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필드 - 198 >
[주성배의 도발! “맨체스터의 주인은 맨체스터 시티 뿐!”]
[주성배, “퍼거슨 경이 크게 편찮으신 줄 알았다.”]
성배의 인터뷰는 안 그래도 뜨거운 맨체스터 더비에 휘발유를 송유관 채로 들이부었다.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가 된 이상, 어차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에게 미움받는 것은 당연했다.
그럴 거라면 괜히 어설프게 몸을 사리는 것보다 제대로 도발해서 잉글랜드 전역에 이름을 알리고 팬들의 지지를 받는 것이 이득이었다.
ㄴ 역시! 주가 뭘 아네! 맨체스터의 주인은 오직 시티 뿐이지!
ㄴ 뭐라는 거야? ‘맨체스터’라고 하면 열 명 중 아홉 명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말할 텐데. 나머지 한 명은 버즈콕스.
ㄴ 개소리! 트래포드 유나이티드 팬들은 트래포드로 꺼지라고. 우리 맨체스터 사람들이 도와줄 테니까 살기 어렵다고 너무 울지 말고.
ㄴ 와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정확히 해줬네.
ㄴ 주가 합류하고 난 뒤에는 좋은 일만 있는 것 같아. 말도 잘하고. 속이 시원하게 뚫리네, 아주.
당연한 말이지만, 맨체스터 시티의 팬들은 성배의 인터뷰에 열광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안 좋게 헤어져 감정이 남은 테베즈도 맨유를 향해 독설을 날려대고 있었지만, 그쪽은 아무래도 개인감정이 섞여서 그런지 시티 팬들이 보기에도 좋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맨유와 딱히 개인감정이 나쁠 일은 없는 성배는 온전히 시티와 시티 팬들을 대표한 독설을 날렸고, 시티 팬들이 열광하는 건 당연했다.
[WELCOME TO MANCHESTER!!]
다음 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인 올드 트래포드에는 이런 대형 걸개가 걸려 있었다.
‘맨체스터 방문을 환영합니다!’
맨체스터의 진정한 주인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고, 맨체스터 시티는 그곳에 방문한 손님이라는 뜻이었다.
“하하하! 저거 보입니까? 굉장히 웃기지 않습니까? 하하!”
그리고 성배는 맨체스터 시티 서포터즈 좌석 앞에서 그 걸개를 가리키며 박장대소했다.
물론 계산된 행동이었다.
“하하, 주가 저런 쇼맨십이 있는 선수였나요? 맨유 서포터들이 맨시티를 조롱하기 위해 걸어 놓은 걸개를 가리키며 서포터들과 함께 비웃고 있네요.”
“의외로 유쾌한 선수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철두철미하고 계산적인, 프로의식이 투철한 선수라고만 생각했는데, 유쾌한 부분도 보입니다.”
그리고 그 장면은 잉글랜드 전역에 생중계되었다.
사진 기자들 역시 좋은 구도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 * *
“플레처, 오른쪽의 박인진에게! 박인진 선수와 주성배 선수가 맞붙었습니다.”
지난 시즌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부동의 라이트윙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였다.
하지만 호날두가 이적한 지금, 양쪽 윙어 자리를 놓고 라이언 긱스, 박인진, 루이스 나니, 안토니오 발렌시아가 경쟁 중이었다.
그 뒤에는 가브리엘 오베르탕과 조란 토시치도 버티고 있었다.
“일단 시즌 초반에는 우리 박인진 선수와 긱스, 발렌시아가 중용되는 모양새입니다.”
“그렇죠? 박인진 선수가 호날두가 떠난 자리를 충분히 차지할 수 있을 거라 보이네요.”
박인진과 성배가 나란히 훌륭한 활약을 펼쳐주면서 EPL 중계권을 획득한 한국 방송사는 매일 행복에 겨운 비명을 질렀다.
올해에도 박인진의 활약은 좋았다.
언제나처럼 뛰어난 팀플레이로 팀에 공헌했고, 부지런히 뛰어다니면서 동료들을 살려주는 역할은 세계에서도 최고였다.
다만...
“아, 주성배 선수가 태클로 끊어냅니다! 전방으로 길게! 역습 패스가 나갑니다!”
지금 빈 자리는 호날두의 자리였다.
공격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뜻이었고, 박인진이 발렌시아, 나니 등 경쟁자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부족한 부분이었다.
“형, 미리 미안할게.”
어느새 말을 놓은 성배가 박인진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뭐가 미안한데?”
“내가 맨유한테 좀 쌓인 게 많아서. 호날두는 갔지만, 오늘 화풀이 좀 하려고.”
