트 2에 배정되었다.

그리고 그런 벨기에와 한 조에 속한 팀은...

“하하, 주가 말 한번 잘했네! 러시아고 아일랜드고 우리보다 강한 팀은 없지!! 하하.”

“이번에는 우리도 메이저 대회 진출해야지.”

포트 1의 러시아, 포트 3의 아일랜드, 그리고 아르메니아, 안도라, 마케도니아였다.

러시아는 물론 강팀이었지만, 벨기에가 충분히 해볼 만한 상대였고, 아일랜드도 마찬가지였다.

러시아에는 아르샤빈, 자고예프, 지르코프, 포그레브냑 등 좋은 선수들이 많았지만, 포트 1에 배정된 팀 중 약체에 속했기에 벨기에도 충분히 조 1위를 노려볼 수 있었다.

“그래. 맞아. 이번 기회야말로 우리 벨기에가 메이저 무대로 복귀할 최고의 기회지.”

그야말로 하늘이 준 기회였다.

리빌딩이 착착 이루어지면서 예선 통과를 기대해도 될 정도로 전력이 강해졌고, 거기에 완벽한 조 편성을 받으며 진출 가능성이 높아졌다.

젊은 선수 위주의 벨기에에게 메이저 대회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하늘이 도왔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그러니까 더욱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건 알지? 아직은 우리가 이들을 쉽게 볼 정도의 위치는 아니야. 정신 똑바로 차리고 매 경기를 진출 티켓이 걸린 경기처럼 뛰라고.”

벨기에가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방심이었다.

조금씩 유럽 무대의 주목을 받는 벨기에지만, 아직은 이뤄낸 것이 없었다.

자신감은 좋지만, 방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걱정하지 마시죠. 방심이라니. 방심하는 녀석이 있으면 바로 걷어차 버릴 테니까.”

성배가 벨기에의 주장완장을 찬 이후 처음으로 참가한 메이저 대회 예선이었고, 본격적인 신생 벨기에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이젠 진짜로 메이저 대회에 복귀할 때가 되었다.

***

“거기 앞에! 앞에 프리미어리거!”

성배의 부름에 뎀벨레가 뒤를 돌아보았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AZ에서 풀럼으로 이적한 뎀벨레는 선덜랜드로 이적한 미뇰레와 함께 프리미어리거가 되었다.

“그래! 하하, 네가 뭘 좀 아는구나. 프리미어리거지, 그럼.”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12위를 차지한 풀럼에 많은 기대를 받으며 입성한 뎀벨레는 한창 텐션이 올라간 상태였다.

지나치면 문제가 되겠지만, 적당하면 경기력에 도움이 될 것이었다.

성배가 보기엔 아직 자제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 프리미어리거. 오늘 잘 부탁한다. 완전 박살 내버리자고.”

국가대표에서는 라이트백으로 출전하는 성배와 라이트 윙으로 출전하는 뎀벨레였다.

한 수 아래의 마케도니아를 상대하는 오늘, 마케도니아가 밀집 수비를 펼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두 선수가 측면에서 보여주는 호흡이 매우 중요했다.

“아, 뱅상. 시몽이랑 얘기하고 있었냐.”

뎀벨레와 주먹을 마주한 성배는 다시 자리를 옮겨 콤파니에게 이동했다.

콤파니는 미뇰레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은 미뇰레의 국가대표 데뷔전이었다.

“그래. 오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데뷔전을 치르는 미뇰레에게 많은 것을 바랄 수 없었다.

특히 미뇰레의 스타일 자체가 안정감이나 조율 능력보다는 슈퍼 세이브 능력에 모든 것을 거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수비수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길래 국가대표팀에서도 골키퍼를 키우게 된 건지.”

빌모츠 감독이 가장 신뢰하는 라인이 있다면 당연히 주장과 부주장, 3주장이 모두 포진한 수비라인이었다.

꼭 1년 전에 국가대표로 데뷔한 묀헨글라드바흐의 주전 골키퍼 로건 베일리가 있지만, 베일리는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계속 불안한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는 사이, 신트 트라위던에서 활약하던 미뇰레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프리미어리그 선덜랜드에 진출했고, 빌모츠는 수비라인의 능력을 믿고 미뇰레를 키우기로 했다.

