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224 >
버밍엄과의 경기는 아담 존슨의 크로스를 받은 아데바요르가 한 골을 더 추가하면서 5-0으로 끝났다.
위건전 3-0, 번리전 6-1 승리에 이어 버밍엄까지 5-0으로 잡아낸 맨체스터 시티는 세 경기에서 무려 열네 골, 경기당 평균 5골 가까이 집어넣은 좋은 분위기에서 다음 경기를 준비했다.
[이번에는 COMS다! 맨시티, 맨유를 향한 복수심 불태워.]
[논란은 없다. 다시 한 번 만난 맨체스터 라이벌.]
[2무 1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대로 끝낼 순 없다.]
그리고 다음 경기는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 맨체스터 시티 홈에서 펼쳐지는 맨체스터 더비였다.
양 팀 모두 이겨야 할 이유가 있었다.
맨체스터 시티는 전반기 올드 트래포드에서의 억울한 무승부에 대해 복수하고 싶었다.
다 이긴 경기에 10분이나 주어진 추가 시간 때문에 억울하게 무승부로 만족해야 했던 맨시티는 홈에서 있을 2차전을 칼을 갈며 기다려왔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홈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두긴 했지만, 논란이 많았고, 맨유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차라리 패배하는 것이 나았을 정도로 비아냥을 많이 들었던 경기였다.
게다가 이후 펼쳐진 칼링컵 준결승전에서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에서 2-1로 패배, 올드 트래포드에서도 2-2 무승부를 거두면서 결승 티켓을 맨체스터 시티에게 넘겨주기까지 했다.
프리미어리그 최강의 팀으로 군림해왔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장에서는 돈의 힘으로 1년 만에 떠오른 이웃에게 벌써 따라잡혔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그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자존심이었다.
이미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자존심에 많은 상처를 입은 상황이었다.
더 이상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물러설 곳이 없었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남은 모든 경기가 중요합니다. 현재 선두를 달리고 있는 첼시와 2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나란히 네 경기를 남겨두고 있는 가운데, 승점 차이가 무려 6점입니다. 만약 맨유가 단 한 경기라도 승점 3점을 쌓는 것에 실패한다면, 사실상 우승은 불가능합니다.”
2006/07시즌, 2007/08시즌, 그리고 2008/09시즌까지.
무려 세 시즌 연속으로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렸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다.
전인미답, 그 누구도 밟아본 적 없는 프리미어리그 4연패를 노리고 있고, 현재 리그 2위로 가능성도 아직은 살아 있었지만, 그렇게 희망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리그 선두를 달리는 첼시와 2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승점 차이는 무려 6점.
남은 네 경기에서 이 차이를 따라잡는 건 불가능하진 않지만, 쉬운 일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렇다고 맨체스터 시티도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죠.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노리고 있는 맨체스터 시티는 현재 4위를 달리고 있는데, 5위 토트넘과도, 3위 아스날과도 승점 2점 차이거든요?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본선 직행도 노려볼 수 있고, 조금만 삐끗하면 유로파 리그로 떨어질 수도 있어서 방심할 수 없어요.”
양 팀에게 모두 중요한 경기였다.
맨체스터 더비였기 때문에 이런 이유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경기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맨체스터 더비가 아니었어도 두 팀 모두 이번 라운드에서 무조건 승리를 거둬야 했다.
“그렇기에 더욱 기대가 됩니다. 양 팀이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서 펼쳐지는 맨체스터 더비, 이제 곧 시작합니다.”
이러한 상황들 때문에 많은 팬들이 오늘의 맨체스터 더비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프리미어리그의 독보적인 인기 클럽이자 독보적인 악의 축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리고 이번 시즌, 급격하게 성장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대항마로 떠오른 맨체스터 시티.
이번 시즌, 두 팀의 맞대결 승자를 가리기 위한 마지막 더비였다.
***
“형. 형이 오늘의 핵심 선수라고 하던데, 어떻게 생각해?”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의 성배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인진은 다시 한 번 맞대결을 펼치게 되었다.
이번 맞대결은 전에 있었던 대결들과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오늘, 박인진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핵심 플레이어로 꼽혔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승리를 안겨다 줄 거라는 기대를 받았다.
“글쎄. 일단 요즘 컨디션이 좋은 건 확실한데.”
이유는 있었다.
이번 시즌 박인진은 아스날, 밀란, 리버풀 등 강팀과의 경기마다 골을 터뜨리며 중요한 순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오늘 경기는 다른 어떤 경기보다도 중요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박인진의 빅 매치 본능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 그러면 나도 긴장해야겠네.”
그런 박인진을 막아야 할 성배의 역할은 작다고 볼 수 없었다.
경기 전부터 만치니 감독은 성배와 함께 박인진을 막아내기 위한 여러 방법들을 상의했다.
평소였으면 전적으로 성배에게 맡겼겠지만, 오늘 경기만큼은 그럴 수 없었던 것이었다.
“긴장해. 평소와는 다를 테니까.”
퍼거슨 감독과 박인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맨체스터 더비에서 성배를 상대로 단 한 번도 재미를 보지 못했다.
발렌시아, 나니, 박인진 할 것 없이 모두가 성배에게 꽁꽁 막혀 오른쪽 측면을 포기해야 했던 것이었다.
“평소에도 맨유에서는 형이 제일 막기 까다로웠는데. 그런데도 긴장까지 해야 하는 거면 준비 철저하게 했나 봐?”
그래도 그나마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선수는 오른쪽 측면을 포기하고 중앙과 중원을 오가며 팀 동료들을 지원해주었던 박인진이었고, 그래서 퍼거슨 감독은 오늘 선발 명단에 박인진의 이름을 올렸다.
