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214 >
“페트로프, 다시 한 번 주에게 패스합니다.”
포츠머스와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는 절대적으로 일방적인 흐름으로 이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구단주의 파산과 클럽 소유권 분쟁, 임금 체납 등으로 포츠머스의 팀 분위기는 막장이었다.
안 그래도 선수 기량 면에서 밀리는데, 팀 분위기까지 그렇게 막장을 달리니 포츠머스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주와 반덴 보레의 일대일!”
그리고 여유로운 경기 상황 속에서 적극적으로 올라오는 성배의 공격력이 맨체스터 시티 공격에 큰 힘이 되었다.
오늘 맨체스터 시티는 중앙에 집중하는 전술을 들고 나왔다.
4-4-2 포메이션에서 배리, 데 용, 아일랜드 세 명의 중앙에서 활동하는 미드필더를 투입했고, 윙어는 페트로프 한 명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정말 못 컸구나.’
페트로프의 포지션도 왼쪽이었다.
수비적으로 플레이할 것이 분명한 포츠머스의 수비를 뚫어내기 위해서 성배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만치니 감독은 중앙 쪽에 집중하면서도 왼쪽의 힘을 빼지는 않았다.
그 결과, 성배는 반덴 보레와 끊임없이 부딪혔다.
‘이 정도면 복잡할 필요도 없겠어.’
반덴 보레와 상대하면서 성배는 다시 한 번 유망주의 한계를 느꼈다.
탑클래스 유망주라고 평가받는 선수 중 정말로 탑클래스까지 성장하는 경우는 생각보다도 적었다.
‘유망주는 유망주일 뿐’이라는 말은 절대적으로 옳았다.
‘너무 쉽게 뚫리잖아.’
복잡한 수 싸움도, 화려한 개인기도 필요 없었다.
상체와 하체를 활용한 두세 번의 속임 동작만으로 성배는 반덴 보레를 따돌릴 수 있었다.
콤파니와 함께 벨기에를 짊어질 것이라 평가받았던 유망주, 반덴 보레의 현주소였다.
“측면을 가볍게 파고들어서 중앙으로 크로스! 아데바요르, 헤더!! 골! 골! 골! 맨체스터 시티, 가볍게 선취 골을 넣으면서 일찌감치 리드를 잡아 나갑니다.”
맨체스터 시티와 포츠머스.
이 경기력의 차이가 성배와 반덴 보레의 벌어진 차이를 증명했다.
***
성배에게 완벽히 제압당한 오른쪽 측면을 비롯해서 어느 한 군데에서도 제대로 저항하지 못한 포츠머스가 경기를 내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잊혀진 유망주가 되어 벨기에 팬들의 메인 관심사에서 멀어진 반덴 보레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국가대표팀 A팀은 아니지만, 상비군 정도의 인지도는 가지고 있었다.
벨기에의 전력이 어느 정도 올라왔고, 특히 수비수들은 대부분이 4대 빅리그에서 뛰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 벨기에 선수들은 유럽 무대에서 메인이 아니었다.
그런 현실에서 벨기에의 국가대표팀 에이스 레프트백과 국가대표팀 상비군 라이트백의 맞대결이 가장 인지도 높은 프리미어리그에서 펼쳐지는데 벨기에 팬들의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는 없었다.
ㄴ 안토니...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솔직히 주가 말도 안 되게 빨리 성장한 것도 맞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퍼펙트하게 털려버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ㄴ 솔직히 말하면 안토니가 지금 뱅상만큼은 크거나 더 클 줄 알았는데... 도대체 안토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ㄴ 주필러 리그의 수준을 말해주는 거지. 주필러 리그에서는 80의 능력치를 가진 선수나 100의 능력치를 가진 선수 둘 다 리그를 씹어 먹을 수 있었는데, 프리미어리그로 가니까 그 차이가 나오는 듯.
ㄴ 그래도 다행이야. 안토니가 이렇게 폭망한 상황에서 주가 귀화해주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어?
ㄴ 주는 벨기에를 불쌍하게 여긴 축구의 신이 내려준 선물인 거지. 스페인전 봤어? 솔직히 2010년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하는 건 여전히 아쉽지만, 예선에서 보여준 벨기에의 경기력에 나는 만족해. 2012년 유로대회에는 무조건 진출할 수 있을 거야.
반덴 보레와 성배는 한때 라이벌 구도를 이룬 적이 있었다.
안더레흐트에서 함께 뛰면서 왼쪽 측면과 오른쪽 측면을 나누던 초기만 하더라도 반덴 보레가 살짝 위라는 평가였다.
하지만 점차 둘 사이의 격차가 좁혀지기 시작하더니, 성배의 첫 풀타임 시즌부터 역전된 이후에는 엄청난 속도로 벌어졌다.
