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204 >
“나니, 오늘도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주를 향해 달려듭니다.”
지난 경기에서 성배를 상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마지막까지 고집을 버리지 않고 일대일로 달려들었던 나니였다.
고작 4일 전 경기였지만, 오늘도 나니는 성배를 상대로 전혀 위축되지 않고 달려들었다.
‘위축 좀 되는 게 본인에게도 좋을 텐데.’
그래서 성배는 만족스러웠다.
호날두가 비난을 받던 초창기와 마찬가지로 아직은 개인 전술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니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었다.
아직 패스와 팀 플레이에 눈을 뜨지 못한 나니는 개인 전술을 포기하면 마땅히 할 게 없었다.
“나니, 버텨내지 못하고 주에게 볼을 헌납합니다. 이제 주의 플레이에서 여유까지 느껴집니다.”
나니와의 경합을 가볍게 이겨낸 성배는 볼까지 빼앗아내면서 나니의 돌파를 완벽히 막아냈다.
‘호날두와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나네.’
호날두와 챔피언스리그에서 처음 맞닥뜨렸을 때도 지금과 비슷했다.
본격적으로 잠재력이 터지기 시작하기 직전의 호날두를 타이밍 좋게 만나 완벽히 막아냈던 것처럼 나니도 비슷했다.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니는 이번 시즌 중반부터 패스에 눈을 뜨고 갑자기 잠재력을 폭발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뭐, 나니 정도는 성장해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니가 호날두라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부터 갑자기 전성기 나니로 상대가 바뀌어도 자신 있었다.
“경기가 좀 재미는 좀 없네요. 최근 들어서부터 벨기에의 경기가 대부분 그럼 느낌이죠?”
벨기에 수비수들이 부상에서 복귀한 뒤부터 대부분의 경기가 이런 느낌이었다.
수비는 최정상급의 단단함을 자랑해 상대 공격진을 꽁꽁 묶지만, 공격진이 상대 수비진을 뚫어내지 못해 경기가 답답해졌다.
“그래도 지난 경기들보다는 조금 나은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긴 해요. 제가 볼 때는 아자르 선수의 합류가 벨기에 공격에 큰 힘이 되어줄 것 같네요. 벨기에에 부족했던 창의적인 플레이 메이커 역할을 아자르가 해줄 수 있을 것 같죠?”
벨기에 공격진의 문제는 뛰어난 공격수의 부재와 유망주들의 완료되지 않은 성장도 있었지만, 역시 가장 큰 문제는 플레이 메이커의 부재였다.
주전 미드필더인 펠라이니, 시몬스, 비첼 등은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혹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플레이가 투박한 마당쇠 스타일이었다.
그나마 데푸르가 좀 괜찮은 편이었지만, 안정적인 경기 운영에는 재능이 있어도 반짝이고 과감한 플레이를 선호하는 선수는 아니었다.
게다가 오늘은 데푸르도 없었다.
“아자르, 중앙으로 칩 패스! 음펜자가 발을 뻗는데! 아쉽게 슈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반면, 아자르는 그 센스가 굉장했고, 기지 넘치는 패스로 위협적은 만들어내는데 재능이 있었다.
비록 아직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재능있는 선수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벨기에에게는 희소식이었다.
‘빨리 한 골부터 넣어야겠는데.’
일단 그건 나중 일이고, 지금은 오늘 경기에서의 승리가 중요했다.
일단 한 골부터 넣어서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놓는 것이 우선.
원점으로 돌려놓으면 오늘 경기가 홈에서 펼쳐졌기 때문에 일단 유리한 분위기 속에서 남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벨기에가 조금씩 분위기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호날두가 빠지긴 했지만, 벨기에 정도는 포르투갈이 잡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인식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1차전 경기가 끝난 이후, 벨기에의 단단한 수비에 포르투갈 공격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하자, 벨기에에 대한 평가도 처음과는 달라졌다.
“확실히 수비가 안정되니까 안정감이 있죠? 포르투갈이 공격을 하려고 해도 양쪽 측면이 모두 막혀 버리니까 힘이 빠질 수밖에 없죠.”
오른쪽에서 성배가 나니를 완벽히 막아내는 동안 왼쪽의 베르통헨 역시 시망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으며 벨기에의 안정적인 수비에 일조했다.
그리고 공격의 핵심인 양쪽 윙어가 막히면서 포르투갈의 창끝은 무뎌졌다.