박인진이 할 수 있는 건 뻔했다.
하지만 그 뻔한 플레이의 활동 범위가 너무 넓어서 알아도 막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뭐, 특별히 준비한 건 없고. 그냥 숨넘어갈 때까지 뛰어보려고.”
[세 개의 심장을 가진 사나이]
박인진의 별명이었다.
이런 별명을 가진 박인진이 숨넘어갈 때까지 뛰어보겠다고 선언했다.
‘잘못하면 나도 쓰러지겠는데.’
박인진을 따라붙어야 할 성배 입장에서는 무섭기까지 한 선언이었다.
“긱스, 천천히 올라가다가 다시 몸을 돌립니다. 뒤쪽의 스콜스에게. 스콜스, 비디치에게 다시 볼을 내려줍니다.”
오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술의 핵심은 지지 않는 것이었다.
플레처와 스콜스에 깁슨까지 투입하며 중원을 두텁게 했고, 측면에도 박인진을 투입하며 공격보다는 점유율과 주도권 획득을 더 중요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수비진영에서 천천히 볼을 돌립니다.”
한 번 수비라인으로 내려간 볼은 쉽사리 올라오지 않았다.
옆 동네라고는 하지만, 맨체스터 시티의 홈에서 펼쳐지는 경기였기 때문에 맨시티를 향한 일방적인 응원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이러한 움직임은 퍼거슨 감독다운 선택이었다.
“스콜스, 전방의 루니에게! 루니, 뒤로 돌아서지만, 콤파니가 볼 빼냅니다!”
반면, 맨체스터 시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승리했던 칼링컵 준결승 경기와 같은 전술을 들고 나왔다.
중원을 강화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술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들이 꺼내 들 수 있는 최고의 포메이션을 가지고 나온 것이었다.
“중원의 배리에게 이어줍니다. 배리는 왼쪽으로! 벨라미, 네빌과 상대합니다.”
맨체스터 시티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포메이션은 역시 4-2-2-2 전술이었다.
성배와 콤파니, 투레, 리차즈 포백 라인에 배리와 데 용의 중원, 벨라미, 존슨을 양 측면에 두고 테베즈와 아데바요르를 투톱으로 내세운 맨시티의 선발 명단은 이번 시즌 맨시티가 구성할 수 있는 최고의 라인업이었다.
“벨라미, 중앙으로. 멈춰서 다시 측면으로 투입합니다! 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라이트백, 개리 네빌은 비록 현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장으로 활약하는 선수지만, 노쇠화로 인해 주전이 아닌 백업으로 나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노쇠화는 꽤 오래전부터 진행되었다.
세 시즌 전인 2006/07시즌 후반부터 웨스 브라운, 존 오셔, 하파엘 등에게 주전 자리를 넘겨주었고, 기량 역시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박인진의 태클! 어느새 수비진영까지 내려온 박인진이 주의 돌파를 방해합니다! 맨체스터 시티, 프리킥을 얻어냅니다.”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맨체스터 시티가 오늘 집중적으로 노릴 선수는 당연히 개리 네빌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고 이를 모르지 않았다.
박인진이 출전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성배와의 상성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큰 이유가 네빌을 커버하기 위해서였다.
“많이 준비했다면서? 이래서 뭐가 되겠어?”
네빌이 막아야 할 벨라미는 이번 시즌 자신의 전성기를 갱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벨라미를 도와주는 성배 역시 모든 풀백 중 탑클래스에 드는 공격 지원 능력을 가진 선수였다.
지금의 네빌로서는 감당해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제 시작했어.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지만 아직 박인진의 표정은 밝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오른쪽 측면 선수들과 맨체스터 시티의 왼쪽 측면 선수들이 처음으로 붙은 것이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래도 이번 한 번으로 대충 어느 정도 그림은 나왔을 텐데.’
어느 정도 기량이 되는 선수들이라면 한 번만 부딪혀봐도 대충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다.
박인진도 이번 맞대결을 보면서 네빌로는 버겁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을 것이었다.
‘딱 한 골만 노리고 있는 것일 수도.’
그런데도 표정이 밝다는 것은 애초부터 네빌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오늘 경기에서 공격적으로 나설 생각이 아예 없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오늘 경기, 굉장히 힘들어지겠는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이름값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
이름값과 그에 따른 자존심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나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이 퍼거슨 감독의 무서움이었다.
그리고 그런 퍼거슨 감독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더욱 무서웠고, 압도적인 강팀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한 골 싸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정도의 팀이 한 골 싸움을 작정하고 나왔다.
그 이야기는 맨체스터 시티 역시 득점을 노리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주, 왼쪽 측면에서 프리킥을 준비합니다.”
그런 징후는 이번 프리킥 수비 장면에서부터 나타났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굉장히 많은 선수를 수비진영에 배치했고, 그중에서도 페널티박스 근처에 배치했네요. 경기 초반에는 수비적으로 경기를 운영하겠다는 뜻인 것 같죠?”
단 두 명.
긱스와 루니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진영에 위치했고, 스콜스와 깁슨을 빼면 모두 페널티박스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줄 곳이 없네.’
콤파니, 아데바요르의 제공권도 나쁘지 않지만, 에반스와 비디치의 제공권 역시 뛰어났다.
거기에 수적으로도 밀리고 있었다.
“비디치, 한 발 앞서서 먼저 걷어냅니다! 깁슨, 사이드 라인으로 내보내면서 맨체스터 시티의 스로인!”
공격을 서두를 마음이 없는 것은 확실했다.
이제 남은 것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언제부터 발톱을 세우느냐였다.
만약 끝까지 발톱을 세우지 않는다면, 오늘 경기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옛말을 충실히 따라갈 것으로 보였다.
< 낭만필드 - 22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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