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223 >
“아스톤 빌라가 어떻게든 만회하기 위해 공격을 진행하고는 있는데, 맨체스터 시티의 수비진은 뚫릴 생각이 없는 듯합니다.”
아데바요르의 헤딩 득점으로 2-1로 앞서나가기 시작한 맨체스터 시티는 조금씩 라인을 내리며 안정적으로 플레이했다.
한 골 차이이기는 했지만, 아스톤 빌라가 넣었던 한 골도 그나마 맨체스터 시티의 허를 찌른, 다시 나오기 힘든 플레이를 통한 득점이었다.
“왼쪽 측면을 돌파하는 다우닝! 그 옆을 리차즈가 따라갑니다! 두 선수의 몸싸움이 펼쳐지는데! 역시 리차즈! 다우닝을 날려버리고 볼을 따냅니다!”
아스톤 빌라의 공격력이 빛을 발하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공격력에서만큼은 상위권의 어떤 팀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고 평가받는 아스톤 빌라였지만, 그 핵심은 역시 영과 다우닝의 측면에 있었다.
아그본라허의 스피드는 어디까지나 역습용이었고, 마무리에 약점이 있어 결정력이 아쉬웠다.
“밀너, 반대편으로 길게 넘겨줍니다!”
베컴과 비견될 정도로 정확한 크로스를 자랑하는 다우닝이지만, 리차즈는 짐승과 같은 움직임을 통해 크로스를 올릴 기회마저 주지 않았다.
다우닝이 막히니 아스톤 빌라에서는 영의 오른쪽을 노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급한 패스는 안 통하지.’
하지만 영을 수비하는 선수는 성배였다.
프리미어리그 내에서 성배를 뚫고 팀의 공격을 이끌 수 있는 선수는 거의 없었다.
“주, 먼저 뛰쳐나오면서 머리로 걷어냅니다! 중간 차단! 데 용이 멀리 걷어냅니다!”
이번에는 영에게 볼이 이어지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영의 전체적인 활약은 나쁘지 않았다.
분위기가 좋고 공격 옵션이 많은 선수라 성배를 상대로도 크게 밀리지 않는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성배는 그런 것들을 전부 감안해 결정적인 포인트만 막아냈고, 영은 전체적인 활약에 비해 영양가가 떨어지는 경기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
“경기 종료! 이대로 경기 끝납니다! 맨체스터 시티의 우승입니다! 34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데 용의 클리어와 동시에 주심의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다.
이미 몇 분 전부터 일어서 있었던 맨체스터 시티 선수단은 종료 휘슬과 함께 그라운드 위로 뛰쳐나왔다.
“맨체스터 시티! 드디어 우승의 한을 푸네요! 34년 전, 칼링컵이 아직 스폰서가 없던 시절, 풋볼 리그 컵이라 불리던 시절 우승을 차지한 이후 드디어 우승 트로피의 주인공이 되네요!”
사실, 현 맨체스터 시티 소속의 선수 중 유소년 시절부터 맨체스터 시티에서 활약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맨체스터 시티에서 3년 이상 활동한 선수는 거의 없었다.
마이카 리차즈, 네덤 오누오하, 스티븐 아일랜드 세 명이 전부였다.
34년 동안 우승을 못 했다고는 해도 그 34년이라는 시간을 선수들은 느끼지 못했다.
‘난리네, 난리야.’
성배도 데뷔 첫 풀타임 시즌부터 안더레흐트 소속으로 리그 우승컵을 품에 안았던 선수였다.
그리고 풀타임 시즌 네 시즌 동안 세 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기도 했으니, 우승 트로피가 그리 멀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새롭게 합류한 클럽에서 첫 시즌부터 우승을 차지했다는 건 당연히 기쁠 수밖에 없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가.’
그리고 또 한 가지.
원래대로였다면 다음 시즌 FA컵 우승을 통해 열었을 맨체스터 시티의 전성기가 1년 먼저 열렸다.
지금 웸블리 스타디움의 관중석에서 환호하는 5만 명, 그리고 이보다 몇 배는 더 많을 TV나 인터넷으로 지켜보는 사람들까지.
모든 시티즌들은 그것을 직감했을 것이었고, 그래서 더욱 열광하고 있는 것일 터였다.
“고생했어. 오늘도 아주 좋았어.”
만치니 감독이 다가와 성배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열정적인 이탈리아 남자답게 만치니 감독은 머리끝까지 흥분한 채 그라운드를 헤집고 다녔다.
“하하, 감독님도 고생하셨습니다. 축하드려요.”
맨체스터 시티의 감독으로 부임한 지 고작 2개월.
2개월 만에 맨체스터 시티에 34년 만의 우승컵을 안겨준 만치니 감독의 입지 역시 순식간에 단단해질 것이 확실했다.
앞으로도 엄청난 지원이 이어질 것이 확실하고, 감독에 대한 대우마저 완벽할 맨체스터 시티였다.
