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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사라진 필드-220화 (326/356)

< 낭만필드 - 220 >

“새로운 감독을 찾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곧 소속팀으로 합류해야 했기에 선수들은 행동을 서둘렀다.

선수들 사이의 논의가 끝난 바로 다음 날, 성배와 반 바이텐, 시몬스, 콤파니, 베르마엘렌 다섯 명은 선수단을 대표해 축구협회를 찾았다.

선수단을 대표할 만한 모든 선수가 함께한 것이라 협회도 이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맞습니다. 아드보카트 감독의 사임으로 감독 자리가 비었는데, 오래 비워둘 수는 없기에 서두르는 중입니다.”

이들이 찾아온 이유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협회 임원들 역시 그 이유를 알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이 자리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감독 선임은 사실 협회의 권한이었고, 어떻게 보면 지금 선수들의 행동은 월권이라 할 수 있었다.

“선수들끼리 대화를 나눠봤습니다. 감독의 지시를 직접 받게 되는 건 선수들이니까, 감독 선임과 관련해 선수단의 의견을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선수단 대표를 또 대표해서 발언하는 사람은 성배였다.

벨기에의 리더들이 한데 모인 이 자리에서 이들을 또 대표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었다.

반 바이텐과 시몬스는 물러날 시기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고, 콤파니와 베르마엘렌은 누구 한 명이 나설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한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둘을 묶는 역할에 벨기에의 에이스 역할까지 하고 있었으니 성배가 이들을 대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감독 선임과 관련된 의견이라... 일단 들어보겠습니다.”

앞서 말했듯 협회는 선수들의 의견을 무시할 힘이 없었다.

아니, 굳이 무시하려 한다면 할 수는 있었다.

절차상 선수들의 의견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벨기에 축구협회는 새로운 전성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 중이었고, 신생 벨기에의 핵심이 될 이들과 틀어져서 좋을 것이 없었다.

“벨기에 대표팀의 가장 큰 문제가 뭐라 생각하십니까?”

성배는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감독이 팀을 장악하지 못했고, 젊은 선수들 위주라 경험과 조직력이 부족하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맞는 말이었다.

지난 몇 명의 감독들은 팀 장악력이 떨어졌고, 빠르게 성장한 젊은 선수들은 아직 함께 발을 맞춰본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았다.

핵심 선수들인 베르마엘렌, 성배, 콤파니, 베르통헨, 알더베이럴트, 아자르 등이 청소년 대표팀을 건너뛴 바람에 같은 세대의 선수들과 호흡을 길게 맞춰보지 못한 것도 이유였다.

“맞는 말씀이고 동감합니다. 하지만 선수단의 의견은 그게 핵심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 모든 문제점을 관통하는 핵심은 팀이 하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팀 장악도, 조직력도, 결국 하나의 팀이 되면 해결될 문제였다.

그리고 하나의 팀이 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두 집단의 뿌리 깊은 반목에 있었다.

“그래서 선수단이 원하는 게 뭡니까?”

이제 진짜 요구조건을 말할 차례였다.

“선수단은 현 상황에서 정말 능력이 뛰어난 감독을 모실 수 없다고 예상합니다. 맞습니까?”

성배의 말에 협회 관계자들 얼굴이 어두워졌다.

실제로 여러 감독들과 대화를 나눠봤지만, 돈도 없고 위상도 낮은 벨기에 축구협회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맞는 것 같군요. 그렇다면 어정쩡한 경력의 감독이 아닌 선수단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감독을 요청합니다. 지금 선수단에는 우릴 하나로 묶어줄, 양쪽 집단의 지지를 끌어낼 감독이 필요합니다.”

밑밥은 전부 깔렸다.

이제 마지막 한 마디만이 남아 있었다.

“좋습니다.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아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원하는 감독이라도 있습니까?”

기다려온 말이었다.

“마크 빌모츠 현 벨기에 수석코치를 감독으로 선임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라면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수 있을 겁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

선수단의 요청을 받은 뒤에서 협회는 빠르게 후임 감독을 선임했지만, 그사이 마라톤 회의를 몇 번이나 거쳤다.

아무래도 마크 빌모츠의 짧은 지도자 경력이 문제가 되었다.

현실적인 감독 후보들 중 벨기에 축구협회를 만족시킬 만한 후보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수단의 요구를 넙죽 받아들이는 것도 찝찝했다.

지도자 경험도 적고, 심지어 무려 4년이나 축구계를 떠났던 인사였다.

아무리 벨기에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마크 빌모츠라 하더라도 선수들의 요청과 그 이름값만으로 감독직을 맡기기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마크 빌모츠 현 벨기에 수석코치, 감독 승격!]

[붉은 악마의 레전드, 감독으로 돌아오다.]

하지만 결국 벨기에의 선택은 빌모츠였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마땅한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계약이 쉽고 벨기에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인사라는 점이었다.

벨기에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레전드, 마크 빌모츠.

벨기에의 축구 팬들은 그와 그가 만들었던 벨기에의 전성기에 아직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또, 선수들의 요청이 있었다는 점 역시 감독 인선의 이유 중 하나였다.

선수단의 통합은 벨기에 축구협회 역시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부분이었다.

[정말 마크 빌모츠로 괜찮은가.]

[감독 1년, 지도자 2년 반. 그리고 국가대표 감독?]

하지만 빌모츠 선임을 모두가 반기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빌모츠의 선임을 반기는 쪽과 의문을 표하는 쪽이 반반 정도의 비중이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벨기에 축구팬들은 최근 1, 2년 사이 눈에 띄게 성장한 유망주들이 이번에야말로 뭔가 해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해내야 할 타이밍에 초보 감독 마크 빌모츠라니.

