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216 >
“드디어 맨체스터 시티가 스탬포드 브리지를 찾았습니다. 이번 라운드를 떠나 이번 시즌을 통틀어 가장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경기입니다.”
드디어 첼시와 맨체스터 시티의 리그 28라운드 경기 날이 찾아왔다.
관중석은 당연히 가득 찼고, 시청률 역시 굉장했다.
“관심을 모았던 웨인 브리지와 존 테리의 맞대결은 성사되었죠? 주에게 밀려 출전이 많지 않았던 브리지인데, 오늘은 선발로 출전했네요.”
만치니 감독은 다른 선수들과 대화를 잘 마쳤다.
오히려 직접 대화를 나눈 만치니 감독이 놀랐을 정도로 흔쾌하게 허락해주었다.
선수단 전력과 리그 성적은 좋았지만, 아직 조직력이 모래알이었던 맨체스터 시티는 브리지의 비극에 모두 한 마음이 되었다.
동료의 비극에 함께 분노하면서 순식간에 팀워크가 쌓인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 경기에 더욱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브리지가 출전하기는 했지만, 예상과는 달리 주 역시 라이트백으로 경기에 나섰습니다. 주의 라이트백 소화 능력은 이미 증명되었으니, 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으로 보입니다.”
“주가 라이트백으로 출전하면서 애쉴리 콜과 주, 현재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풀백을 꼽으라면 무조건 거론되는 두 선수가 직접 맞대결을 펼치게 되었죠? 이쪽도 꽤나 흥미롭네요.”
브리지와 테리의 만남을 보기 위해 경기를 관람, 혹은 시청하던 팬들은 성배와 콜의 맞대결이라는 빅매치까지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몇 년 전부터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꼽혔던 콜과 지난 시즌부터 엄청난 속도로 떠오르기 시작해 이번 시즌을 기점으로 잠재력을 폭발한 성배의 비교는 꽤 자주 일어났다.
아직은 그래도 콜이 좀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는데, 성배에게는 오늘이 절호의 기회였다.
“자네들도 알겠지만, 오늘 우리는 첼시에게 이긴다. 그것도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압도하면서 이긴다. 알고 있지?”
맨체스터 시티는 모든 구성원들이 하나가 되어 오늘 경기를 준비해왔다.
특히, 만치니 감독은 누구보다도 더 브리지를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이며 선수들의 신임을 얻었다.
국가대표팀을 은퇴하겠다는 브리지와 하루도 빠짐없이 면담하면서 본인 선수생활의 유일한 아쉬움을 담아 “월드컵 출전은 축구 선수의 인생에 한두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소중한 기회다. 마음을 바꾸는 게 어떻겠냐.”고 설득했다.
브리지의 마음을 돌리진 못했지만, 브리지는 물론이고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의 마음까지도 일단은 하나로 묶을 수 있었다.
브리지에게는 미안하지만, 조직력을 가다듬게 해준 이번 사건이 고마울 정도였다.
“주. 오늘 콜과의 대결에서 불리한 조건이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져서는 안 돼.”
완벽한 승리.
맨체스터 시티의 목적은 그것이었다.
성배와 콜의 대결에도 많은 관심이 쏠려 있고, 소속팀과 팬들의 자존심도 걸려 있었다.
“걱정하지 마시죠. 아직 기량은 부족할 수 있겠지만, 오늘만큼은 절대로 안집니다.”
오늘 경기는 맨체스터 시티에게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경기일수록 항상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성배였다.
오늘도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티셔츠는 다들 잘 챙겨 입었지?”
만치니 감독의 말에 선수들은 일제히 자신의 유니폼 상의를 걷어보였다.
그 안에는 ‘Team Bridge’라고 크게 적힌 티셔츠가 있었다.
***
“선수들, 일렬로 서서 악수를 나누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 일렬로 서서 경기를 준비하던 선수들은 악수를 나누며 흩어졌다.
홈팀 첼시 선수들은 가만히 서서 악수를 기다렸고,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이 한 명씩 움직이며 첼시 선수들과 악수를 나눴다.
