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209 >
로베르토 만치니 체제의 맨체스터 시티는 다시 한 번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하면서 전문가 및 팬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는 듯 다시 내달리기 시작한 맨체스터 시티의 기세에 우승권 팀들도 긴장할 정도였다.
“맨체스터 시티, 미들스브로와의 FA컵 3라운드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하면서 박싱데이 일정을 마무리합니다. 박싱데이 일정으로만 따지면 스토크, 울브스, 미들스브로에게 3연승, 전체적으로 따지면 벌써 5연승입니다.”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의 부임 이후, 맨체스터 시티는 확 달라진 경기력으로 승승장구했다.
첼시전에서부터 감독직을 맡게 된 만치니 감독 체제에서 맨체스터 시티는 리그 5승 1무, 칼링컵 아스날전 승리로 4강 진출, FA컵 4라운드 진출 등 총 7승 1무의 무패행진을 달렸다.
“맨체스터 시티의 기세가 정말 무서운데요? 그 유명한 7연속 무승부 행진을 달리던 당시, 계속해서 발목을 잡았던 수비진이 순식간에 안정화되었고, 안정화되자마자 바로 7승 1무로 무섭게 달리고 있어요.”
시즌 초반, 무섭게 내달리면서 우승 경쟁의 다크호스로 꼽혔던 맨체스터 시티는 7연속 무승부 행진을 달리기 시작하면서 다시 우승후보로 언급되지 않았다.
그런데 맨체스터 시티의 기세가 또다시 심상치 않았다.
만치니 감독 부임 이후 5승 1부로 내달리기 시작한 맨체스터 시티는 어느새 다시 우승 경쟁에 뛰어들 채비를 갖췄다.
“어느새 리그 4위까지 치고 올라온 맨체스터 시티인데요, 어느새 1위 첼시와의 승점 차이를 6점까지 좁혔습니다. 게다가 아스날과 함께 한 경기를 덜 치른 상황이거든요? 그런 걸 감안하면 첼시와도 한 경기 차이에 불과합니다. 우승 경쟁에서 맨체스터 시티를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상황이죠?”
에버튼과의 2라운드 경기가 3월로 밀린 덕분에 다른 팀들에 비해 한 경기를 덜 치른 상황이었다.
이게 이득이 될지, 손해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당장 승점차이는 생각보다 적은 편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잘 언급이 되지 않는 게 있는데, 맨체스터 시티, 이번 시즌 리그 19경기에서 무패입니다. 무승부가 많아서 승점은 좀 부족하지만, 단 한 경기도 패배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정확히 절반의 경기를 치른 맨체스터 시티는 아직까지 무패행진을 달리고 있었다.
열 번의 승리와 아홉 번의 무승부로 무승부 숫자가 많았지만, 어쨌든 무패는 무패였다.
“이런저런 상황들을 다 보면 맨체스터 시티가 이번 시즌 우승컵을 차지할 가능성도 무시할 순 없습니다.”
되살아난 맨체스터 시티의 기세에 프리미어리그 우승권 판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 * *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하는 데 말이죠.”
성배는 신년을 맞아 벨기에에 와 있었다.
1월 2일 미들스브로와의 FA컵 3라운드 이후 다음 경기가 11일에 예정되어 있었고, 박싱데이 때문에 크리스마스 겸 신년 휴가를 받지 못한 선수들에게 며칠의 휴가가 주어진 것이었다.
“하하,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에이전시 문 열고 첫 번째 파티인데요.”
벨기에로 건너온 이유는 알랭 에이전시 신년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에이전시 문을 열고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뒤 처음으로 개최한 파티였기 때문에 성배도 파티에 참석해 있었다.
“그래서 온 겁니다. 아니었으면 안 왔습니다. 하하.”
의미가 그렇다 보니 성배도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랭 에이전시 소속 선수 중 가장 연봉도 높고 인지도도 높은 얼굴이었고, 선수가 아닌 주주로서도 사장인 버크만과 함께 가장 큰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자리에 빠지고 싶어도 참석해야 했다.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랜만에 좀 쉬시죠. 맨체스터 시티도 그렇고 주성배 선수도 그렇고 자리 잡으셨는데 휴가 때는 이제 쉬어야죠.”
지금까지는 휴가를 받아도 거의 쉬지 않았던 성배였다.
