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219 >
[딕 아드보카트, 벨기에 감독직 사임! 후임은?]
[차기 감독은 조지 리킨스 KV 코르트레이크 감독 유력!]
[(단독) 선수단, 차기 감독 두고 협회와 대화 나눠.]
아드보카트 감독은 크로아티아전 패배 이후 벨기에 국가대표 감독직을 사임했다.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의 AZ 알크마르와 벨기에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겸임했던 아드보카트 감독은 벨기에보다 AZ에 더 큰 신경을 쏟고 있었다.
그리고 벨기에의 월드컵 진출 실패로 얻을 것이 없어지자, 미련없이 벨기에 감독직을 내려놓은 것이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지금 벨기에가 데려올 수 있는 감독들 중 상위권의 능력치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 아드보카트 감독이 사임하면서 협회의 재력도, 벨기에라는 팀의 메리트도 크지 않은 현 상황에서 그 이상의 감독을 데려오는 것은 실질적으로 힘들어졌다.
“조지 리킨스라. 나쁘다고 보는 건 아니지만, 딕보다 나을 것도 없지.”
그리고 크로아티아전이 끝난 이후, 선수들도 나름대로 머리를 모아 앞으로의 상황에 대해 고민했다.
2년 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뭔가가 이뤄지려는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항상 한 끗이 모자랐고, 지금 리킨스 정도의 감독을 데려와 봐야 그 한 끗을 채우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대안도 없잖아. 그나마 프랭키를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 좀 한다는 감독들은 전부 다 잘려나갔고. 다른 나라의 유명 감독들이 올 것 같지도 않고.”
콤파니의 말도 정답이었다.
월드컵 진출에 실패한 벨기에는 별로 메리트가 없었다.
월드컵 티켓을 얻은 여러 팀의 감독들도 바뀌어나가는 마당에 굳이 벨기에 감독직을 노릴 이유는 없었다.
현시점에서 리킨스 정도라면 최선은 아니라도 차선은 되는 수준이었다.
“대안이라... 선수단 전력은 어느 정도 완성된 것 같은데, 지난 몇 년간 부진했던 게 너무 타격이 크군.”
반 바이텐이 한숨을 쉬었다.
평소였다면 프랑스계 모임과 네덜란드계 모임, 그리고 성배가 모은 젊은 선수들 모임으로 나눠졌겠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지금이야말로 선수단이 하나로 모여야 한다는 것에 성배와 반 바이텐의 생각이 일치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름대로 각자 노력을 해왔던 두 선수는 한 자리에 벨기에 국가대표팀의 모든 선수를 모았고, 두 선수를 중심으로 선수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주,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건데?”
“이렇게 모았으면 뭔가 방법이 있다는 것 아냐?”
네덜란드계의 정신적 지주 티미 시몬스, 그리고 실질적 리더인 토마스 베르마엘렌이 물었다.
“그래. 오늘 모은 이유가 뭐야?”
프랑스계의 리더라 볼 수 있는 콤파니 역시 성배를 보며 물었다.
“오늘 모은 이유라...”
성배는 아직 은연중에 두 패로 갈려있지만, 처음 국가대표팀에 합류했을 때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잘 섞여 있는 두 집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두 집단의 리더들을 주시했다.
‘지금 정도라면.’
베르마엘렌과 콤파니는 굳이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성배와 절친한 사이였다.
각자 성배와 소속팀에서 호흡을 맞춰본 적도 있었고, 국가대표팀에서도 벌써 3년 이상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시몬스도 성배와 은근히 죽이 잘 맞았다.
성배가 보여주는 영리함과 영악함을 넘나드는 플레이 스타일의 가장 큰 팬 중 한 명이기도 했다.
“좋아. 오늘 모은 이유를 말해주지.”
생각이 끝났다.
아드보카트가 사임한 지금 이 시점.
지금 이 시점이 진정한 신생 벨기에를 탄생시킬 절호의 기회였다.
이 정도면 7할 정도는 하나의 팀이 되었다고 봐야 했고, 마지막 3할을 채워 줄 필요가 있었다.
