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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사라진 필드-215화 (321/356)

< 낭만필드 - 215 >

리그 11위까지 떨어져 있었던 에버튼에게 22경기 연속 무패 행진이 끝나며 한 번 막혔던 맨체스터 시티의 질주는 이번에도 예상치 못한 팀에게 끊겼다.

FA컵 16강전에서 스토크 시티에게 패배하며 탈락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리버풀과의 리그 27라운드 홈경기에서는 무승부를 거두었다.

두 경기 연속 승리를 챙기지 못했기 때문에 첼시와의 원정 경기가 주는 부담감이 더 커졌다.

하지만 첼시와의 경기가 부담스러운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존 테리, 전 동료 웨인 브리지 애인과 불륜!]

[충격! ‘좋은 아버지’ 테리, 동료의 애인과 부적절한 관계.]

[바네사 프론첼, 그녀는 누구인가?]

첼시와 맨체스터 시티, 그리고 두 팀을 넘어 잉글랜드 전역을 충격에 빠뜨린 스캔들이 터진 것이었다.

그야말로 잉글랜드 축구계 전역, 아니, 나아가 전 세계축구 팬들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었다.

첼시의 존 테리는 첼시의 주장이자 잉글랜드의 주장으로, 뛰어난 기량은 물론이거니와 뛰어난 리더십까지 보여주면서 작년에 잉글랜드 좋은 아버지 상을 수상한 선수였다.

그런데 1년도 되지 않아 치명적인 스캔들이 터졌다.

테리는 영국 법원에 자신의 사생활을 지켜달라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으로부터 언론의 자유는 사생활보다 위에 존재한다는 판결을 받고 패소하고 말았다.

[테리에게 주장 완장이 어울리는가?]

[브리지, 국가대표팀 은퇴 선언. “그와 함께 뛸 수 없다.”]

[바네사의 지인, “WAGs를 꿈이라 말하고 다니던 친구.”]

불륜 그 자체도 엄청난 스캔들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밝혀진 내용들이 존 테리를 더욱 사지로 몰아넣었다.

첫 번째는 존 테리가 바네사와 만남을 가지면서 만남에 대한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말라는 문서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바네사가 만난 남자는 테리 외에도 네 명이 더 있다는 이야기였다.

첼시 선수들의 여인들 중 바네사는 가장 인기가 많았다고 했다.

주위에 남자들이 모여든다는 뜻의 ‘여왕벌’이라는 별명까지 있었다고 하니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세 번째, 이것이 가장 결정적이었는데, 바네사가 테리의 아이를 임신했고, 테리는 바네사에게 낙태를 종용했다는 소식이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좋은 남자, 좋은 아버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테리는 이번 사건으로 이미지에 씻을 수 없는 타격을 입고 말았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만남. ‘불륜 더비’의 승자는?]

[브리지, 그라운드 위에서는 복수에 성공할까?]

[주에게 밀린 브리지, 첼시와의 경기에 출전할 수 있나.]

이런저런 이유로 첼시와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피해자인 브리지가 속한 맨체스터 시티에게 더 중요한 경기였다.

***

“주, 애쉴리 콜을 상대로 이겨줄 수 있겠어?”

첼시와의 경기를 앞두고 만치니 감독이 성배를 호출했다.

만치니 감독 역시 이번 경기를 앞두고 그 어떤 때보다도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애쉴리 콜이라... 웨인을 출전시키기 위해서입니까?”

애쉴리 콜이라면 첼시의 레프트백이자 EPL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꼽히는 선수였다.

대단한 선수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성배의 원래 포지션 역시 레프트백이었기 때문에 정상적인 경우라면 만날 일이 없다는 뜻이었다.

지금 만치니 감독이 이런 말을 하는 의도는 뻔했다.

“맞아. 그것 말고 다른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분명 웨인을 출전시키기 위해서지.”

이번 경기에 쏠린 팬들의 관심은 굉장했고, 대부분 브리지와 테리의 맞대결을 보고 싶어했다.

그리고 경기에 출전하고 싶다는 브리지의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했다.

이런 상황에서 브리지를 뺀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럴 거면 그냥 브리지를 넣고 절 벤치에 두시죠. 이런 상황에서는 벤치에서 시작해도 괜찮습니다.”

성배도 그런 상황들을 이해하고 있었다.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성배 역시 자존심과 프라이드가 있었기 때문에 벤치로 내려가는 걸 반길 리 없었다.

하지만 이번 경기는 상황이 달랐다.

