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227화 (139/356)

< 낭만필드 - 227 >

“징그러운 자식.”

경기 종료 후, 그래도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개리 네빌이었기 때문에 성배는 그에게 유니폼을 들고 다가갔다.

앞으로 네빌의 유니폼을 얻을 기회는 얼마 없었기에 이번 기회를 통해 한 번 얻어보려 한 것이었다.

하지만 네빌은 성배를 한 번 째려본 뒤 라커룸으로 향했다.

“수고했네. 허허, 결국 자네한테 말려버렸군.”

쌩하고 지나간 네빌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뒤에서 여유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예상하지 못한 연식의 목소리에 당황해 고개를 돌려보니 만치니 감독과 악수를 나누고 라커룸으로 향하던 퍼거슨 감독이 벤치 근처에서 성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감사합니다.”

사실 좀 당황했다.

오늘 경기 내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오른쪽 측면을 털어버린 것도, 맨체스터 시티가 맨유에게 우위를 잡을 수 있었던 핵심적인 역할을 해준 것도 성배였다.

벨라미의 결승골마저도 어시스트한 자신에게 퍼거슨 감독이 말을 걸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로베르토랑 이야기를 해보니, 후반전부터 맨시티가 확 바뀐 건 자네 덕분이라고 하더군. 하하, 이거 머리가 좋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 감각까지 있다는 건가? 어렵군, 어려워.”

만치니 감독이 뭐라고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프타임에 전술에 관해 라커룸에서 나눈 대화들을 성배가 했다고 이야기한 것 같았다.

‘나도 알고는 있었지만, 별말은 안 했는데.’

그런데 사실 성배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만치니 감독이 배리와 데 용에게 질문한 뒤에 그 대답을 듣고 짜낸 움직임이었다.

성배도 몇 마디 거들긴 했지만, 선수로서의 역할 이상으로 넘어가진 않았다.

“과찬이십니다. 머리가 좀만 돌아가면 할 줄 아는 거죠.”

하지만 성배는 그걸 그대로 말할 정도로 순진하지 않았다.

한 팀의 감독이 어떤 팀의 특정 선수에게 부담감을 느낀다면 상대 팀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메시와 호날두에게 집중하다가 다른 동료들에게 털리고 결국 메시, 호날두마저도 막지 못하는 팀들을 보면 잘 알 수 있었다.

“허허, 감독하면 잘하겠어. 그 나이에 감독 재능이 보이기는 쉽지 않은데. 어때? 내가 최선을 다해서 후계자로 키워줄 테니 레드 데빌스로 넘어오는 건. 하하.”

농담이겠지만, 성배에게 스카웃 제의까지 던지는 퍼거슨 감독이었다.

퍼거슨 감독은 박인진이나 플레처, 스콜스를 중용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전술적 능력과 소화력을 중요시하는 감독이었다.

성배가 탐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이적하면 시티즌들이랑 레드 데빌스 둘 다 난리 날 겁니다. 하하하.”

맨유로 이적할 마음은 1g도 없었다.

몇 년 뒤부터 암흑기에 접어드는 데다가 연봉조차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적어서 아무 메리트도 없었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의 인정은 분명 높은 가치가 있었다.

‘그나저나... 이거 잘못하면 얼굴 터지시겠는데?’

당황해서 지금까지 눈치를 못 채고 있었지만, 안정을 찾은 뒤에 다시 보니 퍼거슨 감독의 두피가 새빨개져 있었다.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역시. 프리미어리그의 산 증인이라는 건가? 깜빡했으면 속을 뻔했네.’

상대의 상태를 누구보다 민감하게 파악해내는 성배가 속을 정도로 퍼거슨 감독의 표정 관리는 완벽했다.

목소리도, 중간중간 던지는 농담도, 웃음소리도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오늘 맨유 선수들 거하게 한 번 혼나겠네.’

퍼거슨 감독의 헤어드라이어는 분명 터질 것이었다.

이번 시즌, 맨시티를 상대로 2무 2패에 그쳤고, 홈에서의 리그 1차전은 추문으로 가득한, 부끄러운 경기였다.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맨시티가 맨유를 절대 뛰어넘을 수 없다고 말했는데, 그 말을 하고 반년도 되지 않아 결과가 이렇게 나와버린 것이었다.

‘살아남길 바라. 인진이 형.’

물론, 겨우 한 시즌 상대 전적에서 앞섰다고 맨시티가 맨유를 뛰어넘은 건 절대 아니었다.

아직 맨시티가 맨유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무수한 관문이 남아 있었고, 상당한 시간도 필요했다.