“협회에 힘을 쓴다. 한동안 성적이 나오지 않고 있기에 지금은 우리 힘이 협회보다 더 강해. 협회에 압력을 가해서 우릴 하나로 모아줄 수 있는 감독을 데려오자.”
벨기에 축구협회는 팬들의 비난에서 아직 자유롭지 못했다.
세계 최고의 리그라고 일컬어지는 프리미어리그, 그것도 우승권을 노리는 팀에서 활약하는 선수만 성배와 콤파니, 베르마엘렌까지 세 명이었다.
에버튼에서 활약하는 펠라이니도 만만치 않았다.
바이에른 뮌헨의 반 바이텐에 아약스, PSV, AZ에서 활약하는 선수들까지.
각자 소속팀의 핵심이자 리그 전체의 정상권 선수로 인정받는 이들의 파워는 어느새 협회보다 위에 있었다.
“그런 감독이 누가 있는데?”
“그러게. 그런 사람이 있어?”
반대는 나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국가대표팀 내의 반목 때문에 마지막 고지 앞에서 무너져야 했던 선수들이었다.
그리고 그 반목을 여기까지 잡아낸 것도 선수의 역할이었다.
이제는 팀의 수장으로서 두 집단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사람이 간절했다.
“있지. 단 한 명. 감독이 아니지만, 감독을 할 수는 있는 사람.”
성배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선수단의 이목은 성배 한 명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이 자리에 위치한 엄청난 선수들을 모두 뒤로 밀어내고 중심의 자리에 있는 지금 자신의 모습이 대견했다.
“마크. 마크 빌모츠. 현 벨기에 수석코치이자 벨기에의 레전드. 그를 감독으로 요구하자.”
성배의 말에 선수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69년생의 빌모츠는 이제 막 마흔을 넘어선 젊은 지도자였다.
“마크? 마크는 아직 감독으로 증명되지는 않았잖아.”
반 바이텐이 가장 먼저 의구심을 나타냈다.
은퇴한 지는 고작 7년.
게다가 2003년 샬케 코치와 2004년부터 1년간의 신트 트라위던 감독으로 활동한 이후 2009년 벨기에 수석코치로 돌아오기 전까지 4년 동안 정치 외도를 하기까지 한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감독으로서 현장 감각도 찾아야 하고 능력 역시 더 키워야 했다.
“그래, 맞아. 마크는 좋은 사람이지만, 아직 우리를 이끌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
시몬스도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이제는 벨기에도 어느 정도 세대교체가 마무리되어 젊은 선수들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있었지만, 그래도 베테랑들을 이끄는 선수들이었다.
게다가 선수 시절을 함께 보내 마크 빌모츠와 가장 친분이 깊은 선수들이기도 했다.
이들이 부정적인 입장을 표시하자, 선수단 전체의 반응도 부정적이 되었다.
‘마크는 결국 팀을 전성기로 이끈다. 전술적 역량은 그때도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하지만 미래를 알고 있는 성배 입장에서는 빌모츠의 감독 선임을 양보할 수 없었다.
예정대로 진행되어 리킨스가 감독이 되어봤자, 특별할 건 없었다.
자신의 존재로 많은 것이 달라져 전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없다고는 해도 이 멤버로 유로 2012 진출권을 따내지 못했던 리킨스가 감독이 되어 봐야 크게 달라질 건 없을 터였다.
“뭔가 큰 착각을 하는 것 같은데.”
다시 입을 연 성배의 말에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성배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 모두가 성배의 입에 시선을 두었다.
“지금 벨기에 감독직을 맡을 만한 사람 중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누가 있어.”
벨기에의 현실을 직시하라는 날카로운 직언이었다.
기본적으로 성배는 벨기에라는 나라에 애국심을 가진 선수가 아니었다.
성배가 열정을 바치는 것은 벨기에의 ‘축구 국가대표팀’이었다.
즉, 벨기에와 벨기에 국가대표팀에 대한 환상이 없었다.
“지금 벨기에의 현실을 굳이 내가 말해야 할까? 그 정도 판단들은 객관적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선수들은 침묵했다.
성배의 말에 지금 상황을 냉정히 판단해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래도 성배만큼 냉정할 수는 없을 테고, 과대평가하게 되겠지만, 다들 능력이 있는 프로들이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큰 차이를 보이진 않을 것이었다.