그곳에 굉장한 의미의 우승 트로피를 안겨주었으니, 앞으로 한동안은 감독직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좋아. 좋은 시작이야.’
첫 시즌,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의 전성기를 이끌 선수들이 아직 합류하지 않은 시기.
그 시기에 차지한 우승이었다.
성배는 손잡이 세 개가 달린 칼링컵 우승 트로피에 맨체스터 시티를 상징하는 하늘색 수실이 달리는 것을 지켜보며 미소 지었다.
***
토트넘 시절에도 한 번 칼링컵 우승 트로피를 따냈던 성배였다.
그때는 칼링컵 우승과 동시에 팀이 목표를 잃으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증명하듯 부진에 빠졌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맨체스터 시티는 칼링컵 우승 이후 오히려 더 탄력을 받아 무서운 기세로 치고 나갔다.
물론, 잠시 주춤하기는 했다.
결승전 바로 다음 경기였던 28라운드 선덜랜드와의 경기에서 아쉽게 무승부를 거둔 맨시티는 29라운드에 풀럼에게 승리를 거두었지만, 유럽 대항전 때문에 밀린 에버튼과의 2라운드 경기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리그 4위에 올라있는 맨체스터 시티는 무승부가 많았을 뿐, 패배는 겨우 두 번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 당한 두 번의 패배를 모두 에버튼에게 당하면서 새로운 천적관계의 탄생을 알렸다.
“벨라미, 중앙으로 낮게 깔아주고, 아데바요르!! 발을 가볍게 가져다 대면서 득점에 성공합니다! 시즌 12호 골! 그리고 크레이그 벨라미의 시즌 10호 어시스트입니다!”
하지만 거기까지.
에버튼과 두 번 만나 두 번 모두 패배한 맨시티 선수들은 이후 만나는 팀들을 상대로 그 울분을 풀었다.
에버튼에 이어 만난 위건을 3-0으로 두드려 팬 맨시티는 이어진 번리와의 경기에서는 무려 여섯 골을 폭발시키며 6-1로 승리를 거두었다.
“오늘 아데바요르 좋은데요? 테베즈의 첫 골에 어시스트를 기록한 데 이어 골까지 기록하며 오늘 두 개째 공격 포인트를 기록합니다.”
아데바요르와 테베즈, 벨라미.
뛰어난 기량을 자랑하는 세 명의 선수들이 후반으로 갈수록 호흡까지 맞아들어가기 시작하니 상대 수비수들은 견뎌내질 못했다.
오늘 두 골을 기록한 테베즈가 22골 6어시스트, 아데바요르가 12골 4어시스트, 벨라미가 10골 10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맨시티의 공격을 이끌었다.
중간에 사라진 3,000만 유로의 먹튀, 호비뉴의 빈자리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지난 위건전에서 시작된 맨체스터 시티의 기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오늘도 벌써 세 골째. 두 경기 하고 오늘 경기의 절반이 끝나는 동안 무려 열한 골이 터집니다.”
그리고 맨시티의 공격에는 이들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비에라와 배리, 데 용의 영입으로 입지가 많이 약해졌지만, 그래도 나올 때마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아일랜드가 있었고, 배리도 중원에서 쏠쏠하게 지원해주었다.
그리고 양쪽 풀백 성배와 리차즈의 공격력은 프리미어리그 최고 수준이었다.
이들을 앞세운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력은 심상치 않았다.
돈으로 클래스를 사려 한다는 비아냥을 받았던 맨체스터 시티지만, 어느새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강팀의 반열에 당당히 올라섰다.
“콤파니가 볼을 몰고 올라갑니다! 버밍엄 선수들, 무력합니다!”
만치니 감독 부임 이후부터 주전으로 나서기 시작한 콤파니는 점차 경험이 쌓이고 동료들과 호흡이 맞아 나가면서 후방 빌드업의 시발점 역할을 해주었다.
애초에 콤파니를 추천하면서 성배가 기대했던 대로의 역할이었고, 덕분에 부담을 좀 덜 수 있었다.
“콤파니, 왼쪽으로 밀어줍니다. 주도 올라갑니다.”
후방에서 볼을 전개해주는 콤파니 덕분에 조금 더 빠른 타이밍에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의욕이 없어 보여.’
전반전에 이미 3-0이었다.
경기가 후반전에 돌입했음에도 버밍엄 선수들의 모습에선 의욕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미 경기를 포기한 듯했다.
‘이럴 때 뭔가 보여줘야지.’
성배의 플레이에서 돌파 플레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하는 수비수들은 돌파를 배제하지 못했다.
‘지금은 부담도 없으니까.’
잊어버릴 때쯤, 멋진 돌파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정말 자신 있는 플레이는 패싱과 크로스였지만, 돌파에 대한 부담감을 잊지 않도록 지금처럼 확실한 상황, 그리고 부담 없는 상황에서는 일부러 돌파를 시도했다.