이제는 아무리 팬심이 있더라도 도저히 비교조차 하지 못할 정도였다.
성배는 빅리그 진출을 넘어 벨기에 국가대표팀의 수비는 물론 공격에서까지 핵심 역할을 해주며 대체 불가능의 에이스가 되어가고 있었고, 반덴 보레는 국가대표팀 합류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심지어 성배는 그라운드 바깥에서도 프랑스계와 네덜란드계의 반목을 조율하는 구심점 역할까지 해주었다.
게다가 자신의 자리가 아님에도 반덴 보레의 폭망으로 붕 떠버린 라이트백 포지션으로 이동해 만들어내는 활약이라는 것이 반덴 보레에게는 더 큰 타격이었다.
성배와 콤파니, 반 바이텐, 베르마엘렌의 현재 수비진을 비집고 반덴 보레가 복귀하기 위해서는 성배를 밀어내야 했다.
백업으로 있는 베르통헨마저도 레프트백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성배가 왼쪽으로 돌아가려면 베르마엘렌과 베르통헨 두 선수가 한 번에 몰락해야 했다.
사실상 반덴 보레가 과거의 자신에게 걸렸던 기대에 어울리는 위상을 차지하기는 불가능해보였다.
“임의 돌파! 주와 맞대결을 펼칩니다.”
포츠머스를 상대로 가볍게 승리를 거둔 맨체스터 시티는 이어진 헐 시티와의 경기에서도 승리를 거두며 4위 자리를 지켜나가던 아스톤빌라와의 격차를 1점까지 좁혔다.
오랜만에 챔피언스리그 진출 순위권에 오르기 직전이었다.
‘실력 자체는 내가 위지만... 워낙 분위기가 좋으니 조심은 해야지.’
그리고 볼턴전.
성배는 다시 한 번 임채영과 만나 맞대결을 펼쳤다.
임채영이 자신의 에이전시 소속이라고 해서 봐줄 생각은 1 나노 그램도 없었다.
소속 선수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 자신의 몸값을 떨어뜨릴 리 없었다.
“임, 조금씩 전진합니다. 주를 상대로 돌파할 생각일까요?”
실제로 이번 시즌 임채영의 기세는 놀라웠다.
26라운드까지 19위로 강등권을 탈출하지 못한 볼턴에서 두 자리 수 공격 포인트를 눈앞에 두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럴 땐 어떤 짓을 할지 몰라.’
성배의 말처럼 이렇게 분위기가 올라온 선수들은 실제 기량을 훌쩍 뛰어넘는 무언가를 보여주는 경우가 있었다.
지난 전반기 맞대결에서 가볍게 막아냈다고는 하지만, 긴장은 좀 해야 했다.
“임, 돌파를 포기하고 반대편으로 넘깁니다.”
하지만 임채영은 성배와의 맞대결을 피했다.
첼시와의 경기에서 애쉴리 콜을 상대로도 적극적인 승부를 걸었던 임채영이었다.
그런데 성배와의 대결에서는 승부를 피했다.
“전반기 맞대결에서 너무 완벽하게 막혔던 감은 있죠. 아무래도 벤치에서 승부를 피하라는 지시가 나왔을 것 같네요.”
볼턴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안정적인 선택을 해야 했다.
어차피 맨체스터 시티의 홈이었고, 승리는커녕 무승부도 노리지 않았다.
볼턴의 목적은 최대한 점수 차이가 벌어지지 않게 만드는 것과 팀 분위기가 망가지지 않게 하는 것, 두 가지였다.
그러려면 임채영을 아낄 필요가 있었다.
“반대편으로 연결된 볼, 잭 윌셔가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배를 피하려는 목적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임채영은 시야가 넓고 상황 판단이 좋은 선수였다.
볼을 공급하는 패서로도 가치가 작지 않았다.
또한, 임채영 외에 반대편에도 측면을 헤집어줄 선수가 있었다.
“윌셔와 사발레타, 오늘은 오히려 이곳에서 맞대결이 더욱 자주 펼쳐집니다.”
잉글랜드의 미래라고 불리는 잭 윌셔.
오늘은 마리오 괴체, 네이마르 등과 함께 무서운 92년생을 이끌고 있는 윌셔가 반대편에서 임채영을 대신해 볼턴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물론, 사발레타도 좋은 선수이고, 무려 일곱 살이나 더 많은 한 세대 전의 선수였기 때문에 쉽게 뚫리지는 않았다.
볼턴이 윌셔를 활용하는 이유는 그나마 상대가 되는 쪽이기 때문이었을 뿐, 윌셔가 사발레타를 상대로 우위에 서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발레타의 태클! 이번에는 사발레타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홈팬들의 일방적인 응원과 뛰어난 동료들을 보유하고 있는 사발레타가 더 많은 승리를 거두었다.