그리고 또 한 가지의 불운은...
맨유에게 쌓인 게 많은 성배가 상대라는 것이었다.
“맨체스터 시티,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먼저 한 골을 넣으면 바로 한 골을 따라가면서 점수 차이가 벌려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달라진 맨체스터 시티의 모습은 경기 내에서 확실하게 나타났다.
지난 맨체스터 더비들과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했다.
맨시티는 맨유를 상대로 라인을 내리지 않고 맞불 작전을 놓았고, 그럼에도 맨유는 맨시티를 압도하지 못했다.
나이젤 데 용, 가레스 배리, 스티븐 아일랜드의 맨시티 중원은 안데르손과 대런 플레처의 맨유 중원을 수적으로 압도하며 중원 싸움에서 우세를 가져갔다.
“전체적으로 중원의 주도권을 가져간 맨시티가 조금 우세한 모습이죠? 다만, 맨유도 루니가 활발하게 내려와 주면서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고 있지만, 테베즈도 중원 가담이 활발한 선수라 그렇게 큰 효과를 거두진 못하고 있어요.”
루니는 그 활동 반경이 넓고 중원 장악에까지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선수였지만, 베르바토프가 워낙 부진했고, 호날두 이탈 후 주득점원 역할을 맡아 전방에서 쉽게 내려오지 못했다.
반면, 루니만큼은 아니어도 못지않게 활동 반경이 넓은 테베즈는 컨디션이 좋은 벨라미에게 전방 공격을 어느 정도 맡기고 중원까지 자주 내려와 주었다.
어시스트도 두 개.
자신을 버린 맨유에게 제대로 복수하는 중이었다.
‘확실히 호날두의 빈자리가 작진 않아. 카를로스까지 빠지니까 공격력은 분명 많이 떨어졌어.’
주득점원인 호날두가 빠진 이후, 호날두를 위해 잠시 뒤로 물러나 지원에 전념하던 루니가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루니의 재능은 역시 놀라웠다.
그 덕에 단순히 득점력 자체만 따지면 지난 시즌의 맨유와 이번 시즌의 맨유가 큰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공격 작업에서의 위력을 따지자면 아무래도 약해진 것이 사실이었다.
“박인진 선수 쪽으로 스루 패스!”
플레처가 오른쪽 뒷공간으로 스루 패스를 찔러 넣어 주었다.
‘안 되지. 인진이 형 스피드로는 안 된다고.’
하지만 박인진은 호날두가 아니었다.
마지막 맞대결에서 호날두에게까지 우세승을 거둔 성배는 공격력이 아쉬운 박인진이 뚫을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었다.
“박인진과 주성배의 경합! 아! 주성배 선수가 한발 앞서서 볼 따냅니다.”
서로의 유니폼을 잡아당기며 치열한 경합을 펼친 끝에 볼의 소유권을 따낸 선수는 성배였다.
옆에 바짝 붙어서 몸싸움을 펼치니 스피드에서도 밀리고 피지컬에서도 밀리는 박인진은 도저히 이겨낼 수 없었다.
“박인진 선수가 주성배 선수를 뚫어내려면 부딪히지 않아야 해요. 경합이 일어나면 이겨낼 수 없어요.”
오늘 경기에서 박인진은 성배에게 꽁꽁 틀어막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특유의 활동량마저 실종되면서 정말 아무것도 못 했다.
“사실 박인진 선수뿐 아니라 이번 시즌 들어 주성배 선수와 부딪힌 그 어떤 선수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죠. 이젠 명실공히 EPL 탑클래스 풀백 중 한 명이에요.”
이제 사람들의 평가는 애쉴리 콜, 그리고 그다음이 성배였다.
지난 시즌 후반기에 한 번의 성장을 이룬 성배는 이번 시즌 들어 자신의 연봉이 진짜 자신의 위치라고 어필하는 듯 맹활약을 이어왔다.
‘자, 그럼 가볼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공격 전개를 가볍게 끊어낸 성배는 중앙의 배리에게 볼을 내준 뒤 위로 올라갔다.
원래 오늘 맨체스터 시티의 전술은 투톱 중 한 명인 벨라미가 왼쪽 측면까지 커버하는, 4-2-3-1에 가까운 4-4-2였다.
이런 전술이 가능한 이유는 레프트백으로 나서서 공격에서도 큰 역할을 해주는 성배의 존재 덕분이었다.
“배리, 다시 주에게 볼 넘겨줍니다!”
박인진이 복귀하지 못한 상황에서 성배를 막을 수 있는 선수는 없었다.