“너무 그러지 마. 데뷔전인데 좀 도와달라고.”

수비라인의 빌드업 능력과 라인 조율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벨기에 골키퍼에게 가장 크게 요구되는 것은 세이브 능력이었다.

그리고 미뇰레는 다른 부분이 부족하지만, 그 세이브 능력만큼은 굉장히 뛰어난 선수였다.

“걱정하지 마. 주가 말은 저렇게 해도 제일 열심히 뛰어다닐 거니까.”

콤파니의 말에 성배는 어깨를 으쓱였다.

선수가 경기에서 열심히 뛰는 건 원래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은 그냥 A매치의 감각만 익혀. 마케도니아 정도한테 슈팅을 허용하진 않을 거니까. 정 아쉬우면 일부러 두세 개 정도는 네 쪽으로 가게 해주지.”

벨기에 수비수들이 빅리그에서 점차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이미 3년 전에 완성되어 호흡을 맞춘 벨기에 국가대표팀 수비라인에 대한 평가 역시 빠르게 높아졌다.

유럽이 주목하는 벨기에 수비진이 마케도니아 정도에게 공략당할 리 없었다.

***

“오른쪽에서 뎀벨레, 크로스! 루카쿠가 떨궈주고, 펠라이니! 아! 수믈리코스키가 먼저 걷어냅니다!”

예상대로 경기는 벨기에의 압도적인 우세 속에 진행되었다.

마케도니아 선수들은 하프라인을 넘어서는 것마저 힘들어했고, 벨기에는 반코트 경기를 펼치며 마케도니아를 두들겼다.

“열 명의 필드 플레이어가 전부 자신들의 진영으로 들어가 나오질 않고 있어요. 그 덕분에 어떻게든 막아내고는 있지만, 오래 버티기는 힘들어 보이네요.”

벨기에를 상대로 마케도니아는 텐백 수비 전술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열 명이 수비한다고 해도 기본적인 기량의 차이를 좁히긴 힘들어 보였다.

“뒤쪽에서 데푸르가 다시 볼 따내서 측면으로. 주에게 이어집니다.”

텐백의 약점은 측면에 있었다.

그런데 성배와 뎀벨레, 그리고 아자르까지.

뛰어난 측면 자원들을 보유한 벨기에의 공격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는 중이었다.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뎀벨레도 뎀벨레지만, 아자르 역시 본격적으로 포텐셜이 폭발한 상황이었다.

지난 시즌 릴 소속으로 52경기에 출전해 10골 1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유로파리그 진출을 이끈 아자르는 빅클럽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중이었다.

‘별로 어렵지 않은데.’

아자르와 뎀벨레도 뛰어난 선수였고, 믿고 볼을 넘겨줄 수 있는 선수였지만, 그들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주, 전방으로 길게 넘겨줍니다! 루카쿠가 또 한 번 공중볼을 따냅니다!”

최전방에서 싸워주고 있는 루카쿠는 공중을 지배하는 중이었다.

지난 시즌, 안더레흐트 소속으로 리그 25경기, 그것도 열 경기는 교체로 출전해 15골 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득점왕, 열여섯 살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득점왕을 수상한 루카쿠였다.

아직 성장기임에도 이미 괴물이 된 피지컬을 앞세운 루카쿠의 제공권에 마케도니아 수비수들은 휙휙 날아다녔다.

“중앙으로 올라오면서 아자르가 따냅니다! 아! 걸려 넘어지면서 프리킥이 선언됩니다!”

제공권을 장악한 루카쿠와 양 측면을 헤집고 다니는 뎀벨레, 아자르를 앞세우고 펠라이니와 데푸르, 성배가 그들을 지원하는 벨기에 공격의 위력은 작년과 또 달랐다.

성장한 아자르, 루카쿠는 본인들의 잠재력을 증명하고 있었다.

“주, 하나 넣어버려. 주장이 그 정도는 해줘야지?”

펠라이니가 프리킥을 처리하러 올라가는 성배에게 웃으며 말했다.

경기 분위기가 좋다 보니 선수들의 표정이 밝았다.

“네가 넣지 말라고 해도 넣어. 내 A매치 득점기록이 너보다 많은데.”

