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236 >
“오랜만이에요. 생각보다 좀 늦었죠?”
시즌 개막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성배는 첼시와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유빈이를 도와준 보답으로 한 번 대접하기로 했던 것이 꽤 늦어진 것이었다.
“그러게요. 좀 늦으셨네요. 언제 부르시나, 기다렸는데.”
첼시는 콧등을 찡그리며 불만을 표시했다.
물론, 장난기가 섞인 투정에 가까웠지만.
“하하, 미안합니다. 대신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오늘 드시고 싶은 거 뭐든 다 사드릴게요. 그걸로도 부족할 만큼 크게 도와주셨으니, 뭐든 다 말씀만 하세요.”
사실 보답 차원의 자리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보면 데이트였다.
엄밀히 따지자면 첼시의 도움에 성배가 보답하겠다 했을 때, 밥 한번 먹자는 첼시의 말은 사실상의 데이트 신청이었다.
“오! 좋은데요? 저 생각보다 많이 먹거든요.”
유럽은 다를 거라는 편견이 있지만, 사실 영국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데이트 신청은 보통 남자가 먼저 하는 편이고, 서로 알아가는 시기에도 거의 남자가 먼저 연락해 약속을 잡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의외로 데이트 비용을 남자가 내야 한다는 인식이 우세했다.
특히 그것이 첫 데이트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가족들과 가족들의 가족들, 그 가족들의 가족들까지 모셔와도 괜찮으니까요.”
상당히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었지만, 아무리 고급스러운 곳이어도 성배가 부담을 느낄 리 없었다.
그리고 성배와 비교하면 많이 부족하지만, 첼시 역시 고소득자에 속했기에 이런 레스토랑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다.
“요즘 팀 분위기는 어때요? 지금 엄청 어수선할 것 같은데.”
데이트처럼 만났고, 분위기 역시 데이트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나누는 대화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데이트라고 해서 호구조사를 한다거나 혈액형을 물을 사이도 아니었고, 그런 정서도 아니었다.
“어수선하죠, 아무래도. 지난 시즌에도 그랬는데 이번 시즌에도 지난 시즌 못지않게 팀이 바뀌고 있으니까요.”
이번 시즌 영입은 지난 시즌과 비교하면 그리 많지 않았지만, 아직 협상 중인 선수가 많아 결과적으로는 비슷할 거라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그리고 그 파장은 지난 시즌보다 훨씬 더 클 것이라 예상되었다.
“25인 로스터는 어떻게, 정리된 것 같아요?”
그 이유는 이번 시즌부터 도입된 25인 로스터 제한 때문이었다.
프리미어리그 출전 명단을 25인으로 제한하고 여기에 21세 이전까지 잉글랜드에서 3년 이상 활약한 선수 8명을 필수적으로 넣어야 한다는 규정이 생겼고, 이는 맨체스터 시티를 포함한 빅클럽들에게 큰 고민거리를 안겨주었다.
일단 스쿼드를 운용하는 방식이 바뀌고, 지금까지 30명 이상을 두고 시즌을 진행하던 것에 비해 빡빡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적어도 다섯 명 이상은 더 내보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까요? 개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는데.”
이적 루머가 뜬 선수 중 절반만 합류한다고 쳐도 세 명이었다.
그렇게 되면 맨체스터 시티 1군의 21세 이상 선수는 서른두 명.
최소 일곱 명을 방출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어쩐지. 나이젤 데 용이나 셰이 기븐 같은 선수들에게까지 방출설에 시달릴 때부터 알아봤어요.”
이미 다른 클럽으로 이적한 선수들까지 포함하면 이번 시즌에만 최소 열 명 이상의 선수가 팀을 떠나게 되는 것이었다.
유력한 방출 후보에는 지난 시즌 전반기까지만 하더라도 팀의 핵심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던 스티븐 아일랜드나 호비뉴, 크레이그 벨라미 등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쪽으로는 뭔가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그래서 발표 일정이 나오면 바로 알려줄게요. 아직은 한창 논의하는 단계라서 저도 자세히 아는 게 없어요.”
주장은 아니어도 부주장이었기 때문에 선수단 관련 사항에 대해 다른 선수들보다는 많이 알고 있는 성배였다.
