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이 사라진 필드-203화 (309/356)

< 낭만필드 - 203 >

맨시티의 휴즈 감독이 거취와 관련해서 거센 비난에 직면했지만, 성배에게는 다른 중요한 일이 있었다.

벨기에와 포르투갈의 2010 남아공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 2차 라운드가 눈앞에 있었다.

11월 14일과 18일, 양일에 걸쳐 홈&어웨이로 진행되는 이번 2차 라운드 결과에 따라 벨기에의 월드컵 복귀가 결정되었다.

[호날두, 결국 PO 불참! “너무 분하고 슬프다.”]

벨기에에게 호재가 따랐다.

포르투갈의 절대적인 에이스이자 지난 발롱도르 수상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발목 부상으로 플레이에프에 불참하게 된 것이었다.

발목 부상으로 소속팀 경기도 소화하지 못하던 호날두는 포르투갈 대표팀에 소집되면서 논란의 중심에 있었는데,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의 거센 항의와 경기 출전이 불가능하다는 포르투갈 대표팀 팀 닥터들의 진단에 따라 결국 불참하게 된 것.

“포르투갈에 도움이 되지 못해 너무 비참하고 분하다.”라고 말한 호날두는 경기장을 찾을 것이라 말했지만, 그라운드 위에서는 모습을 보일 수 없게 되었다.

‘호날두가 빠진다면. 어느 정도 가능성은 있어.’

사실 호날두만 없으면 포르투갈의 공격도 그리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벨기에의 공격진이 파울로 페레이라, 페페, 히카르두 카르발료 등이 버티는 포르투갈 수비진을 공략하기 힘들다는 것은 어차피 변함없었다.

하지만 호날두가 빠지면 마찬가지로 포르투갈의 공격진 역시 벨기에의 수비진을 공략하기 쉽지 않았다.

‘수비만큼은 이제 벨기에도 세계 최고 수준이니까.’

나니, 데쿠, 시망 등을 앞세운 포르투갈의 공격력은 호날두가 없어도 수준급의 위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벨기에의 수비진은 그 정도로 뚫기 힘들었다.

아직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적어 성장이 더 필요하긴 하지만, 세계 최정상급의 레프트백으로 거듭난 성배는 물론이고 오래전부터 분데스리가 탑클래스 센터백으로 군림한 반 바이텐, 아스날에서 주전 센터백으로 확실하게 자리 잡은 베르마엘렌, 리그에서는 아쉽지만, 국가대표팀에서는 자신의 가치를 확실히 보여주는 콤파니가 이루는 포백 라인은 두터웠다.

거기에 백업으로 네덜란드 명문 아약스의 센터백 듀오 베르통헨과 알더베이럴트까지.

누구 하나 주춤한 선수가 없었다.

‘승부는 미드필드에서 나겠어.’

그렇다면 결국 승부의 키를 쥐고 있는 곳은 중원이었다.

서로의 공격진이 상대의 수비진을 뚫어내기 힘들다면, 중원의 주도권을 어느 팀이 쥐느냐에 따라 승부의 향방이 갈릴 것으로 보였다.

*   *   *

[아, 이번처럼 중요한 무대에서 어떻게든 너를 발라버리고 결착을 내려고 했는데 말이지.]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호날두와 가끔 통화하는 사이가 되었다.

지금도 포르투갈과의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호날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지난번 대결에서 누가 이겼는지 잊은 건 아니겠지.”

그렇다고 둘 사이가 굉장히 친밀한 건 또 아니었다.

계속해서 맞부딪히고 서로가 서로의 성장에 도움을 주면서 시간이 지나다 보니 어느 정도 미운 정이 쌓였다고 봐야 했다.

옛말에도 있듯이 미운 정이라는 게 참 무서웠다.

[뭐, 벨기에 정도는 내가 없어도 충분하니까. 하하, 너는 뭐 어느 정도 괜찮다고 인정해주겠지만, 아직 벨기에는 멀었지.]

호날두도 이제는 성배를 인정해주고 있었다.

자신이 아니라면 포르투갈의 그 누구도 성배를 상대로 우세를 점하지 못할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성배와의 대결이 아닌 포르투갈과 벨기에의 대결로 한정하면 포르투갈이 벨기에를 이길 것이라고 확신하기도 했다.

“글쎄. 우리 팀이 아직 완성되지 못했다는 건 인정하지만, 포르투갈도 골을 넣지는 못할걸. 우리 수비진이 포르투갈 공격진보다는 나아 보이는데.”

