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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사라진 필드-196화 (307/356)

< 낭만필드 - 196 >

“프랭키. 이제 라인 끌어올리고 마지막으로 한 골 노리죠. 어차피 이 경기에서 비기면 가망이 없어요. 플레이오프라도 나가려면 무조건 잡아야 합니다.”

6경기에서 승점 7점. 남은 네 경기를 전부 잡아야 19점.

스페인은 6전 전승으로 승점 18점이었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도 12점의 승점을 따내고 있었다.

여기서 더 벌어지면 벨기에의 2010 월드컵은 끝이었다.

“음... 공세로 나가도 괜찮을까요? 그래도 승점 1점이라도 따내는 게 낮지 않겠습니까?”

성배의 지시대로 벨기에 선수들은 길고 긴 골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끌어준 시간을 이용해 성배는 벤치를 찾아가 베우스만테른 감독과 전술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덕분에 늦은 시간에 터진 동점 골에 분노한 스페인 홈팬들 앞에서 골 세리머니를 펼쳐야 하는 벨기에 선수들만 죽어났다.

“아뇨. 어차피 남은 네 경기 전부 다 이기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못 해요.”

아무래도 베우스만테른 감독은 스페인과의 무승부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럴 만도 했다.

세계 최강 스페인, 35경기 연속 무패 기간 32승 3무라는 말도 안 되는 성적을 기록한 스페인과 무승부만 거두어도 감독 입장에서는 큰 성과였다.

“프랭키. 어차피 임시 감독이잖아요. 차기 감독 선임되면 새로운 일자리 알아봐야 할 텐데, 잃을 것도 없으니 한 건 해봐요.”

성배가 결정적인 부분을 건드렸다.

베우스만테른 감독은 어차피 시한부 임기의 감독으로, 오늘 패배하더라도 잃을 것이 없었다.

“음... 좋아요. 그렇다면 해보죠.”

성배의 설득에 마음을 돌린 베우스만테른 감독은 정규시간으로는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남은 시간 어떤 식으로 경기를 운영해야 할지를 상의했다.

사실 방법은 정해져 있었다.

스페인에는 지금 확실한 구멍 하나가 있었다.

“어라? 경기가 갑자기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어요. 벨기에, 경기도 다 끝나가는 타이밍에 뜬금없이 분위기를 끌어올리네요! 아직도 이럴 체력이 남았나요? 분명 체력 소모는 벨기에가 훨씬 심했는데요?”

코너킥을 통해 동점을 만든 이후, 모두의 예상을 깨고 벨기에는 공격적인 전술로 전환했다.

벨기에가 공격적인 전술로 전환한다면 스페인 입장에서는 고마워해야 했겠지만, 의외로 벨기에가 크게 밀리지 않으며 팽팽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벨기에 미드필더들, 굉장하네요. 아직까지도 활발하게 움직여주고 있어요. 정말 많이 뛰어주었거든요? 그런데 시몬스와 교체된 비첼은 그렇다 치더라도, 전반전부터 정말 많이 뛰어준 펠라이니와 데푸르는 여전히 많이 뛰네요.”

베우스만테른 감독의 마지막 지시를 받아든 벨기에 미드필더들은 정말 경기가 끝나고 쓰러질 것처럼, 오늘이 마지막 경기인 것처럼 뛰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벨기에에게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조금씩 중원의 주도권이 벨기에 쪽으로 넘어옵니다.”

성배와 베우스만테른 감독이 공통적으로 지적했던 스페인의 문제점.

그것은 바로 파브레가스였다.

“사비가 교체되어 나가면서 스페인의 중원 장악력이 확실히 떨어졌어요. 이 부분을 잘 파고드는 중이죠?”

파브레가스의 공격 재능은 분명 대단했다.

하지만 중원 장악력과 미드필더들의 수비 가담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스페인 티키타카 전술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파브레가스의 수비 가담 빈도는 형편없는 수준, 아니, 전혀 없는 수준이나 마찬가지였다.

“스페인 미드필더들도 지쳤거든요? 이들의 부담을 덜어줄 선수의 교체 투입이 필요한데, 오히려 지친 사비보다도 수비 가담 능력이 떨어지는 파브레가스가 투입되었어요.”

스페인 선수들도 게임 캐릭터가 아니었다.