게다가 주장인 테베즈가 영어를 아예 못해서 구단 수뇌부와 코칭 스태프들은 주로 성배와 대화를 나누었다.
선수 중에는 정보가 가장 빠를 수밖에 없었다.
“아, 이번에 부주장이 되신 거 축하해요. 지난번에 만났을 때는 벨기에 주장이 된 걸 축하했었는데, 이번에는 맨시티의 부주장이 되셨네요.”
첼시는 성배가 팀의 중심을 넘어 유럽 축구계의 중심으로 발을 넓혀가는 것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고마워요. 대표팀이야 될만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클럽은 좀 부담스럽긴 해요.”
부주장이 되어 주장 테베즈를 대신해 실질적인 주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그 장악력은 많이 부족했다.
기존의 베테랑 선수들인 콜로 투레나 아데바요르, 산타 크루즈, 나이젤 데 용 등에게는 아직 장악력이 미치지 못했고, 동년배지만 끝내주는 성격의 리차즈도 부담스러웠다.
거기에 야야 투레나 실바 등 새로 합류한 선수들은 이들보다도 네임밸류가 더 높았기에 그야말로 첩첩산중이었다.
“그래도 스물세 살에 국가대표팀과 클럽의 중심이 된 선수는 역사를 따져봐도 거의 없어요!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니까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사실 그렇긴 했다.
스물세 살에 대표팀의 주장이 된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인데, 세계 최고의 스타들이 모이는 프리미어리그, 거기다 그 프리미어리그의 우승후보로 꼽히는 맨체스터 시티에서까지 실질적인 주장으로 활약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아직 장악력이 팀 구석구석까지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아쉬워하기보단 어린 나이에 콤파니, 배리, 존슨, 사발레타 등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필요가 있었다.
“힘이 좀 되네요. 여전히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런 걸 몰라서 부담을 느끼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좋게 봐주니 힘이 되긴 했다.
“계속 그렇게 응원을 해주는데 마땅히 해줄 말은 없고, 굳이 한마디만 하자면... 이번 시즌 맨시티는 아마 지난 시즌보다도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거예요. 확신해요.”
사실, 리포터와 축구선수의 만남은 완벽한 반면교사가 존재했다.
바로 스페인과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 이케르 카시야스와 그의 여자친구인 TV 리포터 사라 카르보네로였다.
카시야스의 동료인 호날두가 자신을 이성적으로 좋아한다는 등의 망언을 일삼는데도 카시야스는 이를 두둔하기만 하는 바람에 팬들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아왔다.
심지어 나중에는 팀 내부 정보를 여자친구에게 발설한다는 의심까지 받으며 굉장한 비난에 휩싸인 적도 있었다.
“그건 꼭 칼럼니스트가 아니더라도 주변 팬들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말 아니에요? 치.”
물론, 아직 그런 사이는 아니었지만, 남녀 사이가 아니더라도 일단 축구 관련 언론인과 사적인 만남을 가질 때는 더욱 신경을 써야 했다.
언론인은 자신이 아는 정보를 발표하는 게 직업이었다.
배신이 아니고 실수한 선수의 잘못인 게 당연했다.
“하하, 근데 이건 진짜 객관적으로 말하는 거예요. 제가 속한 클럽이지만, 전 제가 속한 그룹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거든요.”
해도 되는 이야기와 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
성배의 기준으로 이런 이야기는 해도 되는 정도가 아니라 꼭 해야 하는 이야기였다.
최근 몇 시즌 동안 맨체스터 시티가 큰 관심을 받는 상황에서 여러 칼럼니스트가 전력 분석 글을 썼지만, 선수밖에 모르는 내용이 따로 있기 때문이었다.
“흐음. 물론, 주의 눈이 정확한 거야 다들 알고 있죠. 그럼 일단 한 번 들어볼까요?”
데이트라고 하면 데이트라고 할 수 있는 자리이지만, 딱히 그런 느낌의 대화가 이어지지는 않았다.
서로의 직업답게 축구에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이었고, 음식이나 술 한 잔과 함께 하는, 격식이 없는 인터뷰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축구 이야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런 대화 속에서 즐거워했다.