“브리지와 테리가 점점 가까워지네요.”
테리와 브리지가 악수를 할 것이냐.
이것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심지어 몇몇 베팅업체들은 두 선수가 경기 시작 전에 악수를 나눌 것이냐는 주제의 베팅을 올리기도 했다.
“아! 주도 테리와 악수를 거부합니다.”
그때, 예상치 못했던 선수 한 명이 테리와의 악수를 거부했다.
바로 성배였다.
테리가 뻗은 손을 무시한 성배는 그 앞에서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옆에 선 소년의 손을 맞잡았다.
‘스포츠는 결국 엔터테인먼트. 팬들을 열광시킬 줄 알아야지.’
프로 선수도 결국 엔터테이너였다.
물론, 기본은 기량과 실력, 그리고 실적이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스타가 될 수 없었다.
기량은 뛰어난데, 이상하게 인기가 없고 스타성이 없는 선수들도 적지 않았다.
성배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존 테리에게 딱히 악감정은 없었다.
성배의 테리에 대한 감정은 “에휴, 저 나쁜 새끼.” 정도였지, 딱히 크게 감정이 상하지도, 그럴 이유도 없었다.
“브리지도 역시 테리와의 악수를 거부하는군요. 테리, 벌써 두 명에게 악수를 거부당했습니다.”
첼시와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가 시작하기 전부터 주목을 받았던 건, 브리지와 악수하며 화해하겠다는 테리와 분노를 숨기지 않은 브리지가 악수하는 지 확인하려는 팬들의 의문 탓이었다.
그리고 팬들의 이목이 한껏 쏠린 그 상황에서 성배는 브리지에게 쏠린 관심 중 일부를 자신에게 끌어오며 또 한 번 이슈를 만들어냈다.
***
“브리지, 일단 지금까지의 모습은 긍정적입니다.”
모두 오늘 경기에 브리지가 출전하기를 바랐지만, 브리지가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반반이었다.
분노를 양분으로 삼아 이번 시즌 최고의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었고, 그게 아니면 멘탈의 붕괴로 최악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도 있었다.
“조 콜의 돌파! 브리지, 그 앞을 막아섭니다.”
브리지의 활약은 나쁘지 않았다.
의외로 전혀 흥분하지 않았고, 평소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며 안정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브리지가 먼저 걷어냅니다. 조 콜의 돌파를 막아내는 브리지의 단단한 수비! 심리적인 타격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첼시의 단단한 중원을 상대하기 위해 새로운 전술까지 시험했던 만치니 감독은 정작 본 경기에서는 기존의 4-3-3 전술을 들고 나왔다.
그런데 정작 새로운 전술을 준비하게 했던 첼시 역시 오늘따라 윙어를 기용하는 4-4-2 전술을 들고 나왔다.
“발락, 왼쪽으로! 말루다에게 볼이 연결되지만, 주가 한 발 먼저 걷어냅니다!”
그리고 완벽한 패착이었다.
브리지가 분명 출전할 거라고 확신했던 안첼로티 감독은 성배가 오늘은 쉴 거라 판단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브리지를 노리려 윙어를 기용한 것이었다.
그런데 잦은 부상에 계속 시달리던 조 콜의 기량이 예전 같지 않았고, 브리지 역시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첼시의 윙어들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데요?”
게다가 왼쪽의 말루다는 성배에게 막혔다.
성배의 출전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원래도 말루다가 리차즈를 뚫어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조 콜이 막혀버린 상황에서 말루다까지 막히니 야심차게 들고나온 전술이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발락과 램파드가 볼을 주고받으면서 전진합니다. 램파드, 전방으로! 아넬카!!”
전반 20분 만에 측면에서는 답이 없다고 판단한 안첼로티 감독은 다시 중앙에 힘을 주었다.
오른쪽 윙어로 출전했던 조 콜은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측면보다 살짝 중앙으로 이동했다.
“아넬카, 잔 드리블로 태클을 피하면서 돌파! 중앙 투입, 드록바! 기븐이 막아냅니다!”
