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237 >
기사를 본 성배는 허리를 곧추세우고 다시 한 번 천천히 읽어보았다.
다시 한 번 천천히 읽어보아도 바뀌는 건 없었다.
아직 오피셜은 아니었지만, 흔히 ‘비피셜’이라 이야기할 정도로 이적설 기사에서 정확도를 자랑하는 BBC의 기사였다.
이 정도면 거의 확정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뭘 그렇게 자세히 보고 있어?”
노트북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성배의 모습에 뭘 보고 있는지 궁금해진 콤파니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라키티치? 아, 그 친선 경기에서 봤던 그 친구구나.”
같은 기사를 보았지만, 콤파니는 성배만큼의 충격을 받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라키티치는 그 정도의 위치였다.
“응. 그래. 이번에 우리 팀으로 온다고 하네.”
이적료는 500만 유로.
앞으로 성장할 라키티치의 가치와 잠재력을 생각하면 형편없을 정도로 적은 액수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이해가 되는 액수였고, 오히려 프리미어리그 클럽이었기에 생각보다 비싸게 주고 산다는 인식까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의 역사에서 라키티치는 반년 뒤, 계약 기간 반년을 남겨두고 150만 유로의 이적료로 세비야에 합류했기 때문이었다.
“음. 유망주는 잘 안 사고 당장 주전으로 뛸 수 있는 A급 선수들만 영입하더니 웬일로 유망주를 영입했대? 이 친구 잘하기는 하지만, 가레스나 야야, 니헬을 밀어낼 정돈 아니잖아?”
라키티치는 분명 분데스리가 탑클래스의 유망주였다.
메수트 외질과 함께 샬케 유스로 활약하다가 샬케가 포지션이 겹치는 외질을 베르더 브레멘으로 보내고 선택한 선수이기도 했다.
하지만 공격형 미드필더를 활용하지 않고 4-4-2포메이션을 선택한 마가트 감독 밑에서 라키티치는 중앙 미드필더와 왼쪽 측면 윙어를 오가며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좋다고도 볼 수 없을 정도 활약에 그쳤다.
“그건 그렇지. 그래도 내가 볼 때, 이 친구는 분명 큰 도움이 될 거야. 우리 중원에는 킬패스를 넣어줄 수 있는 미드필더가 없으니까.”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윙어를 번갈아 맡는 상황 속에 성장이 정체된 라키티치는 결국, 이번 시즌을 앞두고 샬케가 라울을 영입,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용하기로 결정하고, 백업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도 드락슬러와 홀트비에게 내주면서 완전히 자리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그의 정확한 패스와 좋은 킥력, 뛰어난 공격 재능은 맨체스터 시티가 꼭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건 그렇지. 다비드가 왼쪽으로 가면서 중앙에서 다비드를 도와줄 선수가 필요하긴 했으니까.”
라키티치의 영입은 분명 성배의 말을 만치니가 받아들인 것이라 봐야 했다.
원래대로였다면 맨시티의 가장 큰 약점은 레프트백 포지션이 되었을 것이었다.
성배가 없었다면 라치오의 레프트백, 알렉산다르 콜라로프에게 쓰였을 이적 자금 1,800만 유로가 세이브되고, 그 1/3도 되지 않는 이적료가 라키티치에게 투입된 것이었다.
“그래. 전에 내가 로베르토한테 말한 적 있거든. 피지컬 덩어리 중앙 미드필더들도 좋지만, 한 명 정도는 창조적인 선수가 필요하다고. 그렇다고 당장 엄청난 선수가 필요한 것도 아니니 라키티치 정도면 충분하지. 키워서 써먹을 수 있으니까.”
분명 아직은 성장이 더 필요하지만, 88년생으로 성배보다 한 살이 어린 선수였다.
2007년, 열아홉 살의 나이로 A대표팀에 데뷔했을 만큼 잠재력이 뛰어난 선수였기에, 적응만 할 수 있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
“이제는 주를 향한 야유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환대를 보내주는 건 아니지만, 전체적으로는 호의적인 분위기입니다.”
지난 시즌만 하더라도 하늘색 유니폼을 입은 성배가 화이트 하트 레인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화이트 하트 레인의 절반은 야유, 절반은 환호를 보냈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는 특별한 반응이 없었고, 전체적으로 호의적인 느낌이었다.