하지만 상대 전적이라는 게 무시할 수 있는 자료는 절대 아니었고, 맨유와 퍼거슨 입장에서는 상당히 자존심이 상하는 결과일 수밖에 없었다.

***

[맨시티, 김빠진 맨체스터 더비에서 승리!]

ㄴ 솔직히 재미는 더럽게 없었다... 만!! 그래도 우리 시티가 맨체스터에 세 들어 사는 놈들을 잡아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이다. lolololol

ㄴ 맞아. 솔직히 재미는 없었지. 그래도 시티가 이겼다는 것, 그거 하나로 충분했어.

ㄴ 재미없었던 게 시티 탓은 아니잖아? 진짜 퍼거슨 그 영감 독하더라. 어떻게 될 줄 뻔히 알면서 그런 전술로 나오다니.

ㄴ 솔직히 퍼거슨 영감은 까지 말자. 대런 깁슨이라고 했나? 그 어린놈이 다 망친 거지. 전반전까지만 봤을 때는 진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고. 진짜 이대로 끝날까봐.

ㄴ 근데... 아일랜드 정말 좋아하긴 하는 데 말이죠. 미안한 이야기지만 오늘 보니까 플레이 메이커 한 명 필요하긴 할 것 같네요. 아일랜드가 동료들을 이끌어가질 못하는 듯.

맨유와 레드 데빌스, 퍼거슨 감독의 자존심이 상한 만큼 맨시티와 시티즌, 만치니 감독의 기분은 하늘을 뚫었다.

경기가 재미없었고, 경기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승리한 것도 사실이었다.

맨유와의 경기에서는 승리한 것만으로도 기뻐할 수 있었다.

다만, 플레이 메이커의 영입이 필요하다는 맨시티의 약점이 드러난 경기였다.

지금까지는 미드필더들이 지원을 해주고 공격수들이 개인 기량으로 자리를 잡으며 충분한 공격력을 보여주었지만, 경기를 조율해줄 선수가 없다는 것이 매번 지적되어왔다.

그리고 드디어 그 약점을 공략당한 것이었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맨체스터 시티의 핵심으로 활약했던 아일랜드지만, 좋은 선수가 대거 합류한 이번 시즌에는 주전 자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다.

테베즈, 아데바요르, 배리 등 뛰어난 선수들을 조율할만한 위상과 기량을 갖춘 선수가 필요했다.

맨유 정도의 팀이 공격을 포기하고 달려들어서야 겨우 파고든 약점인 만큼 다른 팀들이 공략하기는 힘들겠지만, 분명 보완이 필요하긴 했다.

***

굉장히 중요한 경기였고, 몇 달 동안 벼르고 별러왔던 맨체스터 더비에서 승리를 거둔 맨체스터 시티였기 때문에 탄력을 받아 시즌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았다.

하필이면 다음 경기가 아스날과의 원정 경기였고, 0-0 무승부에 그쳤다.

물론, 3위 자리를 놓고 승점 2점 차이로 경쟁 중인 아스날과 원정에서 치른 경기인데도 무승부를 거뒀다는 건 맨시티가 이득을 봤다고 할 수 있는 결과였다.

그 분위기를 타서 아스톤 빌라에게까지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다음 경기에서 토트넘에게는 패배했다.

유럽대항전 일정 때문에 밀려서 아스톤 빌라전 이후 4일 만에 치른 경기였고, 아직 스쿼드가 두껍다고는 할 수 없는 맨체스터 시티였기에 살짝 무거운 몸놀림을 보인 것이었다.

토트넘과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밀린 경기를 모두 치르며 마지막 한 경기 만을 남겨둔 맨체스터 시티는 여전히 리그 3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1위 첼시가 승점 83점으로 일찌감치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고, 2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승점 79점, 3위 맨체스터 시티가 승점 76점, 4위 아스날이 승점 72점, 5위 토트넘이 승점 67점을 기록 중이었다.

챔피언스리그 진출 티켓은 이미 첼시, 맨유, 맨시티, 아스날에게 돌아갔고, 토트넘은 이번에도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했다.

마지막 한 경기가 남은 상황에서 이 순위는 큰 이변이 없는 한 바뀌지 않을 것 같았다.

***

“로케랑 숀은 좀 힘들 것 같은데? 다음 시즌에도 같이 갈 수 있으려나?”

테베즈가 옆에 앉은 성배에게 물었다.

마지막 경기를 남겨놓고 승점 3점 차이.