“물론 그게 가장 편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자네가 오른쪽에서 뛰어도 마이카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해. 지금 스쿼드에서 왼쪽에 웨인을 둔다면 오른쪽엔 자네를 두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지.”

콜로 투레가 잠시 컨디션 이상으로 빠진 상황이었다.

투레의 부상 이후에는 성배와 리차즈가 양쪽 측면에 자리 잡고 중앙에 콤파니와 레스콧이 출전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내일은 리차즈를 중앙으로 두겠다는 겁니까?”

지금 만치니 감독은 리차즈를 오른쪽에 두지 않겠다는 걸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 말은 리차즈가 휴즈 감독 시절처럼 중앙으로 간다는 이야기였다.

“맞아. 마이카를 중앙으로 쓸 생각이야. 졸레온은 가진 게 많은 선수지만, 아직은 팀에 적응하지 못했으니까. 첼시전은 무조건 이길 생각이거든.”

아쉽게도 큰돈을 들여 영입한 레스콧은 아직까지도 맨체스터 시티의 전술에 적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투레의 부상 이후 계속 중용되는 것은 리차즈가 라이트백 포지션에서 드디어 잠재력을 폭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센터백이 필요한 상황에서 팀 내 3순위 센터백 레스콧을 무시하고 리차즈를 중앙으로 돌리는 것도 문제였다.

데려온지 얼마 되지 않았고 몸값과 주급도 비싼 레스콧과 사이가 틀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팀을 운영하게 되면, 경기력 외에도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았다.

첼시전에서 리차즈를 중앙으로 돌리겠다는 만치니 감독의 결정이 쉬웠을 리 없었고, 그 정도로 첼시전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뜻이었다.

“파블로가 섭섭해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이야기는 원래 NO.2 라이트백인 사발레타도 레스콧 못지 않게 섭섭해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리차즈가 중앙으로 이동하면 사발레타가 라이트백으로 나서는 게 맞았다.

“먼저 자네가 승낙하면 파블로와 졸레온, 웨인에게 이야기해야지. 내가 감독이기는 하지만, 자네가 오른쪽에서 뛰기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굳이 출전시킬 생각은 없어.”

성배는 대표팀에서 라이트백으로 활약하기 때문에 라이트백 소화 능력은 이미 검증이 끝나 있었다.

하지만 소속팀에서는 또 다른 문제였다.

메인 포지션이 아닌 것도 문제였고, 어느새 경쟁 상대가 된 애쉴리 콜과 정면으로 붙게 된다는 것 역시 부담스러웠다.

최악의 경우, 부딪힐 일 없는 두 선수의 맞대결이라는 임팩트에 불리한 조건들은 다 무시되고 억울하게 콜의 아래가 되어버릴 수도 있었다.

또, 성배가 사발레타 등 다른 선수들과 충돌하기 싫어서 출전을 꺼릴 가능성도 작지 않았다.

“뭐, 힘든 건 없습니다. 줄 세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애쉴리 콜과 비교하는 것도 별로 관심 없고요. 콜이 좋은 선수이기는 하지만, 이기진 못해도 최소한 지지는 않을 겁니다.”

성배가 출전을 꺼리는 경우는 체력적인 부담이 느껴졌을 때밖에 없었다.

지난 스토크 시티와의 경기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체력적인 부담은 전혀 없었다.

굳이 출전을 꺼릴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파블로, 졸레온을 설득할 자신은 있으십니까?”

솔직히 두 선수랑 사이가 틀어져도 상관은 없었다.

다만, 감독과 사이가 벌어질 경우, 벨라미의 경우처럼 어수선해질 수 있었기 때문에 그건 좀 꺼려졌다.

“파블로나 졸레온이라면 스무스하게 넘어갈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그건 내 역할이니 내가 잘 해야겠지.”

성배도 두 선수라면 대놓고 반기를 들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두 선수 역시 프로였다.

“감독의 역할이기도 하지만, 틀어지면 선수들에게도 피해가 옵니다. 그냥 관심 끄고 있을 수는 없죠.”

이젠 감독에게도 직언을 던질 수 있을 정도로 성배의 위상과 입지가 상승해 있었다.

그리고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넘어갔던 전생과는 성배의 성격에도 차이가 있었다.

성배의 말에 만치니 감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벨라미, 호비뉴와의 불화로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팀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것 때문에 찔렸기 때문이었다.

“우선 제 이야기를 하면, 저는 상관없습니다. 오른쪽으로 나가는 것도, 콜과 붙는 것도 상관없고, 자신도 있습니다. 다른 선수들에게 먼저 말씀하시고, 그들이 괜찮다고 한다면 다시 말씀해주시죠.”

