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233 >
“주장완장을 누구한테 채워줄지 계속 고민하고 있는데, 후보는 몇 명 있지. 지난 시즌 주장이었던 콜로는 물론이고, 리더십은 뛰어나지 않지만, 팀의 에이스라고 할 수 있는 카를로스나 아스톤 빌라에서 주장으로 뛰었던 가레스, 이제 확고한 주전 센터백으로 자리 잡은 뱅상도 괜찮겠지. 그리고 너도 강력한 후보 중 한 명이야.”
사실, 나이와 포지션을 다 떼어두고 누가 가장 주장에 어울리느냐고 묻는다면, 가장 먼저 거론될 선수가 성배였다.
투레는 훌륭한 선수지만, 리더보다 분위기 메이커가 더 어울리는 선수였고, 테베즈는 에이스 역할을 해줄 순 있지만, 리더로는 어울리지 않았다.
콤파니는 분명 뛰어난 리더가 될 재목이었지만, 벨기에 국가대표팀의 주장이 같은 팀의 성배였기에 완장을 채워주기 애매했다.
그나마 잉글랜드 U-18 대표팀부터 아스톤 빌라 시절까지 쭉 주장직을 맡아왔던 배리가 리더십을 갖추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맨시티에서는 스타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그리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
“사실 주장이 된다면 기분이야 좋겠지만, 부담스럽긴 합니다. 풀타임 데뷔 6년 차이긴 하지만, 그래 봐야 겨우 스물세 살이고, 동료들도 다들 슈퍼스타들 아닙니까? 주장은 좀 부담스럽죠.”
맨체스터 시티는 챔피언스리그 진출과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노리는 클럽이었다.
지금까지도 스타 플레이어들을 영입했지만, 앞으로는 더더욱 스타 플레이어들을 끌어모을 것이었다.
팀이 좀 안정이 된다면 모를까, 아직은 좀 부담스러웠다.
“글쎄. 내 생각은 좀 다른데. 네가 그라운드 위에서 보여주는 모습들을 보면 넌 분명 타고난 주장감이야.”
동료들을 하나로 뭉칠 수 있는 리더십, 그들에게 자신의 의도를 확실히 전달할 수 있는 카리스마,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 자신이 읽은 흐름에 맞춰 그때그때 팀의 방향을 정할 수 있는 통찰력과 전술 이해도 등.
성배는 주장완장을 차고 있지만 않을 뿐, 지금까지도 주장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비록, 그라운드 바깥으로 나가면 동료들에게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었지만, 그라운드 위에서의 모습이 워낙 인상적이었기에 이 정도 아쉬움은 넘어가 줄 수 있었다.
“주장으로서 역할을 하라면 잘할 자신은 있습니다. 벨기에에서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다만, 부담스럽다는 거죠. 주장완장을 차면 바깥에서도 주장 역할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직은 제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찹니다. 이제 맨시티 2년 차니까요.”
그라운드 위에서 동료들을 이끄는 건 어렵지 않았다.
길어봤자 100분 정도 신경 쓰면 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한 팀의 주장이 되면 그라운드 위에서뿐 아니라 훈련장, 심지어 집에 있을 때도 동료들의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다.
아무리 나만 생각하고 살기로 했다지만, 타고난 성격이 약간이나마 남아있어 아예 신경을 끄는 건 힘들지도 몰랐다.
애초에 그럴 건덕지 자체를 없애야 했다.
“어차피 지금 주장 후보들 대부분이 맨시티 2년 차야. 심지어 감독인 나는 만 1년도 안 되었고. 뱅상이 3년 차인데, 뱅상이야 지난 시즌 중반까지 백업 역할이었으니까.”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단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2년 전과 아예 다른 팀이 되어버렸으니 골치가 아팠다.
전 주장이었던 던이 맨시티의 수비 전술과 상극만 아니었다면 이런 고민은 할 필요 없었을 텐데, 그게 아쉬웠다.
“차라리 이번 1년은 주장에 대한 기대감을 버린다 치고 둔한 성격의 카를로스한테 줘버리는 건 어떻습니까? 카를로스는 주장완장을 채워준다고 해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죠. 그리고 카를로스가 주장완장을 찬 1년 동안 좀 더 고민을 해보는 겁니다.”
1년 차가 첫 시즌이라 중요하다면 2년 차는 1년 차에 이어 확실히 자리 잡는 시즌이라 중요했다.