“주, 옆으로 빠져나갑니다! 빠른 돌파!”
긴장이 풀린, 의욕을 잃은 선수는 아무리 프리미어리그 1군의 선수라고 하더라도 아마추어 선수보다 못했다.
성배가 그리 힘을 써서 돌파한 것도 아닌데, 버밍엄의 크레이그 가드너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돌파를 허용했다.
‘이거 좀 더 가도 되겠는데?’
가드너를 돌파한 순간, 성배는 욕심을 내기로 했다.
의욕을 잃은 것은 가드너뿐만이 아니었다.
버밍엄의 선수들 대부분이 이미 의욕을 잃고 할 수 없이 그라운드 위에 서 있다는 느낌이었다.
‘좋아, 한 번 해보자.’
지금은 하면 안 되는 플레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성배의 위치가 플레이 하나에 지적을 받을만한 위치도 아니었다.
하고 싶으면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다시 스피드를 올립니다! 주, 멈추지 않습니다!”
가드너를 제친 뒤, 속도를 줄이고 패스를 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던 성배는 다시 스피드를 올렸다.
성배가 돌파를 시도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퍼거슨은 그대로 돌파를 허용했다.
“너무 쉽게 돌파를 허용하는데요? 버밍엄, 정신 차려야죠!”
30여 미터를 돌파하는 동안 성배가 한 거라고는 그냥 볼을 차 놓은 뒤에 팔을 뻗어 상대 수비를 밀어내면서 전진한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버밍엄 선수들은 너무 쉽게 성배에게 돌파를 허용해주었다.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지금 성배의 피지컬로 쉽게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지금 하면 뭐든 되겠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성배는 뭘 해도 될 것 같다는 확신을 가졌다.
버밍엄의 팀 분위기는 현재 바닥까지 떨어져 있었다.
“카, 달려듭니다. 주, 옆으로 빠져나갑니다!”
버밍엄의 라이트백은 스티븐 카.
2008년 여름, 팀을 찾지 못해 한 번 은퇴했다가 2009년 겨울에 복귀한 카는 최적의 컨디션이어도 성배를 상대하기 버거워하는 선수였다.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있는 선수가 하필이면 카였다는 것이 버밍엄의 불운이었다.
“멋지게 빠져나가는 주성배! 중앙으로 올라갑니다!”
볼을 향해 뻗은 카의 발을 피해 왼발로 볼을 뒤로 빼고 오른발에 옮겼다.
그리고 볼을 오른발로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방향도 전환했다.
‘앞에 하나, 뒤에 하나.’
중앙으로 올라가는 성배의 앞에는 스콧 댄이, 뒤에는 스티븐 카가 있었다.
옆이 뚫려 있었고, 지금 성배는 패스할 마음이 없었다.
‘한 번 더 해보자.’
그나마 몇 번 해본, 그나마 자신 있는 드리블 테크닉이 두세 가지 정도 있었다.
뭔가 되려고 했는지 그중 하나를 지금 상황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맥기디 스핀! 댄이 따라갑니다!”
올라가다가 왼발로 볼을 밟아 뒤로 빼고 몸을 돌리면서 오른발 아웃사이드로 방향을 전환했다.
댄이 당황한 시간은 굉장히 짧았고, 금방 다시 따라붙었지만, 성배는 오른발 아웃사이드로 볼을 빼내자마자 슈팅 자세를 잡았다.
“바로 슈팅!!”
각도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정확도를 포기하고 골키퍼 정면으로 맞고 죽으라고 때린 슈팅에 각도는 필요 없었다.
“골!! 골입니다!! 테일러 골키퍼의 머리 옆을 스치며 들어가는 주의 슈팅!! 주, 미쳤습니다. 엄청난 골! 메시, 호날두 부럽지 않은 화려한 돌파였습니다!”
혼자서 50m 이상을 돌파했고, 두 명의 수비수를 개인기로 제쳐내는 등 화려하기 그지없는 플레이 끝에 만들어낸 한 편의 작품이었다.
지금까지 성배가 만들어낸 모든 득점 장면 중 가장 화려하고 가장 멋진 골이었다.
“도대체 어떤 수비수가 이런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주, 정말 매 경기 지난 경기의 자신을 뛰어넘는 듯한 느낌이에요!”
이렇게 또 성배는 멋진 돌파로 임팩트를 남겼다.
한 번씩 이런 장면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상대 선수들이 성배의 돌파를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걸로 4-0! 맨체스터 시티, 버밍엄을 완전히 박살냅니다!”
성배의 득점은 안 그래도 최악을 향해 가던 버밍엄의 분위기를 바닥까지 떨어뜨렸다.
수비수에게 완벽하게 농락당했으니 분위기가 추락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했다.
< 낭만필드 - 22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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