라이트백은 어느 정도 익숙하기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애쉴리 콜과의 맞대결은 살짝 기대되기도 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좀 한다 하는 레프트백은 애쉴리 콜과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예전이었다면 그런 뛰어난 선수들을 피하면서 위상을 까먹지 않으려 했겠지만, 이미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고, 최정상급이라는 평가를 받는 상황이었다.

콜에게 패배한다고 해도 성배의 위상에 큰 타격은 없었다.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콜과 붙어보는 것도 좋은 기회였다.

***

브리지의 사건이 터진 이후, 모래알이었던 맨체스터 시티는 점점 하나의 팀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맨체스터 시티 선수단의 결속력이 약했던 것은 선수들이 모두 이기적이고 개인적이어서가 아니었다.

물론, 그런 선수들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고, 각자 이전의 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선수들이었기에 자존심이 강해서였을 뿐이었다.

이들도 다른 선수들처럼 팀 동료에 대한 애정과 의리가 있었고, 팀 동료의 비극에 함께 분노하며 위로해줄 줄 아는 선수들이었다.

[벨라미, “테리를 아는 사람들은 별로 놀라지 않았을 것.”]

[테베즈, “만약 내 이웃이었다면 다리와 다른 곳을 잘라버렸을 것이다.”]

[만치니 감독, “국가대표 은퇴는 다시 고려해봤으면.”]

브리지의 일로 인해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그리고 동료 선수들은 하나같이 분노하며 브리지를 위로하고 테리를 비난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벨라미는 테리가 인간적으로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행실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조차 없다.”고 말했고, 축구계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은 테리의 인격을 잘 알고 있을 거라며 비아냥거렸다.

마지막으로 경기장 내에서만큼은 훌륭한 선수이고 첼시에게는 완벽한 주장이라고 수습했지만, 그 수습한 내용조차도 비아냥이 섞여 있었다.

테베즈는 더욱 강경했다.

다른 선수의 여자와 그런 일을 벌인 사람이 도덕과 양심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며 훨씬 더 직설적인 말을 남긴 것이었다.

만약 자신의 이웃이었다면 당장 다리뿐 아니라 다른 신체 부위도 잘라버렸을 것이라고 말해 모든 남성들을 섬뜩하게 하기도 했다.

“하하하, 카를로스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하하하. 남자로서 무섭네요.”

성배 역시 인터뷰 대상이었다.

극성맞은 잉글랜드 언론은 성배를 인터뷰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다.

예상외로 재치 넘치는 말주변과 훌륭한 인터뷰 스킬을 갖춘 성배는 큰 논란거리를 만들지 않으면서도 팬들을 즐겁게 해줄 줄 아는 선수였다.

게다가 기량과 스타성도 받쳐주니 인터뷰만 했다 하면 특종이었다.

언론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선수였다.

“그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저도 동의합니다. 그의 행동은 전혀 남자답지 못한, 찌질한 행동이었고, 그런 사람에게 남자의 상징은 필요 없겠죠. 하하하.”

성배의 말에 기자들은 일제히 자신들의 바지춤을 잡으며 웃었다.

남자라면 이런 말을 듣고 멀쩡할 수 없을 터였다.

“그와는 별개로.”

그런데 다음 순간, 성배는 갑자기 표정을 싹 굳혔다.

순식간에 바뀌어버린 성배의 분위기에 기자들도 다시 집중해서 필기를 준비했다.

“만약 제가 웨인이었다면, 테리는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웨인이 좋은 사람이었기에 망정이지, 그딴 짓을 하고도 멀쩡할 생각을 했다면, 사람도 아니겠죠.”

원래 흥분을 잘하는, 그리고 말에 두서가 없는 테베즈와 달리 평소 성격은 그렇지 않지만, 인터뷰 스타일은 유쾌한 성배의 분노는 그래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어차피 맨체스터 시티에서 첼시로 건너갈 일은 없으니까.’

사실, EPL 내에서는 맨체스터 시티를 떠날 이유가 없었다.

전력은 물론이고 선수 대우까지도 제일 좋은 클럽인데 리그 내 이적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맨체스터 시티를 떠나는 경우는 딱 두 가지.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위해 타 리그 팀으로 떠나거나 기량이 EPL 우승권 팀에서 버티지 못할 정도로 떨어지는 경우일 것이었다.

‘어차피 그럴 거라면. 뼛속까지 맨시티라는 걸 어필해야지.’

분노한 표정 속에는 그런 성배의 계산이 숨어있었다.

< 낭만필드 - 215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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