측면 위주의 플레이에서 다시 본연의 중앙 집중형 플레이로 전환한 첼시는 점차 주도권을 회복해나갔다.
스탬포드 브리지에서의 첼시는 굉장히 강력했다.
경기를 앞두고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긴 했지만, 첼시 선수들은 그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모습이었다.
“콤파니가 전방으로 걷어내고, 배리에게 연결! 배리, 데 용에게 넘겨준다는 패스가 길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으로 흔들리는 건 오히려 맨체스터 시티 쪽이었다.
분노와 브리지에 대한 의리로 똘똘 뭉친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은 무조건 첼시를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몸에 힘이 들어간 모습을 보였다.
“발락, 전방으로! 램파드에게 이어지는 상황에서 데 용의 태클이 거칠게 들어갑니다! 데 용의 파울.”
힘이 평소보다 많이 들어간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의 플레이는 조금씩 어긋났다.
패스들이 길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평소였다면 막아냈을 상황에서 파울이 나오는 경우도 생겼다.
컨디션 자체는 어느 때보다 좋았다.
체력이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힘이 빠지거나 골이 터져서 긴장을 풀린다면 그때부터 진짜 경기력이 나올 수 있을 상황이기도 했다.
‘조금만 버텨보자.’
분위기를 내준 것은 경기력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 밀린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조급해하지 말고 시간을 끄는 쪽이 현명했다.
“나이젤! 가레스! 내려와서 일단 버텨.”
생각을 마친 성배는 중앙 미드필더들을 밑으로 불러들였다.
지금은 웅크리고 있을 때였다.
급할 필요가 없었다.
“일단 버티면서 힘을 빼! 지금 몸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고!”
자신의 플레이에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했고, 자기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생긴 성배는 경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우선 자신의 위상이 높은 벨기에 대표팀부터 시작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클럽에서도 말을 아끼지 않았다.
경기 보는 눈이 정확한 성배의 적극적인 개입은 맨체스터 시티의 상승세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고 있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 오늘 꼭 이겨야 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너무 긴장할 필요도 없어!”
현재 맨체스터 시티에는 딱히 리더가 없었다.
특유의 활발하고 친화력 높은 성격으로 리더 자리를 가져갔던 투레는 부상으로 빠진 상황이었다.
투레 대신 주장 완장을 차고 있는 테베즈나 아데바요르, 벨라미, 데 용, 존슨, 리차즈 등도 리더십이 부족했고, 리더십이 있는 콤파니나 성배, 배리는 나이가 너무 어리거나 팀원에 대한 장악력이 부족했다.
“천천히! 천천히 하나씩 가자!”
그런 상황에서 기대도 하지 않았던 성배의 게임 리딩은 맨체스터 시티에게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에고가 높은 선수들이었기 때문에 성배의 장악력도 그리 큰 건 아니었지만, 팀을 리딩하는 유일한 선수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따라주고 있었다.
“한동안 첼시가 신을 내다가 이제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맨체스터 시티, 초반만 하더라도 조금 어수선한, 뭐가 마음대로 잘 안 되는 모습이었는데, 이젠 정리가 된 것 같습니다.”
성배의 제안대로 천천히 하나씩, 한 명씩 정리한 맨체스터 시티는 분위기를 정비해 나갔다.
첼시의 공격을 잘 막아내면서 버틴 맨체스터 시티는 수비를 통해 조금씩 분위기를 끌고 오기 시작했다.
“말루다가 뒤쪽으로 빼주고 중앙으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애쉴리 콜의 전진! 주와 콜의 맞대결이 드디어 펼쳐집니다.”
애쉴리 콜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콜이 깊숙이 올라와 돌파를 준비하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이제 그 자리. 줄 때가 된 것 같은데.’
성배 역시 자세를 낮춰 콜의 돌파에 대비했다.
오늘, 성배는 지난 몇 년간 지켜온 콜의 자리를 빼앗을 생각이었다.
< 낭만필드 - 21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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