“나니의 크로스! 아무도 없습니다!”
“나니,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는데요? 지금 상황에서는 크로스를 올리기보다 돌파를 하거나 동료가 올때까지 조금 시간을 끌어줬어야 했는데 말이죠.”
성배에게 완전히 틀어막힌 나니의 플레이가 조급해졌다.
짜증이 난 것인지, 아니면 자신감이 떨어진 것인지, 성배가 붙기 전에 서둘러 볼을 처리했다.
당연히 제대로 된 공격이 이루어질 리 없었다.
“조금 더 침착할 필요가 없겠지만, 벨기에에게는 좋은 일이죠. 오늘은 마지막까지 헤매주었으면 좋겠네요.”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포르투갈은 호날두의 빈자리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데쿠가 뭐라도 해보려고 했지만, 양쪽 윙이 침몰하고 최전방 스트라이커는 역시나 삽질 중이라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반 바이텐, 전방으로 길게 때립니다!”
어마어마한 피지컬과 세트피스 공격력만 믿고 달리는 선수였던 반 바이텐은 경험이 쌓이면서 어느새 대지를 가르는 패스까지 보유하게 되었다.
반 바이텐의 롱패스는 성배만큼 정교하진 않더라도 바이에른 뮌헨에서 가끔 공격 루트로 선택할 정도로 쓸만한 수준이었다.
“뒤로 떨궈주는 펠라이니! 시몬스, 왼쪽으로 벌려줍니다! 아자르에게 연결!”
반 바이텐과 펠라이니, 시몬스로 연결된 볼은 왼쪽 측면으로 투입되었다.
뛰어난 수비수지만 풀백으로 뛰기에는 스피드가 부족한 알베스, 그리고 굉장한 재능을 가졌지만, 아직 성장이 끝나지 않은 아자르가 맞대결을 펼쳤다.
“아자르, 현란한 드리블 페인트! 옆으로 한 번 제쳐놓고 크로스!”
민첩성이 떨어지는 알베스의 약점을 이용해 현란한 움직임으로 빈틈을 만든 아자르는 옆으로 살짝 빠지면서 마크를 벗겨내고 크로스를 올려주었다.
“페페 머리 맞고 뒤로 흐릅니다!”
아무래도 벨기에가 크로스를 통해 이득을 보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아자르의 크로스는 페페에게 먼저 걸렸다.
하지만 제대로 맞지는 않았고, 반대편 측면으로 흘렀다.
‘기회다!’
그리고 오버래핑해 올라왔던 성배가 볼을 향해 달려들었다.
“주! 슈팅 찬스!”
중거리 슈팅에 자신 없는 것치고는 성공률이 꽤 높은 편이었다.
중계진도, 동료들도 성배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이렇게 다 나오면...’
하지만 성배는 슈팅을 시도하지 않았다.
“슈팅 페이크! 반대편으로 접고!”
성배에게 슈팅 찬스가 나오면서 포르투갈 수비진은 급히 바깥쪽으로 달려 나왔다.
오른발에서 왼발로 볼을 옮기며 포르투갈 수비수들을 속여내고 빠져나온 성배의 눈에는 상대 수비수들이 빠져나오면서 자유롭게 놓인 동료들이 보였다.
“왼발로 찍어 차주고! 반대편에서 뎀벨레!!! 골! 골! 골! 몸을 날린 뎀벨레, 다이빙 헤더로 포르투갈의 골문을 열었습니다! 벨기에, 선취 골! 플레이오프 결과는 안갯속으로 빠져듭니다!”
중앙으로 이동한 성배는 왼발로 볼의 밑부분을 찍어 페널티박스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포르투갈 수비수들의 머리 위로 넘겼다.
그렇게 수비수 뒷공간을 노린 성배의 패스는 뎀벨레에게 연결되었고, 뎀벨레는 몸을 날려 골대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걸로 1-1! 양 팀 동률을 이루네요! 벨기에, 포르투갈을 상대로 플레이오프 결과를 원점으로 돌렸습니다!”
1차전의 패배를 만회한 득점이었다.
선취 골을 넣으면서 1-0 리드를 잡은 데다가 홈이기까지 한 벨기에가 반대로 유리해졌다.
* * *
“벨기에의 마지막 공격이 될 것 같습니다. 아직 1-0으로 앞서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연장전에 돌입하게 됩니다.”