이적에 대한 불만은 사라졌고, 성배가 안겨준 칼링컵 트로피 덕분에 호의만 남은 것이었다.
“이번 시즌, 토트넘은 분명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 진지하게 뛰어야 해.”
토트넘과 맨체스터 시티는 빅4의 아성을 무너뜨릴 대표적인 클럽이라 평가되고 있었다.
이미 지난 시즌에 명가 리버풀이 7위까지 떨어지면서 자존심을 구겼고, 그 자리의 주인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했던 두 클럽이었다.
지난 시즌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리버풀은 소극적인 이적시장을 보냈고, 이번 시즌에도 자존심을 회복하기는 힘들 거라 예상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이번 시즌에도 맨체스터 시티와 토트넘, 두 클럽 중 한 곳이 차지할 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너무 걱정하는 거 아닙니까? 지난 시즌에도 그랬듯, 이번 시즌에도 우리가 이깁니다.”
지난 시즌 중후반까지만 하더라도 토트넘보다 아래에 있었던 맨체스터 시티는 첼시와의 ‘불륜 더비’를 기점으로 팀의 폼이 올라왔다.
그 이후, 맨시티는 무섭게 치고 올라가 아스날을 4위로 밀어냈으며, 2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한 경기 이내의 차이로 따라잡았다.
“당연히 그래야지. 클럽에서 지원해준 금액의 클래스가 다른데.”
토트넘 역시 쏠쏠하게 전력을 보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스날의 중앙 수비수이자 주장이었던 윌리엄 갈라스를 자유계약으로 영입하며 솔 캠벨 이적 건을 복수했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탑클래스 공격형 미드필더 라파엘 반 더 바르트를 고작 800만 유로에 영입하기 직전이었다.
브라질의 신성, 수비형 미드필더 산드로의 영입 역시 주목할만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맨체스터 시티의 재력을 상대할 순 없었다.
“토트넘의 기본 전략은 아마 지난 시즌과 크게 차이가 없을 거야. 선수단 구성도 그대로고. 지난 시즌과 비슷한 4-4-2겠지.”
맨체스터 시티가 압도적인 재력을 활용한 폭풍 영입으로 전력을 강화했다면, 토트넘은 기존 선수단의 조직력을 끌어올려 전력을 강화했다.
선수 이탈은 유망주 포지션의 아델 타랍과 카일 워커, 카일 노턴, 안드로스 타운젠드의 임대 정도가 다였고, 주력 선수들은 모두 자리를 지켰다.
“조직력 하나는 분명 엄청나겠네.”
2001년, 주필러 리그의 베베런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해 지금까지 아홉 시즌을 치르고 열 번째 시즌을 맞이한 야야 투레는 벌써 여섯 번째 클럽에 도착해 있었다.
그에게 조직력, 혹은 팀워크라는 것은 좀 먼 이야기였다.
“정답.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겠지. 아무래도 선수단이 구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는 조직력 면에서 토트넘에 밀릴 수밖에 없어. 그러니 다들 개인 기량을 끝까지 보여줘야 해.”
조직력에서는 토트넘이, 선수 개인 기량에서는 맨체스터 시티가 한 수 위였다.
하지만 토트넘 역시 최정상급의 클럽인 만큼, 선수 개인 기량에서 크게 밀리는 것도 아니었다.
맨시티에게 토트넘은 분명 까다로운 클럽이었다.
“조. 왜 그래? 긴장이라도 한 거야?”
그라운드 입장을 앞두고 성배는 한 선수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다른 선수들과는 유니폼이 좀 달랐다.
하늘색이 아닌 초록색의 유니폼을 입은 한 선수.
이번 시즌 맨체스터 시티의 주전 골키퍼로 낙점된 조 하트였다.
“긴장이라. 그런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뭐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네. 흑흑.”
2008/09시즌 전반기까지만 하더라도 맨체스터 시티의 주전 골키퍼였던 하트는 후반기에 기븐이 영입되며 백업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2009/10시즌, 경험을 쌓기 위해 버밍엄 시티로 임대된 하트는 초반만 잠시 흔들리다가 이후부터 정신을 차리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재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긴장은 무슨. 지난 시즌 버밍엄 시티 올해의 선수신데.”
그리고 승격과 강등을 반복하던 버밍엄 시티는 지난 시즌 최고의 영입 10위권에 가장 많은 선수를 올린 이적시장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리그 9위라는 엄청난 성적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 버밍엄 시티의 2009/10시즌 올해의 선수가 조 하트였다.