팀을 중위권에서 강팀으로 이끈 핵심 선수 대부분이 2년 차인 맨체스터 시티에게 다음 시즌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럴 거면 차라리 주장완장의 무게에 흔들리지 않을 테베즈를 주장으로 세우고 1년의 유예기간을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휴우, 정말 어렵군. 보통 어떤 팀이든 누가 주장에 어울리는지는 한눈에 보이는 법인데 말이야. 아니면 감독이 팀을 완벽히 장악해 주장의 무게감이 떨어지거나.”
프리미어리그에서 전자의 대표는 리버풀의 스티븐 제라드, 첼시의 존 테리, 토트넘의 레들리 킹 등이 있었다.
그리고 후자의 대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이나 아스날의 아르센 벵거였다.
하지만 맨체스터 시티는 양쪽 모두에 해당하지 않았다.
“오케이, 그건 좀 더 생각을 해보도록 하지. 이쯤하고 그럼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사실 넌 자신을 스물세 살의 어린 선수라고 이야기하지만, 감독 입장에서는 코치만큼이나 믿음직한 선수거든. 하하.”
어느 정도 꿈을 이루기 시작한, 그리고 세계 정상급의 선수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토트넘 시절부터 성배에게 조금씩 여유가 생기고 있었다.
그리고 여유가 생긴 성배에게는 20년이 넘는 선수생활을 통해 습득한 노련미와 신뢰감이 새어 나왔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이런 아우라 역시 감독들이 성배를 쉽게 대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코치들과도 상의를 하고 있지만, 직접 그라운드에서 뛰는 네 의견도 듣고 싶어서 이야기 좀 하려고. 다음 시즌 선수 영입과 관련된 이야기야.”
선수 영입은 전적으로 감독의 권한이었지만, 혼자만의 생각은 허점이 있을 수 있기에 코치, 그리고 스카우트, 보드진과의 대화가 필수였다.
그리고 팀을 잘 파악하고 있으면서 그라운드에서 직접 뛰는 선수와의 대화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만치니 감독이 의논 상대로 선택한 선수는 성배였다.
“선수 영입이라. 그런 건 코치나 스카우트들이 더 좋은 이야기를 해주지 않습니까? 저야 그냥 선수일 뿐인데요.”
최근 들어 감독들은 중요한 사항에 대해 성배와 의논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었다.
토트넘의 라모스 감독은 영어를 못해서, 레드냅 감독은 독선적인 스타일이어서, 휴즈 감독은 성배를 부담스러워해서 그러지 않았지만, 만치니 감독은 그게 더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적극적으로 성배를 이용했다.
벨기에의 빌모츠 감독 역시 마찬가지였다.
“직접 경기를 뛰는 선수의 눈으로 보면 또 다른 법이니까. 나도 선수 시절에는 팀의 영입 방침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경우도 많거든.”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점과 실질적인 문제점이 다른 경우는 생각보다 많았다.
공격수가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직접 그라운드 위에서 함께 플레이해 보면 미드필드의 미묘한 어긋남이 진짜 문제라거나 하는 경우였다.
그래서 선수의 의견을 중요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저도 이적설 흐르는 거 좀 봤는데, 방향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투레나 플라미니, 가고를 노린다고 들었는데, 미드필더 영입은 꼭 필요합니다. 가레스와 나이젤은 좋은 선수지만, 그 외에는 파트리크 밖에 없으니 최소한 한 명 정도는 더 필요합니다.”
현재 맨체스터 시티의 영입명단에 올랐다고 보도된 선수 리스트를 살펴보면 중앙 미드필더 자원들이 가장 많았다.
지난 시즌에는 기존의 자원들을 활용해야 했기에 4-2-2-2 포메이션으 주로 활용했던 만치니 감독이지만, 본래 만치니는 중앙 지향적인 전술을 선호했다.
그래서 중앙 미드필더 보강을 계획한 것이었다.
“그리고 공격형 미드필더 영입도 시급합니다. 카를로스는 좋은 선수지만, 플레이 메이커 스타일은 아니니까요. 만약 창의성이 뛰어난 공격형 미드필더 영입에 실패하면, 또 맨유전과 같은 상황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맨시티 공격의 가장 큰 약점인 플레이 메이커 부재도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지난 시즌 후반기에 있었던 맨유전은 정말 보다가 답답해서 속이 꽉 막힐 정도였다.
“솔직히 제가 수비수라서 그런 건 아니고, 수비는 건드릴 필요 없을 것 같고, 하트랑 셰이를 어떻게 할지도 고민해야 할 텐데, 선수단 정리에는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맨시티의 수비는 사실 건드릴 필요가 없었다.
성배와 콤파니, 투레, 리차즈로 이뤄진 수비진은 딱히 건드릴 곳이 없었고, 백업으로 레스콧과 사발레타, 브리지면 솔직히 차고도 넘치는 수준이었다.
