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226화 (332/356)

< 낭만필드 - 226 >

“맨체스터 시티, 후반전으로 접어들면서 조금씩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점점 공격이 풀려가는 모습입니다.”

전반전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술에 맨체스터 시티가 끌려가는 모양새였다면, 후반전에는 시티의 선택에 유나이티드가 따라오는 모양새였다.

주도적으로 볼을 돌리는 건 맨시티.

전반전과 달라진 맨시티의 플레이에 끌려다니는 맨유였다.

“주, 중앙의 배리에게. 테베즈가 내려와서 배리에게 볼을 받아줍니다. 테베즈, 배리에게 돌려줍니다.”

조금씩 맨시티의 점유율이 높아졌다.

중원의 숫자를 늘리고 그들을 중심으로 경기를 운영하니 경기의 주도권 역시 맨유에서 맨시티에게로 이동했다.

수적인 우세를 잃고 나니 깁슨의 부족한 활동량이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지금이다.’

자연스럽게 박인진이 중원으로 합류하는 빈도가 잦아지고 있었다.

지금도 맨체스터 시티가 중원에서 너무나도 편안하게 볼을 돌렸고, 어쩔 수 없이 박인진이 중원으로 합류해 배리에게 따라붙었다.

맨체스터 시티가 기다려온 순간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측면으로! 주! 빠르게 치고 올라갑니다!”

박인진이 측면으로 빠진 순간, 성배는 박인진의 빈자리를 빠르게 차지했다.

팀으로서 준비한 전술이었기 때문에 배리 역시 박인진이 자신에게 붙자마자 측면으로 볼을 뿌려 주었다.

“아, 측면이 비었습니다!”

박인진은 활동량이 장점이지만, 그렇다고 빠른 선수는 아니었다.

느린 선수도 아니었지만, 빠른 편은 아니었고, 한 번 공간을 내준 상황에서 그 공간을 파고드는 성배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빠릅니다! 전방의 벨라미에게! 주는 뒤로 돌아갑니다!”

벨라미에게 볼을 넘겨주고도 성배는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멈추거나 뒤를 받쳐주려고 하면 박인진이 금방 따라붙을 것이었다.

박인진도 떨쳐내고 네빌도 흔들기 위해서는 네빌의 뒷공간을 노리는 게 가장 나았다.

“네빌, 멈칫거립니다! 그리고 벨라미의 패스가 주에게!”

자신의 앞에서 안쪽으로 치고 들어가려 하는 벨라미, 그리고 등 뒤로 돌아서 사이드로 파고드는 성배.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다 겪은 네빌이라고 할지라도 다음 플레이를 예측하는 건 불가능했다.

확률 50%의 상황에서 벨라미와 성배 정도의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다음 플레이를 알려줄 리도 없었다.

신이 아니고서는 멈칫거리는 것이 당연했다.

‘여기까지는 왔는데.’

골라인 가까이 파고든 성배는 크로스를 준비했다.

지금 이 상황까지는 맨시티가 노린 그대로였다.

“크로스! 아데바요르! 아, 비디치가 한발 먼저 걷어냅니다. 맨체스터 시티의 코너킥!”

측면을 아무리 파도 결국 마무리는 중앙에서 이뤄져야 했다.

박인진과 네빌을 흔들며 완벽한 돌파를 선보였지만, 마지막에 비디치의 수비에 막히며 득점까지는 올리지 못했다.

‘일단 돌파까지는 완벽했어. 수확은 분명 있었다.’

그래도 아직 시간은 많았다.

후반전이 시작된 지 10분도 되지 않아 오늘 경기 중 가장 시원한 측면 돌파를 선보였고, 처음부터 끝까지 맨시티가 의도한 대로 이루어진 플레이가 펼쳐졌다.

‘퍼거슨의 얼굴도 굳어졌고.’

지금의 플레이로 주도권이 맨시티에게 넘어왔다는 건 퍼거슨 감독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전반전이 퍼거슨 감독의 전술에 만치니 감독이 파훼법을 찾는 시간이었다면, 후반전은 반대였다.

***

“왼쪽이 계속 뚫립니다! 벨라미, 치고 들어가서 크로스! 아데바요르 헤더!! 반 데 사르의 선방!!”

맨체스터 시티의 전술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잘 먹혀들어가고 있었다.