사실, 데이트라는 건 두 사람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고, 그렇게 보면 오늘의 데이트는 다른 커플들의 만남보다 더 데이트다운 데이트였다.
식사 이후 간단하게 바에서 칵테일과 무알콜 칵테일을 시켜놓고 대화를 이어간 두 사람은 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
***
[맨시티, 아일랜드+1,800만 파운드로 제임스 밀너 영입.]
8월 14일, 맨체스터 시티는 아스톤 빌라의 중심축 역할을 맡아주던 제임스 밀너를 영입했다.
밀너는 아일랜드를 포함한 부분 트레이드로 맨시티에 합류했다.
25인 로스터 제한 때문에 어떻게든 선수를 처분해야 했던 맨시티와 빅클럽으로 이적하려는 제임스 밀너, 그리고 제임스 밀너를 내보내면서 수준급 미드필더 영입이 필요했던 아스톤 빌라의 상황이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놀라운 것은 밀너의 이 이적료가 야야 투레는 물론 다비드 실바보다도 높은 금액이라는 것.
비록 주전 자리에서는 밀렸다지만, 스티븐 아일랜드는 지난 시즌 전반기까지만 하더라도 수준급 공격형 미드필더라는 평가를 받은 선수였다.
아스톤 빌라가 트레이드를 받아들인 이유가 있었다.
즉, 잉글랜드 출신 유망주라는 프리미엄까지 더하면 이적료가 꽤 나간다는 뜻이었다.
어쨌든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 양쪽 측면 미드필더, 심지어 풀백까지 모두 소화가 가능한 밀너의 합류는 맨시티에 큰 힘이 되어줄 것이었다.
특히, 25인으로 선수 등록이 제한되면서 멀티 플레이어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맨시티, 선수단 정리 가능할까?]
하지만 성공적인 알짜배기 영입이 계속될수록 불안요소도 늘어났다.
바로 선수단 정리 때문이었다.
페트로프와 음와루와리, 보지노프, 가리도, 아일랜드를 내보내고 오누오하와 카이셰도를 임대보냈지만, 여전히 영입이 끝나지 않았기에 다섯 명 이상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실바와 밀너의 합류로 과포화 상태가 되어버린 측면에서만 호비뉴, 숀 라이트-필립스, 크레이그 벨라미의 정리가 필요했다.
안 그래도 과포화 상태였던 공격진 역시 발로텔리의 영입이 가시화되면서 카이셰도 외에도 기대 이하의 활약을 보여준 루케 산타 크루즈와 조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리차즈, 아일랜드와 함께 맨시티의 유스 시스템을 대표하던 마이클 존슨 역시 이제는 정리할 타이밍이었다.
이적 시장 마감 날짜까지 고작 2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정리해야 할 선수가 아직도 이렇게 많이 남았다는 것은 맨시티의 불안요소가 될 수밖에 없었다.
25인 명단에 들어가지 못한 선수들은 어쩔 수 없이 리저브팀으로 내려가야 했고, 어지간한 프리미어리그 팀이라면 주전으로 활약할 수 있는 이들이 리저브팀으로 내려갈 경우, 팀 분위기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당연했다.
다들 괜찮은 기량을 갖춘 선수인 만큼, 여전히 많은 팀의 관심을 받고 있지만, 급한 쪽은 맨시티였기 때문에 상대팀들은 눈치만 보고 있었다.
***
“아, 첫 경기부터 원정이라니. 뭔가 마음에 안 들어.”
맨시티의 2010/11시즌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은 토트넘과의 원정경기였다.
런던으로 이동하는 동안 선수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마인드컨트롤을 하고 있었다.
‘음? 이게 뭐지?’
성배는 보통 잠을 자거나 음악을 듣는 편이었지만, 오늘은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하고 있었다.
얼마 전 자신이 말해준 정보를 바탕으로 맨시티의 전력에 대해 양질의 분석 칼럼을 작성한 첼시의 칼럼을 읽으면서 흐뭇해하는 중이었다.
그런 성배의 눈에 예상치 못한 기사 하나가 들어왔다.
[맨시티, 샬케 미드필더 유망주 이반 라키티치 영입!]
< 낭만필드 - 23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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