“버밍엄 시티랑 맨체스터 시티가 같지는 않지. 나한테 의미도 다르고.”
영국 제2의 도시 자리를 놓고 맨체스터와 경쟁하던 버밍엄은 20세기 이후 제2의 도시 자리를 굳혔다.
하지만 버밍엄 시티를 연고로 하는 아스톤 빌라와 버밍엄 시티는 맨체스터를 연고로 하는 맨유, 맨시티와는 전력의 차이가 있었다.
느끼는 부담감의 차이도 있을 수밖에 없었고, 임대신분과 정식 선수의 차이도 있었다.
“그렇게 부담스러우면 오늘은 그냥 막는 데만 집중해. 수비 조율은 우리가 어떻게든 해줄 테니까.”
젊은 골키퍼가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수비라인의 조율이었다.
최후방에서 그라운드의 모든 부분을 관찰하는 골키퍼는 그 정보를 바탕으로 수비라인을 컨트롤해줘야 했다.
하지만 이제 막 프로 커리어를 시작하는 젊은 선수에게 그런 시야와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감독들이 유독 골키퍼 포지션을 배타적으로 기용하는 것이었다.
“고마워. 믿음직스럽네. 주랑 뱅상이라면 믿을 수 있지.”
하지만 라인 조율 능력이 뛰어난 커맨더형 수비수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젊은 골키퍼를 기용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뛰어난 수비라인의 존재였다.
맨체스터 시티에서 커맨더형 수비수 역할을 맡은 콤파니는 뛰어난 커맨더였고, 파트너 투레는 커맨더까지는 아니더라도 경험이 많은 선수라 어느 정도 역할을 해줄 수 있었다.
“중앙에서 괴롭힘을 좀 받아도 그땐 내가 해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이제 더 말이 필요 없는 성배까지.
리차즈를 제외하면 모든 수비수가 라인 조율을 해줄 수 있었기 때문에 커맨더를 적극적으로 괴롭혀 상대 수비를 흔드는 전술도 사용하기 힘들었다.
그게 맨체스터 시티 수비진의 장점이었다.
만치니 감독이 하트를 중용하기로 결정하면서도 걱정을 덜 수 있었던 이유였다.
***
“주! 이번 휴가 때는 왜 런던에 안 왔어?”
오랜만에 만난 베일이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왔다.
보통 베일이 먼저 연락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여전히 친분을 이어가고 있는 두 사람이었는데, 이번 휴가 때는 얼굴을 보지 못했다.
“런던 갔어. 다만, 그때 네가 런던에 없었을 뿐이지. 네가 휴가가서 못 본 거야. 내 잘못 아니다.”
공부도 좋지만, 잉글랜드를 처음 방문한 유빈이에게 런던을 보여주고 싶었던 성배는 며칠 정도 시간을 내 함께 런던을 여행했다.
하지만 마침 그때 베일은 해외에서 휴가를 보내는 중이었고, 결국 만나지 못했다.
“에이, 그래도. 거리가 먼 것도 아닌데 한 번 정도 올 수도 있잖아. 그리고 내가 찾아가겠다고도 했는데.”
사실 연락은 몇 번 왔었다.
베일이 맨체스터를 방문하겠다고 한 적도 있었고.
다만, 유빈이의 적응과 준비를 도와주느라 성배에게 시간도, 여유도 없었던 것이 문제였다.
“뭐, 고작 두 달 정도 못 본 것뿐인데 뭘 그래. 이렇게 봤으면 됐어.”
사실 베일에게는 좀 미안한 것도 있었다.
원래 이번 시즌은 맨체스터 시티가 아닌 토트넘이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는 시즌이었다.
그리고 베일은 그 챔피언스리그에서 마이콘을 탈탈 털어버리면서 역사에 남을 치고 달리기 동영상을 만들어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배의 존재와 그로 인한 맨시티의 약진으로 베일의 기회가 사라져버렸다.
“일단 곧 시작하니까 난 간다. 열심히 해라.”
그래도 베일이라면 분명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었다.
여전히 건재한 맨유, 아스날, 첼시에 변화된 맨시티 때문에 챔피언스리그에서 활약할 기회를 얻지 못해 전과 같은 몸값을 기록하긴 힘들겠지만.
< 낭만필드 - 23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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