하필이면 만수르가 구단주로 취임하기 하루 전 날 영입이 완료되었고, 그 덕에 리차즈를 비롯, 화려한 동료들에게 묻혀 있었지만, 만능 땜빵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었다.
“오른쪽에서 돌파 시도하는 아담 존슨, 그 앞을 가로막는 샘 리케츠! 존슨, 일단 한 번 호흡을 가다듬습니다. 뒤쪽으로 연결, 비에라에게.”
강등권에서 올라오지 못하는 볼턴을 상대로 오늘 만치니 감독은 새로운 전술을 시험했다.
얼마 뒤, 스탬포드 브리지에서 만나게 될 첼시를 상대로 활용하기 위한 전술이었다.
‘후우, 이거 체력 소모가 장난이 아닌데?’
오른쪽으로 투입되었던 볼이 다시 중앙으로 올라오면서 성배는 상대 진영으로 넘어갔다.
왼쪽 측면 공격을 성배 혼자서 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맞춤 전술로 가끔 쓴다면 괜찮겠지만. 이 전술을 주력으로 쓰면 한두 시즌 버티다가 퍼지겠어.’
만치니 감독이 시험한 전술은 비대칭 4-4-2였다.
네 명의 미드필더를 중앙 미드필더 세 명과 오른쪽 윙어로 구성하고, 투톱을 내보낸 것이었다.
투톱 중 한 명인 테베즈가 최전방보다는 살짝 내려와서 왼쪽 측면과 1.5선까지 커버해주고는 있지만, 왼쪽 윙어가 없는 것은 측면 공격에 약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배리가 왼쪽으로! 주, 또 올라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이 바로 성배의 역할이었다.
성배의 공격력에 큰 신뢰를 가지고 있는 만치니 감독은 성배와 테베즈가 함께 맡아준다면 윙어가 없어도 오른쪽에 밀리지 않는 파괴력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오늘 주가 굉장히 많이 뛰어주는데요? 평소에도 공격에서 큰 역할을 해주는 선수지만, 오버래핑을 자주 시도한다고 하기 보다는 정확한 타이밍에 올라와주는 선수였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자주 올라와주네요.”
그 덕분에 성배만 죽어났다.
안 그래도 활동량이 많았던 성배인데, 옵션이었던 공격이 필수가 되어버렸으니 활동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오늘만 보고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왼쪽을 비우고 주와 테베즈에게 그 역할을 분담한 오늘 전술이 나빠 보이지는 않네요.”
만치니 감독이 이런 전술을 시험해보는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숨 막히는 중원 장악을 바탕으로 경기를 만들어나가는 첼시 안첼로티 감독의 전술을 깨기 위해서가 첫 번째였다.
지난 전반기에는 맨체스터 시티의 홈이었기 때문에 시티의 장점을 앞세운 전술로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원정팀의 무덤이라 불리는 스탬포드 브리지였고, 맞춤 전술이 필요할 거라 판단했다.
“왼쪽 윙어, 벨라미의 폼이 아데바요르보다 더 나아 보이는데, 왜 이런 전술을 활용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차라리 4-5-1을 쓰면 될 것 같기도 한데요. 제공권을 살리기 위해서인가요?”
물론 그것도 정답이었다.
공격진에서 가장 폼이 좋은 테베즈와 벨라미를 모두 활용하면서 중원의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4-5-1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최전방에서 타겟 역할을 수행해줄 선수가 없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최전방의 제공권은 선수의 폼이 좋지 않다고 해도 포기할 수 없었고, 테베즈와 벨라미의 폼이 워낙 좋았을 뿐, 아데바요르의 폼도 나쁘지 않았다.
“스타인슨을 가볍게 제쳐내고 크로스! 아데바요르의 헤더가 크로스바 위로 넘어갑니다! 아쉬운 플레이!”
그리고 또 한 가지의 이유는 벨라미에게 있었다.
이번 시즌, 커리어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는 벨라미지만, 만치니 감독과의 불화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열심히 달래고는 있지만, 만치니 감독 입장에서는 벨라미가 없는 맨체스터 시티를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후우... 힘들구만, 힘들어.’
아데바요르의 헤더가 크로스바 위를 넘어가면서 플레이가 마무리되었다.
공격권이 볼턴에게 넘어가면서 성배는 다시 수비진영으로 열심히 내려갔다.
‘첼시전에서 한 번만 쓰고 다시 안 나왔으면 좋을 전술이군.’
감독이 요구한다면 또 열심히 뛰겠지만, 별로 반가운 전술은 아니었다.
자신의 비중이 큰 전술이기는 하지만, 이런 전술이 아니어도 이미 자신의 위상은 탄탄했다.
< 낭만필드 - 21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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