이제는 세계에서 알아주는 레프트백으로 확실히 자리 잡았고, 궤도에 오르면서 팀에서 원하는 역할이 많아지면서 체력 소모가 많아져 쉴 때는 확실하게 쉬어줄 필요가 있었다.
“형, 안녕하세요.”
“아, 김성우 선수? 만나서 반갑습니다.”
임채영과 함께 K리그 최고의 유망주이자 최고의 선수로 꼽혔던 김성우도 알랭 에이전시와 손을 잡고 셀틱과 계약을 맺은 상황이었다.
이미 셀틱에 합류해 훈련에 참가하다가 아직 결론나지 않은 일들 때문에 마무리도 할 겸해서 벨기에를 찾아 파티에 참석했다.
“말 편하게 하세요. 나이도 제가 두 살이나 어린데요.”
“뭐, 그럴까요? 그렇게 하지, 뭐. 채영이랑도 말 놓는데 안 놓는 게 더 이상할 테니까.”
임채영이 볼턴으로 이적하면서 받은 이적료는 250만 파운드, 김성우가 셀틱으로 이적하면서 받은 이적료는 200만 파운드였다.
계약 조건만 따지자면 성배나 나스리, 벤제마 등과 비교조차 안 되는 수준이었지만, 두 선수는 초기 투자 금액이 굉장히 적었고, 미래 가치는 그것보단 훨씬 더 높았기 때문에 알랭 에이전시 측에서도 꽤 기대를 걸고 있었다.
“채영이 형 요즘 잘 나가던데요? 저도 그거 보니까 자극이 좀 되더라고요.”
K리그에서 함께 뛸 때부터 한 살 차이 나는 나이만큼, 딱 그만큼 앞서나갔던 임채영이었다.
그리고 김성우는 그런 임채영 다음으로 항상 주목을 받았던 선수였다.
비록 지금은 프리미어리그와 스코티시 프리미어리그로 무대가 나뉘었지만, 셀틱이라면 볼턴과 비교해도 밀릴 게 없는 클럽이었다.
“자극받아서 잘하면 좋지. 뭐, 나한테 특별히 좋을 건 없더라도 국적은 달라졌지만, 정이라는 건 남아있으니까.”
김성우와 임채영은 알랭 에이전시에 성배의 지분이 높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굳이 숨긴 건 아니고, 말할 필요가 없었을 뿐이지만, 그렇다고 말해줄 필요성도 못 느꼈다.
그리고 이런저런 말을 할 필요도 없이 두 선수나 성배나 둘이 잘해야 좋은 것이었다. 선수 본인들은 더더욱.
“형, 혹시 저한테 해줄 조언 같은 건 없어요?”
김성우의 눈빛이 반짝였다.
바로 옆 리그에서 탑클래스 선수로 활약 중인 성배가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해줄지 기대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음. 뭐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성배는 당황했다.
사실 이번 생에서 김성우의 경기를 진지하게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함께 뛰어본 적도 없었고.
“스코틀랜드 리그는 4대 리그 중 거칠다는 프리미어리그보다도 더 거친 리그라고들 하지. 몸싸움이나 궂은일을 꺼리면 미드필더로, 특히 수비형 미드필더로 살아남기는 힘들 걸.”
그래도 다행히 전생에서는 김성우의 플레이를 질리도록 봤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였던 김성우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는 성배가 직접 본 것도 있고 전문가들이 언급하는 것도 있고 해서 잘 알고 있었다.
주워들은 풍월 덕분에 김성우에게 의미 있는 조언을 건넬 수 있게 된 성배였고, 김성우는 그런 성배를 잡고 꽤 오랜 시간 동안 놓아주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가벼운 파티라고 시작했는데, 의외의 인물이 나타났다.
“음? 첼시? 어쩐 일이에요, 여긴?”
잉글랜드에 있어야 할 리포터 겸 기자, 첼시가 나타난 것이었다.
“파티 때문에 온 건 아니니까 그렇게 놀란 눈 하지 마세요. 히.”
확실히 알랭 에이전시와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기자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두터운 친분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알랭 에이전시의 신년 파티라고 해서 굳이 벨기에까지 날아올 이유가 없었다.
“역시. 그렇죠? 하하. 그럼 무슨 일로 오신 건가요?”
잉글랜드에서 벨기에로 넘어올 이유라고 한다면 휴가를 맞아 여행을 온 것일 수도 있고, 직업 특성상 취재를 온 것일 수도 있었다.
“요즘 벨기에 분위기가 좋잖아요. 그래서 취재차 왔어요.”
