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238 >
“베일의 측면 돌파! 리차즈, 놓칩니다! 크로스! 크라우치, 헤더!! 조 하트!! 하트의 선방! 이건 미쳤습니다! 오늘은 조 하트의 날입니다!”
지난 시즌에 이어 빅4의 해체를 이끌 선봉장이라 꼽히는 두 팀의 경기.
팬들은 두 팀이 그에 어울리는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생각보다 일방적인 경기가 펼쳐졌다.
“맨시티, 아직까지는 조직력에 심각한 문제점이 보이네요. 그나마 주와 콤파니를 앞세운 수비진이 확실히 자리를 잡아주고 있어서 다행이긴 한데, 미드필드와 공격진의 조직력은 아직 좀 더 맞춰 봐야겠네요.”
그렇게 어울리진 않지만, 상대적으로 조직력을 끌어올린 토트넘과 돈으로 스타들을 사모은 맨시티의 대결.
적어도 오늘 경기만큼은 조직력의 승리였다.
지난 맞대결에서는 리차즈에게 밀렸지만, 그사이 또 성장해 오늘은 우세를 점한 베일을 중심으로 레넌, 데포, 크라우치, 모드리치를 앞세운 토트넘의 공세가 이어졌다.
“좋아! 바로 그거야! 그렇게만 하라고!”
멋진 선방을 연달아 보여준 하트에게 성배가 소리쳤다.
하지만 맨시티에도 희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시즌 초반의 부진은 맨시티의 서포터즈, 코칭스태프, 선수단까지 모두 예상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팀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수비진이 굳건했고, 그 수비진의 중심을 성배와 콤파니가 굳건히 잡아주고 있는 만큼, 시간만 지나면 언제든 치고 올라갈 수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수비는 완벽해! 마이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가도 좋아! 콜로가 커버해 줄 거야!”
“마이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가! 콜로랑 나를 믿어!”
계속된 공세에 움츠러들 수 있었지만, 왼쪽 측면에서 계속 목이 터져라 소리쳐 좋지 않은 상황에서 분위기를 유지하는 성배, 그리고 성배의 말을 반대편에 전해주며 실질적인 수비라인 조율을 맡은 콤파니 덕분에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원래 이 시기 맨시티의 가장 큰 약점이 수비 조직력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과거보다도 훨씬 더 좋은 상황이었다.
“주가 계속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습니다. 보통 저럴 때는 뭐라고 외치는 겁니까?”
“보통 동료들을 독려하거나 질책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주의 표정과 제스처를 보니 질책하는 건 아닌 것 같네요. 주에게 부주장을 주면서 수비진의 리더 자리를 준 만치니 감독의 선택이 조금 의문이었는데, 오늘 경기를 보니까 그 의문이 풀리네요. 충분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나마 맨체스터 시티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조 하트의 멋진 선방 퍼레이드 덕분이었다.
그리고 하트가 그런 멋진 선방들을 연속해서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는 성배를 위시한 수비진이 각도를 잘 좁혀주었기 때문이었다.
겉으로 보이기엔 하트의 화려한 선방들이 눈에 띄었지만, 전문가나 코칭스태프들은 수비진과 성배, 콤파니의 조율에 집중했다.
“배리가 왼쪽으로 연결합니다. 이번 시즌 새롭게 영입된 다비드 실바가 볼을 잡습니다.”
새로 영입된 실바와 투레의 활약은 나쁘지 않았다.
나머지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인 배리, 데 용보다 살짝 전진 배치된 투레는 공격에 비중을 둔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가볍게 촐루카와 허들스톤의 압박에서 벗어납니다!”
그리고 실바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유의 우아한 플레이로 극찬받는 실바는 허들스톤과 촐루카의 압박을 좁은 공간에서 드리블과 개인기로 가볍게 벗겨냈다.
새로 영입된 선수들의 기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기대 이상이었다.
“실바, 중앙으로! 아, 패스가 좀 짧았습니다! 킹이 먼저 걷어냅니다.”
문제는 이들의 호흡이었다.