전반전부터 계속해서 좀비처럼 달려든 벨기에 미드필더들의 압박에 체력 소모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가뜩이나 지친 상황에서 파브레가스의 역할까지 나누어서 더 짊어졌으니,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공격적인 측면에서는 추가 골을 만들어내는 등 좋은 모습을 보이지만, 동점이 된 지금은 파브레가스의 교체 투입이 악재로 작용하네요.”

덕분에 성배와 베우스만테른 감독이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전술을 선택할 수 있었다.

스페인의 특성상 미드필드가 흔들리면 공격까지도 같이 흔들렸다.

“파브레가스, 깊게 롱 패스! 반 바이텐이 걷어냅니다! 오른쪽 측면으로 흐르고, 주와 실바가 따라갑니다!”

다급해진 파브레가스가 전방으로 길게 올려주었지만, 스페인의 롱패스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반 바이텐도, 콤파니도 제공권에서 스페인 공격수들을 압도했고, 가볍게 클리어했다.

‘빠르게 제치면 바로 역습인데.’

볼을 따라가면서도 앞을 주시하는 걸 게을리하지 않았다.

벨기에 역습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전방 상황을 파악하려 노력했다.

동점 골을 허용한 스페인은 자존심상 홈에서 무승부로 끝낼 수 없었기에 라인을 한껏 끌어올려 공격을 진행하던 상황이었고, 여기서 빠르게 치고 나갈 수만 있다면 역습으로 이어나갈 수 있었다.

‘마루앙! 움직임 좋아.’

그리고 펠라이니는 자신을 굳게 믿는 것인지, 아니면 스페인을 잡을 수 있다는 것에 흥분한 것인지 볼을 따내지도 못했는데 벌써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었다.

실바를 따돌리고 볼을 따낼 수만 있다면 역습을 위한 타겟맨은 이미 준비된 것이었다.

‘한 번 해보자.’

일단 성배가 실바보다는 조금 더 앞에 있었다.

먼저 볼을 잡을 순 있겠지만, 실바를 뚫고 지나가는 건 확신할 수 없었다.

“주, 한 발 먼저 볼을 잡고, 아!! 멋진 턴으로 지나갑니다!”

볼을 따라잡은 성배는 왼발로 볼을 찍어 살짝 뒤쪽으로 당겼다.

그리고 몸을 180도 돌리면서 오른발 아웃사이드로 볼을 밀어냈다.

진행방향을 순식간에 90도 전환하는 테크닉, 맥기디 스핀이었다.

“멋진 맥기디 스핀! 이런 테크닉도 가지고 있었나요?”

아일랜드의 테크니션 에이든 맥기디의 전매특허로 유명해졌고, 바이에른 뮌헨의 프랑크 리베리의 18번 개인기이기도 한 드리블 테크닉.

마르세유 턴과 비슷하지만, 180도가 아닌 90도로 전환해 상대 선수를 벙찌게 만드는 테크닉이었다.

‘내가 스페인을 상대로 이런 걸 해내다니.’

안더레흐트 때 한두 번 정도 활용한 적은 있었지만, 그 이후 공식전에서 이런 테크닉을 구사한 건 처음이었다.

특히나 스페인을 상대로 한 중요한 경기에서.

‘지금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실바를 제치고 달리던 성배의 앞을 다시 한 번 부스케츠가 가로막았다.

다만, 아직 거리는 충분했다.

“주, 앞으로 길게 때립니다! 펠라이니가 따라가서 자리 잡습니다!”

성배에 대한 신뢰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쨌든 먼저 달려나갔던 펠라이니는 어느새 스페인 진영 절반 이상을 달려나간 상황이었다.

페널티박스를 10m도 남겨놓지 않은 가까운 곳에서 자리 잡은 펠라이니는 성배의 패스를 받아내기 위해 뛰어올랐다.

“펠라이니와 피케, 피케가 뒤에서 밀면서 걷어내지만, 휘슬이 울립니다! 벨기에, 프리킥을 얻어냅니다!”

먼저 도착해 버티는 펠라이니의 힘을 이겨내지 못한 피케였다.

양옆에서 아자르와 미랄라스가 파고들면서 급해진 피케는 무리해서 몸을 날렸고, 먼저 자리 잡은 펠라이니를 뒤에서 밀어버리고 말았다.

“좋아!”

그리고 주먹을 움켜쥐며 환호한 성배는 프리킥을 처리하기 위해 위로 올라갔다.

“벨기에, 좋은 찬스를 맞이합니다. 벌써 시간도 후반 43분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어쩌면 마지막 찬스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짝 멀다는 느낌도 있지만, 그래도 골대까지 30m 정도에 불과했다.