선취 골 이후, 벨기에는 분명 경기의 주도권을 잡고 유리하게 이끌어갔다.
하지만 그 차이가 그리 큰 것은 아니었다.
벨기에가 잡은 주도권은 어느 팀에 선택권이 있느냐, 정도의 차이였다.
두 팀의 점유율은 마지막까지 5:5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득점도 나오지 않았다.
“주, 전방으로 크게 때려줍니다! 펠라이니가 받아주면서 마지막 공격 이어갑니다.”
펠라이니는 확실히 중원으로 뜨는 공중볼을 모두 제압해주고 있었다.
이번에도 먼저 볼을 따낸 펠라이니 덕분에 상대 진영으로 빠르게 넘어갈 수 있었다.
‘마지막이니까 끝까지 올라가자.’
이미 추가 시간 종료까지 10초도 남지 않았다.
이제 이번 공격이 끝나면 바로 후반 종료였고, 굳이 수비를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시몬스, 오른쪽의 미랄라스에게! 미랄라스, 뒤로 돌면서 다시 스루 패스! 주, 달려듭니다!!”
수비진영에서부터 미친 듯 달려온 성배를 향해 미랄라스의 스루 패스가 연결되었다.
‘좋다.’
성배의 오버래핑 타이밍도 좋았고, 펠라이니와 시몬스, 미랄라스를 거쳐 성배에게까지 연결된 패스의 타이밍도 완벽했다.
이런 완벽한 타이밍에 돌파하는 성배에게 볼이 연결되었다는 것은, 택배 크로스가 이어진다는 뜻이었다.
“그대로 논스톱 크로스!!”
성배의 러닝 크로스 정확도 역시 많이 올라왔다.
킥 정확도 자체가 높았고, 킥력과 바디 밸런스도 좋아서 금방 정확도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거 되겠다.’
반대편에서 파고드는 아자르의 움직임 역시 훌륭했다.
제공권 경합을 붙이지 않고 뒷공간을 노린 성배의 크로스는 포르투갈 수비진의 빈틈을 파고들어 아자르에게 연결되었다.
“아자르, 슬라이딩! 왼발!! 아! 골 포스트를 때립니다! 아쉬운 슈팅입니다! 완벽한 찬스였는데, 한 끗 차이로 골대를 때리고 맙니다!!”
아자르에게 연결되는 것까지는 완벽했고, 아자르 역시 멋진 침투로 슈팅까지 연결해주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골 포스트 옆을 때리면서 아웃되고 말았다.
“아! 정말 아쉽습니다! 그리고 바로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립니다. 벨기에와 포르투갈의 월드컵 플레이오프는 연장전으로 돌입합니다.”
골포스트를 맞춘 아자르의 슈팅을 마지막으로 경기는 연장전에 돌입했다.
* * *
“연장전 전후반 30분이 다 지나가도록 양 팀 모두 득점이 없습니다. 이제 슬슬 승부차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연장전에서도 팽팽한, 팽팽하다기보다는 두 팀 다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경기가 이어졌다.
연장 전반전이 결정적인 장면 없이 무던하게 끝났고, 후반전도 5분을 지나가면서 두 팀 다 슬슬 승부차기를 준비했다.
[IN - 25. 히카르두 페레이라 / OUT - 1. 에두아르두]
포르투갈에는 비장의 무기가 남아있었다.
2004년부터 포르투갈의 골문을 지키며 유로 2004, 2006 독일 월드컵 두 대회 연속으로 토너먼트에서 멋진 승부차기 선방을 보여준 히카르두 골키퍼였다.
“아, 케이로스 감독, 승부차기를 앞두고 골키퍼를 교체합니다.”
“히카르두 골키퍼, 전성기는 지났지만, 페널티킥 방어만 따지자면 여전히 전 유럽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선수죠. 만약 승부차기로 간다면 벨기에 선수들 킥에 신경을 쓸 필요가 있겠네요.”
유로 2004에서 맨손으로 페널티킥을 막아내는 패기를 선보이고 2006년 월드컵에서 잉글랜드의 모든 승부차기 방향을 읽어냈을 정도로 페널티킥 방어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수였다.
‘후우... 승부차기 가겠네.’
경기 분위기상 양 팀 모두 득점이 나올 상황이 아니었다.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성배도 슬슬 마음의 준비를 시작했다.
< 낭만필드 - 20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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