축구팬들이 아쉬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빌모츠의 뒤에는 선수단이 있었다.]

[킹메이커 주성배? 감독 선임에 강력한 영향력 행사.]

[선수들이 빌모츠를 원했다. 드디어 하나 되나?]

하지만 곧이어 알려진 소식에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선수단이 빌모츠를 강력하게 밀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팬들 사이에서 또 한 번 논쟁이 일었다.

우선 긍정적인 반응은 선수단이 원하는 감독이 선임되었으니 선수단이 하나로 뭉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였다.

벨기에 국가대표팀이 항상 두 개의 집단으로 나뉘어 있었다는 것은 일반 축구팬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성배가 두 집단 사이에서 통합을 위해 애쓴다는 것은 아는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성배가 감독 선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 그리고 다른 선수들도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빌모츠 선임 요구가 성배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선수단의 공통적인 의견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빌모츠 감독을 양 집단이 모두 반긴다는 이야기였고, 벨기에 선수단이 하나로 모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비판적인 반응 역시 당연히 있었다.

선수단이 행정적인 일에 이렇게까지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비판이었다.

감독 선임을 비롯한 계약과 행정적인 업무는 협회의 업무였다.

현 상황에서 성배를 비롯해 협회를 직접 찾았던 선수들은 모두 굉장한 위상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었다.

그들 다섯 명은 절대 대체불가능한 벨기에의 핵심이었다.

그들의 영향력과 발언권은 협회가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이번에 보여준 선수들의 행동은 선수의 권한을 넘어서 자신들의 위상을 이용한 깽판이라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인기는 벨기에 내에서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비판적인 의견은 크게 힘을 받지 못했다.

아직 빅리그에 진출한 벨기에 선수들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을 향한 비난, 심지어 비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순식간에 비난 의견은 사그라들었다.

***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벨기에의 감독직을 맡게 된 빌모츠 감독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선수들과 면담을 하는 것이었다.

다음 A매치는 2개월 뒤에 있었다.

하지만 경기가 2개월 뒤에 있다고 해서 감독도 2개월 뒤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 신임 감독이 2개월 만에 팀을 파악하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때문에 빌모츠 감독은 선수들이 이미 모여있는 지금 타이밍에 팀원 파악부터 끝내놓으려 하고 있었다.

“아, 내가 불렀어. 기회가 있을 때 대화를 해놔야 할 것 같아서.”

이제 막 벨기에 감독직에 오른 빌모츠 감독은 굉장히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선수단과의 면담도 해야 했고, 선수단 파악은 물론 전술도 수립해야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선수단과의 면담이었다.

“감독이 되신 거, 축하드립니다.”

감독이 되었을 때, 전화를 통해 축하 인사를 전하긴 했지만, 직접 만난 건 처음이었다.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갈 성배도, 이제 막 감독이 된 빌모츠도 굉장히 바빴다.

“고마워. 네가 적극적으로 밀어줬다는 건 들었다.”

빌모츠 감독 역시 자신의 감독 선임 과정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

벨기에 축구 관계자들 대부분이 알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하하, 그래도 감독님의 능력이 부족했으면 감독을 맡겼겠습니까.”

성배도 굳이 겸양을 떨진 않았다.

빌모츠를 감독으로 만든 것은 자신의 역할이 5할 이상이었다.

그건 분명했다.

“뭐, 너라면 네가 추천한 감독이라도 능력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바로 비판하겠지. 그래서 너를 제일 처음으로 불렀다.”

선수단과의 면담을 통해 빌모츠 감독이 노리는 건 간단했다.

하나의 공통된 목표와 비전을 놓고 선수단과 함께 가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선수단의 목표를 하나로 집중시키기 위해서는 성배와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좋습니다. 어떤 이야기든 집중해서 듣겠습니다.”

성배는 빌모츠 감독에게 적극 협력할 생각이었다.

그러려고 그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기도 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팀을 리빌딩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억지로 할 생각은 없다. 다니엘이나 티미 같은 선수들은 나이가 많지만, 여전히 자기 포지션에서 강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빌모츠 감독은 벨기에가 자신에게 바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해주어야 하는 일은 간단했다.

팀을 하나로 모아 벨기에 대표팀의 세대교체를 이루고 그들과 함께 성과를 내는 것이었다.

“리빌딩을 한다고 능력이 뛰어난 선수를 억지로 뺄 생각은 없어. 하지만 베테랑들은 팀의 중심이 아닌, 한 발자국 뒤로 뺄 생각이다. 팀의 중심이 되어야 할 선수들은 너, 뱅상, 토마스와 같은 친구들이지.”

세대교체는 자연스럽게, 젊은 선수들이 베테랑을 기량에서 밀어내면서 이뤄지는 것이 가장 좋았다.

그리고 벨기에의 세대교체는 젊은 선수들 개개인의 능력을 통해 순조롭게 이뤄지는 중이었다.

빌모츠 감독이 할 일은 팀의 중심을 이들에게 옮겨주는 것이었다.

“이미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이나 티미는 현명하니까요.”

반 바이텐이나 시몬스 등은 이미 한 발자국 뒤에 물러서 있었다.

빌모츠 감독의 말은 이미 이뤄진 것들이었다.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할 말은 그런 게 아니야.”

그도 수석코치 직을 맡은지 꽤 되었기 때문에 현재 벨기에 대표팀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빌모츠 감독이 자세를 다시 잡았다.

“내가 이끌 벨기에 대표팀, 그 주장 완장을 네가 차라.”

빌모츠 감독은 성배에게 주장 완장을 내밀었다.

< 낭만필드 - 220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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