비록 믿을 수 없는 체력으로 항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박인진이라지만, 박인진도 사람이었다.

자신을 노린 맨시티의 플레이에 미친 듯 뛰어다니던 박인진은 조금씩 지친 기색을 보였다.

“맨체스터 시티의 공격이 조금씩 통하고 있죠? 유나이티드도 이제 변화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후반전 초반부터 잘 통했던 공격 루트였다.

네빌과 깁슨, 두 선수 때문에 많이 뛰어야 했던 박인진이었고, 그런 박인진이 지쳐가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위기가 찾아오려 하는 중이었다.

어쩌면 그래도 박인진이 버텨주고 있는 지금이 그나마 타격을 줄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IN - 17. 루이스 나니 / OUT - 28. 대런 깁슨]

“아,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리자마자 퍼거슨 감독이 움직였습니다. 깁슨을 빼고 나니를 투입합니다.”

퍼거슨 감독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많은 기대를 걸고 많은 기회를 주는 깁슨이지만, 오늘은 퍼거슨 감독도 패착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중앙 미드필더는 정말 인상적이지 않으면 잘하든 못하든 눈에 잘 띄지 않는 포지션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일반적인 팬들이 봐도 깁슨 때문에 경기 분위기가 뒤집힌 것이 확실했다.

깁슨이 교체되는 이유는 오로지 그것 때문이었다.

“오늘 깁슨의 플레이는 굉장히 아쉬웠거든요. 캐릭이 부상으로 빠졌는데도 중원의 수적인 우세를 위해 깁슨을 투입한 건 결국 실패로 끝나네요.”

깁슨은 아직 캐릭을 대신할 수 없었다.

깁슨이 퍼거슨 감독의 의도대로 활약해주었다면 가장 좋았겠지만, 아직 미숙함을 드러내면서 준비한 전술의 파훼법을 제공했다.

결국, 퍼거슨 감독은 기대감이 섞였던 이상적인 전술을 버리고 현실적으로 그나마 실현 가능성이 높은, 리스크가 작은 전술로 돌아갔다.

“이럴 때 박인진 선수의 진가가 드러나죠? 나니의 투입과 함께 오른쪽 측면에서 중앙으로 이동했고, 나니가 오른쪽 측면으로 들어가네요.”

Central Park.

지난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세계 최고의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라 불리는 피를로를 완벽히 지워버린 건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한 박인진이었다.

중앙 미드필더로서의 박인진도 경쟁력이 충분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이런 전술로 나왔다면 나니의 공격력과 박의 전술적 능력을 모두 활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박인진이 중앙 미드필더로서의 능력을 증명했음에도 오늘처럼 중요한 경기에 깁슨을 출전시켰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인터넷에 나돌고 있었다.

하지만 경기를 보는 눈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그 이유를 이미 알고 있었다.

“지난 AC밀란전처럼 박이 중앙 미드필더 역할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면 그게 가장 좋았겠죠. 하지만 전반전에도 보셨던 것처럼 오늘 박인진은 네빌을 도와주는 역할까지 수행했거든요? 그래서 그 오른쪽 측면이 지금 맨유의 불안 요소가 되었어요.”

나니의 투입으로 분명 공격력은 강해졌다.

박인진이 중앙으로 가면서 미드필더 세 명의 중원 장악력 역시 강해졌다.

하지만 벨라미와 성배의 공격을 막아내야 하는 네빌의 부담은 거의 두 배 이상 커졌다.

***

“박인진, 오른쪽의 나니에게! 나니와 주의 맞대결!”

나니가 투입되면서 맨유의 공격도 조금은 활기를 되찾았다.

후반전 내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버티기만 하던 것과는 조금이지만 달라진 모습이었다.

‘네가 아무리 다리를 휘둘러도 호날두가 되는 건 아니지.’

정확히 말하면 맨유의 공격 ‘분위기’가 활기를 되찾은 것이었다.

이렇다 할 결정적인 장면이 나오지 않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뭐, 어쩌자고.’

성배의 수비에서 빈틈을 찾아내지 못한 나니는 다시 스콜스에게 볼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정신없이 움직이더니 성배를 등지고 밑으로 내려갔다.

“나니에게 다시 투입! 등지고 받아서 돌아서며 돌파!”

순간적인 방향 전환으로 잠시 성배를 떼어놓은 나니는 등을 진 채로 스콜스에게 볼을 받아냈다.