포르투갈의 고질적인 단점인 최전방 스트라이커 부재.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이번 예선에서는 포르투갈 공격의 A이자 Z인 호날두가 한 골도 기록하지 못하며 덴마크에게 1위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피구, 콘세이상, 시망, 콰레스마, 호날두, 나니로 이어지는 포르투갈의 자랑이던 화려한 윙어진도 콰레스마의 부진과 나니의 느린 성장으로 인해 잠깐 비어버린 타이밍이었다.

[음... 거기에 대해서는 노코멘트하지.]

포르투갈 정도의 팀에서 스트라이커 자원이 이렇게까지 안 나온다는 것도 참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히카르두 사 핀투, 후앙 토마스, 후앙 핀투, 에우데르 포스티가, 우구 알메이다, 파울레타, 누누 고메스, 넬슨 올리베이라, 실베스트레 바렐라, 리에드손까지.

수많은 자원들을 시험해봤지만, 대부분 포르투갈 정도의 팀에서 주전 스트라이커로 뛰기에는 기량 자체가 크게 부족한 선수였다.

예외로 에우제비우의 포르투갈 역대 A매치 최다 골 기록을 깨고 리그앙에서 두 번이나 득점왕을 차지했던 파울레타는 탑클래스 스트라이커였지만, 메이저 대회마다 죽을 쑤었다.

“그리고 너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선수들도 차근차근 성장 중이다. 아마 몇 년만 더 지나면 네 이름만큼이나 벨기에 선수들의 이름이 언론에 많이 오르내릴 거다. 객관적으로 봐도 재능들이 뛰어나.”

포르투갈을 강팀으로 이끌었던, 골든 제너레이션 막바지에서 호날두 제너레이션 직전까지 버텨주었던 세대가 이제 은퇴를 앞두고 있었다.

호날두가 있어 그럴 일은 없겠지만, 여차하면 황금기 이후 암흑기에 빠져들었던 벨기에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었다.

[그럼 몇 년 뒤에 다시 보자고. 일단 이번 월드컵은 우리가 나갈 테니.]

어쨌든 그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가능성에 불과한 일이었다.

호날두의 말대로 지금까지는 아직 포르투갈의 전력이 더 강력했다.

*   *   *

“나니의 무리한 돌파 시도! 주성배, 간단하게 빼내는데, 휘슬 울립니다!”

라이트백으로 경기에 나선 성배는 포르투갈의 왼쪽 윙어로 출전한 나니와 계속해서 맞대결을 펼쳤다.

중간 결과는 당연히 성배의 압승.

나니는 성배를 상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기껏해야 프리킥을 얻어내는 것에 그쳤다.

‘저 자식이...’

성배는 주심을 노려보며 분을 삭였다.

오늘따라 주심의 파울 콜이 자신에게만 빡빡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착각했을 리는 없었다.

그런 부분에서 누구보다 눈치가 빨랐고, 파울이 선언되는 허들에 민감했다.

“이게 파울인가요? 볼부터 먼저 건드린 것으로 보이는데요?”

“아, 주심의 휘슬이 오늘 계속 아쉽습니다. 이상하게 주의 플레이만 유독 엄격하게 보는 것 같습니다.”

이건 성배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중계하고 있는 벨기에 중계진들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이상하게 성배에게는 휘슬의 허들이 낮았다.

‘젠장. 속이 좁아터졌군.’

성배는 그 이유를 대충 눈치 채고 있었다.

오늘 경기의 주심은 맨체스터 더비의 주심을 맡았던 그 잉글랜드 주심이었다.

‘그때 내가 한마디 했다고 이런 식으로 엿을 먹이는 건가.’

맨체스터 더비가 끝나고 성배는 주심을 살짝 비꼬았다.

말로는 이해한다고 하면서 앞뒤 살을 붙여서 주심의 판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어필한 것이었다.

안 그래도 크게 화제가 되었던 일이었고, 주심을 교묘하게 비꼬는 성배의 인터뷰도 재미있었기 때문에 그 후 이 주심이 나올 때마다 댓글에는 팬들의 비아냥이 끊이지 않았다.

‘오늘은 좀 사려야겠어.’

안타깝게도 판정은 주심의 재량이었고, 재량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없었기 때문에 성배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파울 콜을 받지 않게 조심스레 플레이하는 것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측면에서 나니가 올려줍니다, 중앙으로 크로스! 알베스, 헤더!! 아! ...들어갑니다, 브루노 알베스의 헤딩 득점. 포르투갈이 선취 골을 득점하며 앞서 나갑니다.”