백업 센터백 한 명 정도는 필요하겠지만, 그나마 다른 포지션의 보강이 끝난 이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으음... 중앙 미드필더랑 공격형 미드필더라. 공격수는 영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나?”
지금까지는 성배의 생각과 만치니 감독, 코치, 스카우트의 의견이 전부 같았다.
팀에서는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 외에 공격수 영입도 노리고 있었다.
쥐세페 로시와 에딘 제코, 마리오 발로텔리가 맨시티와 엮인 선수들이었다.
“그것보다, 다음 시즌 우리 전술이 뭡니까? 그걸 알아야 말을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맨체스터 시티에는 공격수가 넘쳤다.
테베즈, 아데바요르, 벨라미, 산타 크루즈에 임대에서 복귀한 호비뉴, 조, 카이셰도, 보지노프, 음와루와리 등 너무 많았다.
물론, 이들 대부분이 이번 시즌을 앞두고 정리 대상이 되었지만.
“아, 그렇군. 하하, 이거 가장 중요한 말을 안 했어. 다음 시즌에는 4-3-3을 쓸 거야. 원톱 전술이지.”
역시 만치니 감독은 공격수 한 명을 빼고 중앙 미드필더 한 명을 더할 생각이었다.
4-3-3이라고는 하지만 양쪽 측면에는 윙포워드보다는 윙어 느낌의 선수를 기용할 것이 분명했다.
“음... 그러면 공격수보다도 공격 지원 능력이 뛰어난 중앙 미드필더 영입이 먼저 아닙니까? 지금 노리는 중앙 미드필더가 언론에 보도된 선수들이 전부라면, 분명히 시즌 중반에 문제가 생길 겁니다.”
세 명의 중앙 미드필더 자리는 배리와 데 용을 고정으로 두고 나머지 한 자리를 영입으로 채울 것이었다.
그게 누가 되더라도 세 선수 모두 피지컬과 중원 장악력이 장점인 선수로 채워졌다.
그러면 원톱으로 활약하게 될 테베즈의 활동량과 연계 능력에 모든 걸 걸어야 했다.
원톱 자리에 뛸 수 있는 선수가 테베즈 밖에 없다는 뜻이었고, 테베즈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선수는 전 세계를 다 뒤져도 거의 없었다.
“카를로스는 정말 뛰어난 선수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선수기도 합니다. 그리고 챔피언스리그까지 진출한 상황에서 테베즈만 믿고 있을 수도 없고. 테베즈가 빠지면 파괴력이 급감하는 전술이 될 겁니다.”
그래서 테베즈가 없더라도 공격과 수비를 연결해줄 수 있는 미드필더가 필요했다.
공격 지원 능력과 킬 패스 능력을 보유한 미드필더.
테베즈가 없으면 스콜스나 모드리치, 사비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미드필더가 없어 선수들이 공격과 수비로 갈린다는 약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흐음. 그건 그렇지만, 그런 미드필더 중에 영입할만한 선수가 없어.”
당연히 귀한 자원이었다.
맨시티가 노리는 성과에 어울리는 선수 중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고 영입 가능성도 있는 선수는 별로 없었다.
“그게 아니면 투톱 전술도 준비해야 할 겁니다. 로베르토가 준비한 전술에서는 아데바요르나 산타의 자리가 없지만, 투톱 전술이라면 다르니까요. 개인적으로는 플레이 메이커가 영입되어도 중원에서 지원해줄 선수가 없으면 4-3-3은 카를로스의 경기력에 모든 걸 거는 도박 수가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원래 역사처럼 야야 투레가 영입된다면 해결될 문제였다.
하지만 테베즈에게 모든 걸 맞춘 전술 때문에 살짝 고생하는 시즌이었기 때문에 플랜B만 준비할 수 있다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었다.
“흐음. 그것도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군. 알았어. 한 번 고민해보지.”
만치니는 성배의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경기 중, 상황에 따라 직접 임기응변식으로 전술에 변화를 주는 걸 보면 성배는 분명 높은 전술이해도를 가지고 있었다.
만치니도 성배의 전술이해도를 높게 평가했고, 그래서 전술에 대한 의견을 쉽게 넘길 수 없었다.
“자, 그럼 저는 이만 쉬러 가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면 플레이 메이킹이 가능한 공격형 미드필더 한 명과 중앙 미드필더 한 명은 꼭 필요하다는 게 제 의견입니다. 그럼 이만.”
드디어 집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운동 후 감은 머리가 다 말라서야 겨우 감독실을 나오게 된 성배는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어 발걸음을 재촉했다.
< 낭만필드 - 23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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