그리고 팔을 뒤로 뻗으며 몸을 돌려 돌파를 시도했다.

‘애쓴다, 애써.’

하지만 너무 뻔했다.

맨유의 공격 자체가 많이 침체되어 있었고, 결정적으로 루니가 중원 싸움에 참여하느라 이제 막 올라오는 중이라는 게 성배의 눈에 들어왔다.

원톱 전술에서 원톱인 루니가 밑에 있고, 네빌은 오버래핑에 참여할 정신이 없었다.

“금방 따라붙어서 태클! 볼 빼내는 주성배! 자연스럽게 배리에게 이어지며 맨시티의 공격으로 이어집니다.”

즉, 나니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많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공격수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적은 상황은 성배의 장점이 십분 발휘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수싸움에서 성배에게 패배한 순간, 돌파의 결과는 정해졌다.

“배리, 전방의 아일랜드에게! 맨시티, 역습을 전개합니다!”

깁슨과 나니의 교체만 놓고 보자면 분명 공격적인 교체였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수비를 다시 단단히 하기 위해 이뤄진 것이었다.

맨유의 수비강화에 맞춰 맨시티도 데 용을 빼고 아일랜드를 투입해 공격을 강화했다.

‘한 번은 나올 것 같은데.’

그리고 성배 역시 바로 맨유의 오른쪽 측면을 향해 뛰었다.

그나마 플레이 메이킹이 가능한 아일랜드가 투입되었지만, 맨시티의 공격은 여전히 왼쪽 측면에 집중되었다.

얼마 안 되는 순혈이지만 아일랜드의 위상이 그리 크지 않은 탓이었고, 벨라미와 성배가 네빌을 계속해서 털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뚫릴 때도 됐어.’

맨시티의 집중 공략에 처음부터 고전했던 네빌이지만, 그래도 한때 정상에 군림했던 선수답게 남은 가락으로 어떻게든 버티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나마 도와주던 박인진이 중앙으로 옮겨가고 나니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조금씩 무너졌다.

“이번에도 벨라미에게 연결됩니다. 확실한 변화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벨라미에게 볼이 연결됨과 동시에 성배는 네빌의 등 뒤로 돌아나갔다.

네빌도 알고 있는 공격 루트였다.

여러 번 당했고, 이젠 뻔했다.

하지만 수싸움에서 이겨도 기량이 받쳐주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내가 또 그 마음 잘 알지.’

결국, 선수의 기본은 기량이었다.

아무리 노련하고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기량이 떨어져 버리면 답이 없었다.

지금 네빌의 상황이 그러했다.

“벨라미, 주에게!”

등 뒤를 돌아 라인 가까이까지 파고든 성배를 막지 못한 네빌이었다.

따라붙으려고 했지만, 스피드 부족으로 아직 도착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냥 스피드로 제치면 되겠다.’

네빌을 상대로 복잡하게 계산할 필요는 없었다.

흔치 않은 일이지만, 그냥 신체 능력으로 들이받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성배도 그 정도의 피지컬은 갖추고 있었다.

“안쪽으로 컷인!”

네빌을 상대로 스피드에서 압도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자, 성배는 볼을 안쪽으로 치면서 중앙으로 들어갔다.

성배를 향해 달려오던 네빌은 진로가 한 번 막히면서 속도를 잃고 말았다.

‘중앙은... 오케이.’

지금까지는 측면 돌파 이후 아데바요르를 향한 크로스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왼쪽 측면 돌파가 계속되다 보니 크로스도 계속 이어졌다.

당연히 맨유 수비수들의 머릿속에도 가장 먼저 크로스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하나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보여주는 건 성배의 장기였다.

박스 안쪽의 맨시티 선수들에게 맨유 수비수들의 시선이 집중된 사이, 성배의 패스가 뒤쪽을 향했다.

“컷백 패스!! 벨라미!! 반대편으로 감아차는 슈팅!!”

원래대로였다면 박인진이 막아주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중앙으로 이동한 박인진은 아일랜드를 막아주고 있었고, 나니는 수비에 가담하지 않았다.

맨유 선수들은 그런 이유로 벨라미를 놓쳤고, 성배는 그런 벨라미를 놓치지 않았다.

성배의 패스를 받은 벨라미의 슈팅이 맨유의 골라인을 넘어갔다.

< 낭만필드 - 226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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