2006년 말부터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성배는 벌써 4년째 벨기에 국가대표로 활약 중이었다.

국가대표 발탁과 동시에 주전으로 활약해온 덕분에 벌써 A매치 서른세 번째 출전 경기였다.

그리고 그 서른세 경기에서 성배가 기록한 골은 8골.

공격수라고 해도 나쁘지 않은 기록이었다.

“잘 부탁해.”

프리킥을 얻어낸 아자르 역시 성배에게 득점을 부탁했다.

빌모츠 부임 이후 두 번의 친선 경기를 치르긴 했지만, 그래도 오늘 경기야말로 진짜 새로운 시작이었다.

오늘 같은 경기는 한 골만 먼저 넣으면 대량 득점이 나올 수 있는 경기였기에 벨기에 선수들 모두 욕심을 내고 있었다.

“그래. 걱정하지 마.”

성배 역시 주장으로 처음 맞이란 메이저 대회 예선을 기분 좋게 시작하고 싶었다.

“벨기에가 프리킥을 준비합니다. 주가 이번에도 역시 키커로 나섰습니다.”

성배의 프리킥은 벨기에가 득점을 기대하는 공격 루트 중 하나였다.

처음 전담 키커로 나서기 시작한 2007년 이후 세 시즌을 전담 키커로 활약하면서 성배가 기록한 득점은 20골.

국가대표팀에서의 프리킥 득점을 더하면 3년 동안 무려 24회의 프리킥을 성공시켰다.

당연히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오른발 프리킥! 반대편으로 감겨서 그대로!! 골! 골입니다! 주, 또다시 프리킥을 성공합니다! 주의 프리킥 선취 골로 벨기에가 리드를 잡아나갑니다!”

오른발 인프런트로 가볍게 감아서 때린 성배의 프리킥은 절묘하게 감기며 반대편 골대 모서리로 빨려 들어갔다.

골키퍼의 실수가 살짝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프리킥 자체가 워낙 정확했다.

“넣으라고 하니까 진짜 넣네? 대단한데?”

주장의 선취 골에 모든 선수들이 성배에게 달려들었다.

신생 벨기에의 시작을 알리는 득점은 주장인 성배의 발끝에서 터졌다.

“벨기에, 완벽한 시작입니다! 완전히 달라진 모습! 마케도니아를 상대로 골 폭풍을 일으킵니다!”

성배의 선취 골이 터진 이후 벨기에는 마케도니아를 말 그대로 탈탈 털었다.

실점 이후 마케도니아 수비진이 흔들리는 것을 놓치지 않은 아자르가 한 골을 추가한 순간, 경기는 거기서 끝났다.

두 골을 실점한 이후, 마케도니아 선수들은 의욕을 상실했고, 그때부터는 벨기에의 쇼타임이었다.

“주를 시작으로 아자르와 데푸르, 반 바이텐이 한 골씩 추가하며 어느새 4-0입니다! 벨기에가 네 골을 넣다니, 이게 얼마 만입니까!”

수비진은 자리 잡은 지 이미 꽤 된 상황이었다.

그동안 벨기에의 발목을 잡았던 건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공격진 때문이었는데, 오늘 네 골이 터지면서 팬들을 설레게 했다.

“그리고 말씀드리는 순간, 아자르의 측면 돌파! 그리고 크로스! 루카쿠!! 들어갑니다! 다섯 번째 골!! 로멜루 루카쿠, A매치 데뷔골입니다!!”

그리고 아자르의 크로스를 받아 득점으로 연결한 루카쿠는 A매치 데뷔골을 기록했다.

“벨기에가 A매치에서 다섯 골을 넣은 건 2005년 9월에 있었던 산 마리노 전 이후 5년 만입니다! 득점이 이렇게까지 폭발하는 모습을 얼마 만에 보는 건가요!”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답답한 공격을 지켜봐야 했던 팬들에게 사죄하는 것처럼 오늘만 다섯 골을 몰아쳤다.

월드컵 예선에서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했던 덕분에 팬들은 이번 유로 대회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리고 벨기에 선수들은 첫 경기부터 팬들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했다.

< 낭만필드 - 239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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