결국, 성배가 내준 프리킥으로 인해 포르투갈의 선취 골이 터졌다.

주심이 계속해서 성배에게만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던 것이 터진 것이었다.

‘빌어먹을.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나니는 성배 앞에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주심 덕분에 아까부터 계속해서 프리킥을 얻어간다 싶더니, 결국 다섯 번째 프리킥에서 골을 만들어냈다.

“저 자식, 그거 맞지?”

콤파니도 계속된 주심의 행동에 눈치를 챈 것인지 성배에게 다가와 물었다.

“맞는 것 같은데, 뭐 잘 모르지. 수비만 잘했으면 짜증만 나고 끝일 수 있는 일이었고.”

성배가 심판들의 심기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잘 보이려 하는 것은 혹시나 모를 지금과 같은 상황 때문이었다.

심판들도 사람인지라 고의가 아니더라도 감정이 좋지 않은 선수에게는 좀 더 팍팍하게 규정을 적용할 수 있었다.

오늘 보이는 것처럼.

“자, 자! 괜찮아! 홈에서 한 골 정도는 충분히 만회할 수 있어! 원정에서 무실점으로 끝낼 거라 생각한 건 아니잖아!”

반 바이텐이 소리치면서 동료들을 격려했다.

포르투갈 원정에서 펼쳐지는 경기였기 때문에 패배하더라도 더 이상의 실점만 막을 수 있다면 홈 경기에서 역전을 노려볼 수 있었다.

“자자, 그렇다고 긴장 풀지는 말고! 동점 가자!”

전체적으로 경기 분위기를 내줬던 것도 아니었고, 그냥 프리킥 하나로 실점한 것뿐이었다.

한 골 내줬다고 심각할 필요는 없었다.

*   *   *

“자, 우리 상황이 나쁜 건 아니잖아? 그러니까 너무 긴장하지 말고 하던 대로만 하자고. 원정 0-1 패배는 그렇게 심각한 것도 아니야.”

결국, 원정 경기에서는 더 이상의 골이 나오지 않았다.

포르투갈 원정에서 그나마 최소한의 실점으로 패배한 벨기에는 포르투갈을 벨기에로 불러들여 2차전을 준비했다.

그렇게 불리한 상황은 아니었다.

“지난 1차전에서도 느꼈겠지만, 포르투갈의 공격은 우리 수비를 못 뚫어. 그러니까 미드필더들이랑 공격수들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공격하고, 포르투갈도 지난 경기에서 겨우 이겼으니까 오늘은 좀 수비적으로 나오겠지?”

그리고 오늘 역시 경기를 앞두고 선수단을 정비하는 건 리더 격 선수들, 그리고 빌모츠 수석코치의 몫이었다.

벨기에 국가대표팀이 좀 접어줘야 하는 감독이었기 때문에 아드보카트 감독은 AZ 알크마르와 벨기에 대표팀 감독을 겸직하고 있었다. 유럽 리그들도 모두 한참 리그가 진행되는 중이었고, 아드보카트 감독은 벨기에 대표팀에만 집중할 수 없었다.

“라이트백 알베스도, 레프트백 페레이라도 자기 포지션이 아니지. 그러니까 우린 측면을 노려야 해. 중앙의 카르발료랑 페페는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이니까.”

기량의 하락세가 완연해 이제 곧 첼시를 떠날 거라 예상되는 페레이라는 그것도 모자라 팀의 풀백 부재 때문에 레프트백으로 출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라이트백 자리에는 센터백 출신으로 라이트백 포지션 소화 능력이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은 브루노 알베스가 나와 있었다.

두 선수 모두 스피드가 느렸고, 아직 확실한 주전이 정해지지 않은 벨기에 측면 윙어 자리지만, 아자르, 미랄라스, 뎀벨레, 마르텐스 등 누가 나가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었다

“주. 공격에서도 큰 역할, 기대해도 되겠지?”

그리고 빌모츠 수석코치 역시 성배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누가 뭐래도 벨기에 국가대표팀 플레이의 핵심은 성배였다.

“뭐, 그 정도는 가뿐하죠. 크리스만 아니면, 부담은 없습니다.”

이젠 주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나니는 이번 경기에 기대 자체를 하지 않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을 것이었다.

< 낭만필드 - 203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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