역시 취재차 온 것이었다.
벨기에가 스페인을 잡아내고 4연승을 거둔 데다가 포르투갈을 월드컵 탈락 직전까지 몰아세우면서 점점 유럽 축구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타이밍에 벌써 벨기에 기사를 준비한다는 것은 흐름을 읽는 눈이 보통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하하, 그렇게 생각해주신다니 감사하기는 한데, 아직 좀 이르지 않나요? 무슨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닌데요.”
벨기에 축구를 취재하면 어쨌든 벨기에 대표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는 것이니 벨기에의 핵심인 성배 입장에서는 좋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아직 시기상으로 좀 빠르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글쎄요. 기자의 감인데, 지금이 딱 좋아요. 조금만 더 지나면 다른 기자들도 다 눈치채고 취재하러 올 텐데, 남들 다 할 때 해서는 어필하기 힘들잖아요.”
확실히 기자들의 세계에서는 흐름을 파악하고 아이템을 선점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자신의 안목을 증명할 수 있었고, 그렇게 증명된 안목은 자신의 이름값이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그렇긴 하죠. 그럼 취재는 다 하신 건가요?”
시기가 빠르든 적기이든, 어쨌든 성배에게는 이득이었다.
첼시의 이름값은 리포터로서는 물론이고 기자로서도 꽤 높은 편이었다.
“아뇨. 하려고 여기 왔잖아요. 헤헤.”
첼시가 이곳에 나타난 이유.
이왕 벨기에까지 온 김에 파티에 참석해달라는 버크만의 초대도 있었지만, 자신의 기획 기사를 위한 취재 목적도 있었다.
“여기서요? 설마 취재 대상이 저인가요?”
알랭 에이전시 본사가 벨기에에 있기는 하지만, 벨기에보다 프랑스에 더 가까운 위치와 인원 구성이었다.
벨기에 선수들도 한두 명 정도밖에 없었다.
첼시가 원하는 기사를 위한 취재대상은 성배밖에 없었다.
“정답입니다! 취재 중에 여기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달려왔죠. 헤헤. 해주실 수 있으시죠?”
확실히 성배라면 그 누구보다 벨기에 대표팀에 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현재 벨기에 국가대표팀의 에이스이기도 하고, 나이는 어리지만, 워낙 일찍부터 대표팀에 발탁되었기 때문에 최근 몇 년간의 벨기에 국가대표팀에 대해 말해줄 수도 있었다.
“그 정도는 당연히 해드릴 수 있죠. 파티 곧 끝나니까 파티 끝나면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인터뷰하죠.”
기획기사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었다.
최대한 벨기에 국가대표팀과 자신에게 좋은 기사가 나오도록 제대로 협조해줄 생각이었다.
“좋아요. 조용한 곳으로 가서 둘이서 따로 이야기해요. 헤헤.”
기획 기사의 완성도를 위한 히든카드라 생각했던 성배의 인터뷰 섭외 성공에 밝게 웃는 첼시였다.
* * *
[‘올림픽 은메달 세대’ 앞세운 벨기에, 유럽 강호로?]
‘기사 잘 나왔네.’
첼시의 칼럼은 곧 나왔다.
인터뷰를 수락한 대신 요구했던 조건들이 모두 충족된 만족스러운 기사였다.
성배뿐 아니라 빅리그에서 활약 중인 반 바이텐, 콤파니, 베르마엘렌, 펠라이니에 대한 조명도 잊지 않았고, 아자르, 미랄라스, 루카쿠 등 성배가 요청한 유망주들에 대한 기사 역시 빠지지 않았다.
ㄴ 에이, 평소 첼시가 칼럼 잘 뽑는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이건 좀 아니다. 너무 이른 듯. 아직 증명할 게 남지 않았나?
ㄴ 솔직히 주, 콤파니, 베르마엘렌, 반 바이텐. 이 수비진만 봐도 가능성은 충분한데?
ㄴ 공격수가 너무 없어서 안 될 듯. 그래도 칼럼으로서 충분히 가치 있는 글이다.
‘뭐라고 하든 벨기에는 곧 뜬다. 두고 보자고.’
댓글에는 인정하는 사람들과 아직 미심쩍어하는 사람들이 반반이었다.
어차피 지금 당장 어떤 반응이 올 거라 기대한 건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라도 하게 하고 벨기에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준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 낭만필드 - 20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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