맨시티의 공격은 테베즈를 중심으로 실바, 투레, 존슨이 만들어나가고 있었는데, 새로 영입된 실바와 투레는 말할 것도 없고, 존슨 역시 영입된 지 반년밖에 되지 않은 선수였다.
손발이 전혀 맞지 않는 네 명의 선수에게 공격 전개를 일임하고 있었으니, 공격이 제대로 이뤄질 리 없었다.
“모드리치가 오른쪽으로 크게 벌려줍니다! 레넌의 뒷공간 침투!”
그리고 공격진에서 패스가 자주 끊기면서 베일과 레넌의 토트넘 육상부에게 뒷공간도 자주 노려지고 있었다.
성배와 리차즈가 공격에 참여하고 싶어도 패스가 계속 끊기는 상황에서 풀백이 적극적으로 올라가는 것은 무리였다.
“주, 레넌과 함께 달립니다!”
오른쪽의 리차즈는 종종 베일에게 뒷공간을 내줬지만, 성배는 레넌을 상대로 확실한 우위를 점했다.
스피드에서는 네 명 중 가장 부족했지만,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움직임과 한 템포 빠른 예측 수비 덕분이었다.
“태클! 종이 한 장 차이로 주가 먼저 볼을 걷어냅니다!”
이번에도 레넌의 돌파는 이뤄지지 않았다.
베일과 레넌이 양쪽에서 맨시티를 흔들었다면, 오늘 경기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성배가 오른쪽의 레넌을 봉쇄한 덕분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오늘 정말 레넌이 답답하겠네요. 팀 분위기는 굉장히 좋은데, 본인은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어요.”
이 경기는 맨시티의 문제점과 동시에 희망을 보여주었다.
다행히 모든 강팀의 기본이 되는 수비진의 정비가 마무리되었다는 것이 증명되었기에 걱정했던 것보다는 나은 상황이었다.
‘후우, 뭐 이 정도는 예상했으니까.’
팬들 대부분은 맨시티의 스쿼드만 보고 이번 시즌 성적을 낙관했겠지만, 정작 선수단과 코칭스태프는 걱정이 많았다.
훈련장에서 보인 모습 역시 오늘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성배는 맨시티의 원래 모습을 기억했기 때문에 지금이 훨씬 더 좋은 상황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
[맨시티, 돈으로 만든 팀의 한계?]
토트넘전에서의 졸전으로 맨시티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가 짙어졌다.
빅4 중 리버풀이 우승 후보 명단에서 일찌감치 빠진 가운데, 맨체스터 시티는 유력한 우승 후보 중 한 팀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빠르게 떠오른 팀이었기에 한 번이라도 흔들리면 바로 물어뜯겼다.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라 돈의 힘으로 강해졌기에 더욱 그랬다.
전문가들과 팬들, 심지어 구단주인 만수르마저 이번 시즌 목표가 챔피언스리그 진출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모두가 입을 모아 시즌 초반의 부진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해왔다.
그런데도 언론들은 맨시티의 위기설과 한계설을 앞다퉈 실었다.
맨시티는 그렇게 최고의 이슈메이커지만, 팬을 제외하면 비난에 휩싸이는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의 포지션을 따라가는 중이었다.
[맨체스터 시티, ‘악동’ 마리오 발로텔리 영입!]
그렇다고 해서 만수르와 맨체스터 시티가 위축될 리 없었다.
맨시티의 폭풍 영입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꾸준히 노려왔던 발로텔리를 기어이 2,200만 유로에 영입한 것이었다.
도저히 커버해줄 수 없는, 악동을 넘어 이해할 수 없는 정신세계를 보여주었던 발로텔리지만, 인테르 시절 함께 했던 만치니 감독을 아버지처럼 여긴다고 알려져 있었다.
사실 그런 정신세계만 제외하면 기량과 잠재력이 굉장한 선수였기에 맨시티 보드진은 만치니 감독이 발로텔리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영입을 마무리했다.
‘아, 카를로스만으로도 힘든데.’
발로텔리의 영입이 완료되었다는 건 만치니 감독에게 이미 전해 들어 알고 있었지만, 결국 오피셜까지 떠버린 것을 확인한 성배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실제 주장은 테베즈지만, 주장 역할은커녕 오히려 부주장 성배의 집중 관리 대상 목록에 올라 있었다.