맨유가 올드 트래포드에서 리그 10위 스토크 시티와 경기를 갖기 때문에 승점을 1점도 추가하지 못할 확률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만치니 감독은 리그 2위 탈환을 아예 포기하고 마지막 경기에 백업 선수들을 대거 출전시켰다.

이번 시즌 맨체스터 시티를 공격과 수비에서 이끌었던 테베즈와 성배는 그래서 벤치도 아닌 관중석에 앉아 마지막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글쎄. 그거야 로베르토가 알아서 잘하겠지.”

마치 다음 시즌을 대비하면서 살생부를 정리하려는 느낌이었다.

골키퍼도 기븐이 아닌 풀롭이 나섰고, 오누오하, 라이트-필립스, 산타 크루즈 등 거의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던 선수들과 사발레타, 브리지, 아일랜드 등 백업으로 활약했던 선수들이 대거 출전한 상황이었다.

“그나저나 도대체 어디까지 바꾸려고 스티븐이랑 숀까지 실험을 하려는 걸까? 그렇게 돈이 많나? 하하하.”

앞서 말한 선수들은 정리할 선수 중 그나마 가능성이 보여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이었고, 뒤에 말한 선수들은 다음 시즌에 더 중용해도 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투입한 것이었다.

콜에게 밀려 이적한 브리지는 맨시티에 와서도 성배에게 밀려버렸다.

브리지 외에도 뒤에 언급한 선수들은 만약 다음 시즌 자신의 입지에 큰 변화가 없다면 팀을 떠날 가능성도 높았다.

그럴 경우를 대비해 몸값을 올려줄 필요도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저 친구들이 백업으로 만족해준다면 우리야 고맙지만, 그럴 리가 있을까. 대부분은 주전으로 뛰고 싶다고 이적시켜달라 할 텐데.”

그들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벌써 아일랜드와 보지노프, 오누오하, 페트로프 등은 팀을 떠날 생각을 굳힌 것으로 보였다.

다음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또 한 번 돈을 거하게 풀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팀을 떠날 선수들은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 리 없었다.

“뭐, 돈도 많은데 어때? 누가 떠나든 더 좋은 친구들만 오면 되는 거지. 안 그래?”

테베즈는 그런 복잡한 것은 관심 없다는 듯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사실 선수가 그런 것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그것도 그렇지. 나도 마찬가지고.”

다음 시즌부터는 흔히 생각하는 맨체스터 시티의 전성기 스쿼드가 거의 완성될 것이었다.

게다가 챔피언스리그 출전 티켓까지 확보한 상황.

과거보다 더 좋은 선수들을 영입하면 영입했지, 그 이하가 되지는 않을 것이었다.

***

마지막 경기에서 웨스트햄과 무승부를 거둔 맨체스터 시티는 2009/10시즌 프리미어리그 3위를 차지했다.

챔피언스리그 출전권도 따냈고, 칼링컵 우승 트로피까지 차지하는 등 드디어 투자의 결실을 맺기 시작한 시즌이었다.

[2009/10시즌 프리미어리그 이적 BEST TOP 10]

10. 데미안 더프 (뉴캐슬 유나이티드 -> 풀럼)

09. 대런 벤트 (토트넘 핫스퍼 -> 선덜랜드)

08. 로저 존슨 (카디프 시티 -> 버밍엄 시티)

07. 스캇 댄 (코벤트리 시티 -> 버밍엄 시티)

06. 니코 크란차르 (포츠머스 -> 토트넘 핫스퍼)

05. 임채영 (FC 서울 -> 볼턴 원더러스)

04. 토마스 베르마엘렌 (아약스 -> 아스날)

03. 리 보이어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 버밍엄 시티)

02. 리차드 던 (맨체스터 시티 -> 아스톤 빌라)

01. 주성배 (토트넘 핫스퍼 -> 맨체스터 시티)

그리고 리그에서만 5골 8어시스트, 컵 대회까지 전부 포함해 7골 11어시스트를 기록한 성배는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영입 1위에 선정되었다.

2위부터 10위까지 선수들 대부분이 가성비적인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고, 성배를 제외하면 베르마엘렌의 이적료인 1,000만 유로가 가장 높은 이적료였다.

그럼에도 2,300만 유로의 이적료를 기록한 성배가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그만큼 맨체스터 시티가 성배의 영입으로 얻은 것이 많다는 뜻이었다.

맨체스터 시티로 합류하기 전부터 엄청났던 성배의 입지는 엄청난 활약 덕분에 합류한 이후에도 줄어들지 않고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 낭만필드 - 227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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