“나도 능력이 뛰어난 감독이 좋지. 퍼거슨 경, 만치니, 무리뉴, 안첼로티, 그도 아니면 스콜라리, 페예그리니, 리피 같은 감독이 오면 고맙지. 그런데 그럴 상황이 아니다. 우리가 데려올 수 있는 뛰어난 감독의 마지노선이 딕 아니었나?”
벨기에의 현실이었다.
빌모츠를 감독 경험과 능력이 부족하다고 내치기에는 벨기에의 현실이 암울했다.
“분명 우리 팀에는 가능성이 있지. 아니, 있는 정도가 아니라 엄청나게 크지. 하지만 실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가능성은 우리 울타리 바깥의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해.”
냉정해져야 했다.
지금의 벨기에는 능력 있는 감독들을 움직이게 할만한 매력이 없었다.
시기도 좋지 않았다.
능력 있는 감독들은 이미 직장이 있었다.
“마크를 감독으로 했을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은 간단해. 네덜란드계와 프랑스계가 동등하게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는 것. 동등한 발언 기회를 얻을 수 있고, 동등한 수준의 편한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추가로 독일계까지.”
능력 있는 감독을 데려올 수 없다면, 다른 장점이 있어야 했다.
아드보카트처럼 애매하게 능력이 뛰어난 감독을 데려오면 또 애매해질 뿐이었다.
그런 면에서 빌모츠는 확실한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차피 우리는 지금 리빌딩이 진행되는 과정에 있어. 앞으로 1, 2년 정도는 남았다는 게 내 판단인데, 그 정도면 마크의 능력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겠지. 현역 때부터 감독감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던 사람이니까.”
꼭 경험 많은 백전노장이 리빌딩을 이끌 필요는 없었다.
아니, 최소한 지금의 벨기에는 그랬다.
선수들이 모두 재능이 넘쳤고, 자신들이 소속팀에서 알아서 성장하는 상황이었다.
팀이 성장하는 동안 감독의 성장도 기다려줄 수 있었다.
“마크는 벨기에의 레전드 출신이지. 그것도 고작 8년 전까지. 벨기에 대표팀의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 것이고, 그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 역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다.”
성배의 말에 선수들도 조금씩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아서는 모습이었다.
현실을 냉정히 따져봤을 때, 능력이 애매하고 팀 장악 가능성이 작은 감독보다는 확실하게 팀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고 성장할 가능성이 큰 빌모츠가 나을 수 있었다.
“그래, 뭐. 천천히 이야기를 들어 보니 마크가 감독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성배의 영원한 지지자, 콤파니가 가장 먼저 동의를 표했다.
안더레흐트 시절에는 지지자였고, 맨체스터 시티에서는 성배의 도움을 받았던 콤파니는 거의 모든 상황에서 성배와 노선을 같이했다.
그리고 영향력 역시 작지 않았다.
콤파니의 동의를 시작으로 프랑스계 선수들의 동조가 이어졌다.
“약간 아쉬운 감은 있지만, 현실적으로 더 좋은 방안이 없다는 건 이해했어. 좋아. 나도 마크를 밀도록 하지.”
이번에는 베르마엘렌이었다.
역시 베르마엘렌을 따라 네덜란드계 선수들의 동조가 이어졌다.
언론 등에서 유로 2012를 앞두고 새롭게 출발한 벨기에 국가대표팀의 새로운 주장으로 예상하는 두 선수였다.
두 선수가 나란히 성배의 의견에 동조하자, 선수단 전체의 의견도 하나로 모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도 찬성. 어차피 새로운 벨기에의 주역은 우리가 아니라고. 너희가 찬성했으면 나도 찬성이야.”
시몬스였다.
시몬스는 고문 역할을 넘어서지 않았다.
신생 벨기에의 중심이 될 젊은 선수들에게 결정권을 넘겼고, 이들의 결정을 지지했다.
“나? 굳이 내가 여기서 말을 해야 하나?”
반 바이텐은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에 그저 웃어 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부탁에 기대보다 훨씬 더 훌륭히 부응해준 성배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 낭만필드 - 21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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