테베즈의 멘탈 관리만으로도 힘에 부친 상황에서 테베즈를 뛰어넘는 세계 최고의 악동, 발로텔리의 합류는 성배가 한숨을 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뭐, 크게 신경 쓰지 말자. 아버지같이 생각한다던 로베르토 말도 안 들었는데, 내가 아무리 고생해봐야 듣지도 않아.’
빠른 포기가 답이었다.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대할 뿐, 그 이상의 신경은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발로텔리를 관리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성배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지 않았다.
‘사고는 많이 쳐도 1, 2년 정도는 잘해줬으니까. 딱 그만큼만 활용하면 충분해.’
발로텔리를 갱생시켜서 오랫동안 함께 뛰겠다, 하는 마음은 없었다.
어차피 발로텔리는 현대 축구에서 꺼리는 플레이 스타일을 모두 갖춘 공격수였다.
엄청난 피지컬을 가지고 있음에도 몸싸움을 극도로 기피하고 그래서 원톱으로 어울리지 않았다.
발로텔리를 쓰려면 강제로 투톱을 활용해야 했다.
이미 현대 축구에서는 멸종된 스타일의 공격수였다.
‘아게로랑 제코가 올 때까지 버텨만 주면 돼.’
성배가 생각하는 발로텔리의 역할이었다.
갱생시킬 수 있다면 발로텔리보다는 제코 쪽이 훨씬 더 가치가 높았다.
뛰어난 제공권을 갖춘 타겟형 스트라이커 제코는 성배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노력을 해도 제코를 위해 하지, 발로텔리를 위해 노력할 이유가 없었다.
***
결과적으로 맨시티는 선수단 정리를 완료하지 못했다.
그래도 이적시장 마지막 날, 가장 처리가 시급했던 호비뉴를 영입한 가격의 절반 수준인 1,800만 유로에 AC밀란으로 보내며 그나마 한숨을 돌렸다.
결과적으로 방출에 성공한 선수들은 호비뉴, 아일랜드, 가리도, 보지노프, 페트로프, 카이셰도, 음와루와리, 벨라미, 오누오하 정도.
지난 시즌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었던 벨라미가 가장 아쉬웠다.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었다지만 새롭게 합류한 실바와 밀너를 상대로는 기량에서도, 위상에서도, 나이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없었다.
결국, 벨라미는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정상급 윙어로 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치니와의 불화와 맨시티의 급처분 결정에 휘말려 챔피언십의 카디프로 임대를 떠나고 말았다.
벨라미 외에도 여러 실력 있는 선수들이 급하게 팀을 떠나 적절한 팀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한때 잉글랜드의 희망이라 불렸던 마이클 존슨은 이번에도 새로운 팀을 찾아보았지만, 많은 부상 이력과 잦은 부상으로 새 팀을 찾지 못하고 리저브팀에 남았다.
이번 여름 이적시장에서 각팀들은 ‘지난 겨울을 조용히 보낸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였다!’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축구계도 멀쩡할 수는 없었다.
빅클럽들은 물론이고 중소클럽 역시 일제히 지갑을 닫았고, 대형 이적은 몇 건 성사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영향을 받지 않은 클럽은 만수르의 맨시티 뿐이었다.
다비드 비야와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를 영입한 바르셀로나, 앙헬 디 마리아, 메수트 외질, 사미 케디라 등을 영입한 레알 마드리드도 평소에 비해 투자 규모를 확 줄였다.
맨체스터 시티와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세 팀의 영입을 제외하면 그나마 빅네임이라고 할 수 있는 선수의 이적은 호비뉴, 훈텔라르, 반 더 바르트 정도가 다였다.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맨체스터 시티의 멈추지 않는 폭풍 영입이 더 관심을 받고 타 클럽 팬들로부터 비판을 받은 것이었다.
이적시장이 마무리된 시점에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놓고 다투게 될 다른 어떤 클럽보다 확실하게 전력을 강화한 맨체스터 시티의 이번 시즌 성적에 큰 관심이 쏠렸다.
< 낭만필드 - 238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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