맨유 미드필더들은 맨시티 미드필더들을 커버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EPL 정상급 미드필더로 성장한 플레처지만, 안데르손을 데리고 맨시티 미드필더들과 상대하기는 쉽지 않았다.
‘아일랜드, 카를로스, 크레이그. 좋아, 완벽해.’
맨시티 공격진의 위치는 완벽했다.
가까이에는 아일랜드가, 멀리는 테베즈가 성배의 돌파를 도와주고 볼을 받아주기 위해 자리 잡았다.
그리고 왼쪽 측면에 있던 벨라미는 중앙 쪽으로 이동했다.
“아일랜드에게 패스, 아일랜드, 안데르손의 압박을 벗어나 다시 리턴 패스! 주성배 선수가 돌파를 이어갑니다!”
성배의 돌파를 위해 두 명의 선수가 도와주고, 크로스를 받아주기 위해 한 명이 박스 안으로 침투했다.
성배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면 있을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다시 돌려주면 좋겠는데.’
이제는 더 이상 성배를 가만히 둘 수 없었다.
라인을 지키며 서 있던 오셔가 성배의 돌파를 막아서기 위해 뛰쳐나왔고, 성배는 테베즈에게 볼을 넘겨주었다.
“테베즈, 논스톱 리턴! 주성배!”
성배는 테베즈에게 느린 패스를 넣어주었다.
무게 중심을 낮게 가져가며 뒤에서 가해지는 압박을 버텨낸 테베즈는 볼을 받았고, 느린 패스가 이어지는 사이 어느새 오셔를 떨쳐낸 성배에게 논스톱으로 볼을 돌려주었다.
‘좋아!’
뛰어난 선수들과 함께하니 확실히 원하는 대로 패스가 이어졌다.
원하는 플레이가 바로 나오니까 당연히 경기하는 재미도 있었다.
‘수고했어.’
오셔가 급히 붙었지만, 성배는 전혀 서두르지 않았다.
“백숏! 오셔를 따돌리고 바로 크로스!”
호날두를 상대하면서 질리도록 겪어보았던 백숏이었다.
그 활용도에 비해 난이도가 높지는 않았기에 발끝 감각이 좀 아쉬운 성배도 능숙히 사용할 수 있었다.
오셔를 가볍게 따돌린 성배는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오른발 크로스를 올려주었다.
“벨라미!! 골! 골입니다!! 크레이그 벨라미, 몸을 날리면서 오른발 슛! 맨체스터 시티, 드디어 역전합니다! 3-2로 앞서가는 맨체스터 시티!”
결국은 성배의 크로스가 올라올 것이라 확신하고 중앙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며 자리를 잡아놓은 벨라미였다.
그의 기대대로 측면에서 크로스가 올라왔고, 벨라미는 맨유 수비수들보다 한발 앞서 볼을 따라잡으며 발을 뻗었다.
골라인 쪽으로 바짝 붙은 볼에 몸까지 날려가며 발을 뻗어 밀어 넣은 벨라미의 집념이 돋보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맨체스터 시티가 분명 크게 성장하긴 했지만, 여긴 올드 트래포드 아닙니까?”
퍼거슨 감독은 껌을 갈아버리겠다는 듯 거칠게 씹었다.
수십 년에 걸쳐 만든 팀이었다.
그런 자신의 팀이 고작 1년 만에 만들어진, 그것도 넘치는 돈 말고는 다른 어떤 노력도 들어가지 않은 팀에게 홈에서 패배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건 그렇고, 주성배 선수, 벌써 리그 3호 어시스트입니다. 5경기 2골 3어시스트의 기록인데, 이게 수비수의 기록이 맞나요?”
이번 시즌 초반 성배의 기세가 무서웠다.
타고난 신체 조건이 부족해 탑클래스의 자리를 내줄 수 없다며 맨체스터 시티와 성배의 계약을 비난하던 전문가 및 팬들에게 이런 활약을 해도 안 되냐고 항의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맨유 입장에서는 호날두의 이적과 캐릭의 부상이 뼈아프네요. 주성배 선수를 항상 괴롭혀주던 호날두의 이탈로 오른쪽 측면이 완전히 죽어버렸고, 중원 싸움도 여의치 않아요.”
74년 4월, 올드 트래포드에서 펼쳐진 맨체스터 더비에서 승리한 이후 맨시티는 올드 트래포드 전적 1승 11무 13패로 형편없이 밀렸다.
지난 2008년 2월 10일에 34년만에 승리를 거두었을 정도였다.
올드 트래포드에서 맨유에게 승리한다는 것은 맨시티 팬들에게 당연히 큰 의미가 있었고, 오늘 그 가능성이 보였다.
< 낭만필드 - 198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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