충분히 직접 노릴 수 있는 위치였고, 성배의 킥을 감안하면 득점을 기대해봐도 좋은 상황이었다.

‘꼭 넣어야 하니까 안전하게 찰 거라고 생각하겠지.’

살짝 오른쪽으로 치우친, 왼발로 슈팅하기 딱 좋은 위치였다.

평소였다면 왼발 인프런트로 가볍게 감아서 먼 쪽 골포스트를 노렸을 것이었다.

하지만 꼭 승리가 필요한 오늘,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르는 지금 상황에서 그렇게 처리하면 상대 골키퍼인 카시야스에게 막힐 것 같았다.

‘그런 뻔한 프리킥을 카시야스가 못 막을 리 없지.’

세계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카시야스였다.

먼저 예측만 한다면 프리킥을 막아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터였다.

거리도 가까운 건 아니라서 막을 시간은 충분했다.

‘그냥 안전하게 처리할까, 아니면 다소 무리더라도 모험을 한 번 해봐야 하나.’

안정적으로 처리할 경우, 득점으로 이어질 확률은 조금 낮더라도 선택 자체가 비난받을 이유는 없었다.

모범 답안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여기서 모험을 할 경우, 득점으로 이어질 확률도, 킥 자체가 빗나갈 확률도 높았다.

이렇게 되면 선택 자체가 비난받을 수도 있었다.

괜히 확률 낮은 선택을 했다가 마지막 기회를 엎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오늘 난 할 만큼 했어. 그러니까 한 번 시도라도 해보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늘 성배의 활약이 좋았다는 것이었다.

1골 1어시스트.

벨기에의 두 골에 모두 관여한 성배였기에 여기서 프리킥 한 번 날려 먹어도 큰 비난이 일지는 않을 것이었다.

“주, 달려들면서 프리킥! 아웃사이드 킥!!”

생각을 마친 성배는 볼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왼발 아웃사이드로 강력한 킥을 시도했다.

몸이 공중에 꽤 높이 떴을 정도로 온몸의 힘을 발끝에 끌어모은 킥이었다.

‘제대로 걸렸나?’

일단 시작 방향은 완벽했다.

스페인 수비벽의 오른쪽 끝 선수의 옆을 통과한 볼은 급격히 바깥쪽으로 꺾이며 골대를 향해 날아갔다.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스핀이 제대로 걸렸다면 가까운 쪽 골포스트를 향해 날아갈 것이고, 제대로 걸리지 않았다면 옆 그물에 걸리거나 아예 골라인 바깥으로 나갈 것이었다.

‘제발, 제발 안쪽으로!’

완전히 허를 찔린 카시야스는 역동작에 걸리며 제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했다.

카시야스가 몸을 날리기엔 이미 타이밍이 늦었다.

만약 골대 안쪽으로 꺾이기만 한다면 이건 무조건 골이었다.

“골포스트 안쪽을 때리면서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주의 엄청난 프리킥! 이 얼마나 완벽한 프리킥입니까! 벨기에, 3-2로 역전에 성공합니다!!”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회전이 약간 부족해 덜 꺾인 감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골포스트 안쪽을 때리면서 골라인을 넘어갔다.

카를로스의 UFO 프리킥에는 훨씬 못 미쳤지만, 어쨌든 멋진 아웃사이드 프리킥 득점이었다.

“엄청난 프리킥이네요! 제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득점입니다!”

성배의 프리킥으로 벨기에는 스페인에게 한 골 차 리드를 잡으며 역전에 성공했다.

남은 시간은 고작 5분여.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벨기에의 승리가 눈앞에 다가왔다.

벨기에는 마지막 5분이라는 시간 동안 열한 명의 선수들이 모두 자기 진영에 똘똘 뭉쳐 한몸이 되어 스페인의 파상공세를 막아냈다.

나흘 뒤 이어진 아르메니아와의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 8차전에 몇몇 선수가 불참했을 정도로 선수단 전원이 사력을 다하다 못해 황천길을 구경할 때까지 뛰었다.

그 덕에 세계 최강 스페인에게 3-2 승리를 거둔 벨기에는 이어진 아르메니아와의 경기에서도 2-0으로 승리, 승점 13점으로 월드컵 진출의 희망을 이어나갔다.

< 낭만필드 - 196 > 끝

ⓒ 미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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